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내 손을 잡고 보건실을 나선 전정국은 끝도 없이 걷고 있었다. 넓따란 운동장을 가로질러 어느새 교문까지 왔을 때, 나는 그를 멈춰세웠다.
"우리 2년만이지."
"응."
"너 아직 나한테 화 많이 났지."
"...어."
조금 머뭇거리며 말하는 나에게 전정국은 작게 웃더니 무릎을 굽혀 나와 눈을 맞추었다.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웃음에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나 너한테 화 많이 났어. 너 증오하는 데 보낸 시간이 2년 중 절반이 넘어. 지금도 너만 보면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아. 짜증나 죽겠단 말이야. 전정국은 나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경청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애를 달래듯 맞아, 맞아. 하며 맞장구까지 쳐댔다. 그 말에 씩씩거리면서도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이 상황을 넘기기 위한 능글거림이 아니라, 정말 그 자신이 잘못했고 미안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김탄소."
내가 정말 많이 잘못했어. 니가 생각하기에, 내가 정말 많이 잘못 했을거야. 애매한 전정국의 말에 나는 여전히 도끼눈을 하고 입술을 꽉 깨문채로 그를 바라봤다. 애매하게 말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솔직히 삼자대면 해야 돼. 내 무고함을 풀려면."
나 진짜 되게 억울한데. 눈을 찡긋거리며 웃는 전정국에 나는 할말을 잃고 그저 그를 쳐다봤다. 재밌냐? 이 상황이 재밌어? 너 지금 나랑 김태형한테 세상 최고로 증오 받고 있는거 몰라?
"알지. 잘 알지. 근데 난 김태형한텐 증오받을 이유 없어. 걔가 날 싫어하는 건, 그냥 걔가 널 좋아해서야."
다른 이유인척 하는게 가증스러워 난. 전정국은 또 어려운 표정을 짓는다. 혼란스럽기 그지 없는 나에게 김태형과 전정국은 끝없이 문제를 던져댄다. 그 문제에 맞은 나는 힘없이 고꾸라진다. 그냥 다 말해줘. 다 말해주려고 데리고 나온거잖아.
"아 잠시만."
갑자기 잡은 내 손을 잡고 뛰어버리는 전정국 때문에 스텝이 꼬인 나는 넘어질 뻔했지만 진짜 혼신의 힘을 다해 중심을 잡고 그를 따라 뜀박질했다. 왜! 뭔데 갑자기 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내 말도 깡그리 무시한 채 그는 전혀 내 속도와 다리 길이를 고려하지 않고 뛰어댔다. 전정국은 운동을 겁나게 잘했다. 달리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야 이 미친놈아 좀 서봐!! 힘들어 죽겠어!!! 얼마나 뛰었을까. 교문을 빠져 나온것은 물론이요 이미 큰 도로변까지 나와버린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 털썩 주저 앉아버린 나로인해 드디어 멈춰설 수 있었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한적한 정류장은 다행히도 우리를 미친애들로 여길 사람들은 없어보였다.
"하..진짜.. 왜 뛴건데 대체."
별다른 어려움 없이 금새 숨을 고른 전정국은 내 옆에 앉아 헥헥대며 숨을 고르는 나를 재밌다는 듯이 쳐다본다. 땀에 젖은 내 옆머리를 다정스럽게도 귀 뒤로 넘겨준 그는 두 손을 뒤로 짚고 고개를 젖혔다. 학주랑 눈 마주쳤어. 교무실에서 우리 보고 있더라고. 마치 오늘 점심은 뭐지 라고 묻듯이 아무렇지 않은 그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오늘 점심은 소고기야 라고 대답할 뻔했다. 아니 그런 중대한 사안을 왜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 대체 왜???
"야!! 진짜 망했어 너때메 하...진짜 안그래도 학주가 자퇴했다가 다시 다니는 애들이라고 우리 얼마나 안좋아하는지 아냐? 너까지 보태서 안그래도 걱정했는데 진짜 오늘 가지가지로 찍혔네. 하 찍힐거면 니들만 찍힐 것이지 결국 나까지..."
완전 망했어.. 지금 무단조퇴까지 했잖아.. 퇴학 시키면 어떡해... 고개를 떨구는 나에게 전정국은 퍽도 위로의 말을 건넸다. 괜찮아, 넌 내가 책임질게. 홱 고개를 돌려 그를 째려보니 또 기분 좋게 웃는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배알이 꼴린다. 아니 대체 너 뭐가 그렇게 좋냐고. 지금 원수를 만난 기분인데 난.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는데, 안 좋냐 그럼?"
심지어 그 좋아하는 사람을 2년만에 만났는데. 전정국이 끊임없이 치고 들어오는 고백에 잠시 직격타를 맞은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아직도 니가 정말로 진짜로 날 좋아하긴 하는구나. 학교 뒷편에서 이야기 할 때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 들어 괜히 민망해졌다. 정신 못차리지 김탄소. 제발 정신 차리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이제. 너 왜 도망갔어? 왜 우리 버렸어?"
단박에 무거워진 분위기에 전정국도 한숨을 쉬며 자신의 머리를 한번 휘젓 듯 정리했다. 그러곤 가만히 나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우리 아버지가 너네 부모님을 그렇게 만들었잖아. 담담히 이어지는 말에 나는 그의 눈을 피해 간간히 차가 다니는 도로를 응시했다. 제은이 그렇게 된 거 알면서도 그렇게 떠났어? 우리 넷에게 가장 아픈 이름. 김제은. 굳이 그를 쳐다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름에 힘들어 하고 있을 거라는 걸.
"김제은은,"
"...."
"나랑 너한테 가장 나쁜년이야."
무슨 소리야 그게.
그 애는 나를 걱정하고, 나를 생각하다 그렇게 화를 당했는데.
텅 빈 도로에서 전정국의 얼굴로 시선을 옮긴 나는, 그 누구보다도 화난 표정을 하고 있는 그의 얼굴에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와 똑바로 눈을 마주친 그의 표정은, 마치 그 옛날 제은이가 나에게 악을 써대던 그 모습처럼 너무나도 낯설어서 무섭게만 느껴졌다. 너랑 제은이는 가장 친한 친구였잖아. 그런데도 넌 제은이를 매몰차게 버렸잖아. 니가 잘못한게 맞잖아. 왜 제은이가 나쁜년이야. 전정국, 왜 니가 그런 표정을 해. 전정국은 뭐라 뒷말은 하지 않고 그저 나를 쳐다만 봤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질책하듯이.
!암호닉! 받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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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리왔찌요! 사실 분량도 좀 작구 한데 (근데 작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비밀 오픈의 진도가 많이 나갔습니다!!ㅋㅋㅋ) 일케 온 이유는 암호닉 받구싶어서요 호홓 별거 아닌 글임에도 봐주시는 분들 있어서 너무 감사한데 역시 표현하는데는 암호닉만한게 없겠더라구요 ㅠㅠ 부담없이 짠짠 남겨주세요 만힝많이 아껴드릴게요하트하트 언제나 감사합니다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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