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일기 01
나는 이 나라의 세자빈이다. 뭐 일단은 그렇다.
15살 때 궁에 들어와 벌써 이 생활도 5년째이다.
그렇지만 내 남편이라는 작자는 늘 밖으로 싸돌아다니기 일쑤였다.
오늘만 해도 탄신연에 늦게 등장한 주제에 제일 먼저 사라져서 주위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나는 뒤늦게 깨닫고 이곳저곳 찾아봤지만 이미 궁을 빠져나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빈궁 밤공기가 찬데 어찌 아직도 밖에 있느냐 안으로 들지 않고.”
“저..전하 어찌 이곳에..”
“바보 아들 녀석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구나.
어찌 이리도 궁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지.”
“아니옵니다. 전하, 전부 소첩이 부족하여 그런 겁니다.”
조금 무거운 마음을 안고 내 처소로 돌아왔다.
이 망할 세자는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야.
“늦었네.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어.”
“에? 너 대체!”
“쉿, 박내관, 한상궁 잠시 물러나 있게.”
“너 여기서 뭐해?”
“뭐가? 세자가 세자빈 처소에 드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내가 지금 장난하는 거 같아? 아까 너 갑자기 사라져서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알아? 어린아이도 아니고 대체 왜 이렇게...!“
“미안미안.”
사람 좋은 웃음을 흘려온다. 어휴 진짜 미운데 내가 아무 말도 못하게.
이 녀석과 내가 알고지낸지 10년, 그 중 5년을 같이 살고 있지만 늘 이런 식이다.
*
학연이랑 처음 만난 건 대군시절 궐 밖에서 살 때였다.
내 아버님께선 학연이의 스승님이셨다.
그러다 자연스레 나와 알게 되고 친해졌다.
사실 원래 처음부터 학연이는 세자가 아니었다.
바로 위에 형님이 한분 계셨는데 지병으로 돌아가신 후
대군이었던 학연이가 세자가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자유롭게 사는 걸 좋아하던 학연이가
세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다.
그리고 꽤나 우리 가문은 전하의 신뢰를 받고 있는 터라
학연이가 세자 책봉을 받으며 나와 혼인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나이가 좀 더 많았더라면
학연이의 형님이신 세자저하의 빈이 되었을 거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다른 사람들은 꽤나 나를 부러워하겠지.
명문가의 사랑받는 막내딸에 훗날 이 나라의 중전이 될 사람.
그렇지만 전혀 난 좋지 않았다.
우선 첫 번째로 차학연은 날 사랑하지 않았다.
내가 입궐한지 5년이 되어가도록 그와 합방을 한 적이 없었다.
전하나 중전마마의 호통으로 내 처소에 오는 날엔 술을 마시며
밤을 새우거나 정말 내 옆에 누워 잠만 자고 갔다.
우린 세자와 세자빈이란 명목 하에 부부로 묶여있지만
그는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지금도 나를 정말 좋은 친구로 보듯 했다.
두 번째로 궁 생활이 난 꽤 힘들었다.
내 나이가 아무리 어리고, 젊다 해도 벌써 입궐한지
5년째인데 원손은 고사하고 우리 둘 사이에 아이가 없는 것을
대신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별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곤 했다.
전하와 중전마마께선 학연이가 내게 마음을 못 붙이는 걸 알고,
날 안쓰럽게 여겨 세자의 후궁을 들이라는 청도 전부 뿌리쳐 주시고
날 오히려 더욱 예뻐해 주셨다.
나도 솔직히 두 분께서 이렇게까지 나를 예뻐해 주시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난 너무 감사했지만 한편으로 죄스러운 마음도 들어
가슴 한편이 무거웠다.
*
“저하.”
“뭐야 갑자기? 여기 우리 둘 밖에 없어.”
“그래 차학연, 나 사랑해?”
“ㅇㅇ아.”
“넌 날 사랑하지 않아. 그렇지?”
“.......”
이 녀석 진짜 대답 못하네.
빈말로라도 사랑한다고 좀 해주지.
그렇다면.
“나 궁을 나갈래.”
"ㅇㅇㅇ !!!”
“몇 년간 짝사랑이라니 너무 잔인하잖아.
나는 네가 좋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이런 생활이 끝없이 이어진다면 난 정말 버틸 수 없을 거야.“
“폐빈 당한 여인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몰라서 그래?
나 때문에 그런 거라면 안 그럴게.
다만 나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더니 이내 한 손으로 내 볼을 쓰다듬는다.
사실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내 마음을 알면서 그러는 학연이에게 속이 상해 한 말이었는데.
“내가 잘못했어. 그런 말 하지 마.”
너가 그런 표정 지으면 난 어떡하라고....
안녕하세요 엘레나입니다ㅎㅎ 여기서 글을 처음 쓰다보니 분량이 많은지 적은지도 잘 모르겠네요.
좀 적은 거 같은데 다음화엔 좀 더 많은 분량으로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