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境界) : 이웃 사이의 경계
W. 도로시
푸르른 나뭇잎이 무성하게 자란 초여름이다. 햇빛은 나뭇잎을 바라보고 나뭇잎은 햇빛의 시선을 받아 더욱 푸르게 빛난다. 한차례 장마가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색빛 주차장 아스팔트는 더욱 진하게 물들어있었다. 대한민국의 빠른 근대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 울퉁불퉁한 아스팔트는 한껏 빗물을 머금어 웅덩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 바깥 상황을 전혀 궁금해 하지도, 신경을 쓰지도 않고 책상 앞에서 수능완성 영어 문제집을 풀어제끼는 나는, 올해 고등학교 3학년, 김도영이다. 뒤에 달린 답지를 보며 뭉툭한 빨간색 색연필로 채점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도영아! 라고 불렀다. 아, 24번 틀렸어. 책을 무참히 덮어버린 도영은 터덜터덜 부엌으로 갔다. 설거지를 하던 엄마는 컵에 거품을 씻어내며 창밖을 내다봤다. 도영아, 우리 층에 누가 이사오나봐.
“그거 때문에 지금 나 부른 거?”
“곧 시루떡 받아먹겠다. 그치?”
“엄마도 참.”
엄마는 농담이라는 듯 작게 웃으며 쉬었다가 하라고 휴식시간을 줬다. 김 여사, 웬일이야. 24시간 동안 공부만 시키던 김 여사 어디로 갔어. 후줄근한 빨간 5부 트레이닝 바지 위로 엉덩이를 긁던 도영은 결국 등짝을 맞았다. 아, 아파! 도영은 그러면서도 베실베실 웃으며 소파 위로 풀썩 앉았다.
“누군지 궁금하긴 하다. 여자일까?”
“여자 친구한테 차인 거 티내니?”
“아 엄마.”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돌리며 요즘 여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드라마를 찾았다. 사실 도영은 모든 드라마를 섭렵하는 드라마 광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드라마에 나오는 ‘남주’를 좋아한다. ‘서브남주’도 예외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사실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드라마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도영이 게이는 아니었다. 그니까,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드라마 캐릭터를 닮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이거 놔요. 널 사랑해. 이것 좀 ㄴ, 읍! 뚜루루루루~ 여주와 남주가 키스하는 장면에서 OST가 울려 퍼졌다. 어, 여기서 하네. 아, 놓쳤어. 도영은 다시 채널을 돌려 다른 드라마를 찾았다. 이거다, 현대판 신데렐라 드라마. 이 드라마는 16부작으로 현재 12화를 방영 중이었다. 가난한 동네에서 부잣집 애들만 다니는 학교로 전학 온 가난한 여고생과 구준표 뺨때리는 부잣집 아들램 남고생의 이야기. 여주는 남주에게 지금 헤어지자고 얘기했고, 남주는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가는 여주의 팔목을 붙잡는다. 동시에 도영은 작년의 기억의 나락으로 빠져들어갔다.
“헤어지자.”
똑같이 푸르른 나뭇잎이 흩날리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장마가 아직 오지 않아 햇님께서 열불이 났는지 한창 뜨겁디 뜨거웠던 날이었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주륵 흐르는 그런 날 말이다. 그렇게 불쾌지수가 만땅인 그날, 그날 도영은 차였다. 어이없어. 도영은 햇빛에 제대로 뜨지 못하는 눈을 찡그리며 왜냐고도 묻지 못했다. 땀이 흘러서 더욱 짜증이 났다. 아니 왜 헤어지자는 얘기를 굳이 시원한 학교 놔두고 운동장에서 하느냔 말이야. 도영은 손차양을 만들었다.
“너는 너무 무드도 없고, 남자답지도 않고, 그냥 너무 개구쟁이야. 너가 상속자들에 나오는 김탄 같았으면 좋겠다고 매일 밤 사발에 물을 뜨고 빌었는데, 넌 변하지 않았어.”
“뭔 개풀 뜯어먹는 소리야 선영아.”
“넌 너무 초딩같아.”
넌 너무 초딩같아. 넌 너무 초딩같아. 넌 너무 초딩같아. 넌……. 으아아아! 도영은 머리를 헤집었다. 땀에 젖은 머릿칼에 손이 젖어들어갔다. 흠칫했는지 선영이는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말이 되지 않는다. 사발에 물 뜨고 매일 밤 빌었다고? 개소리잖아. 고등학교 2학년 여자애가 무슨. 도영은 황당했다. 단지 내가 드라마 남주같지 않아서 그렇다고? 김 뭐? 김 뭐시기? 김탄인지 석탄인지 공포탄인지 방구탄인지, 현실에 있지도 않은 드라마 남자 주인공이랑 달라서 헤어지자고? 머리를 헤집던 도영은 선영을 똑바로 쳐다봤다.
“선영아.”
한 걸음 다가서자 선영은 뒤로 물러났다. ...무섭게 왜이래, 도영아.
“선영아!”
“......?”
도영은 그대로 주저 앉았다.
“엉엉! 선영아! 공선영! 난 너 밖에 없는데!! 김탄인지 방귀탄인지 때문에 헤어지다니 말도 안 되잖아!”
도영은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를 손으로 훔쳐가며 운동장 모래바닥에 주저앉아 살풀이하듯 쾅쾅 내리찍었다. 선영은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휙 돌렸다. 이러니까 초딩같다는 거야. 넌 얼굴만 잘생기면 뭐하니? 너도 드라마 남자주인공 같았으면 정말 인기 많았을 텐데. 공선영은 간다! 라는 말과 함께 햇빛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도영의 여자 친구도 그 이후로 사라졌다. 선영의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도영은 그때서부터 ‘상속자들’로 시작해 예전에 방영했던 ‘꽃보다 남자’까지 섭렵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도영의 워너비는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이 되었고, 그렇게 도영의 꿈도 재벌 2세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꾸쥬어마이걸~ OST와 함께 드라마가 끝났다. 도영은 재빨리 거울 앞에 서서 방금 전 남자주인공 ‘나재민’의 대사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을마믄 돼. 그까짓 것, 돈으로 사겠스어. 고개를 한껏 치켜든 도영은 내심 만족했다. 나도 나재민처럼 되는 걸까. 헤헷.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공선영 때문에 우리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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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후였다. 도영은 그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들 중 하나인 고등학교 3학년, 즉 고쓰리였기 때문에 항상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새벽 1시 반에 집에 오기 일쑤였다. 물론 그 긴 시간동안 풀타임으로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공부를 했다가 핸드폰으로 드라마보다가를 반복했다. 도영의 형은 이미 좋은 대학가고 난 후 군대를 가버렸다. 하지만 도영은 대학에 큰 관심은 없었다. 그냥 오라는 데 가는 거지 뭐. 모든 걸 통달한 듯한 마인드는 엄마의 잔소리를 불러일으켰고 그렇게 강제로 새벽 1시 반에 집으로 출석하는 것이었다. 도영의 엄마는 ‘집은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곳일 뿐, 너의 엉덩이가 닿을 곳은 변기 빼곤 없다’ 라며 도영을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보내고자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도영은 저녁을 먹으러 6시 반에 집에 잠깐 들렀다.
도어락을 풀고 집에 들어가니 고소한 냄새와 고기 냄새가 났다. 아싸 고기. 도영은 신발을 벗어던지고 부엌으로 쫄래쫄래 들어갔다. 엄마! 고기!
식탁 위에는 된장찌개와 불고기와 갖은 나물과 밑반찬, 그리고 흰쌀밥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건 플라스틱 일회용 접시에 놓인 정갈한 정사각형 시루떡이었다.
“엥? 웬 떡이야?”
“아, 이거!”
엄마는 헤실헤실 웃으며 생선을 뒤집던 뒤집개를 두 손으로 꼭 붙잡고 기억 속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얘기를 듣자하니, 5일 전 새로 이사 온 813호가 준 떡이라고 했다. 도영의 기대완 달리 813호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고 했다. 엄마의 말을 들어보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 듯 했다. 숟가락을 들어 된장찌개의 두부를 건져 입에 넣었다. 역시 이거지 이거야. 도영은 해맑게 웃으며 흰쌀밥을 숟가락에 가득 퍼 입에 넣었다. 매번 엄마의 밥상은 이렇게 화려했다. 도영은 항상 밥을 먹으며 자신이 정자들 중 1등을 한 것에 대해 감사히 여겼다. 나말고 다른 정자놈이 난자에 들어갔다면 난 이 맛을 보지 못했을 거야, 하면서.
도영이 반찬을 하나씩 음미하고 있는데 옆에서 엄마가 아직도 뒤집개를 손에 놓지 못한 채 얘기를 이어나갔다.
“어찌나 잘생겼던지. 뉘집 아들인지 참. 진짜 깔끔하니 잘생겼드라고. 진짜 귀티가 흘러넘쳐. 아니 그렇게 귀공자같이 생긴 남자가 어떻게 이런 아파트로 이사 온 거지? 무슨 이유일까? 도영아, 혹시라도 마주치면 꼭 인사하고 친해져. 좋은 사람일 거 같아. 돈도 많아 보이고. 혹시 모르지, 공선영보다 예쁜 여자 친구를,”
“에이씨 엄마 진짜.”
“아무튼 이웃이니까 인사하라구.”
어머 내 정신 좀 봐. 엄마는 화들짝 놀라 황급히 불을 끄고 후라이팬에 늘러 붙은 생선 껍데기를 떼어냈다. 그렇게 잘생긴 건가? 도영은 엄마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다시 눈길을 흰쌀밥에 꽂았다.
그렇게 잘생긴 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 직접 얻을 수 있었다. 독서실 에어컨을 너무 빵빵하게 튼 나머지 감기몸살에 걸려 독서실을 3일 정도 가지 않을 때였다. 아파도 공부하는 아들이에요. 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면 연민을 느끼고 엄마는 내게 드라마와 꿀 같은 휴식시간을 줄 거야, 라는 생각에 도영이 한창 방에서 꼼짝 않고 문제집을 풀어내고 있을 때였다. 도영아! 드디어 장장 5시간 만에 엄마의 부름이 찾아왔다.
“응 엄마~”
“도영아 음식물쓰레기 좀 버리고 와.”
Fail. 도영은 웃으며 등장했다가 바로 얼굴을 찡그렸다. 온몸으로 감기몸살을 표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뭐야, 남자 아이돌 그룹 NCT 127에 윈윈이라는 중국인도 이걸 보고 ‘감기몸살!’ 하고 스피드퀴즈를 맞힐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굳건했다. 소나무인줄.
“엄마는 내가 고3인줄은 알고 있는 거야?!”
“고3이 벼슬이냐?”
하긴.
투덜투덜. 한쪽에 비닐장갑을 야무지게 낀 도영은 슬리퍼를 직직 끌며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이래서 아프든 말든 주말엔 아침 일찍부터 독서실에 처박혀 있어야한다니깐, 깊은 한숨과 동시에 코를 찌르는 음식물쓰레기 냄새에 후각이 유난히 발달한 저 자신을 탓하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가만히 서있자 센서등이 곧 꺼지더니 얼마 안 있어 다시 켜졌다. 응, 지금 가. 내 책상 위에 보고서 올려 놔. 누가 뒤에 서 있었다. 쳐다보려고 했으나 엘리베이터가 8층에 도착했음을 알리며 문을 열었고 타자마자 1층을 누른 도영은 그 자리에서 같이 올라타던 남자를 보았다.
비슷한 듯 좀더 큰 키에 늘씬하게 다져진 몸매, 정갈한 수트에 정갈한 머리. 하얀 피부. 아. 엄마. ‘도영아, 혹시라도 마주치면 꼭 인사하고 친해져.’ 아. 엄마!
“안, 안녕하세요.”
남자는 도영의 인사에 흘깃 쳐다본다. 와 눈빛 봐라. 대박. 진짜 쩐다. 엄마,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했는 지 알 것 같아. 도영이 감탄하고 있을 즈음에 남자는 도영의 손에 들려있는 봉투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 손에 들려있는 것을 뒤로 숨기며 멋쩍은 듯 웃어보였다. 와, 잘생겼네. 엄마가 말한 그 813호로 이사 온 남자구나. 도영은 한창 그를 감상했다. 꾀죄죄한 빨간색 트레이닝 바지가 남자의 정갈한 수트와 비교되어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말을 걸어볼까. 도영은 희미하게 웃었다.
“이사 오셨다고....”
“예.”
후줄근한 차림이던 자신을 탓하며 “잘부탁―,” 하고 인사하려던 그때, “1층입니다.” 하고 엘리베이터가 도영과 남자를 뱉어냈다. 남자는 빠르게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갔다. 주말 저녁에 회사를 가네. 물씬 풍겨온 스킨향에 눈을 꿈뻑였다.
“씹간지다.”
이것은 새로 이사 온 E동 813호, 일명 ‘김동영의 워너비 남주st’ 정재현과 E동 807호 한낱 고쓰리 김도영의 첫 만남이었다.
재현은 아파트 앞에 세워진 은색 SUV 차량에 몸을 실으며 생각했다. 며칠 전 예의상 떡을 돌리며 마주친 807호 아주머니와 닮은, 그렇다면 아들이겠군. 재현은 807호 아주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우리 아들이 고3인데 혹시 대학생이면 공부나 입시 쪽에서 좀 도움을 청해도 될까요? 그땐 잠시 가면을 쓰고 억지 웃음을 지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재현은 대학교를 졸업한지 4년이나 지난 31살이었고 회사에 다니며 아버지에게 경영권을 물려받기 위해 경영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 보는 남자한테 자기 아들을 맡겨달라니, 웃기는 아줌마야. 잔뜩 표정을 일그러뜨렸던 자신이 기억났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까 아들의 인사를 원래 억지로라도 웃어주는 자신의 성격과 다르게 받아주고 싶지 않았다. 손목에 걸린 메탈시계를 보고 서둘러 생각을 접고 재현은 차에 시동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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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용이어서 0포인트구요. 일단 피드백을 보고 연재를 할지 말지 결정할 것 같은데 연재를 하더라도 아마 연말에 할듯 싶어요. 왜냐하면 저는 소설중 도영이와 같은 고3이어서요. 그냥 머릿속으로만 생각해오던 내용을 자소서쓰다가 대충 끄적였어요. 사실 바로 연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고쓰리라..^^
연재를 하게 되더라도 아마 인스티즈에서 할 확률은 적을 수도..? 그렇다고 제가 홈을 파서 거기다 연재하진 않을 것 같아요. 그것까지의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마 인스티즈와 블로그를 동시에 운영하거나, 그렇게 하거나.. 몰라요!! 에잇. 인스티즈는 팬픽보다는 썰이 더 흥행하는 추세라.. 하하 댓글 받아먹고 사는 글쓰니 입장에서는..헤헤..
내용은 807호 드라마 광, 드라마 남주같은 정재현을 워너비로 삼게 되는 19살 밝음이 김도영과 무뚝뚝하고 무관심하고 바른생활하는, 그야말로 드라마 남주 현실판 31살 정재현의 이야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