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승현'은 사람들에게 있어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빵빵한 집안, 우수한 4년제 대학 재학 중, 이만하면 괜찮은 외모, 적당히 활발한 성격까지.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왜…왜…!"
…23년을 살면서 여자를 한 번도 만나본적이 없다는 것.
처음에는 내 성격이 문제인걸까 싶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내 성격에 대해 물어보고 다녔지만, 돌아오는 답들은 매번 똑같았다.
"아니? 너 성격 완전 괜찮은데." "니가 성격에 문제있는 사람이면, 사람들 대부분은 문제 있는 성격일걸…."
근데 왜 이러냐고.
그럼 내 스타일이 별로인가? 싶어서 주변의 커플들을 슬쩍 관찰해 본 적도 있었다. 근데, 아무리 봐도…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내가 훨씬 깔끔하게 잘 입는 것 같은데. 뭐가 문제지? 돈이 없어, 성격이 나빠? 내가 뭘 잘못했길래…
[승현아 제발 한번만 만나줘 너 보고싶어서 계속 00에서 기다리고 있어 나.]
[저기…이승현씨 맞으시죠? 아, 저는 이상한 사람은 아니구요…이승현씨 학교에서 몇 번 뵜었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친구분들한테 물어서 연락처를 받아냈거든요….]
남자들만 꼬이냐 이거야!
안만나, 너네같은 놈들 안만난다고! 아니, 너네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떠나서 난 다리 사이에 뭐 달린 사람이랑은 안 만날거라고!
"…얼마요?"
깜짝 놀란 내가 되물었다. 얼마라고요?
"1200이라고. 학생이니까 사정 봐서 이만큼 깎아준거야."
‘1200…? 깎아준게 천이백? 이 사람 완전 사기꾼 아니야?’
의심스러운 마음에 맞은편에 앉아있는 아줌마를 빤히 쳐다보자, 아줌마가 손을 휙휙 내저으며 말했다.
"정 의심스러우면 그냥 가고~나도 솔직히 장사꾼이라 돈 받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학생이 너무 딱해보여서 이만큼 깎아준거야."
"…아 알았어요. 하면 되잖아요 하면."
아줌마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게 보였다. 역시 의심스러운데.
"진짜 효과는 보장되는거 맞죠?"
"그러엄."
에라, 모르겠다. 이 뭣같은 인생을 고칠수만 있다면야. 눈을 꼭 감고 카드를 긁었다.
원체 부유한 집안의 자식이다보니 돈에대한 걱정은 별로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히 사기당하는게 아닌가 싶어서 손이 덜덜 떨렸다.
[결제 완료되었습니다.]
영수증을 뽑아낸 아줌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입이 귀까지 걸려있으시네.
"자, 이제 뒤뜰로 가자."
"뒤…뜰이요?"
"응. 령을 불러내야지."
웬 령이냐 하면은, 아주머니가 그러셨다. 팔자에 마가 끼어있다고.
놀란 내가 무슨 마요? 하고 물어보자, 분명히 집안 사람들 중 한 명이 큰 죄를 지었거나, 짓고 돌아가셔서 그 죗값이 고스란히 남게 되었고, 마침 그 죗값이 둥둥 떠 다닐 때 마침 내가 태어나서 그 죗값이 내 팔자에 끼어든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그리고 그 팔자에 끼어든 것들은 모두 ‘령’이 제거해줄거라고.
이게 뭔 소린고 해서 잠시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내가 태어나기 3일 전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엄마의 말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외할아버지…전생에 무슨 일을 하신거에요….
근데 왜 하필 남자만 꼬이는 마가 낀 건데요? 하고 물어보자, 아주머니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씀하셨다.
‘뭐, 그 죄를 지으신 분이 이성 등쳐먹거나 이성을 이용해서 어떤 일들을 많이 하신 분인가보지.’
망할…
"여기 서 있으면 돼."
아줌마를 따라 뒤뜰로 나오자, 바닥에 원도 아니고, 네모도 아닌 요상한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있는게 보였다.
아줌마의 말대로 그 그림 가운데에 서자, 아줌마가 인자하게 웃으셨다. 뭐지, 왜 웃으시는거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후읍. 야!!!!!!! 나와라!!!!!!!!"
"…뭐?"
뭐야 저게?
아줌마가 갑자기 허공에 대고 소리를 꽥 질렀다. 저게 뭐야, 뭐하는거야? 미친건가? 아니 사기인거 숨기려고 혼자 쇼하는건가…?
"안나오면…."
꿀꺽.
"그거 찢거나 태워버린다."
"나왔어!"
헉.
아줌마가 뭔진 몰라도 ‘그것’을 태워버린다 하자, 하얀 연기…? 하얀 불꽃? 같은 것이 어딘가에서 쌩 하고 나타났다.
저게 뭘까 싶어서 멍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아줌마가 또 소리를 꽥 질렀다.
"왜 이리 늦어! 내가 한 번에 부를 때 제깍제깍 나와야지. 자꾸 이럴거야?!"
"아니 거 참, 령도 밥 먹고 볼일보고 하는 일 많은데 조금 늦었다고 거 되게 궁시렁…."
"평생 구속당해있을래?"
"죄송합니다."
뭐야, 목소리는 또 어디서 나는건데? 심지어 여자 목소리인지, 남자 목소리인지도 구분이 안 되는 목소리다. 마치 기계음으로 뽑아낸듯한…목소리?
혼란스러움에 이리저리 둘러보며 동공지진만 하고 있을 때, 아줌마가 나에게 무언가를 휙 던져주었다.
반사적으로 무언가를 받아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엥. 웬 팔찌가 내 손에 들려있었다.
"그거 껴봐."
껴보라는 말에 냉큼 팔에 끼자, 아까는 분명 불꽃? 연기? 같았던 것이 사람의 형체를 띄고 있었다.
"그 팔찌 잘 간수해. 그 팔찌가 있고 없고가 학생 운명을 책임지게 될 테니까."
꽤나 무서운 발언에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고 팔찌를 꼭 쥐고있으니, 사람의 형체를 띈 그것이 나에게 점점 다가왔다.
이목구비는 커녕, 남잔지 여자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는 그 형체가 무서워서 몸을 뒤로 빼니, 형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꼬여도 단단히 꼬였구만…. 홍염살에 도화살에, 얼레. 요기까지 갖고있네. 이건 뭐…."
"요기…?"
"그냥 간단하게 말해서 남자들이 엄-청 꼬이는거. 자기가 타고나는 기인데, 뭐…딱보니 누구한테 물려받았거나 강제로 위임당했구만.
오, 또 재물이나 사회성은 괜찮은 팔자네?"
"… …."
"이런것까지 받은걸 보니까 니 윗 조상들 중에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러도 단단히 저질렀나보다."
미…미친. 이게 뭐야, 무서워. 어떻게 다 아는거야.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이 생겼다. 내가 타고 난 것 자체가 별로거나, 나 자체가 구려서 여자가 없는게 아니라
팔자에 이상한게 많아서 여자가 없는거일수도 있잖아!
"그럼…그…쪽이 도와주신다면 저는 원래 제 팔자대로 살 수 있는 건가요?"
"물론."
"아, 지…진짜 감사합니다."
"아, 한가지 말해주자면 원래 니 팔자 자체가 여자한테 인기가 많을 팔자는 아니니까 그건 알아둬."
망할 세상아….
"봤지 학생? 아마 학생 눈엔 그냥 허여멀건한 형체로 보일텐데, 내가 이놈을 실체화 시키면 얘 모습이 제대로 보일거야.
이래보여도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 팔자 고쳐주는 일을 했던 놈이니까 믿어도 될 거야."
"아…예…."
"음…아, 맞다. 그리고 얘 이래보여도 엄연히 사람이니까 밥도 줘야되고, 씻기도 해야되고 그러니까 잘 해주고."
"네?"
"그건 모두 사비로 나갈거야. 걱정 마, 씀씀이가 헤프지는 않으니까."
왠지 사기당한 기분이 들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아줌마가 더 궁금한건 없냐고 물어보았다.
"저…이름은요? 나이는…성별은?"
"이름이야 그렇다 치고 별걸 다 궁금해하네. 지금은 구분이 안되겠지만 남자고. 나이는…니가 몇살때 죽었냐?"
"27."
"스물일곱이래."
"죽은…나이요?"
"그래. 보통 령들은 자기가 죽은 나이 그대로 굳어져 있으니까. 젊은 나이에 요절한거지 뭐."
"…헉."
"이름은…령들한테는 이름이 정말 중요한 거라 알려주진 못하겠고. 그냥 GD라고 불러."
"GD요? 쥐디?"
"응. 지디."
"…알겠어요. 그럼 또 주의할건…."
"없어. 팔찌 빼지말고. 실체화는 곧 시켜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 그리고 GD."
"응?"
"이번 일 끝나면 풀어줄테니까 열심히해. 같은 남자로써 불쌍하지?"
"글쎄. 난 생전에 늘 여자들한테 둘러쌓여있기만 해서…. 아니, 잠깐만. 풀어준다고? 진짜?정말?진짜로?"
"시끄러. 빨리 따라가. 학생, 혹시 문제가 생기면 이 점집으로 전화하면 되니까 저장해두고."
"…네."
답도 없던 내 팔자에 한줄기 희망의 빛이 들어온 거니까 좋아해야 맞는건데, 왠지 모르게 힘이 더욱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괜찮은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