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숲이 바람에 일렁인다. 빛을 받아 찰랑이던 초록색깔의 나뭇잎들이 부셔질듯 싱그럽다.
어지럽다. 이 곳은 어디일 것일까.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다 나는 다시 누워버렸다. 풀향기가 코를 찔렀다. 이제는 더이상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그저, 이 편안함을 조금 더 느끼고 싶을뿐이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너무 힘든 나날이었다. 이 정도는 나에게 상을 줘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울창한 숲의 나무들을 모두 맞다는 듯이 다시한번 바람에 일렁였다.
곤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 아저씨들에게 잡혀가 뚜드려 맞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진작 죽어있을지도 모른다. 곤을 생각하니 목이 메여왔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곤이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일 밖에 없었다. 고통이 몰려왔다. 나는 고통을 떨쳐내려 몸부림 쳤지만 또 다른 고통이 밀려왔다. 헛구역질이 나왔지만 헛구역질을 하지 않으려 참고 또 참았다. 더이상 비참해지기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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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내 입에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발에 무언가가 박힌 것이다. 신발 없이 뛰쳐나온 터라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신발도 못신고 나왔는데 다른 무언가가 있을리가 없다. 나는 고통을 꾸역꾸역 삼키고 발을 절뚝거리며 길을 마저 걷기 시작했다. 아아, 이제는 배가 고프기 까지 하다. 하지만 밥을 굶는 일은 그 집에 있었을때도 비일비재 했으니 이정도는 참을 수 있다. 아니, 참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이 곳을 벗어나기 위해 꿋꿋이 길을 걷는다.
[밀토니아:슬픔은 없다]
숲의 어둠은 도시의 어둠보다 빨리 찾아왔다. 발은 너덜너덜해지고 앞이 핑 돌기 시작할때즈음, 나는 사람이 다녔던 것 같은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의 기쁨도 잠시뿐. 사람이 다니던 길을 찾았다고 해도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이 산의 끝을 모른다. 그리고 이대로 있다가는 나는 아저씨들에게 발각되어 곤처럼 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날 휩싸안았다.
"살려줘"
배가 너무 고파 말할 힘도 들지 않았고, 잠긴 목을 풀 기력도 남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래, 그냥 이대로 죽자. 희망을 포기하고 싶어졌다. 애초에 희망이란 것이 있었나. 난 그저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인데….
아까 쓰러지듯 모래 위에 앉는 바람에 다리가 쓸렸는지 따끔 거린다. 오늘은 여기서 자자. 나는 몸을 편한 자세로 눕히고 눈을 감았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며 눈을 감았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흐릿한게 잘 보이지 않지만 한 남자가 나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묘한 감정이 일렁였다. 저 남자가 곤이었으면 좋겠다. 소리내어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곤, 남자가 더 당황한듯 어쩔 줄 몰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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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다시 뜨니 다시 싱그러운 바람이 날 반겨줬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느껴지는 타인의 체온에 안도감이 몰려왔다. 남자의 뛰는 심장소리를 들으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드니 남자는 '깼어요?'라며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아, 네"
"아, 저. 이 밑에, 아… 어…, 사는 사람인데 잠깐 산에 왔다가……. 마침 핸드폰도 먹통이고 해서 일단 내려가는 중이에요.
아프죠? 조금만 참아요, 내려가면 금방 구급차 불러드릴게요"
아무것도 묻지도 않았는데도 구구절절 말하는 인상이 참 귀여웠다.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그대로 엎혀 밑에까지 함께 가고 싶었지만, 사정상 구급차는 탈 수 없으니 내려달라고. 감사했다고 남자에게 말을 전했다.
그러자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길을 마저 겄더니 몇분의 정적 끝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구급차를 탈 수 없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다치신 것 같고 밥도 못드신 것 같으니 자기 집으로 우선 가자고 말이다.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참으려 노력 할 수록 목은 뜨거워졌고 앞이 흐릿해졌다. 더 이상 선택권이 없던 나는 긍정도 부정도 못한 채 남자의 등에 엎혀있었고, 남자는 나의 눈물을 묵묵히, 아주 묵묵히 위로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