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 첫사랑
w. 펄럽
3
답답한 느낌에 눈을 떴다.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보니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머리맡을 더듬어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보니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세상에, 얼마나 잔거야. 아침을 8시 정도에 먹었으니까 적어도,
10시간은 잤다는 소린데.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명치 부근에 무언가 얹힌 것 처럼 답답하다.
아무래도 아침을 급하게 먹고 바로 누워버려서 체한 모양이다.
어휴, 미련곰탱이. 책상 서랍을 뒤적거렸다. 집에서 올 때 상비약 몇 개를 챙겨 온 것 같은데,
하필이면 그 많은 약들 중에 소화제만 없다. 그냥 토를 해 버릴까 싶어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 커버를 올리고 쪼그려 앉으니 답답했던 속이 더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욱, 우욱. 금세 이어지는 헛구역질에
듣기 싫은 소리가 화장실에 울려 퍼진다. 아, 답답해. 가슴을 퍽, 퍽, 주먹으로 치며 토해보려 하는데
헛구역질만 나오고 여전히 속이 답답하다. 아, 손가락이라도 넣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손가락을 입 안에 넣으려던 순간,
반쯤 열어두었던 화장실 문이 벌컥 소리를 내며 열린다.
"괜찮아?"
놀란 것 같은 경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입에 넣으려던 손가락을 빼면서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니
경수가 핸드폰을 들고 서 있다.
"무슨, 무슨 일 있어?"
내가 물어보자 경수는 그건 내가 물어봐야 할 말인 것 같은데, 하며 내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날 일으켜 세운다.
으으, 앓는 소리를 내자 경수가 내 이마를 짚어본다. 열... 조금 있네.
"왜 변기 앞에 그러고 있어? 토 하고 싶어?"
경수의 다정한 목소리가 머리를 울린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헛구역질만 해 댔던 목으로
신물이 올라온다. 우욱. 다시 변기 앞에 쪼그려앉았다. 이번엔 진짜로 얹혔던 게 올라온 것 같았다.
변기를 붙잡고 올라오는 것들을 한참 쏟아내고 있는데, 내 옆으로 경수의 향이 훅 끼쳐온다.
변기 옆의 두루마리 휴지를 있는 힘껏 당겨 뜯어 입가를 닦으며 옆을 보니 경수가 내 옆에 쪼그려 앉는게 보인다.
곧이어 경수의 손이 내 등을 토닥이는 게 느껴진다.
"으, 경수야, 가."
보기에 좋지도 않거니와 냄새 또한 너무 역해서, 경수에게 나가라고 했지만 경수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내 등을 토닥이다가, 쓸어내리다가, 하고 있을 뿐.
결국 경수는 내가 얹혔던 것들을 다 쏟아낼 때 까지 내 옆에 있어주었다.
"그러게 나가있으라고 할 때 말 듣지."
끝까지 고집을 피우며 나가지 않던 경수를 씻겠다는 핑계로 나가게 했다. 이를 닦는 김에 세수도 하고,
세수도 하는 김에 그냥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나는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며 경수 옆에 앉았다.
경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너 비위 약하지?"
내 물음에 경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나가있으라니까. 나도 견디기 힘들었는데... 말끝을 흐리며
경수를 보자 그래도 너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모른 척을 해. 천천히 말하는 경수다.
"미안해, 괜히 걱정하게 한 것 같아서..."
"아니야, 왜 네가 사과해. 안 그래도 아까 아침 ... 너무 급하게 먹는다고 생각했어."
여전히 손에 꼭 쥐고 있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경수가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까 핸드폰을 들고 있었지.
그제야 경수가 화장실로 들어올 때 핸드폰을 쥐고 있던 게 생각났다.
"아, 근데 뭐 궁금해서 온 거야?"
턱 끝으로 핸드폰을 가리키자 경수도 그제야 핸드폰의 존재가 생각났는지 아, 맞다. 하고 대답한다.
혼자 몇 번을 만져 봤는지 처음보다는 능숙하게 잠금 화면을 풀고 메신저 메인화면을 켜 나에게 내민다.
"이거, 로그인을 하고 싶은데... 이메일 계정을 만들라고 해서. 이거 때문에."
경수가 보여준 건 메신저 로그인 창이었다. 아, 이 메신저는 사용하려면 이메일 계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는 건 아직 이메일도 없다는 건가? 경수와 메신저 로그인 창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너 아직 이메일도 없어?"
신기한 듯 물어보자 경수는 시선을 피하며 응. 하고 대답한다. 하긴, 이제껏 핸드폰도 없었고,
뭔가 인터넷 문명과 멀리 떨어져있는 듯 보이는 경수의 손을 잡고 책상 쪽으로 끌고 갔다.
집에서 노트북 가져오길 잘 했지. 다행히 연희 아주머니와 다른 식구들이 사용하는 무선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어서
인터넷도 잘 되었다. 노트북을 꺼내니 경수가 신기한 듯 쳐다본다.
"이건 뭔지 알지? 노트북이야. 작은 컴퓨터."
나도 그정도는 알아. 하면서도 내가 노트북 다루는 걸 신기하게 보던 경수에게 노트북을 밀어주었다.
자, 네가 만들어 봐. 이메일 계정.
"내가?"
"응, 네가."
"그냥 에리 네가 해 주면 안 돼?"
"앞으로 또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그 때마다 만들어달라고 할 거야?"
다소 단호하게 대답하곤 경수 앞에 노트북을 밀어놓았다. 자, 이건 마우스라고 하는 거고, 이렇게 잡고 여기 왼쪽을 눌러.
그러면 선택이 되는거야. 오른쪽은 쓸 일이 별로 없어. 여기 가운데에 있는 건 휠. 이걸 돌리면, 봐봐. 페이지가 아래로 내려가지?
마우스는 이정도면 됐고, 음. 타자연습은 천천히 해. 일단은 한 글자씩 쳐 봐. 이렇게.
"아, 알았어. 혼자 해 볼게."
컴퓨터를 처음 쓰는 것 같은 경수에게 대충 사용법을 알려주고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보라고 했다.
처음 보는 컴퓨터가 신기한 듯 눈을 굴리며 이것도 눌러보고 저것도 눌러보고 하다가 오류가 났는지,
금세 나를 부르는 소리에 가 보니 인터넷 창이 다 닫혀있었다.
"대체 뭘 누른 거야..."
이마를 짚으며 다시 포털 사이트를 열어주었다. 자, 여기 회원가입 누르고. 맞아, 약관 읽어보고.
'동의합니다.' 앞에 네모난 박스 있지? 거기에, 아. 이걸 마우스 커서라고 해. 네가 마우스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는 거.
응, 커서. '동의합니다.' 앞에 네모난 박스에 커서를 놓고 마우스 왼쪽 버튼을 눌러. 응, 그렇게. 잘한다, 경수야.
적절한 칭찬을 섞어가며 결국 경수가 이메일 계정 생성하는 걸 다 도와줬다. 내일부터는 타자연습을 시켜야겠다, 생각하곤 경수에게
핸드폰을 쥐어주었다.
"자, 조금 전에 만든 이메일 계정 아이디랑 비밀번호 기억하지? 그걸 여기 똑같이 입력하면 돼."
경수는 긴장한 표정으로 메신저를 실행하고 조금 전에 만든 이메일 계정과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에리야, 됐어. 로그인에 성공한 건지 경수가 아이처럼 웃으며 나에게 메신저 로그인 화면을 보여주었다.
"잘했어. 너 진짜 머리 좋은가봐. 한번 알려주니까 척척 다 알아서 하네."
내 칭찬에 기분이 좋은 건지 경수는 고마워, 하곤 나에게 프로필 사진과 상태메시지 설정하는 방법을 배워갔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경수가 방을 나섰고 나는 그새 다 말라머린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하나로 묶고 침대에 누웠다.
막 핸드폰을 켜는 순간, 메신저 알람이 울렸다.
[박에리]
경수였다. 메시지가 평소 경수의 말투를 닮아있었다. 괜히 웃음이 나 킥킥,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ㅇㅇ 나 에리야]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착실하게 띄어쓰기며 맞춤법을 다 지켜서 메시지를 보내는 경수였다. 응, 맞아. 입으로 소리를 내는 동시에 메시지를 입력했다.
다음엔 이모티콘 쓰는 법을 알려줘야지. 귀여운 이모티콘 선물 해 줘야겠다. 아, 그리고 문득 백현의 번호를 경수가 알고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
[경수야 너 그거 알아?]
[뭘?]
아직 대화 방에서 나가지 않고 있었는지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답장이 왔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1을 보고
아, 이모티콘 알려주면서 대화 방 어떻게 나가는 건지도 알려줘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백현이 전화번호]
백현의 전화번호를 묻는 메시지에 1이 사라진 건 순식간이었는데, 대답은 5분이 넘도록 오지 않고 있었다.
그새 게임을 하고있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설마 모르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수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경수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아, 모르면 안 알려줘도]
[몰라.]
실수로 메시지를 다 못 적고 전송을 해 버렸는데 바로 1이 사라지고 답장이 왔다.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저
경수가 대화 방 나가는 법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더 커 생각난 김에 알려주려고 경수의 방으로 찾아갔다.
"경수야."
밖에서 경수의 이름을 부르니 들어와, 하는 대답이 들린다.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보인 경수의
표정이 애매했다. 정색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나쁜 것 같기도 한 애매한 표정에 어디 아픈건가,
하는 생각이 스치듯 들어 경수에게 달려갔다.
"경수야, 어디 아파?"
곧바로 경수의 이마에 손을 짚어봤지만 열이 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경수의 손도 늘 그랬던 것 처럼 차가웠고,
숨소리도 괜찮은데. 경수를 가만히 쳐다보니 경수가 핸드폰 화면과 나를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아니, 안 아파."
묘하게 뚱한 목소리다. 왜 그러지? 궁금했지만 별 거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 경수의 핸드폰을 보았다.
역시나, 대화 방을 계속 켜 두고 있었다.
"경수야. 이 대화 방에 계속 안 있어도 돼. 할 말 없으면 나가있으면 되는데."
"나도 알아, 취소버튼 누르면 되잖아."
"아, 아네. 난 또 모르는 줄 알고 알려주려고 온 건데."
"변백현."
"응?"
"변백현 전화번호는 왜 물어보는데?"
"변백현 전화번호는 왜 물어보는데?"
경수는 여전히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번호를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되지 왜 그렇게 날이 선 목소리로 물어보는 건지.
경수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정말.
"아니, 그냥. 우리랑 동갑이라며. 셋이 친해지면 좋잖아, 걔도 핸드폰은 있을 거고."
"그럼 걔한테 직접 물어봐."
이내 들고 있던 핸드폰을 협탁 서랍에 넣고 서랍을 닫아버리는 경수였다. 경수의 이런 모습을 처음 봐서 그런지 당황스러웠다.
나가줄래, 졸려서. 경수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말했다.
어, 그래야지. 나가달라는 데 나가줘야지, 하는 끝말은 삼켜버리고, 대신 머리끝까지 뒤집어 쓴 경수의 이불을 조금 내려주었다.
"그래도 숨은 쉬어야지. 그러고 자면 숨 막힐지도 모른다, 너. 그럼 잘 자."
이불을 내려주며 살짝 보인 경수의 얼굴이 붉어져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더워서 그러겠거니 생각하고
시답잖은 굿나잇 인사를 건네고 내 방으로 왔다.
경수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건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인사와 독자님들께 물어보고 싶은 것 |
안녕하세요! 처음 써 보는 빙의글인데 항상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독자님들께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글을 쓰고있는 펄럽입니다! 인사가 좀 늦었죠....ㅠㅠ 부족한 저의 글을 좋아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서 이렇게나마 작은 제 마음을 전달하고싶어 3화 마지막에 숨김글을 달게 되었습니다. 독자님들!! 제가 항상 사랑하는거 아시죠!!! (뜬금없는 사랑고백) 그리고 인사뿐만 아니라, 독자님들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숨김글을 달게 되었는데요. 바로 제 글에 BGM을 넣을지 말지 고민중이라서 이렇게 독자님들께 의견을 묻게 되었습니다. 저도 한 사람의 독자로 글을 읽을 때 BGM이 있으면 항상 음악을 틀어놓고 분위기를 상상하며 글을 읽는데요, 반면에 별로 안 좋아하시는 독자님들도 계실 것 같아 투표를 하나 달아놓을까 해요. 투표 결과를 보고 앞으로 글에 BGM을 넣을지 말지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님들의 많은 의견 부탁드려요!!! (혹시나 거슬리는 표현이나 맞춤법 지적은 항상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