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서 각자까지 中
*
"한센병이요...?"
"네. 지금 여기 보이는게 나균이에요."
"...."
"정말 젊은나이에 유감이시지만....
지금 생활을 정리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게...이...이게 왜 저한테....의사선생님 저 좀 살려주세요...지금 2016년이잖아요..."
"....죄송합니다. 일단 섬으로 옮겨지기 전까지는 집안에만 계시는 게..."
".....싫어요."
"한달 후에 2차검진이 나올겁니다."
"한달동안 집구석에 처박혀 있으란 말씀이십니까?"
"증상이 심해진다 싶으시면 언제든지 병원에 오셔도 됩니다. 다만 저희가 해줄 수 있는 게 제한적일 뿐이구요."
스물 넷. 꽃다운 나이에 내 삶을 송두리째 뽑아간 놈이 나타났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감염 경로를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이 병. 옮는 병이었다는 게 더 충격이었다.
지난 날들을 되짚어보아도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며칠 전 대학 동기들과 간 농활에서 그랬나, 혹시 양로원 자원봉사를 가서 실수를 했나.
아닌데.. 아닌데....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매듭과 싸우기를 한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아닐거야 아닐거야 수없이 되뇌이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그 와중에도 한밤중에 전화를 건 내가 걱정된 모양인지 네게서 전화가 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
"무슨 일 있어?"
"....꿈에 너가 나왔어. 별일 없나 싶어서."
"응, 난 괜찮아."
쿵.
"너는?"
"...나도."
"그래..... 끊을까?"
"나 이사갈지도 몰라."
"...어디로?"
"......있어. 작은 섬."
"아 그래? 음...아 그렇구나. 그래 그럼."
"저..저기... 오늘..."
"달칵."
과팅은 언제 나가는지
잘 지내는지
오늘 새벽에 많이 춥던데 감기는 안 걸렸는 지
나 없으면 아침밥도 안챙겨먹던 너였는데 아침은 먹었는지.
궁금한게 너무나도 많았지만 넌 꺼내기 무섭게 내 전화를 끊어버리고 만다.
오히려 이런 네 모습이 더 맞는것 같다.
정이 많아서, 따뜻해서, 평화적인 인간관계를 좋아해서 내 사람이면 한없는 사랑과 관심을 쏟아주는 너였지만,
은근 차갑게 맺고 끊는게 강해서 한번 네 눈밖에 넘어가면 일말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너였기에 전화를 오래할 생각은 애시당초 하지 않았다.
병원 앞 붐비는 오후 2시 길거리에서 우는 건 너무 청승맞은 짓이기에 서둘러 눈물을 훔쳤다.
평소와는 달리 싸악 하고 닦기는 손을 봤더니 지문이 모두 까져있었다.
너무 무섭다. 점점 없어지는 내 자신이.
이러다 지우개 닳듯 사라져버릴까봐.
네 기억에 나의 크기는 얼마나 희미해졌을까.
요즘엔 머리도 잘 빗지 않는다. 툭하고 쏟아지는 머리카락을 줍는답시고 허리를 숙이면 그대로 굳어버릴 것만 같아서이다.
조금도 움직이기 귀찮아했던 내가 화장실로 들어가 오랜만에 샤워를 하고 거울을 보며 예쁘게 단장을 했다.
오랜만에 너를 보는 자리인 만큼 더 예쁘게 꾸미고 싶었다.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 처럼.
[너 전화 받고 생각 많이 해 봤어. 그러다가 할 말이 생각났어. 차라도 한잔 마시자.]
[그래.]
내 꼴이 말이 아니게 될 정도까지 가기 전에. 누가봐도 일반사람이라고 생각이 들 때 너의 모습을 내 눈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나도 답장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오랜 고민 끝에 먼저 연락해 준 너가 고마웠다.
고마워. 용기 내 줘서.
*이별 후 첫 대면.
한적한 카페안. 핸드폰만 쳐다보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이리로 오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나는 그가 앉은 테이블로 가 앉았다.
여기 자주 왔었는데 오늘은 왜이리도 어색한지.
"오랜만이네."
"...어어.."
"목소리도 많이 바꼈고. 살도 많이 빠지고."
"...."
"휴학신청도 하고."
"....뭐 그렇게 됐어."
"이사도 가네."
"....."
"스트레스 많이 받았구나. 피부가 푸석푸석해졌어."
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심장에 쾅하고 박혔다.
자꾸만 내 심장을 때리는 너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애꿎은 머그잔을 잡던 손이 덜덜 떨린다.
그런 너는 내 손을 보더니 약간 놀란 모양이다. 눈이 동그래지네.
"손 많이 텄어. 핸드크림 챙겨발라."
"...어 고마워....."
"너 건조한거 싫어했잖아. 이지경이 될 때 까지...하...아니다....하아..."
이미 손, 발에는 별다른 감각이 없다.
그래서 텄는지, 빠져나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건조한 피부에게서 오는 당기는 느낌을 싫어한다. 그래서 항상 핸드크림, 립밤, 미스트는 내 가방에서 없어서는 안 될 물건들이었다.
너는 오랜만에 본 내가 많이 초췌해져 있으니 화가 났나보다. 하지만 그건 연인에 대한 걱정이 아닌 한심함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정도밖에 안되는 여자였냐."
라는 너의 말 속에는 많은 뜻이 포함돼 있다는 걸 나는 아니까. 그럴 나이니까..
머그잔을 들고있던 두 손을 더 꽉 잡고 너에게 말했다.
"너때문에 그런 거 아니니까 닥쳐."
덜컥 겁이 났다.
진심이 아니어서 더 간절히 내뱉은 이 한마디를 네가 못알아차릴까봐, 한편으론 알아낼까봐 무서웠다.
너는 이런 내 말에 상처를 받은건지 아무렇지도 않은건지.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혼잣말을 한다.
"어디 섬에 갇혀서 막노동을 하다 온 것도 아닐테고..."
카페를 빠져나와 데려다 주는 길거리에서 커다란 강아지 한마리가 보였다.
동물을 좋아하는 우리는 너, 나 할거없이 강아지에게 다가가 쓰다듬고, 안았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개가 갑자기 내 손을 크게 한입 물어버린 것이다.
한참을 당황해하고 있는데 주인이 왔고,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연락처를 넘겨 주었다.
내 손에는 강아지의 이빨자국이 선명했다. 불긋불긋 곳곳에서 피가 났지만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안아프니까.
강아지 주인이 준 휴지로 대충 슥슥 닦고는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탁-
"아...아야."
"김여주."
"...아.."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건데..."
갑자기 내 손을 낚아채 매섭게 물어보는 너를 바라보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너의 다리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눈물로 지샌 지난 날들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간 너 없이 외로워 했던 내 모습이 한없이 안쓰러워서 울었다.
한편으론 이런 내 모습을 알아차려준 너가 고마워서 울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일까. 내 모습을 알아봐 준 네가 고마워 펑펑 울었다.
너는 천천히 쪼그려 앉아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우리집에 가. 가서 얘기해."
그렇게 나는 너네 집에 가는 동안에도 정신없이 울기만 했다.
고민도 했다. 사실대로 말을 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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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병 이름이 생소하죠? 문듬ㅍ병...
막장이네요 에헤~~
어제 올렸는데 반응이 없어써 쓰지말까 생각하다가 댓글하나에 놀라서 메모장틀고 썼네요ㅋㅋㅋㅋ댓글써주신분 감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