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블라인드 테스트 카페테리아를 떠나 문준휘와 같은 침대에 누웠다. 이성이긴 하여도 서로에게 감정이 없는 이상 불필요한 체력 소비는 없다. 침대에 누워 서로에게 등을 돌린채 눈을 감았다. 사실 잠이 쏟아진다. 오늘 하루는 정말 고달팠다. 내일이 정식 경기가 이루어지는 첫 날이라는 것부터 막막했지만 내일도 살아남을 것이다. 아침이 밝았다. 익숙치 않은 잠자리에 쉽게 눈이 떠졌다. 문준휘는 피곤했는지 옆에서 아직도 자고 있었다. 그런 그를 나중에 깨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거실로 나갔다. 숙소의 텔레버전 전원을 키면 영상이 흘러나왔다. 어제 모든 구역의 아이들에 대한 영상인 게 분명했다. 텔레버전 너머로 문구들이 떴다. [제1 일. 모든 참가자 분들은 숙소의 지하로 모여 주세요. 꼭 파트너 즉 룸메이트와 함께여야만 합니다.] 문준휘를 깨우러 침실로 향했다. 문준휘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 하는 것인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어떻게 깨울 수가 없어 살며시 흔들었다. 문준휘는 눈을 살며시 뜨곤 나를 불쾌하다는 듯 바라봤다. "손 안 치워?" "아, 응. 미안." 손 안 치워? 날카롭게 건네어진 그의 목소리에 대답하며 손을 떼어냈다. 미안. 끝에 흐리며 말 한 사과 소리에 문준휘는 나의 모습을 보곤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마, 텔레버전에서 지하로 모이라고 했겠지. 맞아. 서로에게 전혀가 득도 해도 아닌 선에서 우린 움직였다. 파트너 지참은 당연했으니까. 지하로 가는 길은 어두컴컴했다. 내려 갈 수록 습하고 진득한 공기가 불쾌하게 만들었다. 담배 연기와 오래된 지하 냄새는 정말이지 역겨웠다. 지하는 가히 엄청나게 넓다고 말 할 수 있었다. 하나 둘 모여있는 지하는 끈적였고 습했다. 불쾌지수가 하나 씩 올라갔다.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김민규와 권순영 그리고 그의 파트너 이찬과 권순영의 파트너. 문준휘는 아무렇지 않게 권순영을 향해 걸었다.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아 더욱 더 공허했던 시선은 권순영을 향했다. 권순영은 문준휘를 발견하고 못 볼 것을 봤다는듯이 표정을 굳혔다. 문준휘는 그런 그를 비웃었다. 그것도 잠시 아무것도 없던 넓은 지하에 높은 단상이 하나 생겼다. 아니 정확히 말 하면 형태가 작은 입자들로 구성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단상에는 붉은 머리의 사내가 웃고 있었다. "다들 안녕." 여유로운 미소와 깔보는 듯한 그의 시선. 모든 참가자들은 느꼈을 것이다. 끈적이는 시선이 나를 따라왔다. 붉은 사내는 빨간 입술을 내보이며 웃었다. 안녕, 미소가 예쁜 소녀. 마이크에 대고 나를 향해 말 하는 것이 분명했다. 지하에는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그 때문에 시선이 집중 되었다 바로 흩어졌다. 짜증이 난다. 목 구멍으로 넘기는 침을 느꼈다. 붉은 사내는 모든 참가들에게 하나 하나 끈적이는 시선을 내던지며 무례한 말들을 서슴없이 던졌다. "대충 다들 모인 것 같으니 이제 이번 경기에 대해 설명할게요. 그냥 뭐 니네들 끼리 죽이라고 하면 반발이 너무 심할 것 같아서 첫 번째 룰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여러 분들은 경기를 진행하게 되겠네요." 보디 체크는? 아무런 준비 사항없이 진행되는 경기에 리스크가 너무 많았다. 경기가 장난인가. 그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이 쇄도했다. 붉은 머리의 사내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헤에. 다들 당황하셨네요. 일단 경기 규칙부터 설명해 드리죠. 아, 이번 경기 이름은! 이름하야 '블라인드 테스트' 입니다. 경기의 규칙은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 한 조를 이루게 됩니다. 당신들이 살해를 할 사람들은 '분명 다른 숙소에 사는 한 조' 입니다. 같은 건물에 사는 조는 죽일 수 없습니다. 보디체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경기는 모두 블라인드 형식으로 이루어지겠네요. 아, 이번 경기에는 크라운과 왕좌가 없습니다. 곧 천장의 텔레버전으로 숙소의 정보가 뜰 것입니다. 그럼 이정도면 게임 설명이 되었나요? 여러분 모두 행운을 빕니다!" 붉은 머리의 사내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구경을 하겠다는 자세를 잡고 날아 다녔다.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곳에서 어떻게 경기를 치루라는 것인지. 문준휘는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아마, 이리로 오라는 뜻인 것 같았다. 아무렴. 그의 손을 잡았다. 습한 지하의 공기는 눅눅했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던 침들이 위액과 만나 부글부글 거린다. 나는 일반인이다. 문준휘는 과연 '그들'을 어떤 방식으로 죽일까. "꺄아악!" 첫 타자는 김민규였다. 여자끼리 있던 조를 한 순간에 죽인 것은. 그의 능력은 '폭환'인 것만 같았다. 그의 매서운 눈이 여자를 향했고 여자는 손도 쓸 수없이 가루처럼 흩어졌다. 김민규의 손에서 잿가루가 휘날린다. 문준휘는 그런 잿가루를 보다가 다른 먹잇감을 찾는 듯해 보였다. 권순영을 노리는 듯했지만, 그의 뒤에 있는 금발 서양 소년이었다. 문준휘는 손가락 끝에서 스파크를 내뿜더니 그를 향해 쏘았다. 소년은 쓰러지며 눈을 감았다. 살 타는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 것 같았다. 그는 아마 '일렉트로닉'. 그와 맞잡은 손이 찌릿했다. 붉은 머리의 사내는 즐겁다는듯이 경기장을 바라봤다. 싱글벙글 짓던 웃음에서 갑자기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바뀐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맞다. 깜박하고 말 안 한게 있는데요. 파트너가 죽으면 끝입니다. 끝이에요. 아마 혼자 남으신 분들은 이번 경기에 참여 자격이 없으니 모두 안전하게 올라가시길 바랍니다. 이미 죽으신 분들은 뭐... 억울하시겠지만 저희는 다시 리바운딩 해 드리지 않습니다." 시체들은 먼지처럼 흩어지다 사라진다. 그들의 절규를 듣자하니 눈이 찌푸려졌다. 문준휘나 김민규나 권순영 그리고 몇의 사람들은 미친듯이 날뛰고 있는 듯 하다. "아, 그리고 이제 한 분만 더 죽으시면 경기가 끝나네요. 매년 점점 죽이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어요. 헤헤. 파트너가 없는 분들 포함 생존자 251 명입니다. 어서 빨리 경기를 끝내고 아침을 먹으러 가자구요!" 붉은 머리의 사내는 마치 우리가 현재 하는 경기가 그저 아침 체조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듯 했다. ※블라인드 테스트_ 대부분 경기 시작 전에 모든 참가자들은 보디체크를 하게 되는데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를 치루게 하는 것이다. 상대의 제대로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크라운 게임에선 이 테스트를 블라인드 테스트라고 불리운다. ※보디 체크_ 일명 '크라운 게임'에서 참가자들의 신체 정보와 능력 유, 무를 가려내는 과정 중에 하나이다. 보디 체크에서 나온 결과는 모두 공개가 되며 경기를 할 때 상대가 서로에게 도움이되는 작용을 할지, 서로에게 해가 될지는 미지수. ※리바운딩_ 리바운더 (죽은 생명체를 한 번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공격형 보다는 수비형으로 많이 쓰는 능력자이다. 자신의 신체는 살릴 수 없다.) 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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