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지노선은 어디일까
w 가르손느 륀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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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신이 내린 가장 큰 축복이다.
아픔을 잊는 사람이 있긴 할까, 사실 잘 모르겠다. 잊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리고 싶다는 게 제일 정확한 말이 아닐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에서 탈락되어버리는. 가끔 신이 자신만 제외하고 다들 빼어난 능력을 주신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다들 저 나름대로 자신의 능력을 뽐내며 잘 살고 있으니.
신을 믿는 편은 아니긴 하지만 딱 한 가지, 이것만은 확실하다. 신은 나를, 그리고 우리를 기회의 숲에서 배제해버렸다.
01.
구름이 태양을 가려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날은 습하고 온도는 점점 올라가 사람들을 땀으로 샤워하게 만들고 있었다.
내일 비가 오려나보다, 원래 습하고 더운 날 다음에는 비가 온다던데.
˝ 오세훈, 집중 안 해? ˝
˝ ……. ˝
˝ 이정도 성적이면 대학도 못 가. 갈 형편도 아니고. 고등학교 졸업 시켜주려고 얼마나 선생님이 …. ˝
굳이 말 안 해주셔도 알아요. 그래서 집중 안 하고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무의미한 사과들, 반복되는 다그침은 고등학교 3년 내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다.
대학 갈 생각도, 졸업하고 남아있는 친구들도 또 주위에 친인척이나 나를 도와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건 애초에 알던 사실이다.
공공연하게 학교 내에 퍼지게 된 것도 그 것이 담임 선생님 때문인 것도 또 의미 없이 상담을 늘리며 자신의 가벼운 입에 대한 사실을 무마하려던 당신의 노력도 모두.
대충 이야기를 듣는 척 하며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니 지쳤다는 듯 상담을 끝낸다. 지겹다고 말 하는 것도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는 일상은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02.
˝ 어디서 또 맞고왔어. ˝
˝ 맞기는 뭘, 야구 동아리에서 연습하다 공에 맞은거지. ˝
세훈의 티셔츠를 걷어올려 이곳 저곳 멍 든 상처들을 조심히 쓸어내린다. 이게 또 거짓말이네. 저번 달에는 동아리 같은거 안 들었다고 말 했으면서.
준면은 괜히 심술이 나 벌겋게 아픔을 머금고있는 멍 위에 주먹으로 때리는 시늉을 해보인다. 세훈은 그저 작게 웃으며 준면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빗어내리다 감싸안았을 뿐.
˝ 우리 너무 잘 통해서 형이 내 학교생활을 모조리 알아챌 까봐 그게 좀 겁나. 나 사실 학교에서 꽤 인기 많거든. ˝
˝ 너, 거짓말도 자주하면 습관된다. ˝
매미는 목청 껏 울며 구애를 하고 뜨거운 햇빛은 사방팔방 세상을 째려보기에 바쁘다. 곧 철거 될 집 안에 한없이 나른한 두 사람은.
형, 그런 상상 해본 적 있어? 풀 숲에 반딧불들이 선율을 그리며 날아다니고 잔디밭에 털썩 누워 하늘을 올려다 봤을 때
별이 쏟아질 듯 반짝여 바람이 자연의 연주를 지휘하곤 달이 작별인사를 하는 줄 도 모른채 까무룩 잠이 드는.
형 침대에 누워 어릴 적 천장에 붙여놓은 야광별 스티커를 가만히 보다 생각났어. 제일 중요한건 그 공간을 오롯이 형과 함께 해야한다는게 만족스러운 상상의 끝자락이라는 것.
목이 부러져 테이브로 감겨져 있는 선풍기가 달달 소리를 내며 바람을 뱉는다. 준면은 세훈을 빤히 보다 더욱 꽉 안으며 제 손을 세훈의 배 위에 올려 꼼지락댄다.
잘게 터져 금방이라도 바스락하고 소리가 날 것 같은 마른 입술이 음성을 내뱉기를 망설이다 이내 달싹이길.
˝ 응, 가고싶다. ˝
˝ ……. ˝
˝ 꼭 너와 함께. ˝
형, 지금 이곳은 무채색의 낙원일까, 아님 희망 속 절망일까?
그것도 아니면 여기는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