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두고 가셨어요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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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이은 며칠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다. 꿉꿉해. 이 날씨라면 앞머리는 이미. 그러면 그렇지.
핸드폰 액정을 통해 보이는 머리는 아침에 현관에서 보았던 머리가 아니다.
둥글게 말아올렸던 앞머리는 다 풀린지 오래였고 단정하던 뒷머리도 바람에 이리저리 흐트러진 채다.
비가 와서 가장 싫은 점을 꼽자면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된다는거? 버스에서 고데기를 할 수도 없고. 한숨만 나온다.
집에서 학교까진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탄지는 50분. 다시 말하자면 10분만 더 참으면 어떻게든 수습이 가능하다는거다.
내가 한 시간이나 걸려 통학을 하는 건 요컨대 다 변백현 때문이다. 집 가까이 있는 학교 놔 두고 굳이 시내까지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변백현과 나는 벌써 햇수로 10년을 넘기고 있다. 물론 변백현만 그런 것은 아니다.
워낙 좁은 동네이기도 하고 학교도 없어서 동네 애들 모두가 초중고 한 학교에 같이 다녔고 인원수도 적어서 우리 반 아니면 옆 반, 두 반 밖에 없었다.
모두가 소꿉친구인 셈이다. 그럼에도 변백현과 유달리 친해진건 단지 집이 가까워서? 아파트 같은 라인 10층,11층에 살고 있다.
등교길도 같아, 하교길도 같아. 게다가 학년이 같으니 학교 끝나는 시간도 똑같지, 안 마주칠래야 안 마주칠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매일 어울려 다녔고 하굣길에 길을 새도 변백현이랑 같이, 주말에 놀러나가도 변백현이랑 같이.
부모님끼리도 친해지셔서 이젠 뭐, 가족이라고 보는게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지내왔어서그런지 진학도 자연스럽게 변백현이랑 같이 고민하게 됬는데 사실 이렇게 멀리까지 다닐 생각은 없었다.
시내까지 나오면 친구도 새로 사귀어야 할 테고, 무엇보다 집도 멀고, 버스도 몇 번 없고.
집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도 애들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질 나쁜 학교도 아니었고, 인문계여서 대학 진학엔 무리가 없었다.
그치만 뭐라더라. 가까우면 운동도 안 되고 건강에 나쁘다나 뭐라나. 아무리 싫다고 해도 별 납득하기도 어려운 이유를 대며 거의 한달간 나를 괴롭혔다.
학교 갈 때 가방 들어줄게, 버스비 빌려줄게, 숙제 대신 해줄게. 다 나열할 수도 없다.
' 아아아, 같이 가자 김말이 ! '
그렇게 징징거리던 변백현을 생각하면, 아니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진절 머리나. 정말 알았다고 할 때 까지 조를 심산이었던거 같다.
거의 8년동안을 붙어다니다 보니까 변백현 없는 학교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간절히 집 앞 학교에 진학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
알겠다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았다. 이렇게 멀리까지 우리 말고 누가 학교를 다니냐고!
애들도 많아서 반도 10반까지 있고. 작년엔 어떻게 운 좋게 같은 반이 됬었지만 올해는 계열도 갈리고 하면서 변백현은 9반, 나는 1반.
거의 끝과 끝이 되버렸다. 토요일은 축구하러 다닌다고 바쁘고, 일요일은 시내로 독서실 다닌다고 못 만난다고 하고.
이렇게 되선 변백현을 만나는 시간이 등하교 시간 빼고는 없는데 오늘은.. 오늘은 지각을 하신단다. 얼굴 보기가 아주 하늘의 별따기다.
이럴거면 학교는 대체 왜 같이 다니는 걸까.
"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잠시만요. "
오늘 집 갈 때도 같이 못간다 그러면 없애버릴 생각이다. 누군 누구때문에 비오는 날에도 새벽같이 첫차를 타고 다니는데!
뭐? 늦잠을 자? 다음 차를 타야할것 같아? 지각할거 같으니까 비오는데 기다리지 말고 너 먼저 가?
생각할 수록 기가 막혀서 어이가 없다.
배차 간격 상 첫차가 아니면 지각이어서 그런지 이 시간대에는 학생이 유난히 많다.
학교도 두 정거장 간격으로 꽤 여러 곳 있어서 내리는 곳도 다들 제각기이다.
많고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문 앞에 서 단말기에 버스카드를 찍자 마자 운명의 장난인지 손에 우산이 없는걸 발견했다.
왜 하필 오늘 앉았던 자리가 기사님 뒷자리여서! 지금 다시 가지러 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미 문은 열렸고 사람들은 내리라고 하고
터미널에 연락해서 이따 저녁에 가져가면 되겠지, 하는 마음에 일단 내리긴 했는데 비가 생각보다 많이, 세게 낼니다.
정말 울고 싶다, 울고 싶어. 이게 다 아침에 변백현을 못 만나서 그래. 변백현이 이런거 챙기는건 정말 잘 하는데.
그래도 별 수 있나 싶어 가방을 머리 위에 이는데,
" 저기요! "
" 저기요, 김말이씨! 아, 야, 야!!!!"
이게 웬 걸, 지각이라던 변백현이 저 앞에서 뛰어오고 있었다.
" 변백현? 너 왜 여기있어?"
" 우산, 우산 두고 가셨잖아요! 멍청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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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라서 이게 맞는지도 모르겠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