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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형을 치루고 나는 아닌 밤중에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아직 어머니의 장례조차 치루지 못했는데, 결국 향단이에게 뒤처리를 부탁해야 했다. 그 후로는 작은 초가집에서 살게 되었다. 산 입구로 들어가 잘 보이지 않는 귀퉁이에 말이다. 딱히 불편한 것은 없었다. 모르는 것은 향단이를 통해 물어볼 수 있었고, 마을에 장이 서면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내려다녀오면 되는 일이었다.
향단이는 혼자 생활할 내가 걱정이 되는 듯 일주일에 두어 번씩은 꼭 찾아와 내게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집안에서 벌여지는 일들에 대해 욕을 해대기도 했다. 나는 향단이가 해주는 얘기들에 적절한 대꾸를 해주며 웃어주었다. 향단이는 마음씨가 고운 아이다.
“어제는 밥상까지 뒤엎어서 다들 애먹었지 뭐예요. 어찌나 그리 나이 값을 못하는지.”
향단이를 통해서 집안 얘기는 전부 꿰차게 되었다. 지금 집안에서 가장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홍빈이었다. 홍빈이는 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이 데려온 아들이었다. 첫 번째 부인은 원래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었다. 화려한 외모에 불같은 성격 때문인지 집 안에서 일하는 노비들은 모두 그녀를 힘들어했다.
그녀는 계속 아버지의 옆에 있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욕심을 부린 것이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니 자신이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이다. 기생이 버리려고 했던 아이,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고도 모르는 척 이름을 지어주었다. 홍빈(霐彬). 속이 깊고 밝은 아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말이다.
홍빈은 이름 그대로 밝게 자라왔다. 계집 아이와 어울려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면서 방 안에만 있던 나를 데리고 나와 나들이를 가는 둥, 선한 아이였다. 그 아이가 바뀐 것은 아무래도 첫째 부인 때문일 것이다. 첫째 부인은 홍빈이를 강압적이게 대했고 매섭게 가르쳤다. 장차 큰 인물이 될 사람이라는 말을 빼먹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홍빈이는 달라져 갔다. 나는 달라져 가는 홍빈이가 무서워 피해버리기 일쑤였고, 그런 무관심이 익숙하지 않았던 홍빈이는 나를 집착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정신이 나간 줄 알았어요. 자꾸 아가씨 데려오라면서 그릇을 몇 개나 깨부쉈는지.”
“다치지는 않았고?”
“저는 말만 들었어요, 자꾸만 저를 찾는다고 해서.”
“너를 왜 찾아?”
“아가씨가 계신 곳을 알아보시고 계신가 봐요. 어떻게든 찾으려고 안달이신데,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저뿐이니까요.”
“혹시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하면……!”
“꼭 아가씨한테 말씀 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셔요.”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나는 향단이에게 여러 번 신신당부를 했다. 홍빈이가 괴롭히려 들거나, 손찌검을 한다면 즉시 나에게로 도망쳐 오라고 말이다. 향단이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게 향단이를 본가로 돌려보내고 툇마루에 앉아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구경하던 찰나였다. 입맛이 없어 물 한잔을 마시려던 때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어서 오셔야 할 텐데.”
“왜 하필 낮이 아니라 밤에 오신다고 하는 건지.”
“내버려 둬, 워낙 별난 사람이잖아.”
내가 사는 산은 옆 지방에서 수도로 넘어 올 수 있는 통로가 있는 곳이어서 가끔씩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했다. 꽤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마중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방의 불을 꺼놓고는 숨죽여 기다렸다. 사람들이 전부 돌아가기 전까지는 나오지 않을 심상이었다.
그때였다. 꽤 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잘 투덜거리던 사람들이 존칭을 쓰며 남자에게 달라붙었다. 남자는 자신에게 달라붙는 사람들이 익숙한지 여유롭게 말했다.
“다들 이렇게 나오지 않아도 된다니까.”
“아유, 무슨 소리십니까. 나으리.”
“내가 햇볕을 싫어해서 말이다. 밤에는 살 탈 일도 없고 좀 좋니.”
“아무렴요! 묵으실 곳을 찾아 놓았습니다. 어서 그쪽으로 가시면…….”
“옆에 초가집이 있는데? 다리 아파서 더는 못 걷겠다. 여기서 묵을래.”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이 근방에 초가집은 여기뿐인데.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집 가까이로 들려왔다. 나는 안절부절해 하다가 결국 집 밖으로 나와 버렸고 사람들의 눈은 전부 나를 향해 있었다. 사람들의 호롱불이 나를 향해 밝혀졌다. 양반가의 남자인지, 남자의 옷 색이 꽤나 화려했다. 마을 사람들은 전부 나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저마다 귓속말을 하며 남자의 눈치를 보았다. 그때였다. 남자는 나를 유심히 들여다보고는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기 사는 게냐. 꽤 좋은 옷을 입고 있는데, 어느 양반가의 딸이냐.”
“나으리, 이 아이는…….”
마을 사람들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노인이 남자에게 귓속말을 했다. 나는 노인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남자의 얼굴만 쳐다 볼 뿐이었다.
“그런 형벌은 말로만 들어봤는데.”
“그러니 이곳 말고 묵으실 곳으로…….”
“그런데 말이야, 딱 봐도 보이는데 어떻게 안 보이는 척을 하나.”
“나으리.”
“보이잖아. 내 눈에.”
남자가 점점 내 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남자의 걸음에 뒷걸음질을 쳤다. 입에 풀칠을 해놓은 것처럼 떼어지지 않았다. 나는 남자의 커다란 눈만 바라볼 뿐이었다.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자 남자의 얼굴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남자치고 큼지막한 눈에 산처럼 솟은 코, 남자는 나를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곤 옷 소매에 숨겨져 있던 커다란 손을 내게 뻗어 내밀었다.
“내 이름 한번 맞춰 보겠냐.”
“…….”
“뭐냐, 너도 말 같지도 않는 형벌에 동참하는 거야?”
“…….”
“재환이다, 나는. 그러니 네 이름도 가르쳐 다오.”
남자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전부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입을 열 것인지, 말 것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나는 남자의 눈만 바라보았다. 남자의 눈은 말투와는 다르게 진지해보였다. 나를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으로 봐주는 것 같았다. 나는 남자의 태도에 가슴이 아파왔다.
“어서.”
결국 나는 집 안으로 스르륵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