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선생님 박찬열 짝사랑 한 썰
03
w.인절미빙수
"전부 인원체크 다 했죠?"
"애들은 다 왔는데..."
"왔는데?"
"3반이랑 4반쌤 아직 안오셨다는데요."
분명 애들은 다 왔는데 담임들이 안 온거야. 담임쌤이 어제 찬열쌤이랑 같은 동네 산다고 차 얻어타고 공항 간다고 했는데 아마 우리반쌤이 늦게 일어났나봐. 담임쌤 가끔 학교 지각하거든. 덕분에 실장만 고생했어. 들리는 말로는 둘이 엄청 친하대. 어릴 때 부터 형동생 하던 사이였고 대학교도 같은 곳 졸업했다던가 그러던데.
"아 죄송합니다. 오늘 알람이 안 울려서 하하. 찬열쌤은 주차하고 오신대요."
"쌤!! 쌤이랑 찬열쌤 때문에 우리 출발 못하고 있어요!!!"
"애들 다 왔지? 빨리 가자."
"야 대박 와 저 쌤 피지컬 쩐다."
공항 게이트로 쌤이 들어어 오는데 진짜 와... 모델인 줄 알았어. 내가 넋 놓고 보니깐 우리 담임 좋아하는 내 친구가 팔꿈치로 나 쿡쿡 치더라. 회색 가디건에 검은색 군모 쓰고 있었는데 쌤 보면 괜히 내 심장이 벌렁벌렁 대고 진짜 내가 저 쌤을 연예인 좋아하는 것 처럼 동경하는건지 아니면 이성으로 좋아하는건지 헷갈릴 정도였어. 차라리 전자면 좋은데 후자면 답이 없잖아? 쌤이랑 10살이나 차이나고 일단 내가 아직 미자였으니깐.
수학여행은 다른 학교처럼 제주도로 갔어. 인원이 많으니깐 세팀으로 나눠서 이동했었는데 우리반이랑 쌤 반이랑 같은 팀인거야! 우리반에 덕후들은 좋다고 난리브루스였는데 나는 조용히 혼자 몰래 좋아하는 애였으니깐 속으로만 좋아했어. 제주도 가면 다들 초콜릿 사오잖아. 걔들은 초콜릿을 박스 째로 쌤한테 갖다 바치고 돌하르방 열쇠고리 같은 것도 주고 나는 그냥 혼자 가만히 짜져있고...
"쌤 이거 받으세요!!!"
"쌤 이것두요!!!"
"쌤 초콜릿 좋아해요? 종류별로 다 샀는데!!"
근데 쌤은 애들이 주는 초콜릿 따위들을 안받았어. 단호하게 거절했는데 돌아서는 애들 표정이 전부 시무룩해져있었고 끝까지 주겠다고 기를 쓰는 애들까지도 다 거절했어. 웃으면서 거절하는 것도 아니고 딱 정색하면서. 쌤 정색하면 진짜 무서워. 친구 말로는 4반 애들이 아침 시간에 교실 청소를 안해서 자주 혼나는데 쌤이 그때 마다 세상의 모든 사람 다 지리게 할 작정으로 정색하고 화낸대. 야자도 잘 안빼주고. 우리반쌤은 진짜 잘 빼주는데. 우리반은 쌤한테 집중 안되니깐 야자 빼도 되냐고 하면 특유의 그 미소를 지으며 그래^^ 푹 쉬고 내일부터 열심히 하자^^ 거린다면 쌤은 애들이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안돼. 라고 거절하는 스타일.
숙소로 가기 전에 잠깐 무슨 넓은 공원에서 반별 단체사진을 찍고 짧은 쉬는 시간을 가졌는데 너무 화장실이 가고싶었어. 우리가 있는 곳에서 화장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참을까 고민도 했지마 진짜 내가 너무 급해서 그냥 갔거든. 볼 일 보고 애들 있는 곳에 가려는데 어이없게도 길을 잃은거야. 내가 좀 원래 길치인데 태어나서 처음보는 곳에 와 있으니 길 잃을만도 했지. 누구 한 명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당황해도 침착하게 지도 보면서 찾아가는데 자꾸 이상한 길이 나오는거야. 버스 출발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옆에는 처음 보는 구조물 뿐이고 주위에는 사람도 없고 놀래서 내가 그냥 울었어. 마침 우리반 애들한테서 전화가 오더라.
"야! 너 어디야!!"
"몰라ㅠㅠㅠㅠㅠㅠ 나도 모르겠어ㅠㅠㅠㅠㅠㅠ"
"거기 가만히 있어!! 찬열쌤이 너 찾으러 갔대!!"
"응? 누가?ㅠㅠㅠㅠㅠㅠㅠㅠ"
그때 누가 내 머리를 주먹으로 콩 쥐어박았는데 올려다보니깐 쌤인거야. 놀라기도 했고 너무 안심되서 쌤보고 펑펑 울었어. 좀 조신하게 울면 괜찮은데 아ㅠㅠㅠㅠㅠ쌤ㅠㅠㅠㅠㅠ 이렇게 대성통곡 했어. 진짜 이거 이불킥 30년짜리. 내가 이 날 밤에 이거 때문에 잠을 못잤어. 너무 쪽팔려서. 가끔도 생각나는데 진짜 생각날 때 마다 죽고싶다.
"아 네. 선생님 에리 찾았고요. 제가 데리고 갈게요."
"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는 왜 말도 없이 이까지 와서."
"화장실 가고 싶어서..."
"내가 이 근처에 있어서 다행이였지 너 쌤 아니였으면 제주도에서 평생 미아될 뻔 했어."
훌쩍 거리면서 쌤이랑 둘이 걸어오는데 아까 운거 쪽팔리기도 하고 부끄러워서 심장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둘 사이에 아무 말이 없어서 어색해 죽을 거 같기도 했어. 뭐라도 말을 꺼낼려고 머리를 굴리는데 아까 사 둔 열쇠고리가 생각났어. 이거는 그냥 내가 귀여워서 산거였지만 쌤한테 주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 생각했어.
"쌤."
"왜."
"이거 쌤 드릴게요."
"나 이런거 안받.."
"안받으시는거 아는데 감사 선물로."
"됐어."
"어떻게 보면 제 은인이시잖아요? 퉁치는거라 해요!!"
"..."
"이거 다른 돌하르방이랑 다른데.. 얘가 더 귀여워요. 봐요. 손에 귤도 쥐고 있어요!!"
"알겠어. 빨리 가기나 하자."
쌤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열쇠고리를 가져갔는데 너무 기뻐서 얼굴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어. 쌤이 다른 애들 선물은 다 안받고 내꺼만 받은거잖아. 너희도 생각해봐. 좋아하는 쌤이 있어. 그 쌤이랑 단둘이 얘기하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자기가 준 선물을 받아줬어. 떨리는 마음이 진정이 안되서 딱히 더운 날씨도 아닌데 빨갛게 상기되어서 누가 봐도 나 그쪽 좋아합니다!! 티내는 것 같았어. 아마 나는 쌤을 그저 동경하는 마음만은 아니였나봐.
"저기 에리 온다!!"
"쌤이 에리 찾았어요?"
"그래. 빨리 가자. 가서 저녁 먹어야지."
"네!!"
"야 인터넷 보니깐 숙소 밥 맛있대!!"
*
아마 수학여행 간 찬열쌤 이미지는 이런 느낌.
지금 에리가 고2이니깐 쌤은 28살. 철컹철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