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타입 주소 - https://dusvlf.postype.com .❄ 내 남자친구에게 어느새 겨울의 첫 번째 절기 '입동'입니다. 입동에 걸맞게 오늘 아침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 지방의 수은주가 어제보다 5도 이상 뚝 떨어졌습니다. 충청과 영남 일부 지역에는 한파주의보도 발령됐는데요. 출근하실 때 옷차림 든든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쩐지 오늘따라 느낌이 싸하다 했다. 원래 대로라면 언제, 어디서, 누구와 술을 마시든 아침이 되면 늘 정재현의 품에서 눈을 떴고, 서늘한 아침 공기를 피해 정재현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면, 사랑스럽다는 듯한 눈빛으로 이마, 코, 입술을 따라 간지럽게 입을 맞추며 다정하게 아침 인사를 해줬다. 그러다 어느 정도 잠이 깬 거 같으면 나를 담요로 꽁꽁 싸맨 뒤 번쩍 안아 들어 식탁 의자에 앉혀놓은 뒤 아침을 먹는 게 우리의 일상이었는데. 오늘 아침은 뭔가 달랐다.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에 눈을 떠보니 정재현 집이긴 했으나, 나 홀로 넓은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있었고, 찌르르 울리는 싸한 기분에 헐레벌떡 거실에 나가니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던 정재현은 다정하게 아침 인사를 건네는 대신에, "도리야, 우리 헤어지자" 이별을 고했다. "왜... 왜 그래 재현아, 내가 어제 뭐, 실수라도 했어? 그럼 미안해 이제 술 좀 그만 마셔야겠다, 그동안 귀찮았지 응? 그것도 아니면 말만 해줘 내가 다 맞출게" "그런 게 싫어서 그래" 지쳐 보이는 정재현의 모습에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정재현을 힘들게 했나? 내가 귀찮아졌나? 이유라도 물어야 되는데,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기라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든 붙잡아야 하는데, 저렇게 단호한 모습은 처음이어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붕어처럼 입을 뻐끔 거리기만 했다. 차라리 그냥 여기서 애처럼 펑펑 울어버리면 정재현이 다시 다정하게 달래줄까? 싫다고 응석 부리면 알겠다며 웃어줄까? "우리 그만하자, 도리야" 근데, 애초에 내가 정재현을 붙잡을 자격이 되던가? 아니다. 난 어떤 방법으로든 돌아선 정재현을 붙잡을 수 없다. 우리 관계의 맺고 끊음은 오로지 정재현만이 결정할 수 있는 거니까. 복잡한 심경에 입술만 꾹꾹 씹으니 정재현이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우리는 서로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헤어지는 거야" 이해가 가질 않는다. 우리 둘의 행복을 위해 헤어진다니. 내가 어떻게 너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나랑 있었을 때에 너는 불행했던 걸까? 하지만 되묻고 싶진 않았다. 정말 나와의 관계가 불행했을 까봐. 혹시 날 원망하고 있었을까 봐. "그러니까 이젠 보고 싶다고 응석 부리면 안 돼" 눈물이 왈칵 차올랐지만 꾹꾹 내려 삼켰다. 이젠 응석 부리면 안 된다니까. 내 남자친구에게 1화 "내 새끼 일로 와" 정재현을 향해 양쪽 팔을 힘껏 벌리자 정재현이 익숙하게 날 번쩍 안아 들어 침대에 눕힌다. 그리곤 내 위로 슬금슬금 올라타더니 내 허리를 껴안으며 어깨에 얼굴을 비비적거린다. "아고, 우리 재현이 오늘도 많이 힘들었구나" 어깨에 정재현의 숨결과 머리카락이 스칠 때마다 간지러워 웃음이 났다. 내가 조용히 웃자 정재현도 따라 웃는다. 내 생명의 은인, 내 사랑, 내 애인. 이렇게 웃는 모습만 보고 싶다. 정재현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도 내가 유독 애착을 가진 사람이다. "못 보던 목걸이네? 너 목걸이 잘 안 하잖아" 한참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정재현이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아, 이거 정윤오가 사줬어" 목걸이를 만지던 큰 손이 부드럽게 올라와 턱을 감쌌다. 그리고 내 입술을 혀로 살살 쓸어 벌리더니 안으로 침범한다. 약하고 예민한 혀끼리 얽히고설키며 만들어 내는 자극들이 온몸을 녹이는 듯했다. 단단한 어깨와 목덜미를 매만지며 정재현을 끌어당기자 맞닿은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더니 아랫입술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며 고개를 물린 정재현이 달콤하게 젖은 목소리가 말했다. "물어볼 게 있어" "나 사랑해?" "사랑하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당연하지, 내 사랑. 정재현의 뺨을 살살 어루만지며 얘기하자. 재현이 목걸이를 뜯어냈다. 투두둑- 목걸이가 끊어지는 소리가 기폭제라도 된 듯 재현이 다시 부드럽게 입을 맞춰왔다. 키스는 질투의 맛이었다. 뜯어진 진주가 사방으로 튀었지만 그런 거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겨울이 찾아온 지 4일째 되는 새벽. 꿈이었나? 연신 눈을 껌뻑여 보지만 아직 해도 뜨지 않아 어둑어둑한 방 안엔 보이는 게 없다. 오직 창문을 쾅쾅 때리는 매서운 바람 소리만 울리는 서늘하고 어두운 방 안. 이 서늘하고 어두운 새벽에 나는 달콤한 꿈과 함께 깼다. 아, 정말, 새벽까지 울다 잤는데 이런 꿈을 진짜 너무 한 거 아닌가. 어쩐지 자면서 뭔가 축축하다 했더니 눈물이 베개를 온통 적셔놨다. [정윤오 부재중 전화 5통] 혹시나 정재현에게 연락이라도 왔을까 들여다본 핸드폰엔 정재현 대신 정윤오의 전화 5통만 와있다. 얘한테 연락을 해야 하나 말아야 되나. 정윤오 성격엔 가만히 있진 않을 거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일단은 내버려 두기로 하고 젖은 베개를 갈기 위해 바닥에 던지며 일어난다. ❄ 살어리랏다, 살어리랏다, 정재현 없는 일상을 살어리랏다. 이번에 느낀 건데, 이별이란 게 죽음과 비슷하다. 그 사람을 추억으로만 남겨둬야 하니까. 좋은 추억만 남겨준 정재현이 원망스럽다. 하지만 내가 널 원망할 자격은 없는 거겠지.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이 추억도 서서히 흐려질 거다. 그리고 마침내 그 사람 없이도 살아갈 수 있게 되겠지. 그래서 난 나를 살린 정재현의 존재를 죽였다. 정재현이 행복하길 바라며. "흐그흐급흑흐급" 는 개뿔. 아무리 쿨하게 보내주려 해도 눈물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죽긴 누가 죽어 엉엉엉. 나 따위가 누구 행복을 빌어 엉엉엉. 이틀 내내 울고 링거 맞았더니 링거 빨인지 신기하게도 눈물이 또 나온다. "언제까지 어깨 춤을 추게 할 거야? 지금 얘를 봐!" 세상에 다신 없을 진짜 친구들이 여기 싹 다 모여있었다. 누구는 실연의 아픔에 어깨까지 들썩이며 눈물 떨구는데 김정우 이 새끼는 그런 날 놀리기 바쁘다. 다 울고 나면 얘네랑 손절할 거다. "아니, 그래서 왜 우는 건데" 여태 재수 없게 턱 괴고 관전만 하던 김도영이 이제야 묻는다. 사실 꼴에 친구들이라고 김정우랑 김도영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져서 이유를 말할 겨를이 없었는데, 이 새끼들도 놀리기 바빴지 뭐가 그리 슬프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개새끼 덜아 흙흡, 이제야 물어보냐? 흡, 나 정재현이랑 헤어졌얽엉엉" 아, 김도영의 탄성과 함께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야, 미안하다. 나는...몰랐지. 신나서 놀리던 김정우도 슬금슬금 눈치 보더니 작게 사과한다. 평생 내 기분이라곤 안중에도 없던 애들이 슬슬 내 눈치 보는 걸 보니 손절까진 안 해도 될르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왜 헤어졌는데?" "몰라, 흡 이게 서로가 행복한 길이래" "그렇게 헤어졌다고?" "웅...흑" "아니, 나는 모르는 너네만의 대서사가 팔만대장경 급 인건 아는데, 그래도 그건 정재현이 잘못했다. 이유는 말해줘야 될 거 아니야" "아니거든, 김정우 니가 연애를 알아? 아, 안 해봐서 모를랑가" "얼씨구? 저런 말을 똑바로 말하네, 이게 지 편을 들어줘도 지랄" "니가 먼저 정재현..." "야야, 둘 다 그만해 담배나 피우러 가자"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도영이 겉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더니 자기가 쓰고 있던 모자를 내 머리에 푹 쓰여주며 말했다. 김정우는 여기저기 다 끼는 깝싸는 성격과는 반대로 은근히 비흡연자다. 그래서 나랑 김도영만 인문대 앞에 있는 흡연 부스에 나와 라이터 하나로 오손도손 불을 붙이는데 김도영이 혀를 쯧 차더니 말했다. "사실 이럴 때 담배 다시 피면 안 좋긴 한데" 김도영 말대로 힘든 시기에 시작한 담배가 위험하긴 하다. 원래 마약이나 마약에 의존하게 되는 원인은 약물 그 자체의 중독성보다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으로부터 받는 지속적인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봤는데... 아무튼 나도 그 케이스였다. 한참 힘든 시기에 몰래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정재현한테 걸려서 끊긴 했지만, 파트라슈의 개처럼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담배가 생각나곤 했었다. "그래도 좋긴 좋다" 니코틴을 흡수하니 조금씩 진정되는 게 느껴졌다. 계속해서 연초를 느리게 빨아드리고 연기를 들이마시며 천천히 안정을 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단단한 팔이 내 허리를 감싸 안더니 손가락 끝에 걸려 있던 담배를 쏙 빼간다. "공주님 하이" "뭐야, 정윤오 야 내놔! 아직 세 모금 밖에 안 빨았어" "시른데" 장난스럽게 씩 웃은 정윤오가 보란 듯이 틴트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담배를 제 입에 쏙 집어넣는다. "야 더럽게 뭐 하냐" "왜, 난 이게 더 맛있는데" "너 진짜 더럽고 재수 없어" "우리 공주님은 예쁘고 사랑스럽지" 정윤오가 긴 손가락으로 내 볼을 톡톡 치며 말했다. 아오 진짜. 얘는 어렸을 때부터 이랬다. 정윤오는 정재현이랑 쌍둥이로 굳이 따지자면 동생인데, 바른생활 어린이인 정재현 보단 악동 출신인 정윤오가 더 내 성격과 맞는지라 같이 여기저기 사고 치고 다니면서 정재현보다 더 거리낌 없는 관계로 자라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젠 아니지만 내가 정재현이랑 사귀는 사이기도 했고, 둘 다 성인인데 아직도 공주님 공주님 불러가며 치대는 건 여전하다. "야 나는 속이 좀 안 좋아져서 들어간다" "김도영! 야 같이 가" 듣다 못한 김도영이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저 배신자, 자기가 데리고 나왔으면서! 나도 데려가! 김도영을 따라 들어가기 위해 등을 돌리는데, 정윤오가 큰 손으로 내 팔을 잡아채더니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밑으로 내려와 손깍지를 단단하게 낀다. "근데 우리 공주님이 웬일로 모자를 썼어? 얼굴 좀 보여줘" "야 왜 인문대까지 와서 이래 니네 관으로 가" "너가 이틀 동안 내 연락 다 씹었잖아,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 "근데도 너가 귀찮아할까 봐 나는 연락도 더 못하고 꾹꾹 참다가 인문대까지 왔는데, 응? 예쁜 얼굴 좀 보자" 정윤오 성격에 내가 운 거 들키면 큰일 날 텐데. 무슨 말이든 순순히 듣고 있을 리도 없을 테고. 쓸데없이 힘은 세서 도망가지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리며 모자만 꾹 눌러쓰고 있자, 정윤오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모자를 손가락을 툭 쳐 올렸다. [사진1*800*533] "너," "..." "누가 울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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