순정(順情), 그 두 번째 이야기
"순정이라고 불러주어, 탄소야."
순정이? 그 순정이? 하지만 순정이는 계집인데... 친근하게 말을 붙여오는 까닭에 정말 그 순정이가 아닌가 싶었다. 내 기억 속 순정이는 계집이고 내 눈 앞의 이 사내는 전혀 계집으로는 보이지 않는데두 순정이라고 불러달라는 그 말이 익숙하고 친근해 끔벅 그 순정인가 놀랐다.
"도련님 존함이 순정이신지요?"
"탄소야, 나를 잊은 게냐? 나다, 순정이."
"예? 예?!"
"나는 한시도 탄소 너를 잊은 적이 없건만 너는 나를 홀라당 잊었나보구나."
'나쁘다, 나뻐'하며 나를 장난스레 나무라는 그의 목소리에도 놓은 정신줄을 붙잡을 수 없었다. 아냐, 내가 아는 순정이는 계집 아인데!
"아니믄... 나를 아직 계집으로 기억 하구 있나보군. 그 때의 탄소 너도 참 눈치가 없었지. 어찌 계집 아이가 같은 계집헌테 혼인 약조를 하자구 해?"
"정말... 정말 순정이?"
"그렇대두. 내가, 그 순정이다. 네가 혼인할 수 있음 혼인해준다던."
말갛게 웃는 저 사내를 나는 모른다. 아니, 이제 아는 사내가 됐다. 내가 꿈에서두 그리던 그 순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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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의 시선
금일 탄소를 만나러 간다. 나의 정혼자. 나와 혼약을 맺은 탄소를 보며 내 집안이, 내가 아깝다 말을 늘어 놓는 사람들은 사실은 내 고집으로 혼약을 맺었다구 생각 못 하겠지. 탄소를 처음 만난 건 언제인지 확실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어떻게 만났는지는 아직두 기억이 난다.
영의정 대감 댁 막내 아들로 태어나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잔뜩 받고 자라난 내게 그 관심과 사랑은 부담이었다. 어린 나이의 나는 집안이 답답했고, 영의정이라는 배경이 무서웠다. 그래서 슬그머니 집을 나왔던 것 같다. 싫다는 춘분이 옷을 억지로 뺏어다가 입고는 저잣거리로 나와 길을 헤매고 있을까, 분홍 치마를 입은 계집애가 나타나 길을 잃었냐며 이름을 물어왔다.
'이름이 무엇이니?'
'나는 탄소라구 한단다. 너는 이름이 무엇이니? 여기선 못 보던 아이인걸'
이름이 무어냐 묻는 그 말에 가슴께가 싸하게 쓰렸다. 이름, 고것이 문제구먼. 태형이라는 내 이름은 알려진지 오래구... 어찌해야할까. 사람들이 모르는 내 이름, 고것이... 고것이... 아 그래, 순정이. 내 아명 순정이가 좋겠구나.
평소엔 계집애같아 싫어하던 내 아명이 이런 곳에 쓰이니 싫던 아명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순정이란다. 순할 순에 뜻 정.'
'이름 참 어여쁘구나! 맘에 들었다. 우리 오늘부터 동무 하는 것이야!'
그 이후로 집을 몰래 빠져나와 탄소와 노는 시간이 많아졌고 탄소가 나를 계집 아이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괜히 부스럼 만들기 싫어 사내란 소릴 일절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던가, 결국 아버님께 걸려 된통 혼이 났다. 아버님은 내게 외출을 금하셨고 나는 애걸복걸 저자에 있는 친구에게 작별 인사만은 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런 내 모습에 아버님이 한숨을 푸욱 내쉬시며
'단 반시진(대략 1시간)만 주마. 늦으면 더 혼이 날게다. 알았느냐?'
그대로 뛰쳐나가 탄소에게 혼인 약조를 받아냈던 것 같다. 그리고 금일, 정식으로 내 정혼자인 탄소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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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서 기다리신다고 아씨께 전하면 될까요?'
"그래. 아 참. 몸종은 저 앞 호수에 세워두고 오라고 전하거라."
'예, 되련님.'
이제 본단다. 탄소를 본단다. 괜스레 고름을 다시 매어보고 갓도 이리저리 움직여보다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얼른 뒷짐을 지었다. 아씨, 갓 비뚤어진 것 같아. 우물쭈물 뒤도 안 돌아보고있자 탄소가 나를 불렀다. 그 어여쁜 목소리로 다소곳이.
"도련님...?'
"순정이"
"예?"
"순정이라고 불러주어, 탄소야."
이 말과 함께 뒤를 돌았다. 가슴이 성나게 뛰어대 터질 것만 같구나. 참으로, 보고 싶었다. 내 정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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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에 올렸던 부분은 여기까지네요.
다음은 이번 주 안으로 올라올 겁니다. 근데 저도 장담을 못 하겠네요...^^...또륵...
아 벌써부터 글이 노잼인 거 같아요, 전 답이 없나봐요...
역시 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