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국가대표 연하남과 연애중
10 : 자기야
w. 스노우베리
.
.
.
"나 지금 서점 가려고"
-저번에 갔다 왔잖아
"저번에 재고 없어서 못 산 거 있었는데 오늘 들어왔대"
-내일 사면 안돼?
"눈치 보여"
정국이와 처음 만났던 3월이 또 다시 돌아왔다. 올림픽 이후에 시간이 되면 무조건 만나 같이 시간을 보냈는데 가끔 주변에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 때문에 우린 그 아지트 카페를 벗어나지를 못했다. 그리고 나서 또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 준비를 위해 선수촌에 돌아갔고 나는 신입생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 그리고 난 자취를 하게되었다. 처음에 정국이에게 자취 소식을 알렸을 때 별로 반가워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내 자취방을 애용 중이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항상 학교를 꼬박꼬박 갔지만 이제는 갈 필요가 없다며 점심시간까지 학교에 있다가 조퇴를 했다. 학교는 정국이가 매일 훈련을 가는 줄 알지만 정작 정국이는 내가 시간이 되면 날마다 찾아왔다.
"근데 이거 사면 다 보기는 해? 저번 것도 엄청 두껍던데"
"일단 사라니깐 사는 거지"
집에 먼저 가 있으라는 말을 듣지 않은 채 결국 정국이는 서점까지 따라왔다. 비밀번호도 다 알면서.
오랜만에 서점에 온 김에 베스트셀러도 훑어보고 책 표지들도 지나가면 보는데 잡지칸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여 지나가려다가 멈춰 섰다.
"정국아"
내가 멈춰 선지도 모른 채 걷고 있던 정국이가 내 부름에 다시 내게 걸어왔다가 내 손에 잡힌 것을 보더니 급하게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아니, 잠시만!
"이거 너잖아, 맞지? 어?"
"아니..니가..왜..여기에?"
시선회피하는 거 보니깐 맞네. 화장에 화자도 모르는 듯한 애가 남자아이돌 처럼 화장을 했길래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머쓱했는지 손에 힘이 풀리길래 그 틈을 타 달려가 잡지를 하나 들고 계산대로 달려갔다. 아차 싶었는지 정국이가 뒤늦게 걸어와 계산대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잡지는 봉투 속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이미 들어가버린 잡지를 보고서는 정국이는 머리를 헝클이며 본 목적이었던 책을 내려놨다.
"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화보도 찍었다. 이거지?"
"아, 아니, 그거 형들도 찍었어"
"근데 왜 나한테 말 안해"
자신이 짐을 든다며 책을 가져가는 데 그랬다가는 잡지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질까 손에 달랑달랑 잡지를 든 채 정국이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오늘 서점을 안 갔으면 평생 몰랐을 거다. 어서 잡지 안에 어떤 사진이 든 게 궁금해져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늘따라 느릿느릿 도어락을 여는 것 같은 정국이를 보며 미리 잡지를 싸고 있는 비닐을 손톱으로 뜯기 시작했다. 그런 날 내려다보며 포기했는지 문을 열고서는 먼저 들어갔다. 히, 뜯었다.
.
.
.
"반갑습니다, 전정국 선수"
"안녕하세요."
"요즘은 어떻게 시간 보내세요?"
"부모님이랑 시간 보내고 코치님도 오랜만에 찾아뵙고 그냥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 다하고 있어요."
-
"쇼트트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건가요?"
"또래 애들보다는 늦게 시작했어요. 우연치 않게 빙상장을 갔는데 난 그냥 링크장을 한 바퀴씩 도는 데 그 친구들은 코너링을 하고 있었죠. 무작정 부모님한테 가서 나도 저런 거 하고싶다고 시켜달라고 했어요. 그 날 이후에 그게 쇼트트랙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수업도 받았는데 하면 할수록 속력이 느는 게 느껴지는데 거기서 쾌감이 오더라고요. 원래 승부욕도 있는 편이라서 누가 앞에 있는 게 싫은데 그 애들보다는 스킬 같은 게 부족하니깐 그냥 무식하게 체력으로 밀어붙여서라도 추월했죠. 그러다가 코치님 먼저 권유를 하시고 본격적으로 쇼트트랙을 시작했어요"
"중간에 그만 두고 싶은 적은 없었나요?"
"주니어 경기에서 시니어 경기로 넘어갈 때 생각이 많아졌어요.
시니어 경기에는 이미 연차가 꽤 된 선수들도 많고 하니 그 사이에서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기대에 부흥할 수 있을까, 등등 그냥 혼자서만 생각했어요."
"남모를 사정이 있었네요. 첫 올림픽 출전이었어요. 이미 국제경기 경험이 있지만 뭔가 다르지 않던가요?"
"아무래도 가장 큰 세계인들의 축제기도 하고 모든 선수들이 제일 고대하는 대회니깐 많이 떨렸어요.
준비는 평소처럼 했고 경기 할 때는 올림픽 경기라고 생각하면 자꾸만 긴장돼서 그냥 지금은 훈련 중이라고 최면을 걸면서 했어요."
"첫 출전에 최고의 성적, 예상하셨나요?"
"절대 예상 못했어요. 쇼트트랙이 이변이 많은 스포츠에요. 언제 미끄러질지 또 누가 뒤에서 잡아와서 같이 뒹굴지 예측을 할 수 없어요.
그래도 딱 파이널 랩 끝내고 들어오면 아 내가 제일 먼저 들어왔구나 이런 느낌은 들어요."
"그래도 개인적으로 경기 플레이 대해 아쉬운 부분이 있나요?"
"항상 아쉽고 왜 그랬을까 하는 부분들은 있어요. 개인적으로 인코스가 제일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위험한 자리싸움은 웬만하면 피하려고 하는 데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몸을 사릴 수가 없으니깐 기회가 보이면 잡아야 하는 데 그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뭔가 확신이 없어서 제대로 치고 못 들어간 게 제일 아쉬워요."
"이번 올림픽에서 많은 부상자가 나왔어요. 전정국 선수는 아직 눈에 띄게 큰 부상은 없는데 이 정도면 쇼트트랙 선수로서 엄청한 행운 아닌가요?"
"그것도 딱 아직일 뿐이지. 앞으로 선수 생활은 많이 남았으니 지켜봐야겠죠. 그래도 지금처럼 부상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선수로서 공백기가 생기는 건 치명적인 거예요. 그래서 부디 부상을 입은 모든 선수들은 빨리 회복했으면 좋겠어요."
"박지민 선수랑 쇼트트랙계 아이돌이라고 불려요, 또 두 분이 친하다고 하시던데 어떤 점에서 잘 맞나요?"
"아이돌은 좀... 저희랑 안 어울리는 거 같은데. 지민형이랑은 선수촌에서 룸메이트에요.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깐 대체적으로 잘 맞는데 훈련 할때가 가장 잘 맞는 거 같아요. 둘 다 될 때까지 하는 스타일이라서 비슷해요. 저번에는 한 번 연습일지를 보는데 시간이 줄어야하는 데 오히려 늘고 있길래 둘이서 심각해져서 새벽에 몰래 모래주머니 2개씩 달고 링크장을 돌았거든요. 근데 다음 날에 발목에 갑작스럽게 무리를 줘버리는 바람에 코치님한테는 말도 못하고 둘 다 끙끙거리면서 훈련 한 적도 있어요. 그땐 그냥 훈련 강도를 높이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그냥 무식했죠 저희가."
-
"토크쇼에서 말씀하셨던 여자친구의 존재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계세요. 그러면 첫 눈에 반한건가요?"
"어..첫눈에인가..? 그건 잘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쇼트트랙만 해서 주변에 쇼트트랙 관련된 분들밖에 없어요. 그래서 코치님이 친구 좀 만들어보라고 학교에 보내셨는데 누나가 딱 처음 만난 사람이었어요. 딱히 누군가랑 사적인 대화도 해본 적 없었는 데 그때 누나를 알게 되면서 저한테는 모든 게 새로웠어요. 그래서 호기심도 생기고 궁금한 것도 생기고 그래서 더 알고 싶고. 왜 사람들이 새로운 것에 관심을 많이 가지잖아요. 그거랑 같은 마음이었던 거 같아요. "
"그럼 그 관심이 딱 좋아한다 뭐 이런 감정으로 바뀌는 계기가 있지 않나요?"
" 그 제가 방송에서 했던 말 때문에 경기 보러 온 것 때문이냐고 댓글에 자신이 경기를 보러 왔어야 한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물론 경기 보러 온 것도 좋죠. 근데 그 날 경기 끝나고 누나가 케이크를 들고 축하를 해줬거든요. 그게 진짜 엉성했어요. 근데 축하 한 번 해주려고 편의점에서 조각 케이크 사서 촛불도 없는 초를 꽂아서 내미는 데 진짜 사랑스러웠어요. 기분이 너무 좋아서 혹시 내가 이런 축하를 좋아하는 건가 싶어서 혼자 밤에 편의점에 가서 조각케이크를 사서 촛불도 꽂아봤는데 그 때 그 기분이 안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내가 누나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구나 했죠"
"여자친구가 정말 특별한 존재이신가 봐요?"
"그렇죠. 솔직히 눈 뜨자마자 새벽훈련하고 아침 먹고 훈련하고 또 훈련만 가득한 생활인데 솔직히 지루하고 지치죠.
딱 그럴 때 숨통 트이게 해주는 게 누나니깐 특별하죠. 또 저한테 모든 게 처음인 사람이니깐 특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1년을 넘게 만났으니 여자친구분은 쇼트트랙 박사시겠어요"
"아니요. 아직도 잘 몰라요. 뭐 인코스, 아웃코스 이런건 아는 것 같던데. 그냥 제일 먼저 결승선 통과하면 1등이라는 것만 잘 알아요."
"정말요? 안 서운하세요?"
"하나도 안 서운해요. 오히려 모르니깐 좋더라고요. 그런 얘기는 코치님이랑만 해도 충분해요."
"여자친구분이 휴식처 같은 존재이신 거 같네요. 그럼 국민들의 기대가 부담으로 많이 느껴지시겠어요?"
"그건 아니에요. 많은 분들이 제게 기대해주시는 것은 오히려 감사한 일이에요. 그냥 저도 사람이니깐 누나 같은 사람이 필요할 뿐이에요."
"여자친구분을 누나라고 부르시나 봐요? 애칭은 따로 없나요? 여자친구분은 어떻게 부르시나요?'"
"딱히 애칭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없어요. 제 주변에 누나라고 부를 사람이 없으니깐 그냥 누나가 애칭 같은 느낌?
누나도 그냥 제 이름 불러요. 제가 이름 불러주는 게 좋다고 했어요. 이렇게 어딜 나가면 다들 저한테 전정국 선수라고 부르시거든요. 조금 딱딱한 느낌 들지 않아요?"
"그럼 저도 정국 군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당연하죠"
"토크쇼에 대한 반응은 보셨나요?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신 반면에 연애를 하다 보면 경기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건 아니에요. 제가 쇼트트랙을 좋아해서 시작하기도 했고 승부욕도 있어서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도 했는데 지금은 모든 경기의 동기는 누나예요. 항상 제 경기를 지켜보고 또 끝난 경기를 같이 다시 보는 데 이왕이면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더 열심히 하게 돼요.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괜찮아요."
"만약 3개의 키워드로 전정국 선수를 정의한다면 어떤 키워드일까요?"
"쇼트트랙, 국가대표, 누나"
.
.
.
인터뷰까지 마저 읽고 잡지를 덮고 표지에 있는 정국이를 바라봤다. 꽤 색달랐다.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데 정국이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러고보니 애칭도 없고. 정국이 말대로 내 주변에도 날 누나라고 부르는 건 우리 엄마 작은 아들밖에 없으니 흔한 호칭이 아니라 별 크게 생각지 못했다. 침대에 일어나 난간에 기대 내려다보자 바로 아래에는 이어폰을 끼고 작은 소파에 겨우 누워 핸드폰 게임에 집중 중인 정국이가 보였다.
"정국아"
"..."
"전정국!"
그제서야 이어폰을 빼고서는 날 올려다봤다. 개구지게 웃자 정국이는 후드 모자를 푹 눌러썼다. 부끄럼 타기는.
이 잡지를 산 모든 얼굴 모르는 사람들도 이 인터뷰를 읽을 텐데 애초에 인터뷰를 할 때는 이정도의 부끄럼을 감당 해야할 각오는 했어야하는 거 아닌가.
"정국아, 우리 애칭 만들까?"
"다 읽었네, 다 읽었어..."
푹 눌러썼던 후드 모자를 다시 벗으며 미간을 찡그렸다.
"귀엽게 꾹아는 어때?"
"그냥 이름 불러"
이제는 해탈했는지 눈을 떠 마주쳐 왔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정국아- 라고 아무나 다정하게 부를 수 있을 것만 같아 꼭 애칭을 만들고 싶어졌다.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애칭을 짓나. 아까 인터뷰하시는 분이 바로 정국군이라고 부르는 걸 읽고 나서는 시간이 더 흐르고 나면 정국아- 라고 아무나 다정하게 부를 수 있을 것만 같아 꼭 애칭을 만들고 싶어졌다. 안 그래도 저번에 본 댓글을 보니 벌써부터 정국아 라며 다정히 불러오는 댓글들은 봤던 게 생각났다.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애칭을 짓나.
"자기야"
아무 대답없이 올려만 보는 정국이의 시선에 민망해져 의미없는 웃음소리를 냈다. 진짜 이름 불러주는 게 제일 마음에 든건지 나름 연인들에게는 흔한 애칭이라 생각해 꺼낸 말이었는데 애꿎은 본인 앞머리만 쓸어넘기는 정국이의 그 애매한 반응에 애칭만들기 프로젝트는 이렇게 접어야겠구나 싶었다.
"이건 좀 그렇지? 우리한테 안 어울리기는 하다..."
"아니"
"자기야, 잘 어울려"
.
.
.
스!노!우!베!리!입!니!다!(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자기소개^^)
다들 즐추, 메리추석 하셨나요? 배탈은 안 나셨겠죠?
왠만하면 파랭이 질문이랑 부농이 질문 수를 맞출려했는데...fail
뭐 하도 이제 fail하다 보니 아무렇지도 않아요!(하하)
그리고 드디어 한 자릿수를 탈출해 10화에 도착했어요! 계속 열심히 달려봅시다.٩(ˊᗜˋ*)و
-
암호닉은 받지 않고 있어요!
(곧 다시 돌아올 거예요! 'Θ' / 암호닉에 관한 건 꼭 최신 화를 확인해주세요!)
-
오늘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๑❛ڡ❛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