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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 온 전학생이기에 다른 학우들보다 일찍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텅 비어있는 방에서 나는 교복을 벗고 잠옷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곤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던 편지를 집어 침대로 향했다.
이제야 아버지의 편지를 읽게 되다니, 답장은 보내지 않아도 좋다고 했는데. 나는 침대에 누웠다.
편지를 펼치니 아버지의 정갈한 글씨가 먼저 보였다. 나는 아버지의 글씨를 천천히 아껴 읽기 시작했다.
생쥐처럼 자고 있는 너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편지를 적어 내린다.
미안하다는 말부터 생각나는 구나.
길게 기른 머리를 자르고 외간 사내 아이들 틈 속으로 너를 보내는 것이 미치도록 불안해서 앞으로의 긴 밤들을 어찌 보내야 하는지 막막하다.
언젠가 너는 내가 한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지. 너는 나를 야속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바보같이 웃어주었다.
그러고선 이렇게 말했지. 사내아이로 태어났었어야 했다고. 나는 그 말이 너무도 고마웠지만 일부러 겉으로 나타내지는 않았단다.
꼭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거라. 나는 이곳에서 너의 소식을 듣고 있겠다.
그리고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곳에 다니고 있는 사내 아이 한명을 포섭해 놓았단다. 그 아이에게 너와 내 소식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단다.
그 아이에게 네 일본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 아이는 와타나베 마사토. 조선 이름은 김석진이다.
그의 아버지가 수도에서 꽤 큰 모던 까페를 운영한다더라. 그리고 우리를 많이 도와주고 있는 고마운 분이란다.
그리고 알려주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네가 찾아야 할 카제하야 에이타란 아이는 이사장의 아들이란 신분을 싫어해 학교에서는 다른 이름을 쓰고 있다고 하는 구나.
그 아이도 어쩔 수 없는 조선인이니 조선 이름이 있다고는 하나 아무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고 하니 찾기가 많이 고될 것이다.
태생이 부자인 아이니 태가 남다를 것이다. 그점을 잘 고려해보아라.
다음 편지는 벚꽃이 만개할 때에 보내겠다. 부디 몸 조심하거라.
편지를 접었다. 그리곤 배게 밑에 넣었다. 코 끝이 찡해졌다. 카제하야 에이타를 어서 찾지 못하면 이곳을 나갈 수 없겠지.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든데 왜 눈물이 나는 것일까, 그간 이곳에서 당했던 설움이 물밀듯 밀려와 비오듯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오늘 당한 수모를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내 자매들에게 속삭이고 싶다. 동네 친구들에게 자랑이듯 떠벌리고 싶다.
내가 이런 일을 했다고 모두에게 알려주면 다들 나를 고생했다며 위로해줄텐데. 이곳은 삭막한 사막과도 같았다.
달래줄 이 하나 없는 이곳이 사막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나는 이불에 얼굴을 묻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이불이 축축하게 젖어가도, 누군가가 내 울음을 들어도 지금은 뭐든 괜찮았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을 뿐이었다.
***
"둘 다 풀어주거라. 마사토는 요주 인물이니 주의깊게 살펴보는 것을 잊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새로 전학 온 그 아이 말이다."
"네."
"그의 아비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왠지 모르게 뒤가 찝찝하더구나."
"그 아이도 주의깊게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아는 구나. 그리고 우리 에이타는 어때 보였니?"
"종일 선도부실에 있느라 신경쓰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너는 네 할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교장의 눈썹이 축 처져 내려갔다. 에이타의 건강이 심히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교장은 저 앞에 서있는 윤기를 바라보며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러곤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윤기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의 느긋한 발걸음에 윤기의 신경이 빠르게 곤두섰다.
"여동생은 잘 지내고 있고?"
"덕분에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래, 다 내 덕이지. 물론 네 덕도 있고."
교장의 두툼한 손이 윤기의 허리를 쓸어내렸다.
그럼에도 윤기는 조금의 동요 없이 굳건히 서있을 뿐이었다.
"넌 그저 내 옆에 붙어 동생을 위한 길만 걸으면 된단다."
"네."
"난 너를 믿는다."
윤기는 아무 감정 없는 석고상 같았다.
* 민사재판 *
저 이제 암호닉 어떻게 하는지 알았어요!
암호닉 받을테니 댓글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