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였다.
처음 본 순간... 그대를 雪花 라 일컬으니 너는 내게 스며들어와 하얀 '눈꽃' 이 되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거나하게 술이 취해 기분이 좋아진 당상관이 고집스럽게도 붙잡는 통에 끊임없이 거절을 하는 쑨양의 얼굴에
곤란한 표정이 묻어났다.
달 밝은 좋은 밤에 이리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쉽다며 근처에 있는 좋은 곳에 데려가겠다는 남자의 청에도 쑨양은 굽힐 줄을 몰랐다.
"어허~어찌 이러시오~ 오늘 이야기도 잘 통하고.. 이리 기분이 좋은데! 이대로 헤어지긴 너무 아쉽지 않소?"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쑨양의 팔을 붙들고 자꾸만 가자고 재촉하는 남자의 성화에 쑨양은 손끝으로 이마만 긁적였다.
"조선에 왔으니 이곳의 문화도 한번 즐겨보시는게 어떻겠소? 내 좋은 곳에 모시고 가리다!"
호언장담하며 사신이 우려하는 일 따위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굳게 약조하는 남자의 말에 쑨양은 어쩔 수 없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거절도 한두번이지 기방도 가지 않겠다하여 이곳까지 걸음하게 하였는데 이번 거절까지 하기엔 마음이 무거워지는 탓이다.
내외술집과 머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다는 곳을 향해 걸어가며 당상관은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인적이 드문 숲 속 저 끝에 희미한 불빛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한적한 산 속에 저런게 있을거라 생각지도 못한 쑨양은 그제서야 두 눈에 호기심이 어려 발길을 재촉하는 당상관의 뒤를 열심히 쫒았다.
지은지 오래된 듯 한 목채 건물을 앞에 두고서야 걸음을 멈춘 당상관은 이곳이라며 쑨양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고
누군가를 조용히 불러냈다.
"금옥. 거기 계시오?"
그의 조용한 부름에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려오더니 건물 뒷편에서 기녀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인네가 잰걸음으로 두 남자에게 다가왔다.
불빛 아래에 서있는 당상관의 모습을 가까이서 확인하고서야 여인네는 얼굴 가득 반가움을 내비치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당상관 나으리 아니십니까~ 어찌 이제야 오시는 겝니까? 그동안 저를 잊으셨습니까?"
살가운 말투로 당상관의 팔을 붙들고 샐쭉 웃으며 애교를 부리는 여인의 모습에 쑨양은 흠..하고 헛기침을 하며
저멀리 시선을 두었다.
그제서야 남자에게서 시선을 뗀 여인이 옆에 선 쑨양에게로 눈길을 던지고는 불빛 아래 드러난 그의 얼굴을 보고 입만 벙긋거린다.
"아니.. 이 훤칠하게 잘생긴분은 누구시랍니까? 어머..어머~"
부끄러운줄 모르고 그의 모습을 쭉- 훑어내린 여인은 끝없는 감탄사만 연발해댔다.
"아주 귀한 분이오. 잘 뫼셔야 하니 신경 좀 써주시오."
"그럼요~그럼요~ 잠시만 기다려주시어요~!"
손뼉을 치며 잠시만 기다리시라 말하고 다시 건물 뒤로 사라지는 여인의 뒷 모습을 힐끔 바라보다 쑨양이 당상관의 팔을 붙들었다.
"혹...이곳........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짙은 눈썹을 찡그리며 곤란한 표정을 짓는 쑨양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허허..웃어보였다.
"사신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시금 힘주어 호언장담을 하고는 무슨 꿍꿍이인지 빙그레 웃는 그의 얼굴에 쑨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긴장한 얼굴로 멀뚱히 서있기만 했다.
어둠 속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새소리에 괜히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그의 표정에 긴장감이 어리며 죄없는 이마만 한없이 긁적인다.
"저 안으로 들어가시면 모란실이라 적혀 있습니다. 그곳에 가시면 됩니다."
"저... 저 혼자 말이오?"
어느샌가 사라진 당상관을 눈으로 찾으며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는 쑨양에게 여주인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보이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함께 있을줄 알았던 이는 사라지고 혼자 덩그러니 남아 멀뚱히 서있던 그는
숲 길 저편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에 흠칫 놀라 목채 건물 안으로 급히 발을 들였다.
혹, 다른 이라도 마주칠까 떨어지지 않는 발을 겨우 떼어 여주인이 알려준 곳으로 걸음을 옮긴 그는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복도 끝에 서서 몇번을 주저하다 이내 눈을 질끈 감고 작게 헛기침을 해댔다.
"실례하겠습니다."
두드릴 문도 없어 인사로 대신한 그는 천천히 불빛 안으로 몸을 들였다.
하늘하늘한 장막을 걷고 그 안에 들어서자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낯선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하얀 얼굴에 제법 잘 어울리는 검은색 저고리를 입고 단정히 앉아 있는 여인은 별다른 말도 없이 그를 향해
끊임 없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여인의 저고리에 수놓여 있는 벚꽃을 바라보다...여인의 가는 목선을 바라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까맣고 동그란 두 눈동자와 눈이 마주쳐... 그대로 멈춰버리고 말았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어색한 적막을 깨고 때마침 등장한 여주인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함을 느끼며 쑨양은 여인에게서 겨우 눈을 떼고
시선을 다른곳으로 옮겼다.
탁자 위에 간단한 안주와 술병을 두고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 여주인은 가만히 앉아 있는 여인에게 빙그레 웃어보이고
다시 돌아나갔다.
어찌할바를 몰라 주춤거리며 멀뚱히 서있는 그를 바라보던 여인이 풋..하는 웃음을 짓더니 손짓을 해보인다.
"이리로 오시지요. 계속 거기에 서계실겝니까?"
동그란 눈매가 반달처럼 휘어져 예쁜 모양을 만드는 까만 두 눈이 그를 향해 웃는다.
상냥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그를 부르는 여인의 모습에 쑨양은 괜스레 헛기침을 해보이곤 어색한 걸음으로
여인 앞에 다가가 조심히 앉았다.
옥빛 술잔을 집어 그의 앞에 살짝 놓아주는 고운 손을 힐끔 바라보다가 주병을 집어 드는 여인의 행동에
쑨양이 얼른 대신 받아들었다.
갑자기 주병을 가져간 그의 행동에 놀랐는지 동그래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쑨양은 흠..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잔 가득 술을 따른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여인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를 향해 풋...하고 수줍게 웃어보이고는 그의 손에 들린
주병을 다시 받아들었다.
"나으리는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
"제가 해야 하는 일을 나으리께서 하시면... 그 값을 제가 대신 내드려야 하나요? 이것은 제가 해야 할 일 입니다."
잔에 마저 술을 채운 여인은 주병을 탁자 위에 조용히 내려 놓고 그를 향해 시선을 맞췄다.
"밖에서 돌아가시겠다 말씀하신 분 맞으시지요?"
"................."
"이런 곳은 처음이신가 봅니다. 기방도 안 가실듯 한데..."
뭐가 재밌는지 빙그레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여인의 까만 눈동자에 쑨양은 얼굴이 붉어져 앞에 놓인 잔을 들어
입속으로 급히 털어넣었다.
당황한 그의 표정에 여인은 괜스레 미안해졌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내라니...붉어진 그의 얼굴에 어쩐지 마음이 쓰였다.
미안한 마음에 접시에 담긴 육포를 하나 집어 그 앞에 내밀자 흠칫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원래 안 드립니다. 제 언사에 실수가 있는 듯 하여.....받아주시어요."
"아...아니...괜찮습니다."
손사래를 치는 그에게 두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자꾸만 들이미는 여인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혹 손이 닿아
불쾌해하진 않을까 쑨양은 기다란 손끝으로 조심히 육포을 집어들었다.
그제서야 빙그레 웃어보이는 여인.
꽃같이 예쁜 함박 웃음에 쑨양은 또다시 자신도 모르게 여인을 향한 눈길을 거둘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본 듯 하다.
내 어린 날 보았던 마른 가지에 피어 있던 '눈꽃'이 이러했었다.
눈이 부시게 반짝이던 하얀색.
손을 대면 녹아버리는 눈꽃.
그 물기가 내 손끝에 스며들어 사라지고 나서야
만지면 아니된다는 것을 알았다.
한없이 여리고 여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예뻐
나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던
그 날.
그 눈꽃이 '그대'를 닮았다.]
***
안녕하세요~흰둥이입니다~
폭풍 작업하다가 제가 너무 궁금스러워서
이야기 들고 왔어요ㅎㅎㅎ
아직도 일은 넘치지만...;;
글쓰는걸 포기할수가 없네요ㅠㅠㅠㅠㅠㅠㅠ중독! 중독!!
젊은 나이에 사신이면 뭐합니까...저리 숙맥인것을..
그래서 더 귀엽고 멋진 쑨양입니다.
오늘 불금이군요?
모두 모두 화려하고 뜨~거운 밤 보내세요!
늘 재밌게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
너무 너무 감사해요♡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