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anrium - 비오는 날에 작은 변덕
방과후니까 01
찬이는 18살 남자아이다.
찬이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주는게 좋았고, 재밌었고, 신났다. 그래서 친구도 많았고, 형들도 많았다.
찬이는 항상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걸 존심상해하지 않았고, 그래서 주위에 사람이 넘쳐났었다.
찬이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찬이는 더 좋아해서, 찬이는 더욱 다방면으로 좋은사람이고 싶었다.
찬이는 초등학교 개근상과 중학교 개근상이있다. 그정도 성실했다.
중학교 댄스부동아리를 신설했다. 그정도 리더쉽이 있었다.
교내 칭찬모범생으로 뽑혀 문상 3번 탔다(매 1회씩인데!). 그정도 정의로웠다.
중학교 졸업때 성적우수 모범학생으로 장학금 30만원 탔다. 그정도 노력했다.
찬이는 그랬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들었갔다.
찬이는 작은 예쁜 여자친구가 생겼다. 여사친이란 애들도 생겼다.
시간이 쫓기는 형들이 찬이에게 와서 수시의 중요성을 강요하기도 했다.
찬이는 그렇게 18년을 반전없이 잘 지냈는데, 뜬금없이 한명의 형아가 나타났다.
"형아 말 잘들어. 그럼 넌 고등학교 생활 편해"
19살. 4월에 간신히 전학와서 남들 연필잡고 바쁠 때에 휘황찬란한 염색과 듣도보도 못한 교복패션, 그리고 오토바이 동아리(비공식)로 학교 물을 망가뜨러놓은 형아.
아마 그 비공식 동아리에 회원은 20명이 좀 안될거다.
그중 10명 이상이 1학년, 5명 이상이 2학년, 3학년은 지 혼자가 유일할것이다.
그 회원 20명은 우리 학교의 왕따무리였다.
동상이몽이랄까.
찬이에겐 한심할 수 밖에 없었다. 전에 학교에선 어땠을 진 몰라도, 찬이네학교에서만큼은 그 형은 최고로 한심한 형아였다.
고3이 돼서 전학 온 그 형아를 신경써줄만큼 한가한 선생님은 없었고, 인성부 선생님도 '저러다 갈 놈.' 하면서 크게 뭐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찬이도 정말 진심으로 관심 1도 없었다.
괜히 그 형이 찬이에게 치닥거리는 거, 찬이는 정성껏 피해 다니고 무시하고 그랬다.
맞다. 찬이는 그 형을 무시했다.
"형, 남들은 학생부 챙기느라 바쁘던데, 형은 안챙겨요?"
"우리 엄만 그런거 상관안써"
이 형이랑 대화하다 보면 세상을 모르지만, 세상이 가볍게 보이는 찬이였다.
그 가벼운 느낌이 자기에겐 껄끄러우면서도 거부하진 않았다.
"형,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긴 하던데"
"응, 그거 내 좌우명인데"
" 근데 전부가 아닌것도 못하면 나머지는 어떡하냐던데요"
찬이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웃는 형아의 입꼬리를 보며, 찬이는 속으로 비웃을 수 있었다.
루저.
찬이는 그렇게 형을 판단하고 우월감을 느꼈다.
모든사람에게 좋은사람이고자 했던 찬이가, 이 형에겐 자신의 '사회에 준비된 모범학생의 모습'으로 형의 기를 죽여주고 싶었다.
찬이가 민규에게 가진 마음은 처음엔 이랬었다.
그 형이 전학을 오고, 한달이 안되어 암암리에그 형아가 게이라는 소문이 돌 때 까진.
형이 게이라는 소문을 듣은 찬이는 형을 대하는 모습이 조금 달라졌다.
"민규 형"
형은, 찬이가 불러주면 정말 에쁘게 웃었다.
그러고 이것저것 자신의 허세를 늘어놓았다.
하루에 몇 번씩그 웃음을 보며 확신했다.
그 형은 나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에게 치닥거린거다.
찬이는 그렇다고 받아들였다.
"형이랑 동아리애들이랑 방학때 여행갈래?"
" 알바한다고 했지않아요?"
" 내가 한다곤 안했는데. 남해가자. "
"남해가서 뭐해요"
" 골뱅이 잡자"
"저 방학때 학생부챙기러 학교 행사 챙겨야해요"
" 비는 날 없는거 아니잖아."
" 저 작년 방학때 보충이랑 대학탐방이랑 교내행사랑 가족모임하니까 4일 정도 시간나던데요. 그것도 뛰엄뛰엄 하루씩."
이제 6월달인데, 벌써부터 그 형은 방학생각을 했었고, 그 때문에 찬이는 좀 더 빨리 방학 스케쥴을 잡아 형의 주선을 죄다 거절할 생각을 해야했다.
찬이는 그 형을 전만큼 무시하진 않지만, 딱히 피할 마음은 없지만, 학교 이외의 곳에서 만나는 건 싫었으니까
그러면서 찬이는 이 상황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기분이 들떴다.
그런 마음이, 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