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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화
* * * * *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한낮의 태양은 서서히 침몰하며 하늘을 새빨갛게 물들였고 더욱 세차게 빛을 내뿜었다.
저물어 가는 하늘 아래 지상(地上)에는 많은 사람들로 가득해졌고 형형색색(形形色色)의 불빛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군청, 보라 등 무지개를 영상케하는 다양한 색채의 네온사인은 어둠이 짙어질수록 제 색깔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도시의 낮고 높은 빌딩들도 하얀 조명으로 그 빛깔을 더했으며 아스팔트 도로 위를 점령한 차량들의 헤드라이트도 보태었다.
도시는 불야성(不夜城)을 이루었고 낮보다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빛깔들이 넘실거리는 거리에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다음 사냥감을 찾아 나온 것이었다. 금수(禽獸)보다 못한 남자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무척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썩은 생선같은 눈동자는 여전했지만 표정만큼은 굳어있지 않았다.
입술선이 약간의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그것만으로 인형보다 못한 얼굴에서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로 변했다. 조금의 교정만으로 인상이 바뀌었는데 눈빛마저 살아나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할 지경이다.
남자는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사냥감을 물색했다. 물론 그 사냥감은 예정된 사냥감이었고 무차별적이지 않았으며 심도있게 고르고 고른 사냥감이었다.
긴 시간을 염두해두고 관찰해서 사냥감의 성향과 이동경로, 자주가는 장소 등을 기억했고 때문에 도심의 번화가에 남자가 서 있는 것이었다.
오늘 이시간, 이장소에 남자의 예상대로 정해둔 사냥감이 있었다. 시야에 포착되지마자 남자의 입술은 곡선에서 일자로, 다시 곡선으로 변했으며 네온사인의 불빛도 남자의 무기질적인 눈동자의 생기를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사냥감의 존재가 남자의 생기를 이끌어냈다.
남자의 눈동자는 유기체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게 죽은 눈동자에 서서히 빛이 돌았고 그 모습은 메마른 사막에 생명수같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광경과 동일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남자의 얼굴은 완벽하게 변하였고 죽여놓은 기세마저 드러내자 몹시 매력적으로 변하는 동시에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당겼다. 아까부터 있었지만 인지하지 못한 탓에 갑자기 나타난 것과 다름없는 미남(美男)때문의 주변의 여자들은 남자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사냥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사냥감은 20대 초반의 여성이었고 갓 성인이 된 나이인지라 남성을 볼 때 외모를 치중해서 보는 경향이 강했으며 그런 그녀에게 '남자'는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옴은 당연했다. 남자는 무턱대고 사냥감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우선 주변을 서성이며 노점에 나열된 물건들을 구경했고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시선이 어느정도 흐트러질 때쯤 사냥감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녀는 여전히 남자의 외모에 홀린 채 빤히 바라보고 있었고 눈이 마주쳤다. 살인자(殺人者)와 희생자(犧牲者)의 끔찍한 마주침이었지만 평범한 사냥감은 알지 못하고 두근거릴 뿐이다.
포식자(捕食者)가 먹잇감을 보는 것이었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그녀는 멍청하게 매끈한 외형이 가진 매력에 빠져들었다. 교활한 남자는 자신의 외형을 활용했고 그 덕분에 사냥이 쉬워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거나 우쭐해본 적은 없었다.
자신의 몸조차 샤냥감 획득을 위한 도구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남자는 관심이 없었고 만족(滿足)만 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남자는 사냥감에게 천천히 미소(微笑)를 지었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미혹될 만큼 매력적이었고 사냥감은 저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애매한 웃음이었지만 그녀의 하얀뺨이 붉게 달아오른 것만으로도 그녀가 품고 있는 감정이 어떠한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더욱 짙게 미소를 드리우고 사냥감에게 다가갔다. 점차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보고 더욱 뺨을 붉히고 그녀의 심장은 힘차게 뛰었다. 그런 그녀의 앞까지 도달한 남자는 촉촉한 눈빛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예쁘시네요."
이유도 덧붙이지 않은 단순한 문장이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달아올랐다. 자연스레 긴장되어 침이 목을 타고 꼴깍 삼켜졌고 남자의 귀에 선명하게 들려왔으며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냥감은 너무도 쉽게 사냥꾼에게 걸려들었다. 그것은 마치 진리(眞理)와 비견될 만큼 예상 가능한 반응이었다.
* * * * *
성용은 주로 살인, 강간 등 강력 범죄를 담당하는 강력반의 형사로서, 이번 실종 사건은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상사에게 보고했던 것처럼 한 사람이 저지른 것 같았고 있어도 공범 한명정도 예상이 되었다. 있는 자료, 없는 자료를 먼지나오도록 탈탈 털어 얻은 심증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물증이 전혀 없어서 골머리를 앓았다.
실종자들 부모부터 주변 인물들까지 탐문했지만 특출난 성과가 없어서 짜증이 치밀었고 자신과 동료들의 능력이 없는 것인지 이름 모를 범인이 너무도 천재적인 것인지 현재의 침체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숨이 저절로 흘러나왔고 머리가 아파와서 이마를 짚고 책상 위에 엎드렸다.
누군가 등을 툭툭 치길래 엎드린 상태에서 얼굴을 비스듬히 세우고 눈동자를 굴려 그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동료 형사 자철이었다.
"왜?"
"커피 마시라고."
"새끼야, 너나 쳐마셔! 커피 지겨워 죽겠다! 완전 카페인에 쩔었어. 소금에 절여진 배추도 아니고."
"기식빵. 오늘은 다방 커피 아냐~ 반장님이 통크게 요 앞에 있는 커피전문점에서 사셨어~"
"엉?"
자철의 말에 벌떡 일어나 자철이 내민 커피를 받아들여 향긋한 커피 향기를 낼름 맡았다. 인스던트 커피에서 맡을 수 없는 신선한 원두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자신의 커피를 보고 자철의 손에 든 커피를 쳐다보았다. 자기 것은 아메리카노인데 자철의 것은 휘핑크림이 잔뜩 올려진 모카였다. 갑자기 성질이 뻐쳐 자철에게 고함을 쳤다.
"야, 새끼야. 왜 너만 그거야!"
"당연히 난 반장님 따라갔거든. 후후~ 어시스던트만의 특권이지~"
"이런 못되처먹은 놈! 나랑 바꿔!"
"싫어~메롱~"
눈에 불을 키며 모카 커피를 노리는 성용을 피해 자철은 자리에서 벗어나 손수 커피를 나눠주고 있는 반장의 곁으로 다가갔다. 얄밉게 혀까지 내밀고 가는 자철을 보고 이를 갈았지만 이미 떠난 사람에게 화풀이할 수도 없어 손에 든 아메리카노를 벌컥 마셨다.
"앗! 뜨거!"
갓 뽑아 만든 뜨거운 커피를 벌컥 마셨다가 입천장을 홀랑 데인 성용은 커피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입을 막으며 고통을 참아냈다. 어느정도 통증이 가라앉자 신경질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중에 꼭 자철에게 복수하자고 맹세하며 후후 불어 커피를 식혀 조심스럽게 마셨다.
시애틀(Seattle). 위싱턴 주(州)의 중부에 위치한 도시로 엘리엇 만에 면한 아름다운 도시이다. 온화한 기후 지역에 속해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편이었지만 간혹 당황스러울 만큼 폭염(暴炎)과 폭설(暴雪)이 내릴 때도 있었다. 그래도 살기 좋은 아름다운 곳임은 틀림없었다.
곧 찾아올 가을을 맞이하기 위함인지 여름의 끝물에 흐린 날씨가 계속 되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랑비가 도시를 적셨고 며칠동안 내린 비때문에 마를 날이 없었다.
시애틀 중심가에 위치한 메디컬센터에는 연일 내리는 비덕분인지 환자들이 많이 없어서 꽤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널스 스테이션(nurse station:간호원실)에 한 남성이 의사가운을 입고 차트를 넘기고 있었는데, 동양인으로 레지던트 4년차 의사였다. 꽤 젊은 나이에 이례적으로 신경외과 치프(chief)된 천재적인 사람이었고 그만큼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는 반증이기도 해서 원내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또한 핸섬한 얼굴과 훤칠한 키, 다정한 성격으로 동료 의사들과 간호사 그리고 환자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매력적인 남자이기도 했다.
이름은 박태환. 한국인으로 20대 후반의 남자이다.
"Hey! Dr.Park.(이봐! 닥터 박.)"
"Dr.Phelps.(닥터 펠프스.)"
"Are you going to Korea for good?(한국으로 아예 간다며?)"
"Yes. I am. I will come back home after a week.(맞아요. 일주일 후에 돌아가요.)"
"Too bad.(아쉽군.)"
태환은 같은 레지던트 4년차의 심장외과 치프 마이클 펠프스 이하 닥터 펠프스와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이였고 마이클이 태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저질 농담도 주고 받을 만큼 친했다. 그리고 마이클의 말대로 태환은 이번 달까지 센터에서 근무하고 한국으로 귀국 예정이었다.
정기적으로 집안 사정 포함한 업무 등으로 한국을 오갔지만 미국과 한국의 거리는 비행기로도 10시간 이상 걸리는 장거리여서 내심 힘들었다. 뛰어난 외과의사인 탓에 원하는 곳이 많았고 세미나 참석 등으로 여기저기로 불려 다닌데다 병원에서는 시도때도 없이 몰려드는 환자들로 피곤에 찌든 상태였다.
의사로서 커리어도 쌓았고 한동안은 편히 지내고 싶어서 한국의 유명 병원에서 보내온 요청을 응했는데, 물론 편할지 더 힘들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여름을 끝으로 시애틀에서 근무가 끝이 난다.
무척 애석해 하는 마이클의 어깨를 툭툭치며 입꼬리를 끌어 올려 미소지었다.
"Me, too. I'll miss you.(나도 아쉬워요. 그리울거에요.)"
빗물로 미끄러워진 도로에 사중출돌로 위급한 환자들이 응급실로 실려오기 전까지 마이클 그리고 중간에 다가온 동료 의사들과 잡담을 나누었다. 다수의 환자들의 입성으로 병원의 여유로웠던 시간이 끝이 났고 시덥잖은 잡담을 나누던 의사들은 화이팅 구호를 외치며 유혈난무한 세계로 되돌아갔다.
14시간이라는 긴 시간동안 수술을 마치고 오퍼레이팅 룸(operating room:수술실)에서 나온 태환은 뻐근한 목을 주물주물 만졌다. 한번 이렇게 큰 사고가 터지면 몹시 바빠졌고 철야하기 일쑤였다. 이번 수술이 마지막인 탓에 잠깐 눈이라도 붙일 요량으로 숙직실로 걸어갔다.
바깥은 벌써 새벽 여명이 밝아지고 있었지만 아침 근무 시간까지 2시간 가량 남아 있었다. 그전까지 잠을 자두어 조금이라도 체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좋았다.
터져나오는 하품을 삼키며 숙직실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나 안에서 흘러나오는 야릇한 신음소리에 열지 못하고 문앞에서 떨어져 나왔다.
누군가 숙직실에서 섹스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여유 시간을 활용해서 성욕을 해결 중인 것 같았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태환도 아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흔히 의사들끼리 혹은 의사와 간호사로 붙어서 하룻밤을 보내곤 했기 때문이다.
태환은 찌푸려지는 미간을 억지로 피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잠은 물건너 간 것이었고 원내 자판기에서 싸구려 커피라도 뽑아 마셔야될 것 같았다.
몇 날 며칠 밤을 샌 적도 있어서 이정도는 끄떡 없었지만 정상적인 근무하려면 카페인의 힘을 빌리는게 좋았다. 따끈한 커피를 뽑아서 후르륵 마시며 널스 스테이션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태환과 마찬가지로 난데없는 철야 중인 동료 의사 두 명이 있었다.
"Oh, Hi~ Dr.Park.(안녕~)"
"Hi...(안녕...)"
활기찬 동료의 인사를 받아치고 널스 스테이션에 기대어 커피를 마시며 간간히 대화에 참여했다. 흔하디 흔한 유머부터 저질 농담까지 영양가 없는 내용들이었다.
몇십분 그렇게 있었을까, 가운 주머니에 넣어둔 호출기가 울렸고 호출기의 작은 액정에 뜬 메세지를 보고 당장 뛰어갔다. 날밤을 새며 수술했던 환자의 바이탈 사인에 이상이 있다며 곁에서 지켜보던 인턴의 호출이었다. 다행히 회복세를 보이는 도중에 잠시 떨어진 것일 뿐이라 간단한 약물 조치만으로 다시 안정되었고 다시 정상적인 바이탈 리듬을 본 후에 인턴에게 맡기고 IUC(중환자실)에서 빠져나왔다.
그 사이에 환자들이 몰려들었고 한쪽 벽의 스케쥴 보드에는 수술일정이 빼곡히 채워졌다.
"어서 한국으로 떠나고 싶다."
태환은 일주일이 빨리 지나가길 빌며 마른세수를 한 후 진료실로 향했고 가는 길에 마이클을 만나 그가 사온 브랜드 원두 커피를 빼앗아 마셨다. 마이클은 이미 사라진 커피의 온기만 남은 빈 손을 허망하게 쳐다보다가 뒤늦게 화냈지만 태환은 성질내는 그에게 말없이 세번째 손가락을 들어 Fuck을 날리며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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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Start!!
범인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이 같은 흐름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점을 염두하시면서 읽어주세요^^
형사로 성용과 자철이 등장입니다. 그리고 태환은 해외 근무 중인 외과의사로...ㅎㅎㅎ
쑨양은 아직 나오질 않아요. 다음편이나 다다음편에 나오겠네요~
영어...망할 어려운 영어...;ㅅ;
상황에 맞지 않거나 틀린 문법으로 쓴 건 과감없이 말씀해주세요>_<;;
※ 오타 지적 환영.
※ 암호닉은 어느정도 스토리가 진행되었을 때 기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