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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태일] 악남 11~13 | 인스티즈


11~13

악남

w.maje










11_


 계단 끝자락에 태일이 있었다. 지훈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는 태일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술 마셨냐 묻는 지훈의 저음이 태일의 귀에 간지럽게 흘러들어왔다. 그 간지러움에 태일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 간지러. 엄청. 지훈이 보거나 말거나, 킥킥거리며 웃던 태일이 계단 내려오는 발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샌가 제 뒤에 바로 선 지훈이 보였다. 여전히 주머니에 찔러넣은 손은 여전했다.





"들어가자."





 지훈이란 커다란 스피커가 제 옆에서 울리고있는것만 같았다. 태일은 멀뚱히 지훈을 올려다보았다. 지훈은 여전했다. 머리를 언제 감는지는 몰라도 집에 하루종일 있는거 치곤 머리엔 기름기 하나없다. 세수도 저 안볼때만 하는건지, 피부도 뽀송뽀송해 뵈인다. 다 여전했다. 태일은 고개를 저었다.


 태일의 뒤에 선 지훈은 짜증이 치밀기 앞서, 지독하게도 나는 술냄새에 머리가 다 지끈거려왔다. 키도 작고 몸집도 작은 것이 마셔봤자 얼마나 마시겠다고 저 정도인지. 지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발로 툭툭 태일의 등을 쳐냈다. '들어가자고.' 한번 더 말했다. 여러번 말하는 성격이 아닌것도 있지만, 조대표와의 통화후 기분이 계속 다운이었던 터라 말이 좋게 나가질않았다. 


툭. 툭툭. 지훈의 슬리퍼가 몇번이고 태일의 등을 쳤다. 





"그만 쳐여........."





 잔뜩 꼬인 태일의 입이 움직였다. 





"왜 자꾸 쳐여..........."

".........답이 안나오네."

"...............야아. 표지훈"





 뭐? 한번 더 태일의 등을 치려던 지훈의 발이 멈칫했다. 작은 머리통이 저를 향해 떠벌린 말이 제가 정녕 똑바로 들은것인지 의심이갔다. 뭐라했냐 지금?





"뭐?"

"표지훈.........너 이리 앉아봐."





 빨리빨리. 태일은 제가앉은 계단의 옆을 퉁퉁 쳤다. 그걸 가만 쳐다보고만있던 지훈은 헛웃음을 쳤다. 취해도 단단히 취한 모양이었다. 취한사람한텐 그 어떤 소리도 이기지못한다. 지훈은 마지못한척 태일의 옆에 쑤셔앉았다. 좁은 계단이 지훈과 태일로 가득찼다. 앉으라며 큰소리 땅땅 내치던 태일은 지훈이 앉자마자 합죽이었다. 조용했다. 찬 기운이 가시지않은 초 봄의 밤이었다. 언제 시끄러웠냐는듯 고요함만 맴돌았다. 그 고요함을 깬건 지훈이었다.





"뭔데. 들어가자니까."

"..............표지훈이."

"...............왜."

"넌 좋겠다 참..........키도 크지 얼굴도 잘생겼지....아 이건아닌가? 아무튼.........모델에다가......돈도 잘벌고......."

"....................알아 잘난거."

"그런데 난 뭐냐........키도 작지, 얼굴은 맨날 상어 같단 소리만 듣고..........삼류 기자에다................돈도 못벌고............."

"알아 너 못난거."





 이씨! 태일이 지훈을 냅다 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훈은 포커페이스였다. 다시 정적. 몇번을 쿨쩍거리며 콧물을 삼키던 태일이 핑하고 도는 머리를 핑계로 대뜸 지훈의 어깨에 제 머리를 얹었다. 술기운이다. 술기운이라 생각하니 아무렇지 않았다.





"뭐야. 무겁다."

"조금만.........지금 너무 어지러워.........."

"그냥 들어가자니까."

"조금만..............."





 태일이 말한 '조금만'은 오분내짓 십분이었다. 그냥 정말 잠깐 기대고있을라 했다. 그러나 술기운을 등에 얹은 수마 덕인지, 눈은 제대로 떠지질않았고 그대로 까무룩 잠이들어버렸다. 오분이고 십분이고 내내 기다린건 지훈뿐이었다. 찬기운이 더해져, 지훈이 제가 입은 자켓을 벗어 태일의 위로 덮어줄때까지 태일은 아무것도 몰랐다. 더불어 지훈이 저를 향해 한말도 듣지못했다.






"말은 죽어도 안듣지. 기자가 다 그렇지 뭐."

"...................."

"................야."

".............."

"나 조금 무서워."






 아니 조금이 아니라 엄청일지도 몰라. 입술을 깨문 지훈도 슬쩍 눈을 내감았다. 옥탑방안의 시계 큰바늘은 계속 움직이고있었고, 계단에 누가있던 상관없단듯 파란 양철문앞 골목길의 주황 가로등은 희미하게 꺼지고있었다.










 태일이 비비적거리며 눈을 떳을땐 낯익은 천장이 보였다. 태일은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일어나기전 몇번이고 고민을했다. 모두 기억이 났다. 술을 마신거부터하며, 지훈에게 표지훈아 어쩌고저쩌고 나발거린것. 대뜸 지훈의 어깨에 기댄것과, 까무룩 자버린것. 그리고 얼마나 잤을까, 저를 업고 옥탑방 안으로 들어온 지훈까지. 모두 기억이 나다못해 생생해서 태일은 몇번이고 눈을 뜰까말까 고민을 했었다. 


속이 다 쓰렸다. 어차피 지각이 분명하기에 태일은 여유롭게 행동하기로했다. 몸을 일으켜 제일 먼저 눈길이 향한곳은 지훈이 자는 소파. 그런데 보이질않았다. 





"야 밥먹어."





 .........어? 태일의 눈이 소리가 나는곳으로 향했다. 언제 일어났는지, 바나나를 입에 문 지훈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지훈이 들고있는 후라이팬까지도. 어제 기억도 있는터라, 태일은 지훈을 바로 쳐다보지못했다. 푹 숙인채 머리를 긁적이며 식탁에 앉자, 지훈은 투박하게 부친 계란프라이와(어찌나 난리를 쳤는지 프라이보단 스크램블에 가까웠다.) 밥을 건냈다.





"할수있는게 이거밖에 없어."

"..............."





 라면 끓일라했는데 난 못해. 이 말을 지훈은 속으로 삼켰다. 





"무슨 술을 그렇게 떡이되도록 마셔?"

"..............떡은 아니거든요."

"너때문에 어제 입돌아갈뻔했어."

"...........그건 죄송하네요."





 태일은 꾸역꾸역 밥을 입에 밀어넣었다. 위액이 잔뜩도 나와 쓰렸던 뱃속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참 복스럽지도 못하게 먹는 태일의 앞에 앉은 지훈은 이거 먹어라 저거먹어라, 물까지 떠주었다. 난데없는 친절에 태일은 체할것같았다. 


몇번이고 저리 가라는 눈치를 주었지만 지훈은 태일이 모두 먹을때까지 끝까지 태일의 앞을 지켰다. 그리고 태일이 옷을 쑤셔입고 현관을 나설때까지 지훈은 군말이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김유권 장난아니야. 지금 죽기 일초전이다 일초전."





 아직도 저린 머리를 쥐고 회사로 달려간 태일은 나리가 일러준 역시나 역시인 유권의 상태를 보고 혀를 찼다. 배를 움켜지고 책상위에 엎어진 모습의 유권은 태일에게 인사도 건내지 못했다.





"선배 괜찮아요?"

"으어...........죽어.......나 죽어........"

"..........어제 저 가고 또 마셨죠?"





 태일은 혀를 차며 유권에게 제가 마시려던 컨디셔너를 건냈다. 고맙다며 냉큼 받아든 유권이 원샷을 하곤 다시 드러누웠다. 저러다 편집장한테 걸리면 저까지 개가 될 판이었다. 편집장 자리에서 유권이 잘 안보이게끔, 제 외투를 유권의 의자에 걸친 태일은 기지개를 피곤 인터넷을 열었다. 어느순간부터, 검색어순위를 확인하는게 버릇이 되었다. 그것도 주간 검색어까지.


일간 검색어 오위가 우지호였다. 태일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리고 주간검색어 탑은 역시 표지훈. 여기까지 확인한 태일이 인터넷 창을 닫곤 저도 사무 책상위로 엎드렸다.


사실 아침밥을 먹은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술을 암만 마셔도, 다음날 회사 근처 해장국집에서 점심으로 때우는게 다반사였고, 아침은 무슨 가끔가다 베이컨이나 계란 먹는게 일쑤였다. 비록 형체를 잃은 계란프라이와 밥이여도 꽤 괜찮았다. 태일은 제 앞에서 제가 먹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던 지훈이 떠오름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걸 깨닫고 제가 왜이러나 고개를 휘휘 저었지만, 한번 떠오른 지훈은 쉽게 가시질않았다. 


표지훈이란 탑모델이 해준 밥을 먹은 기자는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 편집장은 꽤 늦게 출근했다. 편집장도 거하게 한잔한 모양이었다. 다행이라며, 점심을 먹던 유권은 시끄럽게도 떠들어댔다. 자기는 정말 운이 따라주는 인간이라는둥 뭐라는둥 시끄럽게도 쟁쟁거리던 유권은 커피를 마실때야 조용해졌다. 





"아 이제 좀 풀린다. 장난아니다 진짜. 어제 그 술에 뭐 탄거 같어. 그렇지않냐?"

"..........예예. 그런거 같네요."

"쪼끄만게 까불긴.........야 너 전화오는거아니야?"





 어? 태일은 제 코트 주머니에 담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습관적으로 통화버튼을 누르려던 태일이 멈칫했다.





"왜 안받아?"

"스팸이에요."

"무슨. 누군데 그래?"

"...........진짜 아니에요."





 지호였다. 아까 보니 부재중이 네건이나 와있었다. 듣지 못해 못받은건 정말이었다. 그것도 다행이라 생각한 태일은 커피를 홀짝였다. 깊은 코트 주머니에서 전화벨은 지치지도 않고 울리고있었다.


그러길 몇분. 태일은 간신히 울음을 멈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부재중 여덟건 문자 네건. 모두 지호였다. 첫번째 문자는 괜찮냐는 문자였고, 두번째문자는 놀자는 문자. 세번째 문자는 전화좀 받으라는 문자. 네번째 문자 역시 전화 좀 받으라는 문자였다. 모두 삭제버튼을 누른 태일은 핸드폰을 껐다. 괜히 그날이 생각나면서 불편해졌다.


그런 태일의 기분을 알리 없는 유권은, 우지호는 언제 또 안오냐며 태일을 들들 볶았고, 태일은 유권에게 볶아지며 기사만 말없이 써내려갔다. 제가 오늘 올릴 기사는 모 유명연예인의 엽기 분장사건이었다.





"우지호 진짜 안오냐. 그날이 마지막이야?"

"김준수씨 사진 좀 캡쳐해줘요. 자료가 없네."

"야! 너 진짜 걔 잘잡아야돼. 걔가 한강이다. 걔만 잡으면 길이 뚫린다고!"

"없어요? 그럼 제가 찾죠."





 태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느려도 잔뜩 느린 제 컴퓨터에 질린 덕에, 꽤 빠른 휴게실의 컴퓨터를 쓸 생각이었다. 옆에서 뭐라뭐라하는 유권을 지나쳐 사무실을 나왔다. 혹시 지호가 갑자기 나타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에도 갑자기 툭 튀어나온 지호에 적잖히 놀라버린 태일이었기때문에, 긴장을 늦출수없었다. 다행히 지호의 노란머리털은 보이지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휴게실로 들어간 태일이 커피 한잔을 뽑아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뭔 놈의 휴게실 컴퓨터가 업무 컴퓨터 보다 빠른건지. 태일은 클릭에 클릭을 연달아하며 어제 일자 예능 프로그램을 다운받기 시작했다. 


다운 창을 아래에 내려놓곤 인터넷을 켰다. 불안한 낌새가 훅 느껴졌다. 검색어 일위가 우지호다. 그래. 거기까진 그러려니 쳤다. 우지호고 뭐고 연예인이 검색어 일위를 하는건 흔하디 흔한 일이니까. 하지만 곧바로 보이는 검색어 이위에 태일은 제 핸드폰을 바로 열었다. 말도 안돼!


[우지호 인터뷰 불참.]










"우지호 제정신이야?! 당장 나와!!!!!!!"

"지호야 제발!!!!!!!!"





 내가 안한다는데 왜 자기들이 난리야. 지호는 와인잔에 부은 오렌지주스를 홀짝였다. 간만에 무리좀했다고, 혓바늘이 돋은 혀가 징하게도 아려왔다. 인상을 쓰면서도 지호는 제 손에 들린 핸드폰은 놓지않았다. 없다. 연락이 없다. 지금쯤 검색어도 떳을테고, 기자인 태일이 그걸 못봤을리가 없다. 가만히 다리를 까딱이며 나머지 주스를 모두 마신 지호가, 제 대기실 옆에 걸린 큰 거울로 시선을 돌렸다. 제가 보였다. 그 넓은 거울안에 저 혼자였다. 이리저리 웃어가며 거울을 보던 지호의 핸드폰이 그 순간 울렸다.


나이스.





"예 우지호 받았습니다!"

「이태일입니다. 우지호씨 맞으시죠?」

"예예 제가 우지홉니다!"





 지호가 활짝 웃으며 의자위로 제 두 다리를 올렸다. 









12_


 꾹꾹 억누른듯한 태일의 목소리가 제 귀로 흘러들어왔다. 단단히 꼴려도 제대로 꼴린 모양이었다. 지호는 킬킬 웃으며 와인잔을 흔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이태일 기자님?"

「뭐에요 지금.」

"아..........무슨 말인지 이해 못하겠는데."

「무슨 사람이 이렇게 책임감이 없어요? 지금 전화 하나 안받았다고 이렇게 나오시는거..........」

"그럼 책임감이 있게 만들어주시던가요."

「..........예?」

"만나요. 밥먹어요. 놀아요."

「..............우지호씨.」

"그럼 지금이라도 인터뷰할게요."





 정말이요. 지호는 금방이라도 태일이 제 앞에 짠하고 나타날것만같았다. 태일의 한숨소리가 제 귀에까지 들려왔다. 다 들려요. 다 들린다니까? 의자에서 일어섰다. 조금 내려앉은 제 앞머리를 다시 매만지며 지호는 문으로 향했다. 아직 제 매니저가 떽떽거리고있는 그 문 앞으로.





"하라는거에요 하지말라는거에요."

「..............저기요.」

"퇴근 몇시에요? 아홉시? 그때까지 갈테니까 없으면 알아서해요. 끊습니다 이기자님."

「저기요!!!!!」





 뚝. 통화종료를 누르며 지호는 쩝 입을 다셨다. 사실 지금 당장 가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제가 입을 맞추자마자 딱딱하니 굳더니 픽 쓰러져버린 태일을. 아마 여자도 별로 못타본 천연기념물일거란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호기심이다. 누구나 발자국 하나 없는 눈밭을 보면 그쪽에 제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건 당연한 심리아닌가. 지호는 넥타이를 고쳐매며 문을 열었다. 그 눈밭에 발이 젖든 어쩌든 아직은 모를일이었다.










 지호가 늦어도 한참 늦은 인터뷰 기자를 만나고, 머리가 하얗게 빈 태일이 끊긴 핸드폰을 들고 멍을 때리고있을때 지훈은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고있었다. 빛바랜 야광별이 드문드문 붙어있는 그 허연 천장을.


제가 오늘 아침에 뭘 한건가 싶었다. 후라이팬을 잡았다는것부터가 충격이었다. 아침에 비비적 눈을 떴을때까지, 전날 거하게도 한잔하신 태일은 잠에 취해있었다. 이불을 꼭 끌어안고 자는 폼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저렇게 자면 안답답한가. 세수라도 할성싶어 발을 떼는데 낮게 앓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속에 이상이 온게 분명했다. 속이 아린건지, 몸을 말며 '으응.'하며 부비적거리는 태일에게 이상하게도 시선이 떨어지질않았다.


결국 후라이팬을 집어들었다. 냉장고를 척 열어보니 그렇다고 제가 할수있는게 없었다. 몇번 뒤적거리다 선택한것이 결국 계란. 동글동글하니 태일의 머리통을 닮았다 생각한 게란을 툭툭 깼다. 흰자가 조금 흘러내리고, 지훈은 그만둘까 몇번이고 생각했다. 그러다 아직 달궈지지도않은 후라이팬에 얹었다. 결국 눌러붙으며 익기 시작한 프라이를 뒤집개로 이리저리 치덕인 결과, 스크램블형 프라이가 탄생했고, 그걸 태일에게 먹였다.


신기했다. 제가 한 요리는 매번 실패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먹은 당사자가 아무말도 없다는것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물도 떠다주고한것같았다. 지훈은 낮게 헛웃음을 쳤다.


켜놓은 티비는 지훈이 무슨 생각을 하던 끝없이 쟁알거리고있었다. 





[예, 우지호씨 모셔봤습니다! 어휴, 오늘 왜이렇게 늦으셨어요?]





 우지호? 지훈은 자세를 고쳐, 티비를 노려보았다. 우지호다. 샛노란 머리를 하늘솟을듯 올린 상판이 보였다. 카메라를 향해 인사하는 모습이 저를 비웃는 모양인거같아 괜히 배알이 꼴렸다. 우지호가 뭘하던 지훈에겐 절대 좋게 보일리가없었다.





[오는길에 지하철이 막혀서요. 하하.]

[잘생기신데 유머까지! 정말 완벽하세요!]

[완벽빼면 뭐가 남아요 제가.]





 놀고자빠졌네. 지훈은 턱을 괴곤 볼륨을 높였다. 우지호는 여전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얍실한 얼굴하며, 저 뻔뻔한 여유로움. 그리고 말도안돼는 헛소리를 하는 저 혀까지.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우지호와 인터뷰 기자는 우지호의 성공적인 런웨이에 대해 몇번이고 한말을 또하고 또하고있었다. 암만봐도 우지호 칭찬 코너지, 저게 어딜봐서 인터뷰 코넌가 싶었다. 


나중에 복귀하게 되면 절대로 저 프로그램은 나가지말아야지. 지훈은 속으로 이런저런 마음을 먹고있었다.





[이번 런웨이를 성공적으로 마친, 조각 미남! 허당! 모델 우지호였습니다. 제가 다 영광이네요. 뭐 더 하실말씀 없으세요?]

[향후계획 더 말씀드리자면.....조금있으면 알게되실거구요.]





 파리? 그래 파리. 지훈은 입술을 깨물었다.





[영상편지 되나요?]

[예? 당연하죠! 도대체 어떤분이에요? 너무 부러워요~]

[두분이에요. 일단 제가 가장 사랑해못지않은...........]





 지훈의 표정이 굳었다. 





[표지훈형. 노래 깔아주세요.]

[어머 표지훈............아......예 배경 나갑니다!]





 저 미친.......! 지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보상자 안의 지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놀리고있었다. 진짜 저를 보는거마냥 화면안의 지호와 눈이 마주쳤다. 평소 저를 보던 표정이다. 





[어 형 나 지호야. 잘 지내지? 난 잘지내. 보고싶어 죽겠어. 빨리 돌아와. 그럼 내가 참 좋겠어.]





 지호가 다리를 꼬았다. 그러곤 그 무릎에 제 두손을 깍지껴 넣었다. 





[형 없으니까 맘이 다 심란해. 우린 맨날 봐야 서로 살잖아. 그렇지?]





 뭐가 그래. 지훈은 채널을 돌릴 심보로 리모컨을 집어들었다.





[다 보고있는거알아. 아니면 꼭 보길바래. 형 내가 정말 사랑하는거 알지? 형이 제일 좋아하는 와인 내가 다 마시기전에 연락좀해.]





 그러곤 지호가 손인사를 해보였다. 그러길잠시, '아 여기 파리있어요? 뭐가 계속 날아다니는거같네.'란 장난투 말이 나오기무섭게 지훈은 채널을 돌렸다. 와인. 파리. 모두 제 자리를 꿰찼다는 지호의 비웃음이 분명했다. 화가 치밀었다. 조대표에게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 뭐라하고싶었다. 당장 날 제자리로 돌려달라. 터지던말던, 망하던말던 알바아니라고. 


하지만 그 말은 제 속에서만 맴돌았다. 혼잣말로 몇번이고 말해봤자, 할수없었다. 무섭다. 언제고 정상만 달려왔던 저가 바닥으로 간다는건 정말 상상도 할수없을만큼 무섭다. 지훈은 힘을 내리실어, 리모컨을 꾹꾹눌렀다. 지호의 두번째 영상편지 대상이 누군지도 모른채, 지훈은 채널만 계속 돌렸다.






[정말 훈훈하네요! 평소에도 표지훈씨와 많이 친하신가봐요?]

[그러기 싫어도 그럴수밖에 없어요.]

[하하하, 정말 재밌으세요. 그럼 두번째 영상편지는 어떤분인가요?]

[햄버거요.]





 예? 리포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호의 표정은 표지훈을 말할때보다 한층 밝아져있었다.





[해,햄버거요?]

[예 저 햄버거 좋아해요.]

[역시.....허당! 정말 매력있으시네요! 그럼 햄버거님....햄버거에게 영상편지! 배경 주세요!]





 약간 통통튀는 배경음이 들려왔다. 지호는 꼬았던 다리를 풀며 두손으로 카메라를 향해 인사를 해보였다.





[안녕 햄버거.]












"대박이네. 진짜 또라이라니까 우지호."

"..........."

"기사 제목은 이게 어때? 우지호 햄버거에 사랑고백! 종을 뛰어넘은 사랑!"

".......시끄러워요."





 태일은 신경질적으로 입에 밥을 밀어넣었다. 꾸역꾸역. 아침도 꾸역꾸역 점심도 꾸역꾸역 저녁까지 결국 꾸역꾸역이다. 된장국을 찹찹 떠먹으며, 아까 봤던 방송이 생각나 체할지경이었다.


지호와 전화를 끝내기무섭게, 검색어 판도가 바꼈다. 우지호가 출연한다던 그 인터뷰 프로그램이 일위를 먹었고, 정말 말도 안되게도 티비엔 우지호가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하고있었다. 정말 제 전화를 받고 나갔음이 분명했다. 


표지훈에게 영상편지를 한다했을땐 유권은 물론이거와, 태일, 식당에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이 티비로 향했다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봐봐, 쟤 뭔가 안다니까!' 호들갑을 떠는 유권의 말은 들리지않았다. 와인어쩌고를 운운하던 표지훈을 향한 영상편지가 끝남이 무섭게, 다음 대상자는 햄버거.


저였다. '안녕 햄버거.'로 시작한 영상편지는 태일 저를 향함이 분명했다.





"진짜 웃기긴하다. 햄버거한테 뽀뽀하는 놈이다있어?"





 충격. 경악이었다. 지호는 표정하나 바뀌지않고 그 말도 안되는 말을 했다. 





"'햄버거. 너 내가 뽀뽀했다고 못먹게 포장지로 옷입고 그러면 안되는거야. 자꾸 포장지 싸고 싸고 싸면 확 그냥 포장지까지 먹어버리는수가있어.'"

"................"

"진짜 웃기네. 야 검색어 봐라, 9위가 맥도날드야!"





 정신이 혼미했다. 씹어먹던 새우튀김에 입에서 뚝떨어짐도 몰랐다. 그날 음담패설을 하며 제 입술을 훔쳐낸 지호가 생각나자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런 태일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사내 티비안의 지호는 마지막으로 신데렐라를 부르며 인터뷰를 마쳤다. '정말 개성있는 모델 우지호씨였습니다!'라는 리포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태일은 밥그릇으로 얼굴을 뭍었다. 무지막지하게 퍼먹는 태일을 보며 유권은 갑자기 왜그러냐며 얼굴을 들어보라했지만 태일은 그럴수없었다.


저녁시간이 끝나고 유권은 나리와 붙어 표지훈을 파내는듯싶었다. 볼펜을 열심히 깨물던 유권이 태일더러 너도 여기 앉아보라고 몇번이고 불렀지만, 여러모로 정신이 비어버린 태일은 손을 내저었다. 아프다는 핑계는 잘 대지않는편이지만 지금은 절실했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몇번이고 기도했다. 그러던가 말거나 시계바늘은 흐르고흘러 아홉시. 오늘 축구한다며 서둘러 퇴근하는 유권의 뒷모습을 보며 태일은 머리를 쥐어뜯기시작했다. 정말. 정말로 오나? 안올수도있다. 그저 한말일수도있기에, 태일은 서둘러 퇴근을 준비했다. 빨리 지훈이 있는 집에 들어가 쉬고싶단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회사로비엔 지호의 모습은 보이지않았다. 이대로면 되겠다싶었지만 혹시나하고 태일은 뒷문으로 향했다. 직원카드를 내리찍고 나온 태일은, 코트도 제대로 입지 못한채로 거리를 내걸었다. 없다. 이대로면.......!


빵. 빵빵. 빵빵빵. 





"지금 안타면."

".............."

"여기 내려서 나 우지호에요 소리치고 다닐거야."





 안돼! 태일은 몸을 돌렸다. 도로에 지호의 차가 서있었다. 폭스바겐 비틀. 장난기있는 얼굴과 비틀이 애매하다. 그리고 그 뒤로 쭉 막힌 차들이, 정지한 지호의 차에 대고 끊임없이 클랙슨을 울리고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호는 싱글벙글 웃으며, 태일을 바라보고있었다.





"아 미쳤어?! 왜 잘가다가 서!!!!!"





빵. 빵빵. 빵빵빵. 한순간에 도로가 시끄러워졌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태일은 후다닥 지호의 조수석 차문을 열었다. 당했다. 





"저녁?"

"먹었어요."





 지호의 차창 앞으로 '초보운전'이라 적힌 종이가 붙어있는걸 본 태일의 몸이 한순간 굳었다.





"이틀전에 땄어."

"..............."

"너랑 밥먹을라고."





 아득해져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일을 태운 비틀은 아슬아슬하니 도로를 질주하고있었다. 흠흠. 흥얼거리며 핸들을 까딱거리는 지호의 모습부터, 새로 뽑았는지, 새차냄새가 진하게도 나는 차의 백미러까지 모두 불안했다.





"일주일이면........."

"요즘 면허 사일이면 따더라. 코스도 하루만에 슝슝."

"................."

"이대로 부산갈까?"





 뭐요? 회먹자. 태일은 고개를 세게 내저었다.





"그냥 근처가요."

"근처? 그래 근처. 나 신사동에 잘아는데 있어."

"어디요?"

"햄버거."





 잘달리던 차가 우왁스럽게 유턴을 했다. 그에 놀란 태일이 악!하며 안전벨트를 붙잡자, 그 모습이 웃기다는마냥 지호는 킬킬웃었다.





"뭐에요 진짜!!!!!!!!!!"

"햄버거 먹자 햄버거. 문 닫았을라."

"무슨 또 햄버.........오늘 인터뷰!!!!!!!!"

"거기 마돈나 버거라고있는데 너가먹으면 괜찮을거같더라."





 말이 통하지 않았다. 태일은 안전벨트를 쥔 손에 힘을 다시 주었다. 까딱하면 저 세상으로 갈판이었다.



 신사동. 여래저래 도착한 햄버거집은 아담하니 귀여웠다. 수제 햄버거 전문점은 처음이었다. 꼴에 들려본곳이라곤 맥도날드요 롯데리아따위가 전부였으니. 태일의 손목을 붙잡고 '포크포크'라 적힌 가게문을 연 지호가 들어가자마자 주문했다. 마돈나 버거.


포장이냔말에 지호는 웃으며 끄덕였다. 유난히 서두르는 모습에 태일은 잠시 갸웃했다. 왜 저렇게 서두르나 싶었다. 그러길 몇분. 버섯이 껴있는 햄버거 포장을 받아든 지호가 싸인한장을 건내곤 다시 태일의 손목을 잡았다. 세상에. 들어간지 십분만에 나온듯싶었다.





"먹어!"

"...........감사해요."

"그럼 집에 가자!"





 .................뭐? 태일은 정말 지호의 분위기에 저를 맞출수가 없었다. 진짜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는게 바로 이런것같았다. 다시 태일을 우왁스럽게 조수석에 밀어넣은 지호는 다시 흥얼거리며 시동을 걸었다.





".................왜이렇게."

"응?"

"........아니에요."





 그러고 질주했다. 그 작은 비틀로 지호는 폭주 아닌 폭주를 했다. 평일 늦은밤이라 그런지, 도로는 텅텅비어있었다. 태일은 제 숨을 부지하기 위해 벨트가 찢어지라 쥐어들었고, 지호는 낄낄거리며 엑셀을 밟고 또 밟았다. 이러다 정말 죽을것같았다. 악마의 전차다. 태일은 내질렀다.





"좀 줄여요!!!!!!!!!!!!!!!!!"

"왜 차도 없는데!!!!!!!!"

"저 죽으면 책임지실거에요?!"

"책임지지 뭐!!!!!!!!"

"줄여요 좀!!!!!!!!!!!!!!!"





 끔찍했다. 듣는둥 마는중 지호는 밟고 밟고 밝고. 그러다 정신을 차렸을땐 왠 도로 갓길이었다. 급정지를 하는가싶더니 휙 태일을 돌아본다.





"하아...........진짜 뭐에요 이게!!!!!!!"

"난 스피드 좋아해. 서둘러 데이트!"





 그러곤 안전벨트를 푼다. 뭐하는건가 싶었다.





"햄버거 안먹어?"

"지금 먹게 생겼어요?!"

"그럼 나 먹을래."

"치사하게 줬다 뺏..........드세요!"

"준적은 있나?"





 지호의 눈이 태일과 마주쳤다.





"..............예?"

"이기자."

"............예?"

"내일도 놀고, 내일 모레도 놀자. 그리고 내일내일내일도."

"그게 무슨............"





 태일의 핸드폰이 울렸다. 윙윙거리며 무섭게도 울리는 핸드폰. 태일은 받기위해 코트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이 시간에 누굴까 싶었다. 지훈? 지훈일수도있겠다. 아니, 아니겠지. 지금 껏 한번도 전화온적 없으니까. 괜한 기대인가 싶었다. 아침을 해주던 그의 모습이 생각남의 착각이다. 태일은 쥐어지질않는 핸드폰을 찾으려 손에 쥐고있던 햄버거 봉투를 내려놓았다.





"나 먹어도 되지?"

"예 드세요. 아 어딨어.........."

"정말이지?"

"아 드시라니.............."





 또 닿았다. '그럼 혀에도 콘돔을 씌여야할까?' 그날 지호의 장난섞인 말이. 머릿속에 단단히 박혔다. 이건 그 날. 제가 기절하던날의 그 닿음이 아니다.


들어왔다. 그게.








13_


 키스. 태일은 이년전, 멱살이 잡힌채로 '당한' 첫키스를 기억했다. 200일임에도 불구하고 답답이 터져도 한참 터지던 태일을 너무도 답답해하던 그녀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결국 그 빌미로 얼마못가 헤어지고말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키스라는 명칭아래 하고있는 건 비슷, 아니 똑같았다. 똑같이 당하고있다. 태일은 제 입 안을 뻔뻔스럽게도 배회하고있는 혀를 밀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깨물라 치면 빼고, 그만두려나싶으면 다시 넣는다. 정말 돌아버릴지경이었다. 지호는 더 대범하게 파고들어왔다. 다시 한번 힘을 주었다. 지호의 한손에 잡혀버린 제 두 손목을 비틀고 비틀어 빼냈다. 그리고 지호의 가슴팍을 팍 밀어내기까지 성공했다.


화가나기 앞서 기가차고 어이가 없었다. 번들번들한 제 입술 주변을 손등으로 닦아낸 지호가 씩 웃었다. 그러곤 '맛있다.'란다. 손이 떨려왔다. 태일은 햄버거 봉투를 다시 쥐었다. 힘이 들어간 손엔 핏줄이 번듯하게 서보였다. 





"집 어디야?"

"..............."

"회사 근처야? 그럼......."





 빠악! 내려쳤다. 마징가 버거? 마돈나 머시기가 든 봉투를 지호의 얼굴에 냅다 후려쳤다. '미친놈!'이란 말까지 덧붙이며. 지호가 다시 저를 붙잡기 전에 태일은 후다닥 비틀에서 내렸다. 평소에 정말 귀엽다 생각했던 풍뎅이형 외관이 지금은 뭣보다 꼴불견이었다. 내리자마자 뛰었다. 여기가 어디건 상관없다. 태일은 가방을 고쳐매고 뛰고 또 뛰었다. 뒤에서 클랙슨 소리가 몇번이고 울리고, 제 이름을 부르는 지호의 목소리까지 들렸지만 다 모른척했다. 침을 몇번이고 뱉을정도로 섞였던 타액마저 어이가 없었다.


무작정 도로로 뛰어들어가 택시를 잡아타고, 옥탑방이있는 골목에 도착할때까지 태일은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머리가 다아려왔다. 양철문을 열기직전 핸드폰이 울렸다. 조용한 골목안에 제 핸드폰 벨소리가 우렁차게도 울렸다. 지호가 아닐까싶어 태일은 확인할 생각도하지않았다. 그렇게 태일은 아직도 떨리는 제 손으로 파란 양철문을 밀었다.


희미하게 번지는 조명등 아래로 옥탑방은 어두웠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까부터 뭘 그렇게 기대를 하고있는지 제가 참 미련했다. 그렇게 문을 따고 들어가자마자, 허물벗듯 옷들을 현관부터 벗어제낀 태일은 언젠가 부터 늘 펴져있는 이불로 꾸물꾸물 기어들어갔다. 지훈은 자고있을게 분명하다 생각하며 눈을 감은 태일은 보지못했다. 지훈의 손에 들린 집전화기를.










 몸은 일에 쉽게 적응되지는 못한다만, 그렇다고 아예 익지 못하는건 아니다. 태일은 제가 눈을 뜨기 무섭게 요란스럽게도 울리는 알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일요일이라 적힌 날짜를 보곤 핸드폰 밧데리를 분리했다. 그리곤 구석에 내던졌다.


아 휴일. 간만이다. 하늘 무서운줄 모르고 방방 뜬 제 까치머리를 꾹꾹 누르며 태일은 소파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파에 기대어 곤히 자고있는 지훈이 보였다. 무슨 자는것도 화보 포즈다. 모델은 일상이 화보라더니 그게 꼭 틀린말은 아닌것같다는 생각을 하며 태일은 이불을 뒤집어 썼다. 


가시질 않았다. 스킨쉽이고 뭐고, 살만 닿아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그런 쑥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뜸 남자에게 키스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그러려니 할 그릇이 저는 되지못했다. 지난 새벽에 몇번이고 일어나 혓바닥이 뽑히도록 칫솔질을 했는데도, 그 느낌이란건 쉽게 가시질않았다. 남자라는것도 문제였지만, 그게 우지호였다는건 더 큰 문제다. 태일은 다시 눈을 감으려 애를썼다. 빌어먹을놈. 몇번이고 지호를 향한 욕을 중얼거리며.





"............아 씨발, 뭐 이리 빨리지나가."





[밑동을 잘라낸 김치를 여러번 다각도로 썰어주신후........]





"여러번이 몇번이야. 아 안해 안해."





 그러길 몇시간이나 지났을까. 태일은 제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를 따라 눈을 떴다. 티비가 떠드는 소리같았다. 아직 잘 떠지지않는 눈을 꿈뻑거리며 위를 쳐다보자, 왠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곤 김치를 써는. 그러니까 전형적인 요리프로그램 같은것이 나와있었다.


아 그래 요리프로그램. 별거 아니구나싶어, 다시 눈을 감으려는데 순간 멈칫했다. 지금 저는 자고있었고, 티비는 켜지도않았다. 지금 이 옥탑방 안에 있는 사람이라곤 태일 저와 표지훈이란 모델. 표지훈이 요리프로그램? 그것도 티비와 대화까지하며! 여기까지 계산한 태일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당황한 지훈의 얼굴이 눈에 가득차고, 지훈이 들고있는 수첩까지 눈에 들어왔다. 저게 뭐야?





"뭐해요?"

"씨발 깜짝아!!!!!!"

"뭐 써요?"

"모,몰라도 돼!! 잠이나 자!!!"

"뭐야. 이해영의 요리교실?"

"아니야!!! 잘못튼거야!!!!"





 지훈이 수첩을 쾅 내려놓곤 우왁스럽게 채널을 돌렸다. 삑삑 거리며 몇번이고 돌리나 싶더니 정착한 채널이 어린이 만화채널. 그에 또 당황한 지훈은 다시 채널을 돌렸고, 간신히 정기방송 채널에 안착할수있었다. 요즘 마트 물가 시세가 올랐네마네 하는 뉴스였다.





"이거보다가 잘못눌러서 넘어간거야!"

"...................예."

"...........너 지금 못믿지."

"그럼 지금 뭐 쓰시던건데요?"

"..............어?"

"그 수첩 줘봐요."

"이걸 네가 왜 봐!"

"아 볼수도 있지! 남자가 진짜!"





 태일이 냉큼 일어나 지훈에게로 향했다. 뭔가있다. 김치를 썰고 지지고볶던 요리프로그램과 저 수첩. 그리고 표지훈. 뭔가 분명히있다 생각하며 태일은 수첩을 뺏어들려 몸을 날렸다. 지훈이 뭐라 반항도 하기전에 태일의 승이었다. 태일은 제 손에 들린 보라색 작은 수첩(태일이 언젠가 잃어버린 수첩이었다.)을 얼른 펴들었다. 지훈이 제 옆에서 내놓으라 어쩌라 발악을 하던 상관은 없었다.





"호박, 양파, 두부, 김치."

".................하."

"아침. 너무 작다. 특별식? 이게 뭐에요?"





 뭐긴! 지훈의 얼굴이 붉어졌다. 사실 오늘 아침도 태일보다 일찍 깨버린 지훈이었다. 말똥말똥 시계를 바라보니 아홉시 삼십분. 곤히 자고있는 태일을 보다, 제가 어제 먹인 아침이 생각나버렸다. 그럼에 미소가 가득 피어오르는터라, 기분 좋은일 두번더하면 더했지 못할건 뭐있냐 자신을 합리와 시키며 지훈은 다시 냉장고를 열었다. 그런데 없다. 태일의 머리통마냥 둥굴둥굴하던 달걀도, 뭐도 없이 텅텅빈 냉장고를 보며 지훈은 허탈함을 숨키지못했다. 게다가 얼떨결에 본 달력은 오늘이 일요일임을 알려주고있었다. 저 작은 남잔 일요일엔 출근하지않는다.


허나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라했던가. 지훈은 찬장까지 모두 뒤지다 결국 식탁위에 올려져있는 신문까지 뒤지게되었다. 그러다 발견한것이 바로 새 방송 편성표. 일요일 10시 첫방송이라 써있는 '이해영의 요리교실.'은 지훈의 눈에 차기 충분했다. 지훈은 태일의 책상 아래 떨어져있던 수첩과 펜을 집어들고 티비를 틀었다. 마침 오프닝 방송중이었다. 


광고를 보며 지훈은 몇글자를 수첩에 끄적였다. 이태일? 쓰려다 말았다. 언젠가 보게 된다면 큰일날 일이니까. 처음으로 쓴 단어는 아침. 그래 아침을 먹여야한다. 너무 작으니까. 너무 작다. 제 특별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특별식.


여기까지 쓴 지훈은 흡족함에 씩 웃었다. 마치, 제가 어릴때 보던 요리왕 비룡의 비룡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딱좋았다. 방긋방긋 웃으며 '안녕하십니까 이해영입니다~'하며 나타난 여자의 하이톤은 스트레스를 불러왔고, 달걀 하나만으로 충분할거라 생각했던 제 생각을 무참히도 밟아버리는 저 이해영이란 여자의 멱살을 잡아버리고싶을지경이었다.


호박에 양파에 두부에 김치에. 무슨 직장인을 위한 간단 십분요리에 저리도 많은 재료가 들어간단말인가. 게다가 손질하는 모양새를 보자하니 저는 죽어도 못할것같았다. 그렇게 포기하려던 참에, 지훈은 벌떡 일어난 태일로 인해 심장이 저 깊히 쿵 가라앉는듯 싶었다.





"별거 아니야!"

"설마......아까 그거보고......."

"아니라고!! 내놔!"

"그럼 뭔데요! 뭔데 아침부터 호박이고 양파고!"





 지훈의 눈에, 티비에 크게 적힌 문구가 들어왔다. '마트 물가 대상승.'





"내,내가 마트가서 사고싶은거 쓴거야."

"...............예?"

"난 호박,양파,두부 이런거 생식 많이하잖아. 그런거 마트에서 내가 사보고싶어서말이지."

"......무슨 소리에요 그게."

"난 잘나서 마트고 뭐고 가본적이 없다고. 그냥 언제고 가면 사고싶은거............"





 말도 안됀다. 지훈은 제가 지껄인 말들에 그대로 바닥에 코박고 죽고만싶었다. 차라리 취미라 하면 더 고상했을것을. 명색이 탑 모델이란 작자가 마트에가서 사고싶은것들을 적어놓는다니. 그것도 호박 양파 따위를! 분명 태일은 속으로 저를 비웃고있을것이 분명했다. 그냥 사실대로 말할까 싶다가, 말을 안하는게 상책이라 결론짓고 지훈은 태일의 손에 들린 수첩을 뺏어들었다. 태일은 아무힘없이 수첩을 다시 돌려주었다. 이런 반응에 더 죽어버리고만싶었다. 다 네 아침해줄라고 그런거다. 이 말은 두번 죽어도 못하겠지만.





"...........마트 가본적이 없다구요?"

"갈시간이 어딨냐. 그리고 잘나서 그런덴 안가."

"그런데 가보고싶다는건 뭐에요."

".........서민체험! 뭐 그런거지!"





 여기까지 말한 지훈은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래. 이대로 가면 묻을수있겠다.





"..........표지훈씨."

"어어."

"...................가보실래요?"





 뭐?





"마트요."





 지훈의 얼굴이 굳어들어갔다.





"가요 마트. 꽁꽁 싸매고."










 태일은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죽을지경이었다. 볕 잘들어오는 버스 뒤에서 두번째 자리. 제 옆에서 모자고 마스크고 꽁꽁 싸맨 지훈의 모습이란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스파이나 자객같은 모양이라 웃음이 참아지질않았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마트에 가보고싶다 하던 지훈의 말은 태일에게 약간의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태일이 여린면이 없지않아 꽤있는것도 이유였지만, 같은 대한민국 사람으로써 몇백미터 내에 마트 하나씩 있는 땅에서 마트 한번 못가봤다는건, 태일에겐 큰 의미였다. 말그대로 체험시켜주고싶었다. 보통 사람들이 연예인과 모델들의 스케줄을 보며 다른세계 사람이라 부러워하곤하지만, 그들에게도 역시, 제가 사는 패턴이 다른세계임은 분명했다.





"나 이러다 들키면 어떡해."

"지금 누가봐도 탑 모델은 아니니까 걱정하지마요."

"이러다 파파라치 컷 같은거 찍혀봐야 정신차리지 네가."

"아까 거울 못봤어요? 지금 표지훈의 표씨도 안보이니까 걱정하지마요. 그리고 목소리 좀 낮춰요. 표지훈씨 목소리 모르면 그게 대한민국 사람인가."





 가는 내내 투닥투닥이었다. 나갈 준비하라는 말에 지훈은 아닌것같단 소리만 골라하면서도 표정은 밝아져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지훈이 옥탑방에 들어와서 가본곳이라곤 옥탑의 평상이 전부였으니. 간만에 사회로 나간다는 말에 지훈은 아주 들떠있었다. 제 캐리어를 뒤적거리나 싶더니, 검은 정장바지에 셔츠를 꺼내입는걸 태일은 몸을 던져 막았다. 지금 런웨이 가는거 아니니 평상복으로 입으라하자, 이게 제 평상복이네 뭐네 투덜거리는게 앵간히도 시끄러웠다.


결국 흰티에 청바지. 그런데 모델인 덕인지 그것마저 튀어보였다. 그래도 어쩔수없기에, 제 캡모자를 지훈의 머리에 눌러씌운 태일은 밖으로 나왔다. 마스크까지한 지훈은 언뜻보면 고등학생같았다. 완벽했다. 이대로라면 누구도 표지훈임을 눈치챌수없을것같았다. 그게 태일만의 생각이란걸 알아채기까진 한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성인 둘이요. 버스비를 내고 이십분여를 달려갔다. 버스도 거의 처음 타본다는 지훈의 눈은 장난감을 보는 어린애마냥 번떡거리고있었다. 정차벨을 누르는 사람들을 보며 '나 내릴땐 내가 누른다.'하더니, 결국 어떤 초등학생에게 뺏겨버리고말았다. 제가 누르기도전에 삐-울리는 정차벨을 멀뚱히 바라보다 투덜투덜 내리는것까지 태일은 안웃을래야 웃지않을수없었다.


마트 안까지 무사히 들어갔다. 사람들은 관심도 없었다. 그 사실에 태일은 흡족해하며 지훈에게 백원을 건냈다. 잘 보이진않았으나 지훈의 눈썹이 꿈틀거렸음은 분명했다.





"뭐야."

"카트 뽑아와요."

"................뭐?"

"저기다 동전 끼워 넣으면 뽑아져요. 한대 가져와요."





 서민체험한다면서요. 지훈은 백원을 받아들곤 휘적휘적 카트로 향했다. 그래. 이게 백원이란 말이지. 이 큰것이 백원이란 사실에 지훈은 놀라지않을수없었다. 옆사람이 카트 뽑는걸 지켜보던 지훈은 저도 냉큼 하나를 뽑아들었다. 신기했다. 작년 런웨이 대기실에서, 한 모델이 가지고놀던 헬륨 니모모형보다 더 신기했다. 제 몸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카트를 끌고 태일의 앞에 가자, 태일은 잘했다는듯 씩 웃어보였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간만입니다! 빨리 오지못해 죄송해요..

뭉텅뭉텅 올리는 악남인만큼 오타도 많고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것만으로도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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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마제님ㅜㅜ마제님은제게늘보고싶은분이셔요!!!!!!!!!!인티에올려주시는거다시재탕하니깐색다르네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역시마제님!!!내사랑듀번머겅!!!계속머겅!!!!♥♥♥♥♥
12년 전
독자2
헐 마제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사랑해여 격하게 사랑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독자3
항상 사랑합니다.. 똘기충만한 우죠가 ㅇ순수한 이탤 좋아하는거 보면 아쥬구냥 수니는 발려주거여... 하.. 코일 오일. 태일이는 어찌보면 무뚝뚝하면서 챙길거 챙겨주는 지훈이가 점점 좋아지나보네요ㅋㅋㅋㅋ지훈이 있는 옥탑방에 가고 싶다 이 비슷한 문구에서 맘이 쿵쾅쿵ㅇㅇ쾅..
12년 전
독자4
아 마제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님 블로그에 올리신거 보고 한동안 제가 컴퓨터를 못해서 못봤는데 이렇게 글잡에서 뵈니 감회가 새롭네요.ㅠㅠㅠㅠㅠ 자주 와서 글잡 좀 활활태워주세요.ㅠㅠㅠ 우지호는 제가 루팡합니다.ㅠㅠㅠㅠ어이구 우쭈쭈 우리태일이.ㅠㅠㅠㅠㅠ 표지랑 너무 잘 어울리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건필하세요!
12년 전
독자5
헐..........우지호캐릭터 씹덕터지네요ㅜㅜㅜㅜㅠㅠㅜ태일이도 표지훈도ㅠㅠㅠㅠㅠㅠㅜ
12년 전
독자6
블로그연지ㅢ하는거봣어요ㅠㅠ진짱.....ㅈㄴ경해영ㅠㅠ
12년 전
독자7
아 ㅠㅠㅠㅠㅠ재밋어요 ㅠㅠㅠㅠ 매일 이거 올라오면 챙겨바요!!
지훈이 걸려요..? ㅠㅠㅠㅠㅠ 다음편 너무궁금해여!! 다음편기다리고잇을게요!!
잘보고가여^^

12년 전
독자8
파일불러올수없데요ㅠㅠㅠ
11년 전
독자9
언제오세요ㅠㅠ
11년 전
독자10
새벽에 잠이 안와서 정주행 했는데ㅠㅠㅠㅠㅠ 너무 재밌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돌아오세요 작가님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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