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세상이 아름답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나에겐 세상이란 회색빛으로 물들어버린 지독한 연기 같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다. 누군가는 웃음꽃이 번진 얼굴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바삐 걸어가는 반면, 누군가는 외로이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우두커니 제자리에 서있는 사람이 있다. 물론, 나는 많은 부류들 중에 후자에 가깝다. 쉽게 말하자면 외톨이. 처음부터 외톨이였던 건 아니었다. 외모가 출중하신 부모님의 유전자 덕분인지 나 또한 어느 정도 갖춘 외모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겉모습만 보고 치근덕대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었고. 그런 가식적인 사람들이 더러웠다. 그래서 철저하게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영역을 침범하려 하면 숨겨둔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며 그들에게 작은 생채기라도 남겨야 직성에 풀렸다. 그러는 내 행동에 미친놈이라 소문이 났는지 나에겐 더 이상 친구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고 스스로를 외톨이로 만들었다. 먼저 벽을 세우고 그 안에 나 자신을 가둔 건 나인데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그 어디에도 내 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잘 다녀오라는 엄마의 말에 고개 몇 번 끄덕여 주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왔다. 이른 등교 시간이라 그런가 지저귀는 새들과 간간이 들리는 차소리를 제외하면 꽤 조용했다. 아무도 없는 등굣길조차 보이지 않는 나만의 울타리를 만들며 걷는 나에게 어떤 한 남자가 다가왔다. 우리 학교 학생인지 나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그 남자가 꽤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저... 혹시 성수남고 학생이세요?" 낯선 이의 물음은 내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게 만들었다.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체 자신을 쳐다보는 내가 꽤 부담스러웠는지 자신의 목덜미를 연신 쓸어내리는 남자였다. "전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오늘 성수남고로 전학을 가게 되었어요. 근데 몇 분 째 찾아도 학교가 보이지 않길래... 혹시 괜찮으시다면 학교까지 같이 가도 될까요?"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제멋대로 나만의 벽을 깨부수려 했다. 순간 오작동해 버리는 내 심장에 잠시 인상을 찌푸리다 주인의 허락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저 남자에게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윤정한 네가 진짜 미쳤구나.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적이 손에 꼽히는 나인데 어째 낯선 저 사람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덥석 내밀었는지. 가방끈을 손에 꽉 쥐고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기면 어느샌가 그 남자가 옆에 와서 나란히 걸음을 맞춰 걷는다.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걷는 남자와 말 한 마디 주고받지 않으며 학교에 도착했다. 교문 앞에 서서 입을 떡 벌리고 멍청하게 학교를 쳐다보는 그 남자를 두고 재빠르게 교문을 통과하여 교실로 올라가려 했다. 유리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는 순간 누군가 나를 돌려세웠다. "천사님 덕분에 여기까지 잘 왔어요, 감사합니다. 아, 제 이름은 홍지수예요. 이름이... 아 윤정한... 다음에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한님. 제 이름 꼭 기억해 줘요!" 나에게 인사를 전하려 뛰어왔는지 잠깐 숨을 고르고 얘기하는 그 남자였다. 자신의 이름을 얘기해 주며 내 오른쪽에 달려있는 명찰을 흘끗 보더니 내 이름을 외우려고 입으로 되새기는 그였다. 홍지수... 저 사람이라면 내 마음을 열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정말 미친 생각이지만. 나는 젖살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홍지수에 첫 만남처럼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교실로 올라갔다. 저 남자가 같은 반이 되었으면 하는 부푼 마음을 가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