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 l
w.규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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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아파트에서는 개를 키우면 안 된다는 거다.
새로운 문단을 시작한 지가 벌써 삼십분 째였지만 단촐한 원고에는 조금도 진전이 없었다. 문장으로도 채 완성되지 못한 활자가 도중에 끊겨 빈 페이지 안에 멈춰 있었다. 아까부터 한 곳에 정체되어 있던 검은색 커서가 깜빡, 깜빡 신경질을 돋우는 것 같다. 나는 스트레스성 면발이 머릿속에서 부글부글 익어가는 것을 느끼며 키보드 위로 이마를 박았다. 그러니까, 아파트에서, 개는 안 된다.
아줌마! 그 집 개 좀 갖다 버리세요! 언젠가는 이를 악물고 그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나의 골치 아픈 윗 층 이웃에게. 702호, 내가 언젠가는 빗자루로 천장을 뚫어버리리라 다짐했던 것도 벌써 두 달 전의 일이었다. 그 집 거실 바닥에 내가 쏘아올린 빗자루가 박히는 날에 나는 이삿짐을 나를 생각이었다. 고개를 번쩍 들자 방금까지 이마를 맞대고 있었던 탓에 새겨진 키보드 자국은 손으로 만져보지 않아도 생생히 느껴지고 있었다. 블라인드 하나 없이 깨끗한 베란다 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오늘도 역시나 과자였다. 과자.
“과자 치워!!!!!”
그제야 과자는 쏙 올라갔다. 방금까지도 흔들흔들, 바람을 타고 흔들리던 과자가 모습을 감추고 나서야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야옹. 늘씬이가 울었다. 베란다 문턱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흔들리던 과자를 제 모빌 삼아 발길질하던 고양이 한 마리가. 늘씬이도 사실은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늘에서 뚝, 하고 돈은 떨어지지 않을지 몰라도 고양이는 가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윗집 개새끼 한 마리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한 달 전의 일이었다.
*
돈벌이는 지지리도 안 되는 분야가 딱 적성이라 슬픈 사람이었다. 벌써 3년 차, 아무리 성실하게 원고를 뚝딱 내어 놓아도 돌아오는 것은 쥐꼬리만 한 원고료였으니까. 글을 쓰는 일. 어느 날은 기가 막힐 정도로 말이 풀리지 않아 단 한 글자도 진도를 뺄 수 없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놀라울 정도로 머리가 잘 굴러가 열 페이지가 넘는 원고를 써 내려가도 모자란 나날을 보내기도 한다. 하루하루 컨디션이 월급이며 연봉을 좌우하는 천상 직업. 설령 그게 박봉일지라도 나는 몇 년이고 이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 담배는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하루가 멀다고 뻑뻑 담배를 펴대는 모습에 이성열은 말한다. 너는 아마 제대로 된 집 한 채 사기도 전에 폐암으로 죽을 거야, 인마.
두 달 전 그 날도 분명 닥쳐오는 마감일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겨울에도 안 걸리는 감기까지 입에 달고 후줄근한 추리닝을 목 끝까지 채워 입은 채 슬리퍼를 질질 끌며 아파트 단지 앞으로 나갔던 날이었다. 버리는 게 귀찮아 자꾸만 쌓아두고 쌓아뒀던 음식물쓰레기를 양 손에 되는 대로 들고 있자니 폼이라는 것이 날 리가 만무했다. 어쨌든, 입에는 다 태워가는 꽁초 하나까지 문 채로 마주했었다. 702호 강아지 하나는.
“뭘 봐?”
“…….”
“뭘 보냐고, 아까부터?”
학교에 다녀오는 길이었는지, 학원엘 다녀오는 길이었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녀석은 교복 차림이었다. 건들거리며 이쪽까지 걸어오던 학생 하나가 묘하게 거슬리는 눈을 하고 내 앞에 뚝 멈춰 섰던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 녀석이 가슴팍에 매단 명찰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남우현. 꼭 이성열네 개새끼를 빼닮았던 그 녀석은 입에 물고 있던 막대를 꺼내며 말했었다. 아, 솔직히 처음엔 그게, 담배인 줄로만 알았다.
“형.”
“형?”
“형 어디 살아?”
다짜고짜 녀석은 나의 호구를 조사했다. 건들거리는 몸가짐과는 달리 머리 모양도 단정하고, 교복도 말끔히 갖춰 입은 게 마냥 양아치 같지만은 않아 보였건만 처음 뱉은 인사치레는 더 할 나위 없이 양아치의 단골대사와 꼭 닮아 있었다. 어디 살아? 돈은 좀 있어? 그 뒷말은 꼭 이런 수순으로 이어질 것 같았다. 녀석의 물음에 내가 아무 말도 않고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자, 손에 들었던 막대 사탕을 다시 입 안으로 처넣으며 남우현은 말했다. 물었잖아. 어디 사냐고요. 녀석이 사탕을 우물거리느라 툭 튀어나온 볼따귀가 퍽이나 볼만했다. 그 우스운 행색에 나도 모르게 약간은 비웃음 비슷한 반응을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어디 사는지는 알 바 없고. 언제 봤다고 형이야? 너 나 알아?”
“모르는데.”
“모르는데 얻다 대고 반말이야.”
“근데 알고 싶어. 방금 일어난 머리를 하고 있어도, 추리닝 바지를 걷어 입어도 섹시한 형아는 처음 봤거든. 왠지 형이 백수래도 난 좋을 것 같아. 그러니까 어디 살아?”
내일 당장 무너진대도 이상할 거 없을 정도로 낡은 우리의 장미 아파트. 그러니까 쓰레기 버리는 소각장 앞에서 녀석과 나는 처음 만났다. 남우현은 그저 발목께에서 달랑거리는 바짓단이 귀찮아 걷어 입은 내 추리닝과, 방금 자다 일어나서 엉망으로 엉긴 머리마저 섹시하다고 말했었다. 녀석이 옆구리에 끼고 있었던 스케이트보드가 시멘트 바닥 위로 떨어졌다. 야, 타! 꼭 스포츠카 한 대를 가지고 어떻게든 여자 하나 낚아보려는 제비들과는 영 딴판이었지만, 녀석은 내게 그와 비슷한 대사 하나를 날렸었다. 어디 사는지 말해주기 싫으면 형, 이거나 타러 갈래? 솔직히 조금은 정신이 이상한 녀석인가도 싶었다. 불과 3분 전, 녀석과 나는 처음 만난 이웃 주민 사이에 불과했었으니까.
남우현은 702호. 정확히도 나의 윗 천장에 살고 있었다. 그날부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베란다를 통해 형, 형 하며 불러오는 목소리에 나는 당장이라도 인터폰을 빼 들고 수위실에 냅다 고발하고 싶은 것을 휴화산마냥 꾹꾹 눌러 참고 있었다. 아저씨! 702호에 개새끼 한 마리 키워요! 베란다에서 계속 짖는다고요, 저게. 남우현은 그렇게 두 달 전부터 아주 조금씩, 나도 모르게 옷깃을 젖게 만드는 여우비처럼 천천히 내 일상 속으로 끼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바다나 강은 따로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ㅡ 낚시터는 아주 가까운 곳에 생겼다.
*
없던 환청까지 만들어 낼 정도로 지겹게 형, 형 하고 불러대던 녀석은 어느 날부터인가 베란다 위로 낚싯줄을 드리웠다. 조금만 자기를 무시한다 싶으면 과자나 사탕 따위를 묶은 낚싯줄을 아래로 내려 정신 사납게 흔들어대는 것이었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설마 하는 목소리로 위를 올려다보며 물으면 녀석은 낚싯대를 잡고 흔드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보면 몰라요? 낚시하잖아. 아무것도 없는 허공 위로 미끼를 던져 놓은 그의 낚싯대를 덥석 물 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기가 진짜 바다도 아니고. 나는 옆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올렸었다. 누굴 낚아? 설마 나? 남우현은 당연하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에 나는 처음 한 두 번은 녀석이 내리는 초콜릿 따위의 미끼를 물어 주었다. 그러면 남우현은 되게 행복한 목소리로 외쳤다. 월척이다!
귀여운 짓도 한 두 번이지. 그것은 결국 짜증을 불러 일으켰다. 다가오는 마감일에, 그렇잖아도 집중은 안 돼 죽겠는데 자꾸만 베란다 밖에서 어른거리는 미끼에 결국은 짜증스러운 감정이 솟구쳤다. 그 뒤로는 녀석의 낚싯줄을 가위로다가 싹둑 잘라버리는 일도 많았다. 그렇게 하면 다시 거둬지는 것도 잠시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낚싯줄이 대롱대롱, 다시 내려오고는 했으니까. 맞대응으로 나는 담배를 피우기로 했다. 일부러 베란다로 나가, 녀석이 내린 낚싯줄 옆에서 보란 듯이 담배를 피웠다. 그러면 그것은 바람을 타고 위로, 또 위로 올라가 남우현에게 닿았다. 간혹 녀석의 켁켁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마음이 꼬셨다.
그렇게 녀석은 낚싯줄을 내려 보내고, 나는 담배연기를 올려 보내기도 어언 2주가량이 흘렀을 때였다. 보온병째로 타 놓은 커피를 흔들거리며 멍하니 베란다를 내다보고 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튼튼한 밧줄 비스무리한 노끈이었다. 꽤나 느린 속도로 슬금슬금, 베란다에 착지하려는 듯 내려오는 노끈 끝에는 말라붙은 페인트 통이 매달려 있었다.
“저게 뭐야….”
당최 모르겠는 상황이었기에, 멍하니 그것을 바라만 보다가 앉은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더듬거리며 난간 위로 안착한 페인트 통이 공중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베란다용 슬리퍼를 질질 끌며 그 앞까지 다다르자 익숙한 녀석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형!
“팔 떨어지겠어. 그거 받아.”
약간 쌀쌀한 바람이 들이쳐, 옷소매를 두 손으로 싹싹 문지르며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거꾸로 뒤집혀 쏙 빼 나온 얼굴이 평소처럼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나는 녀석이 내려 보낸 노끈을 가볍게 잡아 당겼다. 끝에 매달린 페인트 통이 자연스레 내 두 손에 들렸다. 뭐야.
“고양이…?”
조금은 황당한 어투로 혼잣말을 뱉기가 무섭게, 녀석은 잡고 있던 끈을 놓아버렸다. 다시 올려 보낼 새도 없이 졸지에 떠받아버린 페인트 통이 얼떨결에 내 품에 안겼다. 말라붙은 페인트 통 안에 웅크린 주먹만 한 고양이 하나. 잠시 동안 멍하니 그것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홱 쳐들었다.
“너 뭐하는 거야? 길 가다 주웠는데, 엄마가 키우지 말래서 나한테 떠넘기는 거냐?”
“길 가다 주운 건 맞는데, 후자는 틀렸어.”
바깥으로 쏙 빠진 얼굴이 천연덕스레 웃고 있었다. 그럼 뭐냐는 듯 턱짓을 하자 남우현은 질리도록 웃었다.
“주고 싶어서 주는 거야. 형은 거의 매일 집에만 있으니까 친구 하라고. 아닌 척 해도 하루에 반나절은 베란다만 쳐다보고 있는 거 나도 다 알아.”
“뭐?”
“나 학교 가 있을 때에는 놀아 줄 사람도 없잖아. 나 돌아올 때까지는 그거랑 놀고 있어.”
알았지? 아래를 내려다보느라, 바깥에서 부는 바람에 녀석의 앞머리가 간간히 흔들리고 있었다. 얼결에 떠안은 페인트 통 안에서 작게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넋이 빠진 와중에도 귓가에 들려왔다. 내가 얼른 대답을 않자 남우현은 제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만들어 보였다. 오케이? 알아들었냐고, 녀석은 내게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딱히 대답을 않았다. 녀석의 머리통이 다시 쑥 들어가고, 쌀쌀한 베란다에 멍청히 서서 한참동안이나 품에 안긴 페인트 통을 내려다보았다. 주먹 두 개를 겨우 붙여놓으면 이 정도나 되려나. 어쨌든 그만큼이나 작았던 고양이가 나만큼이나 어리둥절한 눈을 하고서는 새로운 주인과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딱딱하게 말라붙은 페인트 가루가 자꾸만 손에서 묻어나고 있었다. 일단 페인트 통을 바닥 위로 내려두고 고양이는 꺼냈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던 하얀 털 뭉치는 그렇게 우리 집에 녀석보다 먼저 발을 들였다.
이름은 늘씬이로 지었다. 딱 봐도 작은 게, 이대로만 자라준다면 늘씬하고 잘 빠진 고양이가 될 것 같아서 지레 김칫국 마시듯이 지어 준 이름이 결국은 크나 큰 모순을 불러다 일으키고야 말았다. 여리여리하던 몸에는 점점 살집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크기는 아직 팔뚝만큼도 자라지 않은 게, 먹는 통조림이 죄다 배로만 가는 것인지 옆으로만 오동통하게 자라는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야옹. 내가 이렇게 한심스러운 눈을 하고 저를 보고 있을 때면 늘씬이는 울었다. 저를 보는 눈빛에 담긴 불만 정도는 고양이 특유의 직감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어쨌든 나는 그동안 잘만 지냈다. 남우현의 말마따나, 나는 일주일에 사흘 정도는 집에만 머무르고 있었으며 비록 혼잣말일지라도 나의 말벗이 되어주는 늘씬이에게 밥을 먹이며.
고양이는 살이 찌고, 내가 집에서 말을 하게 되는 횟수는 조금이나마 늘어갔다. 남우현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꼭 녀석만큼이나 살가운 통통한 늘씬이는 내 팔에 얼굴을 부비며 기분 좋게도 울고는 했다.
*
쥐꼬리만 했던 원고료가 이제는 반 토막 난 쥐꼬리만 해졌다.
수입은 적은데, 그에 반비례하듯 내가 손에 들게 되는 담배의 숫자는 늘어갔다. 아 씨발, 이렇게 살아서 뭐해. 아무리 뭣같이 적은 돈이 통장을 스치고 지나갈지라도 평소에는 해본 적도 없는 생각이 복잡한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결국은 궁극에 몰리니까 힘든 줄은 아나 보네, 이 자존심도. 나는 베란다 창문틀에 아무렇게나 매달아 놓았던 헹거를 멀거니 바라보며 담배를 태웠다.
언제쯤이면 이 무명 생활이 끝을 볼까. 눈앞을 흐리며 미지근한 공기 속으로 흩어져가는 담배 연기에 한숨을 섞어 보내며 생각했다. 물론 ‘무명 탈출’이 목적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롯이 내겐 돈이 중했으니까. 결국은 돈이었다. 돈, 돈, 돈. 내가 필요한 돈의 액수만큼이나 내 마음은 비에 젖은 신문지 뭉치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할 때 즈음에는 바람이 불었다. 잔잔이 부는 바람에 너울거리고 있던 빨랫가지 한 두 개가 저들끼리 부딪히더니 기어코 베란다 밖으로 날아가고야 말았다. 아, 씨발! 이제는 입에 붙어버린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리에스 스프링 튕기듯 일어난 후에는 한달음에 난간 앞으로 내달려갔다.
한들한들, 이미 햇볕에 말라 바삭해진 속옷 한 장이 남의 속도 모르고 유유자적하게 아파트 단지 아래로 낙하 중이었다. 속옷은 바람에 저의 몸을 맡기며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여유롭게 내려갔다. 그것의 동선을 따라, 내 눈은 곧장 수위실 아래 근처 풍경을 훑기 시작했다. 속옷이 어디쯤 떨어질 지 봐 두려 바쁘게 굴러가던 내 눈에 검은색 머리통이 눈에 들어왔다. 신발 끈을 묶는 것인지, 무얼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수위실 옆 화단 앞에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에 열심히던 머리통 하나. 바람을 타고 내려가던 속옷이 결국은 그 머리통 위에 사뿐히 안착했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장면이었으며, 외면하지 않고서야 견뎌낼 수 없는 민망함이 치밀었다. 나도 모르게 쩍 입을 벌리고 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제 머리 위로 느껴지는 난데없는 인기척에, 속옷 폭탄을 맞은 이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손에 쥐어 보는 듯 했다. 나는 급기야 눈을 가렸고, 그는 동시에 고개를 들어 내 쪽을 확인했다. 머릿속에서 사이렌이 울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검은 머리통에 가려 보이지 않던 교복이 정확하게도 눈에 띠었다. 저도 일단 황당하기는 했는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 속옷을 쥐고 섰던 그가 고개를 들어 내 쪽을 올려다보았다.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신 건지, 확 찌푸려진 눈이 정확하게도 나와 맞아버리자 가슴 한 구석에 경련이 일듯 따끔하게 민망함이 찾아들었다. 나는 곧바로 난간 아래로 몸을 숙여 돌아앉았다. 아이 씨발, 하필 떨어져도 왜 그…
“형! 이거 형 팬티야?”
관자놀이를 쥐어뜯으며 타일 아래 몸을 돌려 앉자마자 들려오는 목소리에 덜컹, 가슴팍이 흔들렸다. 형! 지겹도록 많이 들어오던 목소리가 조용한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 마치 전세라도 낸 것 마냥 크게 울리고 있었다. 내가 대답을 않자, 약간의 텀을 두고 녀석은 다시 외쳤다. 김!성!규!형!
“팬티 형 꺼야? 갖고 올라갈까? 김성규 형!”
평소에는 그저 형, 형 거리던 새끼가 유난히 나의 풀네임에 힘을 실어 외쳐대고 있었다. 저게 씨발, 분명 고의다. 그러자 머리끝까지 치밀던 민망함이 가시고, 그 자리를 대신해서 짜증기가 밀려왔다. 나는 망연자실해 굽히고 앉았던 무릎을 펴 일어서서 난간 밖을 쏘아보았다. 남우현이 제 머리 위로 내 속옷을 짱짱하게 늘여 보이고 있었다. 매일 올려다보기만 했었지, 이렇게 내려다보는 얼굴은 또 처음이었건만ㅡ 올려 보는 얼굴이랑, 내려 보는 얼굴이랑 둘 다 얄밉기는 매한가지였다.
“대답 안하면 내가 가진다! 내가 주웠으니까 내가 가질거야! 대답해. 형 꺼 맞아?”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는 얼굴을 보자, 당장이라도 녀석의 볼딱지를 마구 늘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무섭도록 솟구쳤다. 야!
“일단 갖!고와….”
일단 대답을 하면서도 쪽팔려, 결국은 말끝이 흐려졌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얼른 얼굴이 보이지 않게끔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남우현의 얼굴은 역시나 또 웃고 있었다. 다시금 관자놀이를 짚으며 자리에 주저앉자, 저 멀리서 내 쪽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늘씬이가 다가와 울었다. 야옹. 그리고 바깥에선, 늘씬이의 원래 주인 녀석이 다시 외쳤다.
“알았어! 김성규 형!”
아파트 단지에서 소리를 치면, 메아리라는 것이 울리기 마련이었다.
*
일단 갖고 올라오라는 말을, 일단 우리 집으로 오라는 말로 알아들은 모양인지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집 문 앞에 도착한 남우현은 쉴 새 없이 문을 두드려 대거나 초인종을 머리가 아플 만큼 눌러대기도 했다. 팬!티! 배달 왔는데요! 온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게끔 소리 높여 외치던 녀석은 지치지도 않는지, 우리 집 문 앞에서 꿈쩍을 않았다. 너 잘 하는 거 있잖아! 그걸로 내려! 결국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녀석에게 대항하고 나서야 남우현은 마지못해 제 집으로 올라온 듯 했다. 그 뒤로 세 시간 째였다. 남우현이 내려 보낸 낚싯줄에 달린 속옷이 흔들흔들 바람을 타고 창밖을 어른거렸다.
“진짜 안 가져가? 지금 세 시간 째야.”
여전히 장난기를 섞은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도 세 시간 째로 접어들었다는 소리였다. 나는 저들끼리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던 예능 프로의 볼륨을 죽였다. 절반 정도 열어놓은 베란다 문 너머로 녀석이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왼쪽 옆구리에 끼고 있던 과자를 파삭, 소리 나게 씹었고, 박자를 맞추듯 낚싯줄 속옷은 흔들흔들 흔들렸다.
“내 목소리 듣고 있는 거 다 알아. 일부러 안 나오고 있는 것도. 방금 텔레비전 소리 줄인 것도 다 알아. 베란다는 좀 추운데, 여기까지 한 번만 나와 주면 안 돼?”
“…….”
“형 속옷이 대따 많아서 필요 없나봐, 이런 거. 그럼 나 진짜 가진다. 하나, 둘…”
아이, 썅! 결국은 소파에 뉘였던 몸을 단박에 일으켜 앉았다. 그냥 대충 난간 안으로 던져 놓으면 될 걸 가지고 결국은 이렇게 성가시게도 군다. 신경질적으로 내려 둔 과자 봉지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컸다. 되게 귀찮은 티를 내려 일부러 발을 쿵쿵거리며 울었다. 베란다 문을 홱 열어젖힘과 동시에 눈앞에서 자꾸만 어른거리던 속옷을 힘주어 낚아챘다. 그 바람에 튕긴 낚싯줄이 크게 일렁였다. 머리 위쪽에서 어! 하는 목소리가 났다.
“이제야 가져가네! 내가 갖는다고 하니까.”
“미친 새끼야, 속옷이 없어? 이거 가져서 뭐하게?”
욕설을 얻어 듣고도 실실거리는 웃음소리는 새어 나왔다. 눈앞에서 대롱거리던 낚싯줄이 돌돌 올라갔다.
“뭐하긴. 보면서 매일 매일 이상한 생각 하려고 그랬지.”
“뭐…?”
예상했던 강도보다 훨씬 더 싸이코틱한 대답에, 어처구니없다는 티를 팍팍 내며 되물었다. 이상한 생각? 너 진심으로 변태 새끼 아니야? 그렇게 묻자 머리 위에서는 다시 천연덕스러운 목소리가 돌아왔다. 왜 변태야? 그 뻔뻔한 목소리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남 괴롭히기 좋아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혹시나가 역시나라고 진짜 변태가 맞는 모양이었다. 종래엔 혀를 차며 다시 거실 안으로 되돌아가려 몸을 돌렸을 때였다. 녀석이 내렸던 낚싯줄 끝의 낚싯바늘이 내 옷깃을 잡아 끈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다시 베란다 위로 발이 묶였다.
“뭐가 이상해. 당연한 거 아닌가? 원래 좋아하는 사람 가지고는 머릿속으로 이런 상상 저런 상상 다 하잖아. 형은 뭐 안 해본 것처럼 사람 이상한 취급 하지 마. 나도 이미 머릿속으로는 형이랑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하고, 이미 갈 데까지 다 갔는데 뭐.”
우리 이미 진도 끝났다. 형.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정말이지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나는 거짓말처럼 타일 위로 발이 묶여 꼼짝도 할 수 없었고, 머릿속에서는 큼지막한 에밀레종이 뎅, 하고 울렸다. 에밀레, 에밀레 하고 종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겹겹이 메아리치며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어놓고 있을 때쯤에서야 입이 풀렸다. 뭐, 너는…
“지랄하고 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 갖고도 그런 상상 안 해. 그리고 누가 날 좋아해, 니가? 놀고 있네. 너 나 언제 봤는데. 꿈속에서 만났냐? 쓰레기 버리러 갔을 때 말고는 그 뒤로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으면서 좋아해? 막말로 우린 진짜 딱 한 번 봤어, 미친놈아.”
“맞아. 한 번 봤어.”
“그래. 한 번 봤다. 변태 새끼야.”
“근데 그게 왜?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어떻게든 가능해. 이 무드 없는 형아야.”
남우현의 목소리는 정말이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뵀다. 쌀쌀한 바람에, 얇게 입은 팔뚝을 살살 문지르려던 내 손이 천천히 느려졌다. 저 멀리 카펫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늘씬이가 되는 대로 하품을 하는 모습이 내게는 늘어진 필름처럼 느리게만 재생되고 있건만ㅡ 남우현의 목소리는 탄산처럼 톡톡히 귓가에 박혀왔다. 의자를 끌어다 앉은 것인지, 위쪽에서 잠깐의 소음이 들려왔다. 남우현은 내게 물었다. 형, 아직 거기 있어?
멀거니 자리에 섰던 나는 괜히 코를 훌쩍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있구나. 남우현이 말했다. 녀석의 목소리가 서늘한 바람을 타고 내려왔다. 있으면 잘 들어, 형.
“내 첫사랑은 그림이었어. 내가 유치원 때 스케치북에 아무렇게나 그렸던 여자앤데, 내가 그려놓고도 너무 예쁜 거야. 그래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걔가 줄곧 내 여자친구였다. 좋아하는 데에 다른 이유 없었어. 예뻤으니까 좋아했지.”
“너 또라인 거 인증하는 중이야?”
“또라이가 아니라는 거 인증하는 중이야. 계속 들어 형.”
“…….”
이번에도 나는 대답 대신 헛기침을 돌려주었다. 잠깐의 정적 후에 녀석의 입은 다시 열렸다.
“두 번째로 좋아한 건 중학교 때였는데, 내 꿈에 딱 한번 나왔던 여자였어. 이번에는 첫사랑 때처럼 예쁘지도 않았는데, 그냥 좋았어. 그래서 거의 한 달간은 걔가 다시 보고 싶어서 죽을 것도 같았고. 그래서, 한 번밖에 본 적 없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게 이상한 일일까 고민도 해봤었어. 그러다가 어느 날은 내 친구들 얘기도 들어봤는데…”
“…….”
“걔네는 셀레나 고메즈 좋아하더라. 우리 형은 소녀시대 좋아해. 알고 보니 나보다 훨씬 더 터무니없는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었어.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들밖에 없다.”
“…….”
“나는 형을 목소리로 매일 만나. 이 정도면 적어도 승산 있는 게임 아닌가? 난 지금까지 첫사랑, 두 번째 사랑하고는 만날 수도 없었어.”
녀석의 웃음소리가, 방금까지 내려와 있던 낚싯줄을 타고서 스멀스멀 내려오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래서, 지금 내 등줄기에는 거짓말처럼 소름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라고. 녀석의 말소리를 듣고 있는 내내 나는 목뒤를 타고 올라오는 이상한 전율에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비록, 녀석이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을 리는 만무했지만 나는 다시 어깨를 내리며 지레 도리질을 쳤었다. 이 간밤에 베란다에서, 좋아한다느니 첫사랑이라느니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소름이 돋는 것이라고. 남우현의 말로 인해 절대 내가 무엇인가에 동요 되어서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이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쌀쌀한 공기 위로 드러난 발가락을 마냥 꼼지락대고 있을 때, 남우현은 다시 말했다.
“이제 와서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지 마. 내가 형 좋아하는 거.”
“…….”
“나 맨날 연애하고 있어. 속옷 떨어트려서 쪽팔려 해도, 이상한 추리닝 바지를 무릎까지 올려 입어도 섹시한 형아랑. 몰랐나?”
25년 길었던 인생이었다.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 하다못해 대학교 신입생 이었을 때에나 바랐던 첫 고백은 정말이지 뜬금없이 코앞으로 뚝 떨어졌다.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서, 혹은 수학여행 때 숙소 뒤에서. 엠티 날 저녁에, 그것도 아니면 조별과제 뒷풀이 자리에서라도…하며, 평범하고 예쁘게 시작되리라 믿었던 고백은 하루아침에 나의 뒷통수를 강타하며 찾아든 셈이었다. 그것도 말이지, 내가 받게 되는 입장이 될 줄도 꿈에도 몰랐다. 당연히 어느 여자에게건 내가 먼저 꺼내게 될 줄로만 알았던 고백은 황당하게도 한 순간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귓가에서 잠시 멀어졌던 에밀레 소리가 가까워졌다. 그것은 이내 곧 둥둥거리는 북소리로 둔갑하기 시작했다.
“첫눈에 반하는 게…”
“…….”
“…너는 가능해?”
“아니. 첫눈에는 안 반했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25년, 짧지는 않았던 인생 끝에 나는 고백을 받았다. 팬티를 돌려받다가, 허름한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서. 그것도 일곱 살이나 어린 데에다가 남자이기까지 한 녀석한테. 신이 있다면 물어보고나 싶었다. 이게 정말 가능하기나 한 일이었는가?
“형 못생겼잖아.”
“…….”
“살다보니 반한거지. 첫눈에는 아니야.”
하지만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느냐의 문제를 떠나서 더욱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어 버린 것은ㅡ 목소리만으로 받은, 완벽하게 이상한 첫 고백에도 나는 떨렸음이라. 어느 누가, 저 좋다는 말을 듣고 태연하게 두 다리를 뻗고 잠에 들 수 있겠는가.
평소 시끄럽던 늘씬이도 잠잠했던 밤이었다. 뚱뚱한 고양이가 캔을 핥아먹느라 까드득거리는 소리만이 좁은 방을 채웠었다. 나는 또륵또륵 떠진 눈을 허여멀건한 천장 위로 고정시켰었다.
모른다. 그림 종이에 반했다느니, 꿈속 묘령의 여인에 마음을 뺏겼다느니 하는 녀석의 말 같은 것은 한 치도 이해할 수 없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다른 것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던 무언가에, 마음이 떨려버린 것은 정말이지 찰나보다 짧은 한 순간 이었다고. 그것을 지난 후에는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이 울었다. 녀석은 그 후로도 매일같이 목소리만으로, 혼자만일지도 모르는 연애를 계속하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막힘없이 줄줄 써내려갔던 원고 끝에 오늘은 또다시 커서가 깜빡거리며 맺혔다. 무얼 써도 도무지 문장이 매끄럽게 완성되지 않아 골치였다. 답답해. 나는 미처 정리하지도 못해 까치집이 졌던 머리를 쥐어뜯으며 엎드렸다. 상한 머리칼이 손바닥 안에서 부스스 흩어졌다. 키보드 위로 볼을 대고 눕자, 진전이 없던 원고 위에 ㅏㅏㅏㅏㅏㅏㅏ나 ㅕㅕㅕㅕㅕㅕㅕㅕ같은 것들이 하염없이 눌리는 것을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다. 여전히 키보드 위에 엎드린 채,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뱃갑을 찾아 뺐다. 낮에 걸려왔던 담당자의 전화가 생생하게도 귓가를 어른거리고 있었으며, 주섬거리며 입에 문 담뱃개비를 잘근잘근 씹다가 라이터도 꺼내 들었다. 아, 소주 먹고 싶다. 늦은 시각이지만 누구라도 불러내 삼겹살이나 곱창에다가 시원한 맥주라도 한 잔 하고 싶어 마음 한 구석이 절절하게 절여지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까 꼭, 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이 답답한 방 안으로부터 나를 불러내줬으면. 빨간 불빛이 막대 끝에 옮겨 붙었다. 아 씨이이발. 돈이 말야, 참 좆같다. 그렇게 하염없이 엎드려 있다가, 눈 밑이 간지러우면 긁고 다리가 저리면 무릎을 두드리길 삼십분 째. 습관적으로 베란다를 향해 있던 눈은 무언가를 발견하자 서서히 뜨였다.
오늘도 하늘에서 과자가 내려온다.
나는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키보드 눌린 자국이 볼 위로 선명하게 찍혀 있대도 상관없었다. 발을 달랑거리느라 벗어 두었던 슬리퍼를 구겨 신고,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베란다로 나와 섰다. 내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허공에서 흔들리던 과자가 크게 파동을 일으켰다. 어! 하며 놀란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왔어? 왜 이렇게 빨리 왔어? 2분밖에 안 걸렸네.”
원래는 삼십분 정도는 흔들어야 나오잖아. 그렇게 기분 좋아 뵈는 웃음소리에 아주 신이 배겨 있었다. 나는 잠자코 녀석이 흔들고 있는 낚싯줄 앞에 걸음을 멈추어 섰다.
“형. 낚시 재미있다.”
나는 녀석이 내린 줄을 내 쪽으로 끌어 왔고, 남우현은 그렇게 말했다.
“두 시간을 기다리고, 세 시간을 기다려야 잡히던 고기가 어느 날은 빨리 잡혀. 그러면 낚시꾼 마음이 어떻게 되게?”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녀석이 미끼로 걸어놓은 과자를 갈고리로부터 풀어내고 있었다. 남우현은 꼭, 어린애처럼 말이 많았다.
“내가 잘하고 있나봐! 이렇게 생각한다. 형, 이거 착각 아니지?”
순간 남우현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 가까워졌다. 나는 과자를 빼내다 말고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난간을 꽉 붙잡고 선 남우현의 웃는 얼굴이 줄곧 나를 내려 보고 있었나보다.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질리도록 웃어주었다.
“오늘 나 월척이다.”
누군가가 내 답답한 속을 먼저 알아차리고 나에게, 술 한 잔이라도 하자며 불러내주는 그런 기적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까맣게 회색칠을 한 아파트단지 속에서, 그저 그런 술 생각으로ㅡ 답답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어린애처럼 일탈을 꿈꾸며 잠식되어가던 나에게 낚싯줄이 내려왔다.
여느 동화속에서 그려내는 것처럼, 그것은 튼튼한 동앗줄도 아니었으며 하늘에서 내려주는 구원의 손길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고작 과자 하나를 매달아 놓은 실 같은 줄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왜 그토록 감정이 동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오랜만에 마주 본 남우현의 웃는 얼굴이, 그 때는 정말로 묘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참동안이나 녀석의 얼굴을 꿈결처럼 올려다보았고 우리의 고양이는 작게 울었다. 통통한 늘씬이가 내 복숭아 뼈에 저의 머리통을 부비며 야옹, 하고 울었으며, 나는 남우현이 내린 낚싯줄을 모빌 삼아 넋을 놓았다.
떨리는 것은 정말로, 한 순간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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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물 어색해.. 조선사람 다 됐나보다=_= p.s 메일링은 신뢰를 기반으로 합니다. 나머지분들 다 미안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