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예쁘니까.
07
(오늘도 사진과 움짤이 많습니다. 로딩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오니 조금만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8ㅅ8)
"…뭐냐, 돼지?"
웬일로 일찍 일어났어?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깨우러 온 동생 놈은 진작에 일어나있는 나를 보고 놀랬는지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놀랄 만도 하지. 왜냐하면 나는 주말에 항상 늦게 일어나 알바를 간당간당하게 갔었으니까. 하지만 어젠 잠을 푹 잔 덕분인지는 몰라도 아침에 아주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아무런 걱정 없이, 또 아무런 고민 없이 잘 수 있었거든. 꿈도 안 꾸고 푹 자본 건 정말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나와서 밥 먹어. 엄마가 밥 먹고 가래."
동생은 제 머리를 긁적이며 방을 나섰다. 일찍 일어난 내가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준비를 마친 나는 식탁에 앉아 엄마가 차려준 맛있는 밥을 먹고는,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왔다. 이제 3월 셋째 주가 다 되어가는데 날씨는 조금 쌀쌀했지만,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볕에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아, 왜 이렇게 신나는 거지? 알바가는 길이 이토록 신났던 적은 없었던 거 같다.
"…일찍 오셨네요?"
평소보다 10분 더 일찍 도착한 나를 여자 알바생도 의외라는 듯이 쳐다보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니폼을 갈아입으러 들어가는 여자 알바생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남들이 보기에도 오늘 내가 좀 달라 보이나 보다. 동생 놈도 그렇고, 저 알바생도 그렇고. 하긴, 지금 나도 내가 신기한데 남들은 오죽하겠어. 고생하셨다고, 안녕히 가시라는 나의 말에 여자 알바생은 어색하게 네… 라는 대답을 하고는 편의점을 나갔다. 저 알바생한테 대답을 들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 오늘 일 좀 잘 풀리는 거 같아.
핸드폰을 보다가 어제 그들과 번호 교환을 했던 게 생각나 전화번호부에 들어갔다. 그곳에 아주 선명하게 찍혀 있는 홍지수, 승관이, 한솔이의 번호. 그것들을 보면서 나는 씨익 웃었다. 내 핸드폰에 남자 연락처가 생기는 날이 오다니. 그것도 한솔이 번호도 알게 되고 말이야…! 괜히 뿌듯한 마음에 흐흐 웃고 있는데 갑자기 문득 든 생각.
"…카톡 프로필 사진 봐도 되려나?"
과연 그들은 어떠한 사진을 올려놨을까? 궁금증을 가지고 나는 카톡을 들어갔다. 카톡에 들어가니 번호를 새로 저장해서 그런지 그 셋의 이름이 제일 먼저 뜨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사놓고선 몇 년째 기본 이미지인 나와는 다르게, 그들의 프사에는 각각 어떠한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대충 보니까 다들 셀카 같은데… 한솔이 거는 제일 나중에 봐야지. 아껴놓는다는 심산으로 나는 홍지수의 프사부터 눌러봤다.
"…와."
홍지수의 사진을 보는 순간 든 생각은 이것뿐이었다. 남자한테 이런 말을 써도 될지 잘 모르겠지만, 참 예쁘다고. 예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인 만큼 정말 예쁘게 생겼달까. 이런 사람을 알게 된 건 내 생애 최고의 행운이 아니었을까? 홍지수의 사진을 한참 감상하다가 나는 승관이 프사를 눌렀다. 프사를 누르자 나오는 두 명의 사내들.
상메에 마이크 이모티콘이 적혀있는 걸 보니 노래방이라도 간 모양이었다. 오, 그나저나 사진 되게 잘 나왔네. 승관이 하면 뭔가 귀여운 이미지만 떠올랐는데 뭐랄까… 승관이 답지 않게 성숙하게 나왔다고 해야 되나. 어쨌든! 유심히 그의 사진을 보다가 승관이 옆에 있는 남자애가 눈에 들어왔다. 얘 이름이 뭐였더라… 대면식 때 얘도 박수 많이 받았던 것 같았는데. 아, 누구였지…? 좋지 않은 머리로 곰곰이 생각을 해보지만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흠… 근데 뭐. 딱히 만날 거 같지도 않고. 별로 마주칠 일도 없을 거 같아서 나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다음은 대망의 한솔이. 한솔이의 프사를 누르기 전까지 나는 심호흡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떨리는 마음을 가득 담고 그의 프사를 꾸욱 눌렀을 때, 내 눈으로 들어온 그의 사진.
"……."
미친. 이건 누가 찍어준 건가? 무슨 외국 하이틴 영화에 나오는 남주인공처럼 생겼네. 하지만 실물이 더 잘생긴 거 같다. 카메라가 한솔이를 다 못 담아내는 거 같아. 정말 한참 동안 넋을 놓고 그의 사진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 이거 캡처하고 싶은데. 그런데 나중에 한솔이가 알면 되게 기분 나빠하겠지…? 초상권 침해, 뭐 그런 거 일 수도 있고. 하지만 너무 잘생겼는걸? 이 사진 내리면 더 이상 못 보는 거 아닌가…. 아, 어떡하지.
…그래. 나만 몰래 가지고 있지, 뭐. 들키지만 않으면 되니까.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어느새 그의 사진을 캡처하고 있었다. 캡처를 해놓고선 나 혼자 좋다고 웃고 있다가, 몇 장의 사진이 더 있길래 나는 그것들을 넘기면서 그의 사진을 감상했다. 프사에는 그의 어릴 때 사진들도 몇 개 올라와 있었고, 제 친구랑 찍은 사진도 몇 장 있었다. 미쳤어, 어떡해. 너무 좋아. 홀린 듯이 사진들을 캡처하던 나는, 어떤 사진 한 장에서 그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그러고 보니 그때 이후로 민규를 본 적이 없네. 그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 울면서 뛰쳐나가느라 후에 그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또 어떤 행동을 하고 있었을지 나는 알지 못 했다. 어제는 1학년들이랑 수업이 겹치는 일도 없었기에 마주칠 일도 없었고….
실망 많이 했겠지. 대학 들어와서 아는 사람 생겼다고 좋아했는데, 그런 사람이 고작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었으니까. 아까와는 달리 또다시 침울해지는 내 자신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선, 두 손으로 내 볼을 찰싹찰싹 때렸다. 아니야, 김여주. 그런 생각하지 마. 어제도 그렇게 한솔이를 오해하고 있었잖아? 한솔이는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과대망상을 하고 있었던 거라고. 그래. 민규도 그럴 거야. 그러니까 괜한 생각하지 마.
……하지만 한솔이는 한솔이고, 민규는 민규인걸…? 한솔이가 그러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민규가 그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단 말이야. 사람이라는 게 원래 알다가도 모르는 거니까.
"…아오!!!"
복잡해지는 마음에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냥 민규한테 물어볼까? 혹시 실망했냐고?
…아니지. 미치지 않고서야 그걸 어떻게 물어봐? 실망했다고 하면, 그다음에는 어쩔 건데? 그리고 내 성격상 나는 그런 말을 할 용기도 없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지금껏 그의 번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승관이나 한솔이보다 민규를 더 먼저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래…. 혹시나 민규가 실망했다고 하면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내가 이러는 거 한두 번도 아니고. 오히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는 걸 진작에 알아채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 다니게 됐으면서 그런 인간이 아닌 척, 그냥 보통의 평범한 인간인 척 질질 끌었다간 나중에 더 큰 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딸랑이는 소리와 함께 덜컥 열리는 편의점 문.
"……! 어서오세…!!"
요….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혹시나 민규이지 않을까 싶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편의점에는 어떤 여자가 들어왔고, 인사를 하던 내 목소리도 자연스레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민규가 여길 왜 와. 내가 알바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온다는 법은 없잖아. 그리고 여기에 와봤자 고작 두 번 온 게 끝이였다고. 바보 같은 내 모습에 허탈한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편의점에 누가 들어올 때마다 기대를 하고 있었다. 여전히 생글생글한,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이면서 민규가 들어올지 않을까, 하고. 이제는 아예 문 쪽을 바라보며 그가 오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었지만,
민규는 오지 않았다.
내가 알바하는 그 이틀 동안, 단 한 번도.
*
정말 싫은 월요일 아침을 맞이하고 학교로 갔을 때에는, 벌써부터 엠티 이야기로 시끌했었다. 아직 2주나 남았는데 다들 왜 벌써부터 난리지…. 엠티 가서 뭘 입을 거냐, 술은 얼마나 마실 거냐, 뭐다 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기들의 목소리를 듣는데 그중에서도 아무래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대화는 이거였다.
"조는 어떻게 나오려나. 이번에는 좀 잘 나와야 되는데."
"야, 넌 그래도 양호한 편이었지. 저번에 나 완전 헬이었잖아. 그 변태 같은 선배랑 같은 조 됐다가… 어휴!"
"하긴… 너 그때 고생 좀 많이 하긴 했었지."
"이번에도 이상하면, 조교가 나를 싫어하는 게 틀림없어. 그럼 진짜 조교랑 싸울 거니까 말리지 마라."
친한 애들은 모조리 갈라놓는 게 조교의 모토이자, 또 신조였기 때문에 친한 애들은 지금부터라도 안 친한 척, 싸운 척하자며 일부로 자리를 떨어져서 앉기도 했었다. …다 부질없는 짓인 거 같은데 말이지. 설마 저걸 조교가 모를까. 내가 봐도 눈에 뻔히 보이는 속셈인데 말이야.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동기들은 권순영과 전원우에게로 다가가서 물었다.
"순영아, 너 조에 대해서 뭐 아는 거 없어?"
"조? 어떤 거. 엠티 조?"
"응응. 내 것만 살짝 알려주면 안 돼?"
"미안한데 나도 몰라."
야, 뻥치지 마. 넌 부학회장인데 왜 몰라! 여자 동기가 웃기지 말라는 듯이 권순영의 팔을 잡고 알려달라며 졸랐지만 권순영은 그건 조교쌤과 학회장 선배만 알뿐, 자기도 정말 모른다고, 미안하다고 말을 할 뿐이었다.
"원우야… 너도 모르고?"
"순영이도 모르는데 내가 알 리가 없지."
힝… 알았어. 입을 삐죽이며 제자리로 돌아가는 여자 동기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네. 나와 같은 조가 되면 그 조 애들은 정말 싫어하겠지만 그건 대충 눈칫밥 몇 번 먹으면서 조용히 있으면 되는 거고, 그렇게 해서라도 어디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나 또 김승민이랑 같은 조 되는 거 아니야…?"
김승민이 나를 싫어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조교쌤은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기에는 내가 작년에 김승민이랑 같은 조가 됐었단 말이지… 뭐,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아니면 작년 학회장 선배가 우리가 친하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 같은 조로 묶어놓은 걸 수도 있고. 아, 미친. 큰일 났다. 이러나 저러나 어쨌든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야, 너네 진짜 몰라?"
"아. 모른다니까."
"뭐야. 전원우는 그렇다 치고, 부학회장 뭐 대단한 건 줄 알았더니… 야, 그냥 때려 쳐. 별것도 없구만."
죽을래? 권순영과 이지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 권순영은 정말 모를 거다. 왜냐하면 항상 조교쌤이랑 학회장 선배 둘이서만 그렇게 짜왔으니까…! 그 둘을 제외하고선 아무도 모르는 게 당연한 거라고! 아… 어떡하지. 승철 선배한테 부탁이라도 해야 되나, 제발 김승민이랑은 피하게 해달라고…?
"……미쳤나 봐."
그 선배한테 무슨 부탁을 해, 내가. 어제도 그렇게 쌀쌀맞게 대해놓곤!!!! 그리고, 더 이상 엮이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해놓고선 이제 와서 선배한테 부탁을 한다고…? 아, 진짜 속 보인다, 김여주. 너 원래 이렇게 속물이었니? 약아빠진 내 모습에 나는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냥 운에 맞기자. 어떻게든 되겠지… 정말 신이 나를 버리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두 번 되풀이되지는 않을 테니까. 나는 그저 기도만 열심히 할 뿐이었다.
제발, 제발 김승민이랑만은 떨어지게 해달라고….
*
50분 동안의 수업 끝에 잠시 쉬는 시간을 갖겠다며 강의실을 나가는 교수님을 보다가 나도 화장실이라도 갈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복도를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익숙한 얼굴.
"어? 선배님! 안녕하세요-."
승관이는 인사를 하면서 내게 다가와 주말을 잘 보냈냐는 둥, 학교 오는 게 왜 이렇게 피곤하냐는 둥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때도 느낀 거지만 이 아이는 야무지게 말을 참 잘한다. 승관이의 말을 들으면서 맞장구를 쳐주다가, 문득 지금 1학년은 무슨 수업이길래 이 아이가 여기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생각했지. 이 아이가 여기 있으면 혹시….
"승관아. 너희 지금 무슨 시간이야?"
"저희요? 저희 지금 전필 시간이요."
"…혹시 지금 강의실에 민규 있니?"
"김민규요?"
뭐야. 선배 지금 나랑 얘기 중이면서 민규는 왜 찾아요! 승관이는 뾰루퉁하게 말했지만 내가 미안하다며, 민규한테 할 말이 있어서 그러는데 민규 좀 불러내줄 수 있냐고 물으니 승관이는 '치… 잠시만요.' 하고선 강의실로 들어갔다. 강의실에 들어선 승관이가 '김민규!!!!!' 하고 크게 부르는 목소리가 복도 밖에서까지 들려왔다.
"민규 지금 없는데요?"
"어?"
"나갔나 봐요. 저도 지금 막 화장실 갔다 오는 중이라 어디 갔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 나는 알겠다고, 고맙다고 말을 하고선 무작정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왜인지는 몰라도 지금 민규를 꼭 봐야 할 것만 같았다. 민규와 마주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와 정말 끝이 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서든 오늘 그를 만나 뭐라도 말을 꺼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나는 화장실을 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계단 한 층, 한 층을 내려가면서 그를 찾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
1층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뽑고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은 분명히 민규라고. 드디어 찾은 민규에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야지 싶다가도, 막상 그를 만나고 나니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에 나는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뭐 하는 거야, 지금. 그렇게 민규를 찾아다녔잖아. 지금 내 앞에 민규가 있는데 왜 말을 못 거냐고…!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켜고, 주먹을 꽉 쥐고선 입을 열었다.
"민규…!!!"
"어? 김민규!"
그의 이름을 힘차게 부르려던 나는, 옆에서 다가오는 어떤 여자의 모습을 보고선 후다닥 숨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건지 고개를 들던 민규는, 그 여자아이를 보더니 뭐냐며 픽 웃고선, 그 아이와 서스럼없이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반말을 하면서 투닥투닥 하는 걸 보고 있자니 저 여자애는 16학번인가 보다.
"나도 하나만."
"내가 왜?"
"아, 좀! 지금 돈 안 가져와서 그래. 강의실 가면 돈 줄게."
그래, 그럼. 다시 돈을 넣고선 커피 한 잔을 뽑더니 그 여자아이에게 건네는 민규. 둘은 그렇게 커피를 마시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내려온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그렇게 올라가버렸다. 엘리베이터가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걸 보고 나서야 그 자리에서 나온 나는, 씁쓸해지는 기분을 어쩔 수가 없었다. …나 혼자서만 너무 애탔었던 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 순간까지도 그 여자아이와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던 민규를 보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씁쓸한 건지. 그냥 수업이나 들으러 가야겠다. 나도 다음 강의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버튼을 눌렀다가 무심코 확인한 시간은 이미 정각을 넘어가고 있었고, 그걸 본 나는 부리나케 계단을 올라가야만 했다.
*
하필이면 우리 전공 강의실은 7층이였기 때문에 미친 듯이 뛰어 올라온 나는 교수님이 들어오시기 직전에 겨우 세이프 할 수 있었고, 벅찬 숨을 몰아쉬며 나는 자리에 앉았다. 이럴 거면 그냥 화장실이나 다녀올걸, 아까는 뭔 배짱으로 김민규를 만난다고 그랬던 건지….
수업을 듣는 내내 우울해서 죽을 뻔했다. 아까 민규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일까. 수업을 듣고는 있지만 이미 정신은 저 먼 곳으로 떠나있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 지루하고 긴 수업이 이미 다 끝나있었을 정도로 나는 딴 생각만 하고 있었었다. …아, 언제 끝난 거지. 가방을 챙기는 동기들을 보며 나도 따라 가방을 챙기고선 강의실을 나섰다.
그 후로도 강의실을 옮겨 다니다가 모든 수업을 다 듣고 건물에서 나왔을 때는 벌써 하늘이 어둑어둑해져있었다. 월요일은 이만큼 빡센 수업이었기에 나는 왜 시간표를 이따위로 짰을까 후회를 하곤 했었지만, 오늘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만큼 수업을 대충 들었기 때문이었겠지. 모든 것이 끝난 나는 이제 통학버스를 타러 걷기 시작했다.
원래 통학버스를 타면 나는 항상 잠을 자곤 했었다. 집에 가는 그 한 시간만이라도 모든 걸 내려놓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잠이 안 온 적은 없었다. 매일 노심초사하며 긴장이 잔뜩 들어있던 나는 버스가 출발할 때면, 그제야 긴장이 풀려서 바로 곯아떨어지곤 했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발라드를 들으면서 잠을 청하려고 해도, 어쩐 일인지 잠이 오기는커녕 정신만 더욱 말짱해질 뿐이었다. 하… 오늘 왜 이러냐, 진짜.
버스에서 내려서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가,
"…저기요!!!"
정신없이 걷던 나는 빨간 불인 지도 모르고 횡단보도를 건널 뻔했다. 그것을 건너려던 그 순간 누군가 나를 잡아 이끌어주었고, 내가 인도로 들어왔을 때에는 아주 아슬아슬하게 트럭 한 대가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 사람이 나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대로 저승길을 걸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제야 정신이 든 나는 놀란 가슴에 숨을 몰아쉬며 그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데, 그 사람은 정신 안 차리고 대체 뭐 하는 짓이냐며 내게 타박을 주기 시작했다. 졸지에 죄송하다고까지 사과를 한 나는 초록불로 바뀔 때까지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르겠다.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생각했다. 내가 너무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처음에 그 아이가 나를 보고 너무 반가워하길래 나는 그 아이의 뭐라도 된다고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그가 나를 더 특별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한심한 생각을 말이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민규는 내가 없어도 학교생활을 충분히 잘 하고 있었고, 서스럼없이 누구와도 잘 지내고 있었다.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나라서,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려운 나라서 민규도 그러지 않을까 나는 착각하고, 또 착각하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그 아이는 아쉬울 게 없다. 아쉬운 건, 오직 나 뿐이었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아까 그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게 민규에게 말을 걸 수 있었겠지? 숨을 필요도 없이 말이야. 아… 아니지.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내가 민규 앞에서 이런 수모를 당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지금 와서 이런 생각을 하면 뭐하겠나. 그냥 다 내 잘못이다. 당당하지 못 해서, 떳떳하지 못 해서 나는 지금 이런 상황까지 끌고 오게 된 거다.
그래. 어쩌면 내가 빠져주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괜히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는 아이한테 '나' 라는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나' 하나 없다고 민규가 큰 지장을 받는 것도 아니고. 전부터 말해왔듯이 우리는 편의점에서 고작 몇 번 본 게 끝이었으니까. 이대로 남남이 되어도 전혀 아쉽지 않은 사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
익숙한 공간에 문득 고개를 드니,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내가 알바를 하고 있는 편의점 앞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항상 이 편의점을 거쳐서 가곤 했었는데, 집에 갈 때는 이 편의점 앞에서 걸음을 멈춰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어차피 주말에 주구장창 오는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이곳에서 저절로 걸음이 멈추었다. 편의점을 바라보고 있으니 민규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점점 퍼져나가는 기억의 조각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울었어요?'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왜 기분 우울할 땐 단 게 최고라고 하잖아요. 이게 초코우유 중에서도 제일 단 거랬으니까 이거 먹고 힘내요.'
'여주 누나, 맞죠?!'
……와, 미치겠다.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나는 억지로 참아냈다. 길거리에서 이게 무슨 주책이야. 애써 손부채질로 촉촉이 젖은 눈가를 말리면서 나는 얼른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잠을 자자. 어떻게든 눈을 막고, 귀를 막고 모든 걸 다 막고 있다 보면 잠이 들겠지. 그러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눈물을 꾸욱 참고 한 발자국을 내딛으려고 할 때였다.
"선배."
…김여주 드디어 미쳤나 보네. 이젠 환청까지 들린다. 귓가에 들리는 민규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얼마나 그를 생각했으면 이젠 되지도 않는 소리까지 듣게 되는 걸까.
"선배!"
……? 잠깐. 이거 정말 환청 맞는 건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목소리가 너무 자세하게 들리고, 또 선명하게 들리는ㄷ….
"……!"
*
…지금 이거 꿈 아니지? 거짓말 같게도 나는 지금 편의점 앞에서 민규를 만났고, 나보고 밖의 테이블에 잠시 앉아있으라던 민규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더니 초코에몽 두 개를 사가지고 나왔다. 그리고선 하나를 정성스럽게 까더니 빨대를 콕 꽂아주고는 내 앞으로 놔주었고.
"선배. 우리 오랜만에 보는 건데 안 반가워요? 이번에도 나만 반가워하는 거 같네."
저만 반가워하는 거 같다며 툴툴대던 민규는 초코에몽 한 모금을 쭉 들이켰다. 윽, 이거 왜 이렇게 달아. 처음 먹어보는 건지 조금 인상을 찌푸리던 그는 이내 그걸 내려놓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일단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어색하기도 하고, 또 마지막에 그렇게 헤어지게 된 거라 더 어색하기도 하고. 그리고 너는 왜 지금 여기 있는 건데?
"선배. 나 좀 봐요."
"……."
"이러다 선배 얼굴 다 까먹겠네."
"…여긴 어쩐 일이야?"
차마 제대로 보진 못하고 그를 흘끗흘끗 쳐다보며 묻자 민규는 대답했다.
"기다렸죠. 선배 언제 오나 싶어서."
"…뭐? 왜?"
"아까 승관이가 그러던데, 저 찾았다면서요?"
……아. 맞다. 미친. 아까 승관이한테 물어봤었지, 민규 어디 갔냐고.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었다. 승관이가 민규에게 내가 그를 찾았다는 걸 얘기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그래서 수업 끝나고 바로 선배 보러 갔는데 이미 다른 수업 들으러 간 건지 안 보이더라고요. 연락처도 모르니까 연락을 할 수도 없고… 어차피 수업은 늦어봐야 6시에 끝날 테니까 기다리자고 생각했죠."
…? 지금 뭐라는 거야. 기다려? 언제부터? 민규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던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빨갛게 물들어 있는 그의 귀, 볼, 그리고 손까지. 언제부터 나를 기다린 건지는 몰라도 추워서 얼어있는 그를 보자니 절로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너 미친 거 아니야?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그리고 내가 여기로 지나간다는 보장 있어?"
"뭐… 거의 도박이긴 했죠. 그런데 여기밖에 없더라고요."
"……."
"내가 선배를 기다릴 곳이."
…하. 원래 이렇게 대책 없는 애였나. 조금은 미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나는 그가 왜 이렇게까지 나를 만나고 싶어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관이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었더라도 내일이나 언제든 학교에서 만나면 그때 물어봐도 될 일이었는데 대체, 왜, 이렇게 자신의 시간을 버려가면서 나를 기다렸던 걸까.
"어쨌든 만났으니 다행이죠. 엇갈리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
"이제 말해주세요. 나 왜 찾았어요?"
그렇게 기다리고, 또 만나고 싶어 하던 민규가 바로 내 눈앞에 있었지만 나는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전에 고민했던 것처럼 혹시 나한테 실망했냐고, 그래서 편의점에도 안 찾아오고 그랬던 거냐고 물어봐야 하는 걸까?
…아, 근데 너무 웃기잖아. 민규가 무슨 내 남자친구도 아니고. 생각해보니까 진짜 웃긴 거였네, 이거. 저런 걸 질문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오바 아닌가?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멀어지기 싫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실제로 그와 대면하고 보니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나 혼자 너무 깊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 같고, 아까처럼 이대로 민규와 멀어지는 게 맞는 거 같았다. 그게 상책인 거 같기도 했고. 그렇게 자리를 벗어나려는 나를 민규는,
"어디 가요?"
내 손목을 잡으며 나를 붙잡았다. 이거 놓으라며 그의 손을 힘껏 뿌리쳐보지만, 민규는 절대 내 손목을 놓지 않았다.
"우리 아직 얘기 안 끝났잖아요."
"나는 할 얘기 없어!!!"
"거짓말. 그럼 나는 왜 찾은 건데요?"
"별 거 아니었어.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 별 거 아닌 거도 괜찮으니까 나랑 얘기 좀 해요."
……아, 진짜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뭐라고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쪽팔리지도 않아?"
"네?"
"내가 쪽팔리지도 않냐고."
그게 지금 무슨 소리예요. 내 말에 민규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냐고, 무슨 일이 있냐며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그 시선이 너무 따뜻해서, 너무 포근해서 그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그때 봤을 거 아니야. 나 학교에서 그런 취급 당하면서 살아. 항상 애들한테 욕먹는 건 기본이고, 그곳에서 내가 멋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
"너를 왜 찾았냐고? 그때 이후로 너를 본 적이 없으니까. 네가 나한테 정말 실망을 한 걸까, 나라는 실체를 확인하고 나서 정이란 정은 다 떨어진 건 아닐까, 그게 궁금했거든."
"……."
"근데 이제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때 네가 나를 보고 놀라 하던 표정을 보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미칠 듯이 쪽팔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들킨 게 속 시원한 거 같아. 나는 그때 네가 나를 보고 너무 반가워하길래 부담이 됐었거든.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주지 못할 테니까."
"……."
"그러니까… 그냥 가. 네 시간을 버릴 정도로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눈물이 나오려는 걸 애써 입술을 꾸욱 깨물며 참아냈다. 여기서 울면 안돼. 여기서 울면 정말 답 없다, 김여주. 이제 이렇게까지 얘기를 했으니 민규도 어느 정도 알아 들었겠지. 앞으로 민규랑 엮일 일은 없는 거야.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내 손목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밀어내자 그의 손은 쉽사리 풀려내렸다. …그래. 좋아, 잘했어. 이대로 집에 가기만 하면 돼.
사실 조금 마음이 아프긴 했다. 이런 식으로 그와 인연을 끊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건 꿈에서라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누가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은 인연을 끊을 생각부터 하겠는가. 약간은 서러운 마음에 괜히 꽉 문 입술을 더욱 꽉 깨물며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세상에 가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내 손목을 잡은 민규는 그대로 나를 자기 쪽으로 돌리고서는 말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니, 마주한 표정은 꽤나 단호해보였다.
"말이 안 되잖아요. 세상에 가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
"그리고… 방금까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아서요."
"……."
"그래요. 솔직히 나 그때 선배 보고 놀라긴 했었어요. 하지만, 나는 선배가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단 한 번도."
"……."
"그런 거 생각할 시간 따위 없었어요. 그저 걱정만 됐었으니까. 내가 괜히 다가갔다가 선배가 더 불편해하면 어떡하지? 혹시 다른 오해를 하는 건 아닐까?"
"……."
"그래서 일부러 편의점도 안 갔어요. 선배가 나 보면 불편해할까 봐. 타이밍만 재고 있었죠. 언제 말을 걸어야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그렇게 지낼 수 있을까."
"……."
"그런데 오늘 선배가 저를 찾았다고 해서 아, 내가 한 생각은 다 부질없는 거였구나. 오히려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건 나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정작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내가 너무 선배를 약하게만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선배랑 이야기하려고 기다렸던 거라고요."
그런데 아니었나 보네요. …내 눈을 바라보는 민규의 얼굴이 점점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사람? 선배는 내가 선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다고 느낀 건데요?"
"……."
"멋진 선배? 공부 잘하는 선배? 아니면 뭐, 인기 많은 선배?"
"……."
"나는 그런 적 없어. 나는 선배를 내 이상에 맞춰서 생각해본 적 없어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나는 그냥 김여주 그 사람 자체만을 보고 있었으니까.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던 그의 얼굴이 결국에는 뿌예져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가득 차올랐고, 이내 그 말을 끝으로 눈물은 볼을 타고 뚝, 흘러내렸다. 아… 나 진짜 바보 같다. 한솔이 때도 그러더니, 사람이 왜 이렇게 달라질 줄을 모르냐. 한 번 떨어진 눈물은 이내 두세 방울로 번져갔고, 그 후로도 넘치지 않는 눈물에 애를 먹으면서도 나는 말했다.
"……미안해."
처음에 내가 알바를 늦게 가 알바생한테 깨져 기분이 안 좋았을 때도 너는 나를 웃음 짓게 만들어주었고, 내가 학교에서 서러운 일을 당해 기분이 우울할 때에도 네가 나타나 나를 위로해줬었다. 힘들 때마다 내 앞에 나타났던 너는, 어느새 그만큼 내게 중요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혼자서 계속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이대로 연이 끊어져도 상관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너와 멀어지는 것이 싫었고, 또 계속 알고 지내고 싶었다. 너는 나보다 한 살이 어리지만 어쩌면 나는 너를 후배가 아닌, 그냥 정말 친한 친구처럼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너는 정말 편했고, 항상 고마운 존재였으니까.
"내가 생각이 짧았어."
"……."
"너를 위해서라도 내가 빠져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야. 사실 난 너랑 계속 같이 있고 싶어."
"……."
"…너를 잃고 싶지 않아."
진심을 말하고 나니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나와 나는 연신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내가 민규한테 정말 쪽팔린 건 그때 나의 실체가 밝혀진 것이 아니라, 나 혼자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삽질을 하고 있던 지금이 가장 쪽팔린 게 아닐까….
"선배…. 그만 울어요. 뚝."
"……."
"…아, 선배라고 하는 것도 이제 못 해 먹겠네."
"……?"
"여기는 학교 아니니까 상관없죠?"
"누나."
"보고 싶었어요."
아주 많이. 그제야 내게 항상 보여줬던 미소를 보이며 말을 해주는 민규에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민규는 괜찮다며 나를 다독여줄 뿐이었다.
*
정말 괜찮으니 그냥 집에 가라는 내 말을 무시하고는 지금 민규는 우리 집까지 나를 데려다주는 중이었다. 다 울고 나서 민규를 보려니까 왜 이렇게 민망하던지.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서로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었다. 예전처럼.
"학교에서 꼭 선배라고 불러야 돼요? 선배라고 부르기 싫은데."
"…나는 상관없는데, 순영이가 그런 모습 보이는 건 나도 처음이라…."
"아… 진짜 그 선배 뭔가 마음에 안 들어요. 나랑 안 맞는 거 같아."
그 선배도 나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고. 나는 아니라며, 그냥 그때 후배 군기를 잡아보겠다고 순영이가 그런 것일거라며 손사래를 치면서 말을 하지만 민규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선 조금 생각을 하더니, 이내 자신의 감이 맞는 거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남자가 알아보는 법이에요, 누나."
"으음… 진짜 그럴 애가 아닌데…."
"뭐야. 지금 그 선배 편 드는 거예요?"
와- 나 조금 속상하려고 그러는데? 민규는 정말 세상에서 제일 속상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내게서 한 보 떨어져 걷기 시작했다. 자기한테 다가오지 말라면서. 그에 내가 쩔쩔매며 미안하다고 말을 하자 민규는 그제야 장난이라며 피식 웃고는 다시 내 옆으로 다가왔다.
"우리 엠티 같은 조 됐으면 좋겠다, 그쵸?"
"그러게… 그러면 정말 좋겠다."
"학회장 선배한테 가서 아부라도 좀 떨어야 되나."
당장 내일이라도 찾아갈까요? 정말 승철 선배를 찾아갈 것만 같은 그런 민규에 나는 됐다며 피식 웃었다. 진짜 선배가 너랑 나를 같은 조에 넣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진짜 그 선배한테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절을 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민규랑 같은 조가 된다면 이번 엠티는 조금 즐거워질 거 같기도 하고… 민규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처음으로 엠티다운 엠티를 즐겨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푼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 다 왔다."
"여기에요?"
"응."
"뭐야. 별로 멀지도 않네."
"너희 집은 어딘데?"
"누나 편의점에서 한 5분 거리?"
아… 우리 거의 동네 주민이었구나. 되게 가까운 데서 살고 있었네. 나는 오늘 정말 고맙다며, 부모님이 걱정하실지도 모르니까 얼른 들어가 보라고 민규에게 말했다. 민규는 그저 웃으면서,
"알았어요. 내일 학교에서 봐요, 누나."
하고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방으로 직행한 나는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나는 침대에 누웠다. 집에 오면서 번호 교환을 했던 터라 핸드폰에는 이제 그의 이름과 번호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그걸 보면서 생각했다. 처음에 홍지수를 밀어냈던 것처럼, 이번에도 민규를 밀어냈더라면 나중에 어땠을까? … 많이 후회했겠지? 울기도 많이 울었을 거고. 나를 끝까지 잡아준 민규가 고맙기도 하고, 또 미안하기도 했다. 앞으로 내가 잘해야지.
모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또 생겼다는 사실에 나는 오늘 밤도 아주 잘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우리 누나, 내가 많이 지켜줘야겠네."
여주와 헤어지고 나서도 한참을 그곳에 서 있던 민규는, 여주가 잘 들어간 걸 확인하고 나서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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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차차차입니다! 아니 진짜... 우리 독자님들이 저를 울리시려고 작정을 했나 봅니다ㅠㅠㅠㅠㅠ 아니, 이 글이 뭐라고 대체 추천을 35씩이나 찍어줘요?!!! 하.. 진짜 인티에 들어왔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ㅠㅠㅠㅠㅠㅠ 독자님들의 댓글도 하나하나 정독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저번 편처럼 모두 답댓을 달아드리고 싶은데 다 못 달아드린 점 정말 죄송합니다ㅠㅠㅠㅠ 아 진짜 독자님들이랑 소통하고 싶은데ㅠㅠㅠㅠㅠㅠ 정확히 말하면 오늘이죠 제가 오늘 나가서 2, 3일 동안 집을 비울 예정이기 때문에 사실 지금도 얼른 자야 되지만....☆ 아무래도 지금 올리지 않으면 독자님들이 많이 기다리실 거 같아서 이렇게 7편 휙 쓰고 갑니다!!! 잉잉 다 답댓 달아드리고 싶다!!!!!!! (오열)
이번 편은 아주 민규가 다 해먹었네요ㅋㅋㅋㅋㅋㅋㅋ 엠티 조... 기대하고 계셨을 텐데 다른 이야기라 죄송합니다. 하지만 민규와의 관계도 한 번은 풀어야겠죠! 사실 저 엠카 짤은 제가 너무 좋아해서 두 번이나 넣었네요 히히 하지만 같은 짤은 아니라는 점....! 7편은 거의 민규의 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혹시 이번 편을 보시고 어라 이것 보소 이거 주인공 민규 아니야?!! 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건 홍일점 글이잖아욯ㅎㅎㅎ 아무도 몰라요 누구랑 될지는 하하 끝까지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들을 보다 보면 여주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혹은 예전 생각이 난다, 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댓글들을 보면서 상처받으신 분들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이 되지 않아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런 걸로 문제가 많다는 것도 다시 한번 느꼈고요. 하지만 여러분! 슬프게도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을 바꾼다는 건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는 쉬운 일이죠. 늦지 않았습니다. 사실 늦어도 무방해요. 나는 충분히 멋있다, 훌륭하다, 예쁘다, 짱이다 뭐든 좋습니다. 나부터 조금씩 자신감을 가지고 마음을 연다면, 그렇게 나부터 바뀌기 시작한다면 나 한 사람을 시작으로 언젠간 세상도 바뀌지 않을까요? 여러분들은 모두 할 수 있어요!!!!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아, 이거 또 새벽 되니까 감성에 젖어서 조금 진지해졌네요 진지충이라고 욕하셔도 됩니다. 사실 내일 아침 되면 조금 오글거릴 거 같긴 한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으악 부끄러우니까 이제 빨리 도망쳐야지.
아무튼.... 우리 독자님들 제가 정말 많이 아낀다구요....ㅎㅎ.... 언제나 촑글 올려주시고 추천 수도 완전 따봉으로 찍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새로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 추가해 놓을게요ㅎㅎㅎㅎ사랑합니다♡ |
암호닉 독자님들♡ |
착한공님 아링님 숭늉님 얌얌님 쿱님 찬아찬거먹지마님 팝콘님 분수님 붐바스틱님 반장님 성수네 꽃밭님 감자오빠님 레인보우샤벳님 전주댁님 설레임님 호에님 세봉둥이님 눈누난나님 순영파워님 꽃내음님 17학번님 유흥님 내셉틴님 제이에스디님 세봉이님 현지짱짱님 호로록님 심장셉틴대란님 잼재미님 신아님 인상님 빙구밍구님 토마스뿌뿌님 초록책상님 겸디님 기복님 부르르님 헨델님 토마토님 인공순영호흡님 세봉윰님 에스쿠우웁스님 스틴님 Mr. 아령님 17뿡뿡님 꼬야님 열일곱님 밍구님 심플님 thㅜ녕이님 넘나넘나님 이찬님 우징블리님 뿌야님 수녕텅이님 복숭아님 슈우님 바나나에몽님 눠예쁘다님 별이님 도키님 세병님 도라도라님 롱디님 복덕방아줌마님 두유워누님 낑깡님 순별님 하금님 최허그님 코인님 뿌우리님 규애님 토깽이님 몬드님 밍블리님 쇼우슈아님 순영님 애기석님 밀르님 냉탕에 상어님 셉요정님 유원님 이줅님 osim님 문롱바님 뿌나무님 쎕쎕님 아드리나님 8월의 겨울님 뿌잇뿌잇츄님 순영바님 쑤녕마망님 망고젤리님 원우야 나랑 살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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