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어.
이 배엔 정상인이 없어.
내가 미쳤지, 아무리 급해도 이런 배를 타다니.
제발... 육지에 도착할 때까지 내가 무사하길 빌어줘.
"야, 이태일! 이태일 어디갔어!"
"선장, 나 여기."
오늘도 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갑판으로 튀어나가 보니 우리 배 선원이 다 모여있었음.
우리 배 이름은 블락버스터 호. 선원은 나까지 다섯 명.
솔직히 처음에 왜케 선원이 적지, 했는데 이상하게 잘 굴러간단 말이야.
"이태일, 부르면 빨.리빨리/ 안나.오니/ 또, 늦.으면니/ 면상.분리/"
울 선장 말 이상하게 해. 평소에도 라임 맞춰서 리듬 넣음. 병신같은 데 무서워서 말은 못 함.
어쨌든 선원 세 명이 갑판 위에 서있고
나는 살짝 높은 선장실 난간 앞에 당당하게 걔네들을 내려다 보고 섬.
ㅇㅇ 나 이래뵈도 쟤네들 내려다 보는 위치다.
그러면 날 꼬나보며 선장실에 기대 서 있던 선장이 걸어와 내 어깨에 척, 두 팔을 걸쳐놓지.
ㅇㅇ 나 선장 전용 팔걸이로 고용 됐음. 내 어깨에 팔 걸치고 기대서면 졸라 안락하대. 야호 \^0^/
...우지호 이 개갞끼ㅠ 내가 키 작은 게 너의 행복에 기여해서 난 매우 행복하다, 씨ㅂ...
"...이태일 듣고 있냐?"
"에?"
속으로 선장을 열라게 까는 사이에 머리를 톡톡 건드리길래 정신을 차리니 띠꺼운 목소리가 들려 당황함.
"다 제대로 들었으면 개소리 해봐."
"...멍!"
"잘했어. 그래서, 앞으로 삼일 후까지는 좀 신경 쓰자. 이상!"
내가 이러고 산다. ㅠ
개소리 내라면 개소리 내고. 머리 쓰다듬으면 쓰다듬는 대로 서있고.
너, 밑에 김유권. 웃지 마라.
처음 배에 타서 다들 나이를 깠는데,
내가 아무리 고아라지만 내가 태어난 해 정도는 알고 있다고!
내가 제일 나이 많다니까 다들 안 믿엉. ㅠ 이 솅키들이 코 앞까지 와서,
그거 있잖아. 내 머리 끝을 손으로 재고 고대로 자기 어깨로 갖다 대면서 피식 웃는 거. 다들 그러고 지나감.
키 큰 놈이 형 먹는 이 더러운 세상...
원래는 나도 꽤 험하게 살아와서 잔뼈가 굵어서 세게 나갈 생각이었는데,
배타고 보니까 내 살 길은 굽신굽신 밖에 없는 듯... 만만한 놈이 없다. ㅠ
솔직히 배를 급하게 고르느라고 정보가 부족했어.
나중에 같이 탄 김유권이 알려줬는데 블락버스터의 지코 선장, 하면 똘아이로 유명하다고...
선장 맘에 안 들면 똥꼬가 타들어가는 고통을 맛보게 될 거래.
어떻게 아픈 건진 잘 모르겠는데 김유권 목소리 때문에 들을 땐 무서웠음.
어쨌거나 첫 만남에서, 니가 할 줄 아는 게 뭔데?
하면서 위아래로 훑어보는데 살짝 비웃는 것 같아서 나도 기분 상했거든.
어쨌거나 당장 항구를 벗어나야 하니까 나 바람도 잘 보고 눈도 좋으니까 파수꾼 하겠다고 그랬음.
그러니까 선장이 잠깐 말이 없더니, 배 타도 좋다고 함. 근데, 내가 할 역할은 그게 아니라고.
나 이 배에서 닭 키워...
내 공식 직책이 닭지기임...
줄여서 닭찡이라고 부르더니 요즘엔 탤찡이라고 부르더라...ㅠ
원래 배에서는 먹이 실을 공간이 없어서 동물 키우는 건 말도 안 되니까 난 농담인 줄 알고 다음날 배를 탔는데,
진짜 닭장 있었어... 미친 놈. 너란 칙힌덕후... Aㅏ...ㅗ
바다에서 언제 굶어죽을 지도 모르는데 사람 먹을 걸 꽉꽉 채워도 모자랄 마당에...
그래도 열 마리 있는 거 날마다 한 마리씩 잡아먹어서, 그건 좋더라.
근데 나 이 배에 탈 때 지나가면서 들은 선장 말이 좀 마음에 걸리긴 해.
이 배에 총 네 명이 탔는데, 식량 계산을 해서 배에 싣잖아. 근데 선장이 조용히 식량 공급업자한테 그러더라고.
한 명은 열 하루밖에 안 탈 거니까 나머지 세 명 분만 계산해서 식량 채우라고.
근데 오늘 닭장에 들어와서 닭을 새보니까 세 마리 남았더라고.
그리고 우리 배는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