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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레논 전체글ll조회 614l

  촉촉하게 물기 어린 머리칼을 하고 방으로 돌아온 성종은 멍하니 장미만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성열의 옆에 가 섰다. 뭔가에 홀린 듯이 보이는 성열의 모습은 기억 상 처음인 성종은 궁금하다는 듯 성열의 눈앞에 고개를 살짝 들이밀었다.



 "뭐해?"

 "아, 응……. 아니, 그냥 좀."

 "그럼 뭘 그렇게 중얼거린 거야?"

 "음…… 그냥 행복하게 해주세요, 같은 소원 빌었어. 장미가 소원을 들어준대서."



  성열은 어른들이 흔히 어린애들에게 말하기 싫을 때 하는 갖은 말들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둘어댔다. 표정으로는 당황했음이 여실히 드러났을 것이라고 짐작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성종이 그런 것을 파악하기에는 아직 세상 물정을 심히 몰랐다. 성열의 변명에 그대로 속아 넘어간 성종은 자신도 소원을 빈다며 장미 앞에 자리 잡고 섰다.



 "빨리 이 방에서 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성종은 눈을 꼭 감고 아까 전 성열이 했던 것처럼 중얼거렸다. 같은 소원을 여러 번 반복해서 빈 후에야 성종은 눈을 반짝 떴다.



 "진짜 장미가 들어줄까?"

 "그럴 거야."



  성열은 밝게 웃어보였다. 성종은 그 모습을 따라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귀여운 그 모습에 손을 뻗어 여전히 젖어있는 작은 머리통을 살살 쓰다듬어 준 성열은 이제 자자며 성종은 침대로 이끌었다. 성종은 앞으로 많이 남아있는 날들을 생각하면서 투정 없이 그 손길에 이끌려 침대로 들어갔다.



  성종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마지막으로 얇은 이불을 그의 가슴께까지 끌어올려 덮어 준 성열은 자신도 이불을 덮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암막 커튼 사이로 밝은 태양 빛이 새어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성열은 깊은 잠에서 간신히 깨어날 수 있었다. 매일 선잠의 연속이었던 고달픈 일자리에서의 잠이 아닌 편안한 곳에서 취하는 잠은 그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주었다. 그러나 천천히 제정신이 돌아오고 눈을 뜰 참이 되어서야 돌아가기 시작한 직감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주인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제 옆이 너무나도 허전하다.



  성종과 성열이 한 침대에서 잠을 청할 때면 항상 성종이 편안한 제 형의 품을 찾아 안겨 오곤 했다. 그러나 품에 누군가 안기기는커녕 따듯하고 부드러운 그 살결 하나도 제 몸에 닿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성열은 갑작스러운 두려움이 밀려왔다. 점점 정신은 말짱해지지만, 눈을 뜨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러나 그는 성종이 미리 잠에서 깨어나 화장실에서 씻고 있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떴을 때, 역시나 성종은 그의 곁에 존재하지 않았다.




 "성종아 씻고 있어?"




  깊게 잠긴 목을 긁어 끌어낸 목소리로 외친 성열은 다급하게 침대에서 벗어났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는 아무리 작은 걸음으로 해봤자 열 걸음이 채 안 되는, 아주 짧은 거리였으나, 그에게는 천 리, 만 리 길이나 다름없었다. 마침내 닫혀 있는 문의 문고리를 잡아 돌리며 문을 연 그는 어제부터 빌었던 소원들이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음을 깨달았다. 온몸이 심한 충격에 갈피를 못 잡고 경련하듯 떨려왔다. 이럴 리 없다고 되뇌며 현실을 부정했지만 갖은 인생 풍파에 단단해진 이성은 끊임없이 사실을, 현실을 직시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단단한 이성을 가뿐히 제압한 본능은 성열의 정신을 빼앗았다. 그는 몸을 돌렸다.




 '자네 동생에게 선물해주게. 언제부터 내려온 전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부적 따위라더군.'




  어제 새벽, 일터를 나설 때 그 집의 주인장이 장미 한 송이와 함께 건넨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의 말 대로 성열은 성종에게 그 장미를 선물했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성종은 성인식 시즌을 '무사히' 넘기질 못했다. 성열이 받은 충격은 엄한 사람을 향한 분노로 바뀌었고, 그 분노는 또다시 엄한 곳으로 튀어나갔다. 그는 당장 앞으로 걸어가 장미를 꽂아두었던 화병을 집어들었다. 화병 속에 든 물이 찰랑거리며 튀어 오르다 파열음과 함께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화병 조각을 덮은 채로 바닥에 쓰러진 장미는 성열의 손에 들렸다. 곧장 잎사귀를 뜯을 것처럼 꽃에 손을 뻗었으나 그 손은 정확히 꽃 위에 멈추어졌다.



  성열의 손에 들린 장미는 어젯밤의 붉은 장미가 아닌, 인공적인 칠흑색의 장미였다.




∞∞∞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가 얇은 선을 타고 다니다 마침내 작은 방 안에 울려 퍼질 때였다.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따위엔 전혀 관심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는 듯, 깊고 행복한 잠에 빠져 있던 성종이 불현듯 몸을 파르르 떨며 눈을 떴다. 천천히 눈을 뜨고, 정신을 찾고, 뒤척이다 마침내 몸을 일으키는 일련의 기상 과정을 깡그리 무시한 채, 갑작스러운 기상에 적잖이 놀란 그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긴 세월에 누런 때가 타고 슬슬 벗겨지기 시작한 연 노란빛 벽지, 구석부터 천천히 썩어가던 나무 바닥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광택이 흘러 반짝거리는 고급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방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캡슐형 침대에서야 그가 눈을 뜬 것이었다.




 "으음……."




  성종은 앓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이성이 자신은 더는 그 좁은 방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웃음 짓게 했다. 그는 자신이 그 방 안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너무 심취해 아직은 그가 방에서 벗어난 대신 성열에게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성종을 막고 있던 침대의 유리막이 그의 움직임을 인식하고는 소리 소문 없이 걷혔다. 그는 그것마저도 너무 신기해서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잡아보려 했으나 야속하게도 그의 손을 미끄러지듯 벗어났다. 다시 작동시켜 보려고 침대에 달린 이것저것을 만져보았다.



  그 때였다. 성종은 희미한 신음성을 내뱉으며 깨질 듯이 아파지는 머리를 부여 잡았다. 누군가 도끼 자루를 들고 머리통을 내려치는 듯한 느낌 그 사이로 희미하지만 분명한 영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가만히 흔들림을 더해가는 샹들리에가 힘을 잃고 낙하하는 그 아래 누군가. 그 사람은 샹들리에에 머리를 정통으로 맞고 온 낯을 붉게 칠한 채, 아주 천천히 옆으로 쓰러졌다.




 "으앗!"




  성종은 무서움을 느낄 시간도 없이 황급히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샹들리에는 소리소문없이 침대 위로 낙하했다. 그가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어젯밤 잠들었던 낡고 좁은 단칸방이 아닌 단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던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방 안. 비정상적이었던 기상과 눈앞에 스쳐 지나간 이상한 장면 하나. 그리고 곧장 자신을 노린 듯한 샹들리에.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 정도는 세상 물정 모르는 성종이라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아스라이 스쳐간 죽음 앞에 굴복해 가쁘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조금 진정할 시간이 필요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천천히 심장 박동이 줄어들며 진정되고, 안정을 되찾은 성종은 가슴을 쓸어내린 후에야 자신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던 장면이 생각났다. 말도 안 됐지만, 그 장면이 실제로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기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뚝 끊기더니 경쾌한 알림음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제96회 성인식에 참여하시게 된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이번 성인식의 아나운서를 맡게 된 진, 이라고 합니다. 여러분께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아나운서로서 여러분께 임무 및 주의 사항을 성심성의껏 전해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천장에서 하얀 막이 내려오더니 그 위로 영상이 떠올랐다. 화면 속에는 고운 웃음을 지어 보이는 진의 모습이 있었다. 그녀는 똑바로 앵글을 바라보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먼저 영상 하나를 보시겠습니다."




  진은 허공으로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곧장 화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동영상이었다. 이상한 꽃 모양의 국가 문장이 밝게 빛났다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꼬부랑 글씨로 쓰인 글자가 나타났다가 다시 검은 배경으로, 다시 짹짹거리는 새의 효과음과 함께 공원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풀밭에서 아이들이 서로 뛰어놀고, 그들의 부모는 그들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젊은 연인들은 돗자리 위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행복하게 웃고 있었고, 교복 차림의 학생들은 그 곁을 지나면서 서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전혀 영양가 없어 보이는 장면들이 꽤 오랜 시간 보이고 지루해질 참에서야 상황이 뒤바뀌었다.




-




개학 싫어, 쓰기 차단 싫어! 아니 당연한 걸 말했는데 왜 쓰기 차단인 건데! 데굴데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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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6.206
아ㅠㅠㅠㅠ 1화보고 기다렸는데 안 오셔서 사라지신 줄 알았어요ㅠㅠㅠㅠㅠ 왜 이제 오셨어요ㅠㅠㅠㅠ 2화도 너무 좋아요ㅎㅎㅎㅎㅎ 잘 보고 갑니다! 3화 기다리고 있을게요
8년 전
박레논
개학+쓰기 차단을 연속으로 먹었더니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가 없었어요......ㅠ.ㅠ 앞으로도 열심히 연재할테니 지켜봐주세요ㅇ.ㅇ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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