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어지자 " " 그래 " 건너편의 남자 그러니까 3개월의 짧은 연애를 끝낸 이제는 전남친인 그는 기다렸다는듯 튀어나오는 내 대답에 치가떨린다는 표정을 짓는다. " 하나만 묻자, 나 만나면서 그 자식 생각 안한적 있어? " " ..뭐? " " 나 만나면서 그 자식 생각 안한적이 있기는 하냐고 " " ... " " ..시발 " 그 말을 끝으로 카페를 박차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1년, 그렇게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동안 날 사랑한 사람이었다. 사귀는 동안 사랑한다는 말 한번 하지않는 나를 기다리겠다며 안아주던 사람이었다. 자기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며 나의 잊지못한 사랑을 잊게 만들겠다는 자신에 찬 말을 내뱉던 사람이었다.그러나 그도 여느 다른이들과 다를 바 없이 나에게 지친거다. " ..나도 널 만난걸 후회해 " 앞에선 하지 못했던 말을 혼잣말로 대신했다. 그러게 나는 널 왜 만났을까, 왜 만나서 너에게 상처를 줬을까.모두 내 잘못이다. 가만히 앉아 있자니 카페 안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아마 날 바람 핀 쌍년 정도로 생각하겠지. 드르륵-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남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나 차였어 술사줘. # " 대단하십니다 이번엔 얼마나 갔어? " 손가락으로 검지손가락을 펼치자 한달? 이라며 경악을 한다. 이자식이 날 뭘로보고. " 1년 새끼야 1년 " 아아- 그제서야 잔뜩 찌푸린 미간을 푼다. 평소 시끄럽던 펍 안에서는 왠일인지 직장인들로 보이는 무리와 남녀 한쌍이 전부였다. 테이블 위로 팔을 올려 턱을 괴고는 사람구경을 하는데, " 김태형 한국 들어왔대 " 익숙하지만 들을때마다 놀라는 이름에 어깨를 떨었다. 내 모습에 씁쓸한 웃음을 짓던 김남준이 눈썹 언저리를 긁어댄다. 저건 말하기 곤란한걸 말한다는거다. " ..말해, 뭔데그래? " " 결혼한대 " 머리에 돌을 맞은듯한 충격이였다. 맥주잔을 쥔 손에 힘이 풀렸고 덕분에 맥주는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대답도 못하고 벙진 나를 보던 김남준은 휴지로 쏟아진 맥주를 닦아내며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지는 꽤 되었다고 말했다.충격과 동시에 배신감이 뒤따랐다. 나는 아직도 널 못잊고 이렇게 살고있는데 넌 결혼을 해? 그런 심정 말이다. 날 안쓰럽게 쳐다보고만 있던 김남준이 울리는 핸드폰에 놀라 전화를 받았다. 병원인가보네. 짧은 통화를 끝낸 김남준은 내게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가보라며 손짓했다. 평소처럼 바쁘신 의사선생님 부른 내탓이요 하고 농담을 던지자 이런 핵폭탄을 터뜨리고 도망가는거같아 마음이 쓰인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는다. " 나 괜찮다니까, 같이나가자 피곤해서 그냥 집갈래 " 태워다주겠다는걸 백번 말리고 혼자 집으로 걸어가는 길, 아직까지 내 머리 속은 김태형이 결혼한다는 사실로 가득했다. 근처 공원에 앉아 고개를 위로 젖혔다. 뒤늦게 찾아온 술기운에 어질거리는 머리를 달래기 위해서였다. 순간 술기운에 힘을 빌려볼까 생각했다. 꼬장 한번 피워보자 하고 생각했다. 생각하기 무섭게 곧장 익숙하게 전화번호 11자리를 눌렀고 신호음이 얼마 가지않아 전화가 걸렸다. " ... " 김태형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내 전화번호를 지웠다고 해도 절대 잊어버렸을리는 없다. 김태형은 전화를 건 사람이 나라는걸 알고있다. " 결혼한다며 " " ... " 내 말에도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 결국엔 하는구나 결혼 " " ..술먹었으면 곱게 자 " 아, 김태형 목소리다. 예전처럼 애정이 섞인 타박도 걱정도 아니였지만 그의 목소리에 가슴 어느 한쪽이 녹아내리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잠깐이지만 방황하는 내 자신이 자리를 찾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 결혼 축하해 이 말 하려고 전화했어 " " ... " " ..행복하게 잘 살아 "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끝까지 참았던 울음이 터져나왔다. 흐,흐으..흐.. 길바닥에 쪼그려 앉아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잠깐 들렸던 김태형의 목소리에 설레었던 내 자신이 불쌍했다.또 축하한다는 말을 어쩜 그렇게 진심 없이 이야기 했는지 내 자신이 한심했다. 이젠 김태형을 영원히 놓아야 한다는 사실이 허망했고, 절망스러웠다.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 더이상 울 기운이 없을때 쯤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지잉-가방 속에서 핸드폰이 울렸고 분명 걱정되어 전화 한 김남준 일거다.손으로 대충 얼굴을 닦고, 목을 두어번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 나 안울어 괜찮다고 몇번를 말해? " " ... " 뭐지.. 아무말 없는 핸드폰을 들어 발신자를 확인하는데, 김태형이다.떨리는 가슴으로 꾹꾹 눌러찍은 아까 그 전화번호다. " ..여보세요 " " ... " " ... " " ..허, " " ... " " 미안 내가 미쳤었나봐 " 김태형에게 걸려온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 오후 12시가 막 넘은 일요일, 나는 어제 한숨도 자지 못했다.축 늘어진 몸으로 소파에 누워 어제 일을 곰곰히 생각해보는데, ' 미안 내가 미쳤었나봐 ' 아니 너보다 내가 더 미쳤었다. 미쳤지 ㅇㅇㅇ, 미쳤어 ㅇㅇㅇ!헤어진 전 남자친구한테 결혼한다는 소리를 듣고 술취해 전화한 전여자친구 꼴이라니. 무슨 3류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상황에 머리를 잔뜩 헝클였다. 어제는 미안했다고 문자를 보내? 아니면 쿨한척 결혼식에 화환을 보내?술취해 건 전화를 싹 잊게할 이것저것을 생각했지만 이것도 저것도 다 구렸다. 그냥 술취해서 전화를 걸었다는것부터가 구리다. 으아아아아악! 일단 술부터 끊으리라.의식의 흐름대로 냉장고의 온갖 술을 꺼내 개수대로 모조리 쏟아부었다. 잘가라 나의 엔돌핀들이여.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쟁여놨는지 한참을 쏟아붓다가 다시 소파 위로 몸을 뉘였다. " 하.. " 김태형과 헤어진지는 3년이 지났다. 싸우고 화해하고 지지고 볶고 그렇게 5년을 만났기에 김태형을 잊기에는 3년이라는 시간이 짧은게 당연하다.내가 김태형과 헤어진 후 여러남자를 만나고 얼마안되 헤어지는 방황을 했듯 김태형도 그만한 방황을 할 줄 알았다. 근데 결혼이라니. 그게 억울했다. 어제 늦은새벽, 급하다는 일이 끝났는지 남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남준이는 이렇게 말했다. ' 어쩌면 모든게 제 자리를 찾은것일수 있어 ' 라고. 아차 싶었다. 나에게는 방황이였던 시간이 그에게는 제 자리를 찾는 시간이였구나 싶었다. 이제는 김태형을 놓아주어야 한다. 모두 잊어야 한다. 마음을 먹고 난 뒤 내가 할 수 있는것이라고는 머리가 터질것같은 생각들을 비우는 것이였다. 그래 영화를 보자. 다 때려부수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면 생각이 비워지겠지. 곧장 dvd를 틀려는데, 아 영화에는 맥주지. 몸을 일으키려는데 아까 미련없이 모든 술을 쏟아붓던게 생각났다. 염병 어떻게 된게 한 치 앞을 못봐! 지갑을 챙겨 나와 편의점으로 향했다. 맥주랑 또 뭘 사들고 가지? 콧노래 까지 흥얼거리며 아파트 정문을 나서는데, 낯선 차 한대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검은색 외제차. 이 동네에 이런 차가 다녔었나? 근데 왜 사람 앞길을 막아? 썬팅이 잔뜩 되어있어 보이지 않는 내부를 째려보다가 다시 내 갈길을 가려는데, 누군가 그 차에서 내린다. 누군지 얼굴이나 보자 싶어 뒤를 돌아보는데, 김태형이다. 늘 갈색이던 머리칼은 검은색이 되어있었고, 살이 조금 더 빠진 것 같았다. 늘 꾸러기같이 입던 후드와 스냅백 대신 말끔한 정장을 입고있었다. 아 딴사람 같다. 이 근처에 볼 일이 있었나 하고 모른척 하기엔 어제 내 자신이 저지른 만행이 생각나 그럴수도 없고..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나를 보고 픽 웃는 김태형이다. " 어디가 " " ..어? 아 어 편의점 " " 또 이상한거 주어먹으려 그러지 " " ... " 대답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애틋한 재회는 바라지도 않았다. 결혼한다는 김태형에게 애틋한 재회를 바라는것도 웃기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누가 보면 헤어진 사이는 커녕 어제까지도 만난 친한 사이인 줄 알거다. 응?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대답을 재촉한다. 한숨을 푹 쉬고 입을 떼었다. " 어젠 미안했어 너 결혼한다는 소리듣고 잠깐 미쳤었나봐 사람이 실수 한번쯤은 할 수 있잖아 " 차라리 사과를 하는게 낫다. 짧은 순간에 내린 내 최선의 선택이였다.내 말에 아무말 없이 차에 기대 나를 빤히 쳐다보는 김태형이다. " 아니 사람이 사과를 했으면 무슨 말이라도.. " " 나 결혼 깼어 " " ..뭐? " " 어제 너 전화받고 오늘 아침에 깨고왔어 " " ..미친, 그거 그냥 실수라고 했..! " " 나랑 연애할래? " " ... " " 사귀던 시간 싹 잊고 새롭게 " " ... " " 그리고 결혼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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