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일곱 명의 무한지구대 이야기
<응답하라112>
- 미스터몽룡
201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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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좋을까? 아니면 이거? 양손에 코코아 통을 하나씩 쥔 채 번갈아보며 깊은 고민에 빠진 동우였다. 수많은 종류의 커피와 차가 가지런히 진열 되어있는 가공식품 코너 앞에서 카트를 세워놓고 꽤나 열심히 고심하고 있다. 캐릭터가 새겨진 빨간 티셔츠에 하얀 반바지를 입은 그의 모습이, 마트 특유의 새빨간 카트와 함께 퍽이나 인상적이다.
카트 두 대가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는 협소한 공간 탓일까. 때마침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특정한 제품에 시선을 고정한 채 카트를 끌고 가다가, 본의 아니게 동우의 카트를 치게 되었다. 퉁…! 쇠창살과 쇠창살이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랄까? 아무튼, 얌전히 세워져있던 카트는 그 반동으로 밀려나더니 고스란히 동우의 골반 부근으로 다가와 아프지 않게 부딪혔다. 오잉? 코코아를 보고 있던 동우가 뭔가 싶어서 반쯤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부부는 머쓱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이를 보며 손에 쥐고 있던 두 개의 코코아를 잽싸게 카트 안에 넣은 동우가 다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부부는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뒤 유유히 사라졌다. 그렇게 부부를 보내고 나서, 시선을 내리깔아 카트를 바라보니 방금 전에 집어넣은 코코아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하나 같이 '장동우는 필시 나를 고를 것.'이라는 안내문을 붙여놓은 것처럼 묘한 오라를 풍기는 것만 같다. 왠지 그 오라에 홀딱 홀려서 두 개 다 사야할 것만 같은 이상한 느낌이다.
하나는 호원이가 평소에 즐겨먹는 코코아였지만 의심스러울 만큼 가격이 너무 쌌다. 다 그만큼의 이유가 있으니 싼 거라며 매번 구입을 말렸지만, 그럴 때마다 호원은 허허 웃으면서 '진하게 듬뿍듬뿍 타먹으니 비싼 거 사봤자 소용없어.'라고 말했다. 질보단 양이었다. 덧붙여 '이거 먹는다고 일찍 안 죽어. 내가 일찍 죽을까봐 겁나? 어? 겁나냐고~' 익살스럽게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약 올리듯이 말하는 건 덤이었다. 간지럽다고 깔깔대며 동우가 떨어져나가면, 호원은 기다렸단 듯이 자신이 고른 코코아를 재빨리 카트에 담고는 했다. 마무리 멘트는 항상 '안 죽으니까 걱정마!'였다. 아무튼, 이호원의 고집이란…. 회상을 마친 동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뒤, 호원이 즐겨먹던 코코아에서 시선을 뗐다.
다른 하나는 평소에 자신이 사주고 싶어 하던 코코아인데 비싼 가격대를 자랑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건강에 좋다는 성분이 이것저것 들어가 있었다. 요 근래 부쩍 피곤해 보이는 호원이가 이걸 먹고 힘내야 할 텐데…. 쩝…. 전에 먹던 제품에 길들여져서, 자신이 사온 코코아는 맛이 없다고 등한시 할까봐 슬쩍 걱정이 된다.
무엇을 사야할지 쉽사리 정하지 못한 채 싼 게 비지떡이냐, 비싼 게 제 값 하냐로 갈팡질팡하는 동우였다. 대체 어느 것을 사가야지 호원이가 맛있게 타먹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걸까?
카트 안에 있는 두 제품을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카트 손잡이에 손을 얹고는 다른 코너로 발걸음을 향하는 동우였다. 동우가 택한 선택지는 '두 개 다 사간다.'였다. 호원이가 평소에 먹던 거 먹겠다고 하면, 비싼 건 내가 먹으면 되지, 뭐~ 긍정의 神다운 발상이었다.
*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휘파람을 휘휘 불며 카트를 끌고 넓은 곳으로 나가니, 좌측에는 정육코너, 우측에는 생선코너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한쪽에선 바다 비린내가, 다른 한쪽에선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동우는 고개를 좌우로 번갈아 움직이기 바쁠 뿐이었다. 여기저기 두루두루 살펴보는데, 가위로 고기를 잘게 잘게 썩둑썩둑 자르고 있던 시식 코너 아주머니가 가위질을 멈추고는 그 앞을 지나가는 동우를 불렀다.
"잘생긴 총각! 이거 한 번 드셔보세요~"
귀가 쫑긋!
'잘생긴 총각'이라는 그 말에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멈추는 동우였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양옆에 있는 다른 남자들도 걸음을 멈춘 채 서있었다. 뭐야, 이건…? 날 부른 것 같은데…. 아닌가? 분명 아주머니는 한 명을 부른 것 같은데, 세 명이 걸음을 멈춰버린 진풍경이었다. 본의 아니게 다들 자신이 '잘생긴 총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입증 되었다.
근데…. 안 살건데, 먹어도 되나?
눈치를 보면서 망설이는 것도 잠시, 옆에 서있던 남자들이 손을 뻗어 시식을 시작하자 어느 샌가 그의 손은 본능적으로 초록색 이쑤시개를 집고 있었다. 안 먹으면 잘생긴 총각 대열에 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저 사람들한테 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무엇보다, 입이 많이 심심했다.
먹기 좋게 잘라져 있는 고기를 '콕' 찍어서 한 입에 '쏙' 넣었다. 한 번 씹어주자, '찍'하고 치아 사이로 고기 기름이 삐져나왔다. 오물오물…. 음~ 이 부드러운 식감…! 꿀꺽 삼키니 목구멍으로 훌렁 넘어갔다. 와우…. 오랜만에 먹으니까 완전 맛있는데? 손을 뻗어 고기 한 점을 입안에 넣고는 생각해본다. 이거 사갖고 가서 저녁에 호원이랑 신나게 삼겹살 파티나 할까? 그렇게 부지런히 오물오물 씹으며 이쑤시개로 또 하나를 콕 찍어서 입에 넣었는데, 마침 바지 뒷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지잉-
아이고…. 엉덩이 떨려라….
"으브세으?"
먹느라 발음이 다 새고야 말았다. 전화 건너편에서 초조한 듯한 성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형, 어디야? 평소 같았으면 발음이 그게 뭐냐고 일단 놀리고 시작했을 텐데, 그런 건 생략한 채 단도직입적으로 어디냐고 물으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고기를 씹던 입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 웃고 가는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