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 첫사랑
w. 펄럽
-암호닉 신청 받고 있습니다 !!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 -
11
한참을 멍하니 그러고 앉아 있다가 어떻게 방까지 일어나서 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다시 눈을 떠 보니 아침이었다.
따로 알람을 맞춰 둔 것도 아닌데 정확히 7시에 눈이 확 떠졌다. 그리고 어제 경수와 나눴던 대화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반복재생 되고 있었다.
" …… 생각나거든."
"네가."
"그, 네가 한 말이, 너무 떨 …… 떨려서."
"그런데 아까 그 말 내 마음대로 생각해도 되는 거지?"
악, 아악! 비명을 지르며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대체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해서 그런 상황을 만든 건지,
어제의 나를 지금의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제 경수 얼굴은 어떻게 봐 ……. 울상을 지으며 대충 씻고 아침 먹기 전에 주변 산책이나 다녀올 생각으로 방을 나서는데,
"잘 잤어?"
경수와 딱 마주쳐 버렸다.
"어? 어, 어. 나는 잘 잤지."
바보처럼 말을 더듬어버렸다. 경수는 당황해 말을 더듬는 나를 보더니 또 웃는다. 어디 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물어오는 경수에게 산, 산책. 또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더니 경수가 같이 갈래? 하고 물어온다. 차마 혼자 가겠다는 말을 못하겠어서,
조심스럽게 몸은 좀 괜찮아? 하고 물어봤다.
"아, 응. 좋아졌어, 많이. 산책정도는 괜찮아."
그럼 조금만 기다려줄래? 하더니 경수가 방으로 들어간다. 경수가 나올 때 까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면서 기다렸다.
정말 금세 나온 경수가 가자, 하고 내 팔을 붙잡더니 나를 부축한다. 고마워, 작게 말하며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거의 다 낫긴 했는데 아직 완벽하게 낫지 않은 발이 걷기에 조금 불편했다.
현관까지 다 와서 신발을 어떻게 할 까 고민하다가 다치지 않은 발엔 운동화를, 다친 발엔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가 하늘이 더 투명하고 맑아보였다. 아침이라 낮만큼 세지 않은 햇빛이 기분 좋게 내리쬔다.
간간히 새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경수와 내가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자박, 자박, 물기 있는 풀이 밟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사이에 뭔가, 어색한 공기가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앞만 보고 걷고 있었으니까.
"에리야."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경수다. 다친 발에 신경 쓰느라 느려진 내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어가던 경수가
걸음을 멈추더니 내 쪽으로 몸을 튼다.
"발 떄문에 걷는 거 불편하면 그만 들어갈까?"
"어?"
"너 자꾸 발 신경 쓰면서 걷는 게, 아픈 거 같아 보여서."
경수가 멋쩍게 웃으며 내 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이거. 아니야, 그냥 내가 좀 조심하느라고. 덧나기 싫어서.
아직 들어가기엔 나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 아쉬워서 멈춰 선 경수를 재촉했다. 조금만 더 걷자. 나 진짜 괜찮아.
괜찮다며 웃어보이자 경수가 그러자, 그럼. 하더니 대신 내가 부축 해 줄게. 라고 덧붙이며 부드럽게 내 팔을 잡아온다.
그 손길에 괜히 또 마음 한 구석이 간질거린다. 고, 고마워. 바보처럼 또 말을 더듬어버렸다. 경수에게 팔을 맡기고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
내 하루 일과 중에는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집 앞 화단에 물을 주는 것.
또 하나는, 칼 같은 시간에 아침을 챙겨 먹는 것.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저 두 가지가 필수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래서 나는 항상 손목시계를 가지고 다닌다. 신나서 화단에 물을 주다가도 시간이 됐다 싶어 손목을 보면
항상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7시 30분이었다.
오늘도 다른 날과 똑같은 하루였다. 아니, 똑같은 하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화단에 물을 주던 내 귀로 들려오는,
열리는 문소리가, 평소와는 달랐다.
보통 이 시간에 집을 나오는 건 나 밖에 없었는데, 그렇다는 건?
나는 민첩하게 호스의 물을 끄고 조용히 화단 옆으로 돌아가 숨었다. 벽 너머로 힐끔 힐끔 나오는 사람이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박에리다.
박에리는 아직 다 낫지도 않은 발에 슬리퍼를 꿰어 신고, 다른 쪽엔 운동화를 신고 절뚝거리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쯧, 다 나을 때 까지 쉬라니까.
그 말 한지 얼마나 됐다고 고새 나오냐. 박에리를 좀 놀려줄 심산으로 숨어있던 벽에서 나오려는데, 박에리의 뒤로 한 명이 더 걸어 나온다.
경수였다.
"대박."
경수를 보고 제일 처음 든 생각은, 그래도 다행이네. 였다. 이번 감기는 저번 감기처럼 오래 갈 건 아닌가보다. 어제 아침에 쓰러졌는데,
오늘 아침에 멀쩡한 걸 보니까 말이다.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지켜보다가 나가야지, 하며 둘이 걷는 걸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참 …… 뭐라고 해야 하나.
둘 사이에 본인들 눈에만 보이지 않는 핑크빛 기류가 도는 것 같았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멈춰서질 않나.
어쭈? 경수가 박에리의 팔을 붙잡는다. 아, 안 되겠다. 더 이상 지켜보다가는 내 손이 나도 모르게 둘에게 호스를 대고
물을 뿌릴 것만 같아 휘파람을 불며 다가갔다.
*
"너희, 뭐 해?"
화단에 물을 주러 나온 건지 한 손에 길게 뺀 호스를 잡고 우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변백현이 보였다.
더울 법도 한데 긴 팔 맨투맨을 입고 있었다. 넌 덥지도 않냐, 하는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백현이 나를 스쳐 지나가 경수에게로 간다.
"넌 벌써 돌아다녀도 돼?"
백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경수의 이마를 짚어본다. 열은 다 떨어졌나보네. 하는 백현에게 괜찮으니까 나온 거지 뭐. 하고 경수가 대답한다.
"너는 좀 쉬라니까 그새 기어 나왔냐."
경수의 상태를 확인한 백현이 이번엔 내 쪽으로 다가와 다치지 않은 쪽의 발을 툭, 툭 신발 앞코로 가볍게 치며 말한다.
발가락 좀 다친 거 가지고, 뭐. 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백현이 지금 걱정해주는데 성질 내냐? 라며 시비를 걸어온다.
"먼저 성질나게 한 건 그 쪽이거든요."
처음으로 경수랑 둘이 산책하고 있었는데, 라는 말은 삼킨채 백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하자 백현이 어이없다는 듯 푸핫, 웃으며 말한다.
걱정해줘도 시비래.
"걱정 같지가 않으니까 그러지."
그러자 백현이 내 이마에 살짝 손가락을 튕기며 말한다. 모르겠으면 경수한테 물어봐, 이거 내가 할 수 있는 제일 친절한 걱정이니까. 하더니 경수에게
동의를 구한다. 경수는 백현의 말에 웃으며 맞아, 맞장구를 쳐 준다.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표정으로 서 있자 백현이
진짜거든? 하며 발끈한다. 그 모습이 또 웃겨 아, 인정해 줄게. 하며 금세 인정해주는 나다.
"나도 끼워 줘."
그렇게 어느새 손에 들고 있던 호스를 정리해 두고 와서 산책 중에 끼어 든 백현까지 합류해 셋이 나란히 정원을 빙 둘러 한 바퀴 걷고
정원 가운데에 위치 해 있는 테이블로 가 앉았다.
어제 비가 오기 전에 설치 해 뒀던 건지 큼지막한 파라솔이 테이블 가운데에 있어 다행히 의자도 비에 젖지 않아 바로 앉을 수 있었다.
앉자마자 다친 다리에만 신경 쓰느라 잔뜩 긴장한 다른 쪽 다리를 주먹을 쥐고 두드리자 경수가 걱정스럽게 물어온다.
많이 피곤해?
"아니, 그냥 좀 긴장했나 봐. 다친 쪽만 신경 써서."
얼른 나아야 할 텐데, 덧붙이는 내 말에 백현이 동의한다. 맞아, 그러려면 이렇게 돌아다니지 말고 좀 얌전히 누워있어. 그래야 빨리 낫지.
아, 심심하단 말이야, 누워만 있으면. 그럼 게임을 좀 해. 나처럼. 하며 백현이 핸드폰을 꺼내 흔들어 보인다.
"아, 그러고보니까 맨날 이상한 게임초대 보내는 거 너지!"
백현이 흔드는 핸드폰을 보자 그제야 생각이 나 가지고 나온 핸드폰을 꺼내 메신저 어플을 실행했다.
잘 읽지 않아 쌓여있는 알림들 속에서 백현과의 대화 방을 찾아 들어가니 대화보다 게임 초대 메시지가 훨씬 더 많았다.
심지어 게임 이름이 하나가 아니라, 몇 개야. 대체.
"이쯤 되면 네 핸드폰은 그냥 게임기 같은데 ……."
백현과의 대화 방을 나가며 백현에게 말하자 백현이 웃으며 어플 서랍을 보여준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역시나 백현의 어플 서랍은 게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요즘 인기 있는 게임부터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이름의 게임들까지 없는 게임이
없어 보였다. 게임을 좋아해 백현만큼은 아니지만 왠만한 게임은 다 하는 나도, 대체 무슨 게임들이 이렇게 많나 신기해서 백현에게 핸드폰을
받아 게임 어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게임 어플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어플 하나가 보인다.
어! 놀란 듯한 내 목소리에 백현이 황급히 핸드폰을 빼앗아간다.
" ……. 너 설마 갤러리 들어간 거 아니지?"
암호닉 |
[깨깨] 님♥ [뉴기] 님♥ [오브미] 님♥ [아씨오] 님♥ [에이드] 님♥ [가로세로]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