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시리즈물입니다. 앞편 있숴여
"권아! 지호 왔다! 얼른 나와!"
목도리를 두르고 거울을 보고 있으니 엄마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가 보니 지호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은 채로 서있길래 나도 얼른 신발 신는다.
"자, 이거 밤에 배고프면 뭐 사먹고, 공부 열심히 해요, 아들!"
엄마가 쥐어주는 만원짜리 지폐에 나는 헤벌쭉 웃으며 다녀올게, 라며 지호를 떠밀듯 집에서 나온다.
"흐아-"
춥다. 크게 숨을 내쉬니 그대로 하얀 입김이 되서 날아간다.
"자, 여기."
말없이 앞장서는 지호 손에 방금 받은 만 원을 쥐어준다.
"좋냐?"
돈을 받아 주머니 넣으며 물어오는 지호에게 웃어보인다.
그걸 말이라고.
열 아홉.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특수계급, 고3.
많이들 지옥같다고 말하는 1년, 누가 알았겠는가.
중학교 때 허구한 날 사고만 치고 다니던 자유로운 영혼, 우지호가 이렇게 착실히 독서실에 다니며 공부를 하게 될 줄이야.
그 옆에서 사고치는 데에 일조하던 김유권이 이렇게 얌전해져서,
'빵-,'
말 잘 듣는 어린애가 되서 아저씨만 쫓아다니게 될 줄이야.
지호가 혀를 차는 소리를 뒤로 하고, 클랙션 소리에 고개를 돌린 내가 헤벌쭉, 나도 모르게 쪼개며 달려간다.
"아저씨!"
차에 올라타자마자 아저씨한테 확 앵겨버린다.
위험하다면서 밀어내지는 않고 슬그머니 감싸 안아주는 아저씨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
"좋다, 냄새."
"무슨 냄새?"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아저씨에게서 조금 떨어져 마주보니, 미소 짓고 있다.
"홀아비 냄새요."
"홀아비..."
하며 백팩을 벗고 바로 앉아 조수석 벨트를 매는데 아저씨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또 웃어버린다.
아저씨에게선 서른 살의 냄새가 난다.
애들처럼 꾸질꾸질한 교복 냄새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마들이 빨아준 섬유유연제 냄새도 아니고,
쌉싸름해서 무겁게 감기면서도 끝맛이 달콤한.
아저씨 오피스텔은 높아서 경치가 좋다.
퇴근해온 아저씨 차를 타고 오피스텔로 같이 들어와,
아저씨는 노트북으로 회사에서 가져온 프로젝트인가 뭔가에 매달리고,
나는 그 맞은 편에 온갖 문제집을 널부러 놓은 채로
일하는 아저씨를 감상한다.
"김유권, 공부해라."
멍 때리고 있는 걸 한참 후에야 눈치 챈 아저씨가 노트북에서 눈을 떼고 똑바로 쳐다보며
제법 찌푸린 얼굴을 해본다.
"아저씨 얼굴 무서워서 나 지림. 힝ㅠ"
하며 울상을 지어보이니 피식, 웃더니 고대로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린다.
헐. 내가 이렇게 귀요미 얼굴로 쳐다보는데 지금 일이 손에 잡히나?
결국 또 이상한 데에 꽂힌 나는 도전정신에 불타오른다.
"아저씨, 일 많아요?"
"응."
"언제까지 할 건데요?"
"너 공부 다 할 때까지."
대답은 하는데 날 쳐다보지는 않는다.
"나 공부 다 했어요."
"더 해."
"......"
어쭈?
진짜 쳐다도 안 본다 이거지?
"아저씨."
"응."
"나 아저씨 좋아해요."
"응."
표정 변화도 없이 손만 가져다 아까 내가 컵에 담아준 쥬스를 마신다.
"아저씨도 나 좋아하죠?"
"응."
"그럼 우리 섹스해요."
"푸쿱!"
마시던 오렌지 쥬스를 뿜어 노트북과 내 문제집에 비타민 세례를 한 아저씨가 혼자 당황해서 휴지를 뽑아 대충 닦아내며 나를 노려보길래,
나는 슬며시 웃음을 흘리며 손으로 셔츠 목언저리를 당겨 쇄골이 드러낸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샥시하게 물어주면,
"푸크크큭큭, 크하하하핫학!"
...웃냐?
야, 이민혁. 지금 웃어?
아예 박장대소를 하는 아저씨를 보고 있자니,
장난으로 시작한 마음에 괜히 존심이 상하기 시작한다.
아니,
야밤에,
단 둘이 있는데,
내가 그렇게 쎾쓰어필이 떨어지나?
지금, 웃-어---?
그렇다고 내가 먼저 매달리긴 싫어서 나도 장난인 척 문제집을 쳐다본다.
이민혁, 니가 비웃었다 이거지.
아저씨도 쥬스를 닦고 다시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두들기는 사이,
어두운 오피스텔 안에 홀로 켜진 불빛 아래 마주 앉은 둘 사이에 사각거리는 샤프 소리와 미묘한 자판 소리만 반복된다.
아저씨가 다시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을 때 행동을 게시한다.
가지런히 놓은 아저씨 발에 슬며시 내 발을 올려본다.
아저씨는 뜨겁고, 나는 차갑다.
아저씨가 슬쩍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것도 같지만
나는 무시하고 손을 놀려 문제를 푸는 척한다.
그리고
슬금,
슬금,
슬금,
타고 올라간다.
차가운 내 발끝이
아저씨의 종아리를 타고,
아저씨의 허벅지를 간질여 오른다.
"김유권."
하고 부르면,
아무것도 모른단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마주봐 준다.
말없이 혼내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아저씨와 나 사이에,
슬며시 아까부터 긁적거리던 문제집을 들어올려 보여준다.
'섹스하자고, 이민혁!'
탕,
끄---
그러고는 문제집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서
맞은 편 아저씨 무릎 위에 다리를 벌리고 올라타 마주앉는다.
"섹스하자."
말하며, 팔을 목에 두른다.
그 모습을 말 없이 지켜만 보던 아저씨가 무릎에 얹혀져 있던 내 허벅지를 그대로 두 팔로 잡고 일어나더니,
그대로 맞은 편으로 다시 와서
내가 앉아 있던 의자에 다시 고대로 앉혀주며, 살짝 뽀뽀해준다.
"공부하세요, 유권 학생."
그러고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데,
이쯤 되니까 괜히 화가 나려고 한다.
"아씨! 아저씨 고자냐!"
"예-예."
성의없이 대답하고 다시 노트북에 손을 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짜로 화가 나서
탁, 치고 일어나 가방에 문제집을 담아 넣는다.
"와, 나 이제까지 아저씨 고자인지도 모르고 이 년이나 만났네."
대충 밀어넣고 가방을 들고 일어서서는 아저씨를 내려다 본다.
"어쩐지 2년 동안 한 번도 손을 안 대더라! 고자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고."
하고는 일부러 쿵쾅 쿵쾅 소리를 내며 현관으로 걸어가니까
벙쪄 있다가 한 템포 늦게 따라붙은 아저씨가 어두운 현관 앞에서 내 어깨 위로 팔을 둘러 안더니 속삭인다.
"김유권,"
아저씨의 목소리가 내 왼쪽 귀를 간질인다.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 들어."
하며 다른 팔로 내 배를 감싸 꽉 안아온다.
"씨발, 너랑 섹스할 때는, 니 말 안 들어줄 거야."
틈 하나 없이 안아오는 허리께에 느껴진다. 딱딱한,
"니가 아무리 멈추라고 해도 소용없어."
아, 아저씨, 아젖,
나 귀가 성감대인데 자꾸 거기서, 앙ㅅ,
"네 모든 거,"
배를 안았던 아저씨의 손이 그대로 올라와
가슴과,
옆허리를 쓸고 내려와,
"핫,"
닿을 듯한 거리까지 다가와 속삭이는 그 숨결에,
'다 내가 가질 거야.'
녹아내리듯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그대로 주저앉을 듯하던 날 일으켜
집에 데려다 주겠다며 차에 앉히고, 다시 집에 도착해 이마에 살포시 키스해주며 배웅할 때까지 아무 말도 없다.
그 짧지 않은 시간, 나는 내 왼쪽 귀에 속삭였던 숨결에 내 머릿속이 녹아내린 듯,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야 제정신이 들어 이불 위로 하이킥을 내질렀더랬다.
한 마디만 더 했더라면, 오늘 아저씨와 뜨거운 밤을 보냈을 텐데,
귀가 성감대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나...
아저씨, 나 깨끗한 애 아니에요.
어서..., 마음껏 범해주세요.
다음 날 음악이나 듣겠다며 폰을 빌려간 지호가 말을 걸어온다. |
"D-27? 어쭈? 김유권 수능에 올인하냐?" 지호 손에 들린 내 폰 화면 가득, [아고탈!! D-27] 이라는 카운터 위젯이 떠있다. 보고는 또 생각이 나, 피식 하고 웃어버린다. "아고탈이 뭔데?" "그런 게 있어." 푸흐흐흐. 내가 웃는 게 뭐가 있어보였던지, 궁금한 건 못 찾는 지호가 계속 매달려 귀찮게 한다. 아자, 고등학생 탈출? 아예- 고득점 탈환? 아, 뭐냐거!! 아저씨 고자 탈출, 이 병신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