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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식스/윤도운] Happy New Year | 인스티즈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흔한 풍경이라 함은,




" 도운이 니 또 열쇠 안 챙기 나갔나. "


" 엄마가 지각한다꼬 성화길래 막 나와 부려서... "


" 아이고... 드와서 기다리. 배는 안 고프나. "


" 급식 묵어서 괘안아요. "


" 그라도 배고프면 말해리. "


" 네, 고맙심더. "




어린이라 불리는 이하 초등학생 신분의 아이들은 열쇠가 없으면 집에 들어갈 수 없었고, 어른들은 문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 어린 아이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금은 지금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파란색 파워레인저 가방을 메고 집앞 초등학교로 통학하던 도운은 어느새 저에게 제법 잘 어울리는 교복을 입고 있다. 왼쪽 가슴에 박힌 중학교 마크가 마음에 드는지 그의 입가엔 항상 호선이 드리운다.




흐른 시간만큼 달라진 것은 도운의 중학교 입학뿐만이 아니었다. 제집 드나들듯 숱한 시간을 보낸 이웃집은 여러 시도 끝에 득녀를 하였다. 현관에 도어락을 달기 시작한 세대가 많아지며 쇳덩이 열쇠가 필요없어진 도운이었지만, 형제라고는 저 위에 하나 있는 누나뿐이었기에 종종 그 집에 가 저보다 열 살이나 어린 아기를 차마 만지지도 못 하고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동자로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 무슨 아가 이래 이쁘노. '


' 건들믄 터지는 거 아이가... '




아기를 한참동안이나 쳐다보다 집으로 돌아간 날이면 도운은 항상 제 엄마를 붙잡고선,




" 내도 동생 갖고 싶다. "


" 내 진짜 예뻐해 줄 수 있는데. "


" 하나 더 낳을 생각 읎... "




까지 늘어놓으면 도운의 등짝으로 날아오는 손바닥과 헛소리 그만하고 밥 먹을 준비나 하라는 불호령에 비죽 나온 입술로 툴툴대며 식탁에 수저를 놓는다.





" 도운이 니 동생 갖고 싶다 했나. "


" 에? "


" 니 만날 동생 낳아 달라고 노래를 부른다 카대. "




눈동자가 완벽한 원을 만드는 와중에 도운의 귀끝은 붉은 빛을 띄기 시작했다. 엄마는 뭐 그런 말을 하냐며 속으로만 꿍얼댈 찰나에 꽤나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 도운이 니 방학하믄 아 쫌 볼래? "


" 에? 지가요? "


" 내도 인자는 슬슬 돈 벌어야 먹이고 입히지 않겠나. "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니 도운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이웃집 여사님은 잘 부탁한다는 말과 엄마한테 전달해 주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여즉 멍하니 서 있는 도운을 지나쳐갔다.




초등학생의 도운이 중학생이 되는 시간의 흐름에는, 말은 커녕 24 시간을 종일 누워서 먹고, 자고, 싸고, 우는 게 일상이었던 신생아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미운네살이 되었다.




" 도우나. "


" 어엉? 니 지금 내 부른 거가. "




아이가 도운의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 준 날 도운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이 맛에 자녀를 키우는구나 싶었다. 


그 후 아이에게 도운은 오빠가 아닌 도우니가 되었고, 한참이나 어린 동생에게 듣는 제 이름은 썩 기분이 좋았다.





" 하루, 오빠 가는데 인사 안 해 줄 거가. "


" .... "


" 하루야, 내 간디. "


" 가믄 언제 오는데. "


" 자주 오겠다고 약속하께. "


" 도장 찍어라. "


" 복사. 코팅까지 했다. "




드럼을 시작한 도운이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도운과 하루가 붙어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제법 바쁜 일상을 보내는 중인 하루였기에 대수롭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된 도운이 대학에 진학하여 MT며, 조별과제며, 교내 행사 등의 일로 바쁠 때에도 열 살이 된 하루는 사교육의 맛을 보며 제 나름 학업에 열중하는 중이었다. 


도운이 JYP 오디션에 합격했다며 서울 상경을 알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 안녕하심까, 윤도운이라고 합니더. "



낯선 환경에 잔뜩 긴장한 도운은 저를 소개하고는 마른침을 꼴깍 삼켜냈다. 저에게 꽂히는 여덟 개의 눈동자가 퍽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머쓱한지 뒷머리를 긁적이는 도운의 서울 생활은 마냥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드럼만 칠 줄 알면 된다고 해서 글쿠나~ 하고 왔더니 도운이 합류한 팀의 데뷔일은 고작  달 남짓 남겨 놓고 있었다. 덕분에 도운은 밤낮으로 연습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 윤도운, 안 가? "


" 내는 쫌만 더 하고 가께요. "



매번 제일 늦게까지 남아 있던 영현이 땀방울이 맺힌 도운의 어깨를 두어 번 주물러 주고서는 힘 내란 한마디와 들고 있던 하늘보리를 건네고선 퇴근했다.


영현이 건넨 하늘보리를 들이킨 도운은 땀에 살짝 젖은 제 머리를 흔들어 털고는 데뷔곡 음원 파일 재생 버튼을 누르더니 제 허벅지에 놓여 있는 드럼 스틱을 쥔다.




성공적인 데뷔 후 본격적인 연예계 생활에 바빠진 도운만큼 하루의 일상 또한 바쁘게 흘러가고 있었다.


TV로 도운의 데뷔 무대를 실시간으로 감상한 하루는 도운을 따라 서울에 상경할 방법을 물색하였고, 고작 열 살의 어린이가 내린 결론이라 함은,



" 엄마야, 내도 아이돌 할란다. "


" 가스나가 뭐라노. "



심드렁한 엄마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몇 날 며칠을 조르고 졸라 도운이 다니던 음악학원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하루는 곧장 도운의 흔적이 여즉 남아 있는 학원 연습실로 내달렸다. 서울로 올라가던 날 도운이 쥐여 준 드럼 스틱을 쥔 하루가 DAY6의 Congratulations을 재생한다.




도운의 데뷔 후 둘의 시간은 교집합이 없었다. 도운이 내려온 날엔 수학여행을 간 하루가 부재였고, 하루가 서울로 올라간 날엔 무대에 있는 도운만 볼 수 있었다. 


충분히 도운에게 연락할 수 있는 하루였지만 멀찍이서 도운의 무대만 관람하고서 왜인지 씁쓸한 마음으로 부산행 기차를 탑승하곤 했다.




도운의 영향을 받아 초중학교 시절을 드럼으로 보낸 하루는 기어코 도운이 다니던 예술 고등학교에서 합격 통보를 받아냈다. 그제야 당당한 모습으로 도운에게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한 하루는 도운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클릭해 대화창을 띄우고는 한참을 고민하다 교복 입은 사진을 전송했다. 도운의 데뷔 축하 이후 7 년만에 먼저 하는 연락이었다.




[ 내 오빠야 후배 됐다 ]




한참이나 잠잠하던 하루의 휴대폰이 울렸다. 한 번 울리고 마는 진동이 아닌 일정한 세기로 이어지는 진동을 웅웅대는 휴대폰 액정에는 도운의 이름이 떠 있다. 초록색 통화 버튼을 누른채 아무 말 않고 있으니 그의 음성이 들려왔다.




- 여보세요? 이삐야.


" 여보세요... "


- 연락이 하도 없어가 내는 니 디진 줄 알았다.


" 오빠가 내 디진 걸 여태 몰랐겠나. "


- 그건 글치. 그래도 어예 연락 한 번 안 하노.


" 테레비에 나오는 건 많이 봤다. "


- 콘서트도 왔었다매. 연락하지.


" 바빠 보여가 그냥 왔다. "


- 담에는 연락하고 와라. 알긋나.


" 알따. 오빠 니 쪼매 멋있데. "


- 그걸 인제 알았나. ㅋㅋ


" 아, 취소. "


- 미안타.




오랜만에 듣는 서로의 음성에 둘의 입가에 호선이 드리웠다. 




" 윤도운 입 찢어지네. "


" 여자 친구? "


" 에? 아인데요. "




수상쩍단 눈빛을 보내는 형들에 머쓱하게 웃으며 새카만 화면 속 입꼬리가 올라간 저를 발견하는 도운이 하루가 보내온 사진을 띄워 제 옆에 있던 원필에게 내밀어 보인다.




" 뭐야? 너 동생 있었어? "


" 그건 아이고, 내가 업어 키운 안데. "


" 뭔데? 나도 보여 줘. "




그렇게 호기심 가득한 여섯 개의 눈동자가 도운의 휴대폰 액정으로 향한다.




" 누군데? "


" 어릴 때 봐 주던 아. "


" 애도 볼 줄 알아? "


" 윤도운 정신 연령이면 같이 잘 놀았을걸? "


" 뭐라고요? "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영현에 발끈하는 도운과 옆에서 홍홍 웃는 원필이다.




팬데믹 이슈로 촬영을 제외한 모든 활동들을 온라인화 하던 시기였기에 아쉽게도 도운과 하루의 만남은 쉽사리 성사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하루는 새학기 적응으로, 도운은 군입대 전 유닛 활동으로 인해 주어진 24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도운의 그룹이 군백기에 접어들었고, 그 시점이 하루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첫 번째 겨울방학을 맞이한 하루는 도운의 입대 소식을 듣자마자 숱하게 찍어 둔 연습 영상을 도운의 회사 메일함으로 전송했다.


오디션 영상을 보낸 지 한 달이나 지난 것 같은데 소식이 없는 통에 하루의 낯빛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좀 더 어릴 때 했어야 했나, 노래라도 부를걸 그랬나, 여자 드러머는 안 뽑는 건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한편 도운의 회사에서는 하루의 오디션 영상을 켜 둔 채 회의를 거치는 중이었다.




" 페이스도 괜찮고 재능도 있어 보이는데, 밴드팀 꾸릴 인원이 있나요? "


" 저번 애들처럼 처음부터 가르쳐야죠. "


" 댄스 트레이닝이 안 될까요? "


" 악기 하는 애들은 대체로... "




여러 의견이 오가던 끝에 실물 미팅을 해 보기로 결정지은 회사에서 하루의 연락처를 확인했다.






" 엄마, 아빠. 내 간디. "


" 슨생님 말 잘 듣고, 미운 털 안 박히게 조심해라. 알긋나. "


" 알았다. "


" 밥 잘 챙겨 묵고. 돈 필요하믄 연락하고, 엉? "


" 아이, 알따. 거기 밥은 잘 준다 카데. "


" 힘들믄 버티지 말고 바로 내려와리. 알긋나. "




차마 마지막 말에는 대답 않고 씨익 웃어 보이기만 한 하루 저만한 캐리어를 질질 끌고 서울행 기차에 탑승했다.




삐까뻔쩍한 건물을 한 번 올려다본 하루가 쭈뼛거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도운의 군생활과 하루의 연습생 생활이 시작됐다.




앉아서 드럼만 치던 하루였기에 춤에 소질이 없을까 싶었지만 의외로 하루는 댄스 트레이닝을 잘 따라가는 듯했다.


덕분에 댄스팀에 합류하게 된 하루의 소소한 일탈은 모두가 퇴근한 시간 남몰래 밴드 합주실에 들어가 도운이 연습하던 자리에 앉아 드럼을 두드리다 가는 것이었다. 헌데,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라는 말이 있듯 하루의 일탈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여느 때처럼 혼자 남아 드럼을 두드리고 있으면,




" 니 누고. "




익숙한 부산 사투리에 등골이 서늘해져 고개를 돌린 하루와 성진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성진의 얼굴을 확인한 하루가 그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안녕하세요. "


" 어엉. 처음 보는데, 신입이가. "




벌써 7개월이나 연습한 하루였기에 뒤에 들어온 연습생들이 수두룩했지만 뭐든 일 년은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진은 그런 하루를 빤히 쳐다보며 무언갈 생각하는 듯했고, 다소 부담스러운 눈길에 눈동자만 도륵 굴려대고 있으니,




" 니 윤도운 얼라. 걔 맞지. "




성진의 말에 물음표가 천 개쯤 생성된 것 같다. 윤도운 얼라? 그게 뭐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성진의 시선을 마주했다.




" 고등학교 간다던 아 있었는데. "


" 헐. 저를 아세요? "




제법 고등학생다운 질문에 성진이 헛웃음을 쳤다. 화면으로만 보던 도운의 동료가 제 코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심박수가 오르는 느낌인데 웃기까지 한다. 하루는 숨이 막히는 듯했다. 아, 떨려서.




" 도운이가 니 얘기 많이 했다. "


" 욕도 했어요? "


" 먼저 연락하는 법이 읎다고. "


" 아니, 그건... "


" 입대할 때도 연락 읎다더만 여서 이라고 있네. "




하루의 사고회로가 잠시 멈췄다. 어떻게든 이 사람의 입을 막아야 한다. 자신이 연습생 신분이 되었다는 것을, 그것도 도운의 회사에 입사했다는 것을 데뷔 이전에는 절대 알리고 싶지 않았다. 




" 있잖아요... "


" 엉? "


" 진짜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요. 도운이 오빠한데 저 여기서 본 거 비밀로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데뷔하고 나서 서프라이즈하려고 그랬는데... 그래서 오빠들 군대 가 있을 때 입사한 건데... 그런데... 이렇게 뵙게 될 줄 몰랐어요. "




뭐가 그리 급한지 말이 많아진 하루를 보던 성진이 박장대소를 했다.




" 윤도운이 때문에 여 왔다고? "


" 그게... 합격할 줄 몰랐어요. "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린 성진이 알겠다며 하루의 머리 위에 손을 턱 얹는다.






연습생 하루와 비활동기인 성진의 사내 마주침은 잦았고, 그럴 때마다 하루는 성진을 붙잡고 비밀 유지 중이냐며 울상을 지었다. 그럴 때마다 성진은 내 못 믿냐며 킥킥 웃기만 했다.




하루의 입단속 대상은 성진 한 명으로 그치지 않았다. 전역 후 솔로 앨범 작업으로 회사 출입이 잦아진 영현의 시야에 데뷔를 앞두고 한창 바쁘게 회사를 누비고 다니던 하루가 들어섰다.


엘리베이터 옆에 나란히 선 둘은 서로를 흘끔거리다 먼저 탑승한 영현이 왜인지 눈치를 보는 하루에 열림 버튼을 누른채 고개를 까닥해 보였다.


감사의 표현으로 고개를 꾸벅 숙인 하루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여 영현과 멀찍이 서서는 숨까지 죽이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 안 내리세요? "




하루를 못 알아본 눈치인 듯한 영현의 행동에 어벙하게 감사하다며 내리는 뒷모습을 보며 혀로 송곳니를 쓸며 어디서 봤더라? 생각하다 마는 영현.




쌀쌀하던 날이 풀리고 무더위가 찾아왔다. 도운의 전역일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성진에게 단단히 일러두긴 하였으나 당사자인 도운의 눈에 발각되면 모든 게 무용지물이었다. 회사가 큰 덕에 나 홀로 숨바꼭질을 하면 될 일이었지만 몇 개월이나 숨어야 하는 플레이어였다.




번듯한 대책을 마련하기도 전에 도운의 전역일이 되었다. 팬데믹이 끝나감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마스크와 모자로 무장으로 하고 다녔다. 감기 걸렸냐는 선생님과 동료들 물음에는 고개를 저어 보일 뿐이었다.




도운은 숱하게 연습실을 들락거렸다. 덕분에 혼자서 숨바꼭질을 하는 하루는 죽을 맛이었고, 모든 걸 알고 있는 성진은 상황이 흥미로웠다. 밥을 먹으러 올라갔다가도 도운이 보이면 내려왔고, 밴드 합주실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의 나 홀로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도운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루는 어떻게 해야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고 선물을 전해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성진에게 도움을 청해 볼까 했지만 잘못했다간 여태껏 지켜오던 비밀이 탄로날 것 같아 그만두었다. 영현도 여즉 모르고 있는 것을 보면 성진의 입은 오천만 톤이 분명했다.




그런 하루의 속을 아는지 성진이 먼저 하루를 찾았다.




" 기프티콘이 티 안 나지 않겠나. "


" 오빠가 전달해 주믄 안 돼요? "


" 니가 내를 무슨 수로 만나서 전달해 준다꼬. "


" 글네. "




빈 연습실에 성진과 나란히 앉아서 도운에게 전송할 선물을 고르고 있으면 언제부터 있던 건지 영현의 음성이 섞인다.




" 향수 어때? "


" 향수 좋, 니 언제부터 있었노. "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영현에 하루의 낯빛이 서슬퍼래지고, 성진도 적잖이 당황했는지 영현과 하루를 번갈아 쳐다볼 뿐이다.




" 도운이는. 갔나. "


" 어, 아까. "




성진과 하루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영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둘을 번갈아 봤다.




" 뭔데? "


" 뭐가? "


" 둘이 도운이 왕따 시켜? "


" 그런 거 아인데, "


" 나도 껴 줘. "




강영현은 방송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함과 자신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영현에 성진이 대신 입을 연다.




" 야 걔다. 도운이 얼라. "


" 아, 그 예고 신입생? "


" 지금은 청담고 졸업생이고요. "




농담으로 던진 하루의 말이 웃겼는지 픽 웃는 둘.








[ 윤도우니 생일 축하한다! 전역도 축하한디! ㅋㅋ ]




" 얘는 전역한 지가 언젠데 지금 축하를 하나... " 




꿍얼대면서도 밝은 표정의 도운에 뿌듯함을 느끼는 성진과 영현이었다.






원필이 전역함과 도운의 그룹은 활동 재개에 시동을 걸었다. 연말에 잡힌 콘서트로 그들 또한 합주실에서 살다시피 하였고, 덕분에 하루의 숨바꼭질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 안녕하세ㅇ, "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그들을 발견한 하루가 직원에게 인사를 하다 말고 냅다 줄행량을 치면 용케 그 모습을 발견한 성진과 영현은 웃겨 죽을 맛이었고, 원필과 도운 그리고 인사를 받던 직원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 하루 퇴근하니? "


" 옙. 고생하셨습니다. "




" 하루? "




음성이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린 도운보다 그의 시야를 빠져나간 하루가 조금 더 빨랐다.


고개를 갸웃하는 도운에게 성진이 바람을 넣으며 합주실로 향했다.






데이식스의 연말 콘서트가 성공리에 끝났다. 그들 몰래 공연을 보러 간 하루는 오랜만에 보는 무대 위 도운의 모습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하루의 데뷔일, 네 살이던 하루가 스무 살이 되는 날이 되기까지 일주일 채 남지 않은 날이었다.




" 이번에 데이식스 선배님들 가요대제전 가신대. "


" 올해는 백업 안 뽑나? "


" 밴드가 무슨 백업이냐. ㅋㅋㅋ "




연습생들 사이에 오가는 말을 심드렁하게 듣던 하루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데뷔까지 열흘이나 열흘이나 남았지만 좀 더 의미있는 날에 그를 마주하고 싶었다.




숨바꼭질을 해야 하는 하루에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연말 무대를 준비하려 도운의 그룹은 콘서트 이후에도 합주실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그림자마냥 합주실 주변을 기웃거리던 하루는 개인 스케줄로 홀로 빠져나온 영현을 붙잡았다.




" 저 좀 도와주세요. "


" 응? "


" 가요대제전 스케줄 끝나고 도운 오빠 회사로 보내 주시면 안 돼요? "


" 도운이? 쉽지 않을 텐데. "


" 제발요... 한 번만... 제 소원. " 




영현이 고민하는 듯 잠시 서 있으면 멀찍이 들리는 도운의 음성에 후다닥 코너로 숨어서는 영현을 향해 두 손을 싹싹 비는 제스쳐를 해 보이는 하루.


알았다는 제스쳐를 해 보인 영현이 하루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휴 하며 제 연습실로 들어가 주저앉았다.






" 하루 퇴근 안 하니? "




빈 연습실에 홀로 앉아 아이패드로 가요대제전을 시청하던 하루가 직원의 음성에 화들짝 놀랐다.




" 제가 불 끄고 갈게요. 먼저 들어가세요! "


" 적당히 해. 몸 상할라. 데뷔도 얼마 안 남았는데. "


"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해야죠. "




너스레를 떨며 웃어 보이니 직원이 알겠다며 퇴근 도장을 찍었다. 엘리베이터가 일 층까지 내려가는 것을 확인한 하루는 조심스럽게 도운의 합주실에 발을 들였다.




" 만나믄 뭐라 하지... "




합주실 바닥에 드러누워서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고 있으면 슬슬 졸음이 찾아왔다. 무거운 눈커풀을 이기지 못 하고 그대로 감아 버리면 희미하게 들리는 익숙한 음성.




" ...삐야. "


" .... "


" 이삐야. "




눈을 뜨면 보이는 도운이 몽중의 인물인가 싶다. 느릿하게 눈을 두어 번 꿈뻑이다 뜨이는 눈에 힘을 주고 쳐다보면 아무래도 실존 인물인 것 같지.




" 니 여서 뭐 하노. 입 돌아가겠다. "


" 윤도운. "


" 엉? "


" 입 안 돌아갔다. "




합주실 문에 붙어 도청하는 동료들에게 숙소 안 가냐며 소리를 빽 지른 도운이 여즉 누워 있는 하루 옆에 대자로 드러눕는다.




" 바닥 차븐데. "


" 시원하기만 하다. "


" 감기 걸리겠다. "


" 감기 바이러스가 내 못 뚫는다. "




천장만 쳐다보던 둘 중 먼저 고개를 돌린 쪽은 도운이었다. 하루는 왜인지 도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 마이 컸네. "


" 마이 컸지. "


" 어른 되믄 내랑 결혼한다더니. 청혼하러 왔나. ㅋㅋ "


" 내 오빠 만날라꼬 이래 고생한다. "


" 내 니 고생하는 거 다 봤제. "




벌떡 몸을 일으킨 하루가 동그래진 눈으로 도운을 내려봤다.




" 다 봤다고? "


" 엉, 잘하든데. "


" 언제부터 봤는데... "


" 니 내 보고 도망친 날부터. "


" 에? "


" 성진이 햄이 모르는 척해 주라길래 그런갑다 했지. "




그러니까 윤도운이 먼저 알아챘다는 거야, 박성진이 말해 줬다는 거야.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기 바쁘게,




" 내는 와 불렀는데. "


" 서른 살 된 거 축하한다고. "


" ...니가 말 안 해도 슬프거든. "


" 윤도운 아저씨다, 아저씨. "




이번엔 아저씨 소리에 도운이 벌떡 일어나서는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똥강아지 같은 게 아저씨는 무슨 아저씨야. 하루의 시선에는 여즉 저와 놀아 주던 고등학생 윤도운이다.




" 청혼 안 하나. "


" 아이돌이 결혼하믄 몬 쓴다. "


" 받아 준다고 안 했는데? ㅋㅋ "


" 날로 먹을라 카네. "




슬며시 쥐어 보는 주먹에 도운이 잔뜩 쫀 척을 했다. 아, 더 얄미워.




" 한 대만 때려도 되나. "


" 어딜. "


" 머리통 쥐어박고 싶다. "


" 그러등가. "




도운의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망설임 없이 동그란 머리통을 쥐어박았더니,




" 아악! "




하는 윤도운의 괴성과 동시에 닫혀 있던 문이 벌컥 열리며 장미, 케이크, 쇼핑백을 든 동료들이 들이닥친다.




" 뭐야, 뭐야. "


" 뭔데. "


" 잉? "




아니, 윤도운만 보내라니까 왜 같이 왔담. 뭐 하나씩 들고 있는 게 서프라이즈라도 해 주려던 것 같다.




" 타이밍이 이게 아인데. "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는 윤도운을 한 번, 어리버리한 표정의 오빠들을 한 번씩 훑어보고는 웃음이 터져 버렸다.




" 거 두고 나가라. "


" 아, 우리 나가? "


" 쫌. "


" 뭔데에. 왜앵. "




꿋꿋하게 버티고 서 있는 동료들의 등을 떠밀고는 낮게 으릉대며 문을 닫는다.




" 쟤 왜 저래? "


" 몰라. "


" 누군데? 도운이 여자 친구 생겼어? "


" 저 어린애가 여친이겠냐. "


" 둘이 뽀뽀하려고 내쫓은 거 아니야? "




아무것도 모르는 원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홍홍 웃었다.






상자에서 케이크를 꺼낸 도운이 20이라고 디자인된 숫자 초에 불을 붙였다. 




" 어른 된 거 축하한다. "


" 아저씨 된 거 축하한다. "


" 어엉, 고맙다. "




시선을 마주하고 킬킬 웃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촛불을 후 불어 꺼 버린다. 


원필의 손에 쥐여 있던 장미를 하루에 손에 쥐여 준 도운이 성진이 들고 있던 쇼핑백을 건네며 웃어 보였다.




" 니 서른 살 되는 날에 이거 입고 청혼하믄 받아 주께. "




씨*, 십 년을 더 존버하게 생겼다.



 
비회원.72
너무 재밌어요ㅎㅎ
10개월 전
독자1
아 좋아요ㅠㅠ
10개월 전
독자2
문체가 진짜 깔끔하시네요 잘봤습니다
10개월 전
비회원122
1
5개월 전
비회원122
1
5개월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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