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요즘 자주 보네?”
학연은 여전히 시답잖은 얘기들을 하며 붓펜으로 글을 썼다. 그리고 여전히 모르는 영어단어를 썼다.
“그러네.”
그는 웃으며 그 포스트잇을 서류봉투에 붙였다.
“조사하다 보니까 재밌는 걸 봤어.”
‘감정 억제.’라고 쓴 포스트잇도 그 서류봉투에 붙여 내게 건넸다.
“궁금하면 네가 직접 봐.”
그의 말에 서류봉투를 열자 또 다시 포스트잇이 나왔다.
‘미군 터미네이터 프로젝트; 전투 병사 양성 프로젝트’
꽤 두꺼운 그 서류를 요약하자면, ‘감정을 억제해 전쟁에 최적화된 병사들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가 써준 알 수 없는 영어단어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엔 ‘적합’이라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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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형집행인의 일지
k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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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본가로 들어갔다. 나는 아버지의 집무실에 앉자마자 그 서류봉투를 던지듯 아버지 앞에 놓았다. 그리고 학연에게서 돌려받은 약통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아버지는 마치 이걸 예상이라도 하신 듯 담담하셨다.
아버지는 나를 상대로 실험을 하고 계셨다. 인간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국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명목 하에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피실험체로 삼으셨다. 이 약을 먹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 나무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을 때, 적어도 그 때부터 나는 아버지께 자식이 아닌 피실험체였던 것이다.
나는 그에게 가 물었다. 알고 있었냐고. 주어나 목적어 따위가 생략된 말이지만 그는 단박에 이해했는지 고개를 숙이고 날 쳐다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그 실험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고 했다. 중단하자 말했기에 그런 줄 알았다고 덧붙였다. 내가 윤이일 대령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아직까지 약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실험은 진행 중이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는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숙여진 고개, 움츠러든 어깨가 그의 미안함을 말했다.
그것은 아버지께 듣고 싶던 말이었다. 그 무엇도 아닌 사과, 그 무엇도 아닌 미안하단 말 한 마디. 설명이 듣고 싶어 찾아간 자리가 아니었다. 내가 감시당하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간 자리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서류 안에는 영양가 없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고 말하셨지만, 그 서류는 내가 아버지께 찾아가 드린 서류가 아니라 내 서재에 있을 그의 약에 대해 조사한 서류란 걸 나 또한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드린 서류-내 약에 대한 서류를 뜯어보지도 않으셨으니까.
나는 20년 만에 감정을 찾았다. 약을 통해 억제하고 있던 그 감정들을 찾았다.
담배를 입에 물었다.
씨발.
어느 감정인지 모를, 사실은 여러 감정의 복합체가 단어로 튀어나왔다.
설명할 길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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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쟈니] 님, [요니] 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