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은 늦잠을 자고 느즈막히 샤워를 했다. 한 3시쯤 되었을까 오랜만에 걸려온 용국에게서 전화가 왔다. 힘찬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전화를 받았다. "여 빵. 오랜만이다. 국제전화가 아닌걸 보니 한국인가보내?" "방금 일본에서 도착했어. 대현이는 버스킹 다하고 내려간거야?" "노놉. 아직 종업이 집에서 머물고 있어. 큭큭큭 종업이 아주 죽을려고 하더라. 대현이 종업이 치대는데 재미붙인거 같은데 종업이는 진지하게 전에 어색한 대현이가 나았다고 말하는 거 같기도 하고 말이얔ㅋㅋㅋ 얼마나 피곤했으면... 우리가 잠자는 적토마를 깨워버렸어." 그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래저래 나름의 도피 생활을 하던 용국은 다시 여행을 떠났고, 간간히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때마다 멤버들을 만났고, 멤버들은 멤버들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열심히 상황을 헤처나가고 있었다. 대현은 이곳저곡 버스킹을 다니기도 하며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카페도 만들었다. 영재와 종업이는 간간히 그 카페로 채팅을 하며 팬을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럼 나 온 김에 또 한번 모일까?" "그것도 좋지. 다만 모일려면 또 007 저리가라 하는 작전을 세워야 할듯 하니까 내일 모이는 걸로 하자." 이전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용국한에 한정되어 있던 회사들이 이제 각각의 멤버들에게 다 쳐들어 오고, 멤버들은 멤버들대로 도망치는 것에 달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실상 거의 해체라고 생각하는 회사들의 멤버 개인별 러브콜. 그것에 우리를 해체로 보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를 갈라 놓기 위한 회사의 수작일 수도 있다고, 용국은 말했었다. "먼저 개인 계약을 하는 사람을 이 소송을 낸 주동자를 만들어내고 싶은 거겠지. 배후세력이 있다고 포장하거나 우리를 이끈 배신자 한명이 있다고 만들면 여론을 만들기도 편하고 우리를 갈라 놓기도 편하니까. 그들이 제일 불안해 하는 건 아마 우리가 끝까지 같이 있는 걸껄?" 회사에서는 아마 처음에는 몇일도 안갈꺼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얼마 안있어 본인들이 잘못했다고 기어들어 오고나 제풀에 지쳐 와해를 선택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 뭉쳐다녔고, 대현의 버스킹, 카페활동, SNS를 통해 그들이 아직 뭉쳐 있고 건전하다는 것을 보여주자, 이제 불안해 지는 것은 도리어 회사였다. BAP가 해외에서 벌어들여 오던 수입이 끈기는 상황에 다른 아이돌도 번번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BAP의 결속력을 약하게 만들어 한두명이라도 본인들 밑으로 들어오게 하려는 것 같았다. 그 방법중 하나가 다른 기획사랑 개인 계약을 시켜 그 사람에 대한 안좋은 기사들로 도배하는 것이라고. "참 우리 갈라놓을려고 난리다. 그지?" "그러게." 인지도가 높은 용국과 젤로에게는 조건을 좋게해주는 대신 솔로를 내주겠다고 제안한다. 노래를 불르고 싶어 미치는 대현에게는 앨범과 노래환경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 개인계약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거절했다. "이제는 심지어 영재는 증거를 잡았다고 좋아라 카톡왔다. 아마 종업이는 조금만 더 쫓아 다녔다가는 마샬아츠도 배울 기세더라. 건물을 막 뛰어 다녀." 영재는 그것을 역이용해서 협박할 방법이 없을까 진지하게 물어보기도 했고, 종업은 말하는 것을 포기하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느라 왠만한 액션도 다 소화가 가능해 졌다고 한다. 힘찬은 역시 특이한 놈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래도 우리 준홍이가 최고짘ㅋㅋㅋ" 힘찬은 준홍이 스카웃을 거절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절로 웃음이 났다. 순하게 생겼다고 만만하게 보지말자. 젤로, 최준홍이라는 아이는 보살님을 멘토로 삼으며, 찬엄마랑 같이 놀고, 종업의 사차원 세계를 이해하며, 대현의 장난기를 받아내고, 영재의 배신 DNA를 견뎌내며 성장한 엄청난, 5 보모 말만 듣는 자이언트 베이비 이니라. "싫은데요." "형들없으면안할건데요." "혼자는싫은데요.솔로싫어요." "형들이 하지 말라고 했어요." 한마디로 핵단호박을 먹은 막내 1인이 되시겠다. "풉! 그럼 나 오늘 니네집 간다." 용국은 힘찬이 쫑알거리는 동생들의 소식을 흐뭇하게 듣다가 말했다. 당연히 자신의 집에는 기자나 타회사들이 진을 치고 있을 것이 당연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평소라면 당연히 예스를 하던 힘찬이 오늘은 뭔가 조금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 자는 건 상황없는데 나 저녁 8시 부터 일있어서, 니가 오면 난 나가야 될껄?" "8시? 그렇게 늦게?" "응. 어쩌다 보니 말이야." 용국은 좀처럼 밖에 나가지 않는 힘찬에게 잡힌 약속에 갸우뚱했지만, 그냥 알았다고 말하며 잠만 자고 갈께 라고 말했다. 미안해 친구, 그 한마디로 힘찬과 용국의 대화는 끊겼다. *** 용국은 익숙하게 도어락을 헤제하고 힘찬의 집으로 들어갔다. 만약에 내가 없을 때에도 도피장소로 언제든지 애용하라면서 힘찬이 알려준 것이었다. 원래는 지금 힘찬이 집에 있으니 벨을 누르는 게 예의다만, 지금은 예의고 뭐고 걍 빨리 씻고 자고 싶었다. 집안에 들어서니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힘찬이 보였다. "네 회장님. 그러니까.. 히익!" 힘찬은 용국을 보자마자 무슨 잘못이라도 한 사람처럼 기겁했다. 너무 놀랐는지 핸드폰을 떨어트리는 바람에 핸드폰 액정이 살작 금이 간것 같았다. 용국은 허리를 숙여 핸드폰을 주워줄려고 했다. 하지만 힘찬이 더 빨리, 자신의 핸드폰을 체갔다. "야, 적어도 노크는 하고 들어와라." "도어락 비밀번호도 아는 데 무슨... 그나저나 방금 그 전화..." "아아! 시간이 됬네!" 힘찬은 어색하게 용국의 질문을 피하며, 대충 코트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용국의 어깨를 툭툭치며 당부했다. "나 오늘 늦을 테니까 나 없어도 밥 잘챙겨 먹어." "...내가 애냐?" "애보다 못 먹으니까 하는 말이지. 아, 그리고 요 밑에 안쓰는 지하실 작업실로 개조해 놨어. 좀 있다가 애들이 구경하러 올테니까 그렇게 알고, 거기 히터나 에어컨 안되니까 간만에 작업실 봤다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잔소리." "암튼 나 간다." 그렇게 한바탕의 잔소리를 쏟아낸 힘찬은 시계를 보더니 정말 시간이 됬는지 밖으로 뛰어 나갔다. 텅빈 방안에서, 용국은 침대에 풀석 쓰러졌다. "하아..." 여행을 다녀온 몸이 영 뻐근 했다. 쉬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방금 힘찬의 전화가 거슬렸다. 회장님이라... 그녀석이 그렇게 부를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 회장님... 회장님... 용국은 오늘따라 그 단어가 참으로 신경 쓰였다. 그 단어만 계속 되풀이 하면서 30분이라는 시간을 보낼쯤, 격한 딩동소리가 그에게 일어나라 소리쳤다. "형형형! 용~구~기~형! 우리 왔어요~!" "같이 눈사람 만들래~" "야! 겨울 지났거든! 이 더운 날씨에 무슨 눈사람!" "아 형들 주변에서 다 쳐다봐요." 알고 싶지 않아도 반강제적으로 알게된 그들의 정체에 용국은 비비적 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어주자 제집인 마냥 와아아! 하고 들어오는 애들에 용국은 조금 피곤한 아빠 미소를 지었다. 영재과 대현이는 자연스레 힘찬이 정리해 놓은 만화책으로 시선이 향했고, 젤로는 능숙하게 냉장고를 꺼내서 퍼먹는 아이스크림을 찾아 숟가락 4개를 들고 왔다. 종업이는 아예 온돌이 잘드는 땅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었다. "나 없는 사이 여기 아지트가 됬네." 용국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에 대현이 만화책에 코를 박고 중얼거렸다. "힘찬이형 요새 거의 집에 안들어 오거든요. 그래서 거의 우리 도피처로 쓰고 있어요." "...뭐?" 용국의 되물음에 그들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고 보니 요새는 밤에 전화를 하는 경우도 많은 거 같기도 하고." "술도 엄청 자주 마시는 거 같더라." "형도 요새 우리들 처럼 친구 만나러 다니는 거 아니예요?" "..." 용국은 입을 닫고 곰곰히 생각했다. 자신에게는 그런말이 없었는데...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하면, 일이 아니라 그냥 친구를 만나러 간다 했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때, 종업이 고개만 들며 말했다. "찬이형, 나이트에 들어가는 거 봤어요." "나이트? 클럽이 아니라?" 종업의 말에 영재가 되물었다. 이에 대현과 준홍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클럽이랑 나이트의 차이점이 뭔데?" 영재가 대답했다. "흐음... 뭐랄까? 클럽은 내발로 걸어들어가서 춤추고 술먹고 놀다 내발로 집가고 내키면 썸타고 그러는 건데, 나이트는 오갈때 차에 태워주고 춤추는 스테이지보다 룸에서 더 많이놀고 그러는 거야. 나는 나이트가 조금 더 돈이 많이 드는 개념으로 알고 있는 데 우리형 대박이네~" "..." 나이트, 회장님... 용국은 불안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용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동생들에게 말했다. "가자. 힘찬이 미행하러." *** 힘찬은 지금 멤버들의 예상, 종업의 증언이 딱 들어 맞게도 종업이 보았던 그 나이트에서 친구 한명과 같이 술을 마시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꼴에 나이트라고 비싼 양주가 나온다지만, 힘찬의 입맛에는 영 맞지 않았다. "니가 하도 사정해서 만나게는 해준다만... 괜찮겠냐?" "하하하... 시간이 지난 일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힘찬은 요새 여러 술자리를 돌아다니며, 여러 높은 분들에게 회사의 피드백을 막고 있는 중이었다. 평소 잘 알고 지냈던 소신있는 기자들 부터, 돈만 주면 뭐든지 적는 기자들, 그리고 주식 증권가 찌라시 만드는 사람들 부터 아는 지인으로 부터 소개 받은 로펌 변호사까지.그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멤버들에 대한 악의적 소문 만은 퍼틀이지 말아달라는 것.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이유에서 이곳에 온 것이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요새 국악협회 회장님이 국악천재 김힘찬이 쓰래기 같은 음악을 버리고 이쪽으로 돌아올거라는 말을 짓거리고 다닌다고 한다. 소문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 지는 순간 그것은 진실이 된다. 그렇게 되기 전에 담판을 지을려고 온것이었다. 하지만... "그런데 너 정말 생각없냐?" 사실 이 친구 역시도 힘찬의 편은 아니었다. "너가 솔직히 여기서 이렇게 일게 아이돌 취급 받으며 섞을 스케일이냐? 이거야 말로 흔히 말하는 재능낭비야." "...." 그는 힘찬의 앞에 놓여져 있던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내가 답답해서 하는 소리다 야. 막말로 대중가요에서 노래 잘하는 애들, 랩 잘하고 춤 잘추는 애들은 흔해. 금방 잊혀지고 딱히 기억에 남지도 않을 그런 흔한 아이돌 팀 하나일 뿐이야. 너는 그냥 한번 나올까 말까한 국악천재고!" 힘찬은 조용히 텅빈 술잔에 술을 따랐다. "우리들은 부러워 죽겠는 그런 능력을 가진 주제에, 그런 말도 안되는 곳에서 능력을 썩히고 있으니 내가 속이 터지다 못해 천불날 지경이다.예전에는 국악을 알리겠다는 취지도 알고, 그 아이돌도 잘나가니까 돈없이 하는 국악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힘찬의 친구는 국악을 하는 중이었다. 힘찬의 도움으로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어느정도 섭외가 되고 있는 친구로 힘찬을 나름 걱정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그거 돌아온 다는 보장있어? 돌아온다고 해도 예전의 인기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진짜 친구로써 걱정해서 하는 말이다. 이제 국악도 니가 애써준 덕분에 나름 괜찮아 졌어. 게다가 너는 아이돌로써도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으니 오기만 하면 아마 황금길일거다. 니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이미 알려졌고, 그런 상황에서 니가 국악으로 다시 돌아선다 해도 아무도 너 원망안할껄?" 그래서 이런 잔인한 말도 약이러니 하며 쏟아낼 수 있는 것이고. 힘찬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 길이 너의 길이 아니었다 생각하고 돌아와라. 3년이면 충분히 겉돌았잖아. 이제 슬슬 자각이란걸 해야지. 너 솔직히 거기 팀 안에서도 제일 먼저 버려질 패잖아. 노래 비중도 작고..." "한마디만 더 하면 죽여버린다?" 힘찬은 그 말을 끝으로 친구의 목에 과일을 집는 포크를 살작 겨누었다. 그리고 밝게 웃었다. "난 그녀석들을 선택했어. 그것에 후회도 내몫이야.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끝내지 않은 끝까지 알아서 결정하는 친구는 둔적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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