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아, 일어나..출근해.."
알람은 계속 울리는데 꺼지지 않는 소리에 내가 잠에서 깼어. 아니나 다를까, 백현이는 알람소리가 울리는지도 모르고 베게에 얼굴을 박은 채 쿨쿨 자고 있었지. 이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아침에 내가 백현이 등을 문지르며 일어나라 말했지만 미동도 없었어.
"야, 변백현.."
어제 이브닝을 하고 들어온 나도 잠이 부족한 건 매한가지였기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더듬더듬 백현이 등을 짚어 머리로 올라갔어. 보드라운 머리결이 손에 잡히고 그 사이에 손을 집어넣어 가볍게 문질렀지.
"일어나, 스팸 구워줄게.."
피곤한 백현이를 위해 비장의 무기까지 꺼냈지만 색색거리는 숨소리만 들릴 뿐 꿈쩍도 안해. 그래서 난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움직여 백현이 눈으로 다가갔어. 그리고 속눈썹이 손가락에 만져지고, 손으로 백현이 눈을 잡아 벌렸지.
"..흐흐,자기야.."
결국 백현이가 웃음을 터뜨리며 입꼬리를 부드럽게 감아 올렸어. 눈을 감고 있어도 눈에 뻔히 보이는 비디오처럼 백현이 얼굴이 그려지자 나도 눈을 떴어. 나와 눈이 마주친 백현이는 두팔을 쫙 펴보였고 나는 그 속으로 파고들었지. 따뜻한 품에서 얼굴을 몇 번 비비적거리다 얼굴을 빼꼼 내밀어 시계를 보곤 깜짝 놀라 백현이를 밀어냈어.
"늦어, 너 이러다. 좀 놔봐."
"아앙, 왜애.."
"얼른 씻어. 이거 좀 놓구.."
온 힘을 다해 팔을 그러쥐고 있는 백현이를 애써 뿌리치고 침대에서 내려왔어. 백현이도 아쉬운 듯 머리를 몇 번 긁적이다 수건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어.
"빨리 씻어, 늦장부리다가 지각하지 말고."
알았어..출근하기 싫은 듯 잔뜩 늘어진 어깨를 뒤로하고 나는 냉장고에서 스팸을 꺼냈어. 차가운 캔에서 햄을 꺼내고 탁탁 먹기좋은 모양으로 썰어서 후라이팬을 달궈 지글지글 구웠어. 스팸은 정말 우리 둘다 환장하도록 좋아하는 반찬이었어. 이거 하나만 있어도 백현이는 밥 두공기를 뚝딱 비우곤 했는데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아마 한공기도 제대로 먹으려나..
"욱,"
그 순간 역한 기운이 목 끝까지 차오르면서 나는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붙잡았어.
"뭐야,자기이..아침부터어..나 출근해야하는데에.."
샤워커튼 안에 있는 백현이가 애교섞인 목소리로 장난을 걸어왔어. 그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변기만 붙잡고 있는데 물소리가 뚝 끊기고 샤워커튼이 열렸어.
"자기야, 쉬?"
쉬하러 왔냐는 백현이의 말에 헛웃음이 터졌어. 내가 언제 너 샤워하는데 들어와서 볼일 본 적 있냐, 이 자식아.
"왜그래, 왜, 어?"
아니나 다를까 변기를 붙잡고 있는 날 본 백현이는 속옷차림으로 달려와 내 어깨를 붙잡았어.
"나 입덧하나봐, 백현아.."
"뭐? 토했어?
"아니, 속이 미식거려."
"어디봐, 허리 펴고."
내 옆에서 허리를 굽힌 백현이가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어.
"스팸 굽다가 그런거야?"
"응."
"변백현 이 죽일놈의 자식."
백현이가 이를 빠득 갈며 말했고 나는 그 모습에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어.
"변백현보고 콱 죽어버리라할까? 응?"
"아니이, 보고싶으면 어떡해."
"그치? 살려는 둘까?"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빙글빙글 웃던 백현이가 내 머리를 스윽 쓰다듬었어.
"몇 개월 고생할텐데 어떡해. 기다려봐, 밖에 음식냄새 진동할거 아니야."
그러곤 문을 살짝 열고 나간 백현이는 한 손에 마스크를 들고 다시 화장실로 들어왔어.
"이거쓰구..스팸 내가 다 갖다 버렸어."
"뭐? 그걸 왜 버려? 너 먹으라고 한건데.."
"다 탔어. 나 이제 아침 안 먹어."
그 이후로 백현이는 정말 아침을 단 한 번도 먹지 않았어.
ㅡ
"아 변백현 좀!!!!!"
나는 오늘도 문 앞에서 변백현과 엄청난 난투극을 벌이고 있었어.
"아, 안 먹는다고!"
"먹, 우욱, 먹어!!! 좀 먹어!!
헛구역질을 하면서까지 변백현 입에 주먹밥을 들이밀었지만 백현이는 정말 온 힘으로 내 손을 쳐내면서 현관문을 열고 나갔어. 개자식..
"너 점심도 바빠서 못 챙겨 먹잖아, 저녁도 맨날 응급터진다고 못 먹고 수술한다고 못 먹고! 그럼 언제 밥 먹을 건데? 어?"
나도 성급히 신발을 구겨신고 백현이 뒤를 쫓으며 쏘아붙였어. 아무 대꾸없이 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른 백현이는 전방만 응시하고 있었어.
"안 먹으니까 아침마다 그런거 그만 사와. 봤잖아, 진짜 안 먹어."
"쓸데없는 고집 좀 부리지말고, 응?"
"점심이랑 저녁은 내가 알아서 챙겨먹어. 음식냄새만 맡아도 구역질하는 사람 앞에서 아침 꼬박 챙겨먹는 게 말이나 돼?"
"나는 나고, 너는 너지!"
"말도 안되는 소리 마."
아 진짜 말 안 통하는 자식. 차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채우는 와중에도 백현이는 뜻을 굽히지 않았어. 음식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에 심하면 구토까지 하는 날 보며 집에서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었어. 백현이는 아침먹는 게 습관되어 있어서 아침을 못 먹으면 오전 내내 기운을 못차리곤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동안 음식을 입에도 안대고 출근을 한거야. 사실상 병원 출근하면 바빠서 직원식당은 커녕 당직실에서 컵라면이라도 끓여먹으면 잘 먹었다 싶을 정도라 아침이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건강식인데, 이런식으로 단식 선언을 하니 속이 터져 미쳐버릴 지경이었어.
"입덧할 때 억지로 먹으려하면 더 역효과 난대. 억지로 먹지말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문자로 찍어 놔."
"네 위장 걱정이나 해."
"나 오늘 당직이니까 기다리지 말고..물 많이 먹고."
오늘도 잔소리꾼 백현이는 병원으로 가는 내내 잔소리만 퍼부었어. 그렇게 사이좋게 병원까지 도착해 백현이는 뛰다시피 회의실로 올라갔고 나는 병동으로 향했지.
인계를 끝내고 자리에 앉자마자 정신없는 차팅을 끝내고 묵직한 카트를 끌어 액팅 준비를 시작했어. 아무래도 입덧이 심해 밥을 거의 못먹다시피하니까 평소 잘 찔리지도 않는 주사기에 손가락을 찔리질 않나, 이 정신으로 앰플 따다가 손이라도 또 찢어먹는 날엔 그대로 백현이가 내 손 잡아 끌고 당장이라도 휴직서를 내러 갈 것 같아 하나하나 알코올 솜을 덧대어서 정성스럽게 땄어. 덕분에 평소보다 두배는 걸린 듯한 약물 준비를 마치고 서둘러 카트를 끌고 나갔지.
"아버님, 이거 다 드셔야 검사한다니까? 응?"
나가자마자 난관에 부딪혔어.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었지.
"다 먹었어. 이거 봐, 두개만 더 먹으면 되는데."
대장 내시경을 가야하는 할아버지였는데, 내시경 전에 먹는 관장용액을 저번에도 다 먹지 못해서 내시경 취소되고 이번이 2차 내시경인 그런 환자였어. 그래서 내시경실에서도 예민해져있는데 또 정해진 대로 먹지 않고 가루를 타 먹는 물의 양을 줄이시는거야.
"아니, 이 가루도 다 먹어야하고 물도 이 물병 가득 채워서 녹여 마셔야하는 거예요. 저번에도 아버님 마음대로 물 절반에 타먹었다가 검사도 못하고 올라왔잖아요."
"이걸 다 먹으면 배가 터질 것 같은데.."
"그러니까 빨리빨리 먹어야 배출도 빨리되고 배에 공간이 생겨서 또 먹죠. 아버님처럼 천천히 먹으면 더 먹기 힘들다니까?"
"간호사님이 이거 마셔봐..나는 도저히 안 들어가는 것 같아."
"아유, 아버님. 나도 이거 다 해봤어요. 마시는 거 힘들죠, 힘들어도.."
해보지도 않은 대장내시경을 해봤다며 뻥까지 쳐대고 설득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며 커텐이 걷어졌어.
"이택수님-."
여느 때와 같이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는 백현이야.
"어이구, 우리 아버님 오늘은 일찍 일어나셨네, 일찍 일어나니까 예쁜 간호사선생님 얼굴도 보고 좋죠?"
"검사간다고 일찍 일어났지.."
"그러게 말이에요. 검사 내려가야되는데 왜 아직도 약이 이렇게 남았어?"
백현이가 내 손에 들린 가루포를 보며 부드럽게 물었어.
"100미리짜리를 자꾸 50미리에 타서 드시니까..자꾸 검사 캔슬되고 올라오셔."
내 말에 백현이가 인상을 살짝 구겼어. 그것도 잠시, 다시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린 후 직접 포를 뜯어 물병에 쏟아부었어.
"이번에도 이거 안 먹고 버리시고 검사 취소되면 아버님 다른 병원 가셔요."
말투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최후통보를 내린 백현이가 그대로 커텐을 열고 나가서 내 팔을 잡아 끌었어. 할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이번에는 다 먹을 것 같긴 한데..
"내시경실에서 한 소리 들었겠네. 캔슬됐었다며."
"그렇지 뭐..안 먹고 버린 줄 내가 알았나."
"이번에도 캔슬되면 오더란으로 올려."
올리면, 뭐 진짜 다른 병원으로 보내려고 그러냐. 백현이의 말에 의미없이 고개만 끄덕였어.
그 후로 백현이는 수술을 들어간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백현이의 통보덕인지 내시경에 성공하고 돌아온 할아버지를 맞이할 수 있었어.
그 뒤로도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정신없는 하루가 지난 뒤 퇴근하려 옷을 갈아입고 나올 때까지 백현이의 얼굴은 볼 수 없었어.
"오늘 응급실 터졌대요. 꼭 백현쌤 당직인 날만 응급수술 밀려들어가더라."
퇴근하며 병동을 두리번거리는 날 본 다른 선생님께서 넌지시 백현이의 상황에 대해 말해주셨어. 나는 오늘 되게 한가했는데, 백현이는 정말 바빴겠구나 싶었어. 내 다음 근무번은 밀려들어오는 입원환자로 고생하겠다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지.
"아, 밥.."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허한 속을 문지르다 백현이 밥 생각이 났어. 응급수술이 밀려들어왔으면 점심도 못 먹고 저녁도 못 먹을게 뻔했어.
"도시락이나 싸 갈까.."
그래, 결심한 나는 그대로 마트로 향했어. 백현이가 좋아하는 유부초밥거리를 사고, 토마토 주스도 갈아서 가져갈 생각에 싱싱한 토마토도 골라 담았지.
연애할 때 도시락 싸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괜히 연애하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에 들떠 빠른 걸음으로 집까지 도착했어.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 유부초밥 예쁘게 만드느 법도 검색해보고, 맛있게 만드는 비법도 탐색했어. 야채썰 때까지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유부를 꺼내는 순간 밀려오는 미식거림도 마스크까지 쓰고 억지로 참아냈어. 밀려오는 구토감에 손을 놓고 식탁에 앉아 쉬기를 여러 번, 백현이랑 당직 식구들까지 먹을만한 유부초밥을 완성했지. 정말 유별난 백현이 탓에 일주일 내내 주방에서 음식을 해 본 적이 없어 그런지 어색하기까지 했어.
[바빠?]
병원으로 가기 전에 문자를 남겼지만 답은 없었어.
그냥 당직실에 가져다 놓아야겠다 싶어 무작정 병원으로 향했지.
서늘한 바람을 가로질러 도착한 병원 로비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어.
"종인아!"
잔뜩 피곤에 쩔어있는 얼굴에 반갑게 인사하기도 미안할 정도였어.
"어, 선생님. 출근하세요? 뒤에 선배님 오시는데."
"오늘 바빴어?"
"엄청 바빴어요. 정말 무지하게.."
피곤한 듯 어깨를 툭 늘어뜨리는 종인이 뒤로 백현이가 보였어. 응급실에서 나오는 지 마스크를 신경질적으로 벗으며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어.
"..어?"
그러다 나를 본 백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쓰고 있던 안경까지 벗었어. 눈을 몇 번 비비적거리다 나라는 것을 확신했는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웬일이야? 병동도 터졌어?"
"아니, 너 얼굴 볼 수 있나 해서.."
"볼 수 있지, 그럼."
종인이보고 먼저 올라가 있으라는 턱짓을 한 백현이가 내 손을 잡아 후문으로 이끌었어. 후문 쪽에 마련된 작은 정원 벤치에 앉아 백현이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어. 애가 힘이 하나도 없는 게 오늘 얼마나 바빴는지 대충 짐작이 갔지.
"밥은?"
"먹었어."
"뭐 먹었어? 또 컵라면 먹었지?"
"아냐. 식당가서 먹었어."
"오늘 반찬 뭐 나왔는데?"
"..."
말문이 막힌 백현이가 입을 꼭 다물었어. 이 때다 싶어 내가 옆에 놓아두었던 작은 도시락을 백현이 옆에 놓았어.
"이게 뭐야?"
"너 유부초밥 좋아하잖아. 밥 못 먹었을 것 같아서. 토마토도 피곤할 때 좋대서 갈아왔어."
"만들었어?"
내 어깨에 기대고 있던 몸도 일으키고, 왠지 낮게 깔린 목소리에 내가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어.
"집에서 만들었냐고."
점점 더 낮아지는 목소리에 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어.
"..가져가."
급기야 백현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 다급한 마음에 나는 얼른 입을 열었어.
"심심해서 만든거야. 오늘 병동 한가해서 피곤하지도 않았고, 또 그냥 요리해보고싶어서.."
내 말에 백현이가 머리를 휘적이며 나를 쳐다봤어. 그 눈길에 괜히 쪼그라든 나는 백현이 눈을 피해 요리조리 눈동자를 굴렸지.
"너 헛구역질하면서 만든 음식 내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
"하지 말라고 말 했잖아. 고등학교 다닐 때 식도염으로 고생해놓고 또 그럴거야? 죽도 못 넘기면서 자꾸 헛구역질 하다가 식도염 다시 오면 약도 못 먹고 어떡할래?"
백현이는 점점 언성을 높이며 토하듯 말을 뱉어냈어.
"내가 알아서 밥 챙겨먹는다고. 이런 거 만들지 좀 마, 제발."
"..내가 만들었잖아."
"뭐?"
"이미 만들어 왔잖아. 너 밥 못 먹는 거 신경쓰여서 나도 집에 가만히 못 있겠단 말이야. 그래서 그냥 만들어왔으면..그러면 그냥 먹으면 되잖아. 고맙다고 하고 먹으면 되지 넌 말을 꼭 그렇게 해야해?"
"아니, 안 먹을거니까 다시 가지고 가."
백현이의 단호한 말에 내가 입을 꼭 닫았어.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삐져나올 것 같아 입술만 씰룩였어.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먹고 일을 어떻게 해?"
그 와중에도 할 말은 해야겠다 싶어서 회심의 한마디를 꺼냈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너 입덧 그렇게 하면서 음식을 어떻게 해? 일도 그래. 마음 같아서는 나 벌써 너 휴직계 내고 병원에서 끌고 나왔어."
"그러면 내가 뭘 하는데? 너 입장 바꿔 생각해봐. 나 때문에 매일 아침 거르고 오전 내내 맥 빠져서 다니는 너 보는 나는 어떨 것 같아?"
"그럼 일주일 째 과일 한 조각 못 넘기고 구역질만 하는 너 보는 나는?"
그 말에 나도 말문이 막혔어. 백현이 말도 틀린 게 하나 없었으니까.
"그나마 과일은 먹을 수 있을까해서 일주일 내내 과일 안 사간 적이 없어. 나는 그만큼 간절해. 내가 그렇게 간절한데 너는 자꾸 이런 거 만든,"
"그래, 나 이거 만드느라 죽는 줄 알았어. 유부 냄새 역해서 마스크까지 쓰고 만들었는데도 헛구역질만 열번 넘게 한 것 같아. 먹은 게 없어서 위액까지 토하면서 만들었어. 그래도, 그래도 너 먹인다고 끝까지 만들어서 싸들고 왔는데.."
서러움에 울음 한 번 삼킨 후 숨을 고르게 몰아쉬었어.
"..그렇게 왔는데 그냥 좀 맛있게 먹어주면 안돼?"
순간 힘들게 유부냄새 맡아가며 만든 과정이 뇌리에 스쳐지나갔어.
"..갖다버려."
버리라며 일어서는 내 말에 백현이가 급하게 내 팔을 붙잡았어.
"이 딴거 네가 그렇게 먹기 싫으면 먹을 사람 없으니까 버리라고. 사람 기분 이딴 식으로 만들지말고."
잡힌 팔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치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마구 닦으며 뒤돌아 걸었어. 백현이가 급하게 걸어와 다시 팔을 잡아챘어.
"..위액 많이 토했으면 잠깐 들어가서 보호제라도 먹고.."
백현이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어.
"놔, 갈거야."
"아니면..토마토 갈아온 거 입이라도 대 볼래? 너 속 다 상해."
정말 어쩜 이렇게 남자와 여자가 같은 상황에서 초점을 맞추는 포인트가 이렇게도 다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어.
"애초에 네가 피임만 제대로 했어도,"
"..뭐?"
"그래서 아기만 안 생겼어도.."
그랬어도 내가 이렇게 체력적으로 지치는 일도, 너랑 이렇게 감정 상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그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숨차오르는 울음만 뱉어냈어. 내 팔을 꼭 붙잡고 있던 백현이의 손에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앞으로 걸었어.
ㅡ
내 안의 배틀이 살아난다........님들 이제 즐겨요 배틀을..그렇게 해봐요..다들 저처럼 되실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