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 늑대소년
W. 마카
"아저씨, 이것 좀 옮겨줘요!"
다들 분주하게 무거운 짐을 집 안으로 나르고 있었다. 끼익 끼익. 별장의 오래된 그네에 앉아 경수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초겨울의 날씨에, 양 볼이 살짝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다 익숙한 상자가 낯선 남자의 손에 옮겨지는 모습에, 경수는 그네에서 발딱 일어나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제가 할게요."
네?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던 남자가 이내 경수에게 상자를 건내주었다. 다시 그네로 돌아가 앉아 경수는 빛바랜 상자 위로 뿌옇게 이는 먼지를 옷소매로 대충 닦아내었다. 제일 소중한, 그러나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았던.경수는 다시 한번 상자를 여는 손길을 거두었다.
"경수야, 저녁 먹어야지."
"아니, 됐어."
"배 안고파?"
"피곤해, 잘래."
이삿짐을 정리하고 나니 벌써 해가 진 후 였다. 저녁을 거른 경수에게 늦은 저녁을 권하는 엄마의 말에, 경수는 생각없다는 듯 가슴께까지 놓여있던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 올렸다. 벌써 일년 동안 제대로 밥을 먹어본 게 손에 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경수를 말 없이 바라보던 경수의 엄마는 이내 다시 방문을 닫고 나갔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에, 경수는 감았던 눈을 뜨고 멍하니 까만 천장 위를 바라보았다. 서울에선 듣지 못했던 풀벌레 소리가 창문 너머로 새어들어왔다.
멍하니 아무 생각도 안하고 있으니 불현듯 그날의 기억이 또다시 경수를 덮쳐왔다. 마음 속에 자리한 트라우마가 밤처럼 까맣게 물들어 채 아물지 못한 상처 새로 새어나왔다. 어쩌면, 그 일만 아니었다면 엄마를 다시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시골 구석으로 쫓겨나듯 내려올 일도, 학교를 그만 둘 일도. 그 일만 아니었다면. 아니었다면.
아주 어렸을 때 경수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그 때엔 자신의 손을 잡고 한 없이 울다 '경수야, 미안해.' 라는 말만 남긴채 돌아선 엄마의 등 뒤에서 그 어린 나이에도 그것이 어렴풋이 이별이란 것인 걸 알고 빽빽 울었던 기억 뿐이었다. 그 이후로, 주욱 그것이 경수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경수는 아빠와 살게 되었다. 경수의 집안은 대기업 간부인 경수의 아빠 덕에 평범한 사람이 보았을 때도 부러워 할만큼 굉장히 잘 사는 집안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명예를 중요시 했던 경수의 아빠는 형인 승수와 경수에게 엘리트의 삶을 강요해왔다. 원래부터 타고나길 아빠를 닮아 머리가 비상한 승수는 그것을 곧잘 따랐다. 형인 승수는 항상 인정받았다. 그러나 아무리 죽을 만큼 노력해도 경수는 절대 승수를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경수를 경수의 아빠는 항상 질책하기만 했다. 그래도 경수는, 절대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그가 자신을 형처럼 인정해 줄 것이라, 사랑해 줄 것이라 믿었다. 그저 믿고 또 믿었다. 경수에겐 그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17살이 되던 해. 1년 전,
납치를 당했었다.
그 날의 기억은 아무리 벅벅 씻어내려해도, 잊어내려 해도 너무나 뚜렷이 떠올랐다. 늦은 야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입을 틀어 막아오던 커다랗고 투박한 손. 위협하듯 배 께로 다가온 차가운 칼. 귓가에 느껴지던 거친 숨소리.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크기의 두려움과 공포감에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러다 풀려난 것은 일주일 만이었다. 일주일 동안 작은 빛만 겨우 새어들어오는 창고에 갇혀 이제 자신을 덮쳐 올 죽음이란 것에 무감각해질 즈음 창고의 문이 열렸고, 누군가 '여기있습니다!' 라고 외치며 자신에게 다가온 것을 마지막으로 기절했었다.
그 이후로 1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경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을 하든,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예고도 없이 갑자기 자신을 불쑥불쑥 덮쳐오는 그 날의 기억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학교도 나갈 수 없었다. 그렇게나 어렵게 들어갔던 명문고를 단 그 날의 사건 하나만으로 자퇴해야만 했다. 경수는 자신을 위로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나 누구도 경수에게 손을 뻗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경수의 형과 아빠마저도 그런 경수를 외면했다. 경수의 아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돼버린 경수를 오랫동안 떨어져 살던 경수의 엄마에게 맡겨버리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버렸다. 그것은 그 날의 공포감, 몇 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절망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의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자신은 그저 사랑받고 싶었을 뿐인데, 사랑받고 싶어할수록 커다란 세상은 경수를 짓눌러왔다.
방 안의 모든 것이 우울함이 되어 경수를 덮쳐왔다. 안의 뜨거운 것이 폭발하듯 우겨져 나왔다. 꾸역꾸역 눈물이 차올라 쉴새없이 터져나왔다.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경수는 한참을 꺼억꺼억 울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우울감, 절망감, 자괴감에 숨이 막혔다.
나는 끝났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난 아무것도 못하잖아. 어디에도 쓸모없는 인간이잖아.
새로 산 베갯잎이 눈물로 천천히 젖어갔다.
'쾅!'
그 때, 갑자기 밖에서 무언가 내리치는 듯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울음을 그친 경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 밖을 바라보았다. 울다 지쳐 바툰 숨이 간헐적으로 새어나왔다.
'쾅!'
또 다시 큰 소리가 났다. 이제는 침대 아래로 내려온 경수가 창문 께로 다가가 밖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또 다시 한 번 큰 소리가 났다. 분명 창고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제는 놀라 눈물도 그쳐있었다. 경수는 두려우면서도 무언가에 이끌리듯 의자에 걸쳐져있던 외투를 집어들었다.
저벅저벅. 조용한 밤공기에 마당의 자갈을 밟는 소리가 울렸다. 경수가 창고 쪽으로 다가갔을 때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창고 문 앞에 서서 경수는 문고리 께로 가져간 손을 주춤거렸다. 그러다 이 상황이 마치 일년 전 자신이 갇혀있던 창고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아 온 몸으로 소름이 돋았다. 혹시 저 안에 누군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날의 자신처럼 누군가가 기적처럼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끼익. 잠금쇠를 여는 손길이 떨리고 있었다. 덜컥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가 나고 경수는 애써 떨리는 손길로 조금씩 문을 밀었다. 어쩌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분이 바로 이런 기분일 것 같았다.
"..."
작게 난 창문으로 새어들어오는 희미한 달빛만이 폐쇄된 창고 안을 비추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빛에 눈을 가늘게 뜨고 안을 살펴보았다. 무언가 있는 것만 같은데 그것이 실제인지 허상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하!"
그리고 순간, 까만 어둠 속에서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온 몸이 뻣뻣하게 굳어 한 발자욱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악!!!!!!!!!!!!!!!!!!!!!!!!"
순식간이었다. 사람인지 짐승인지도 모를 무언가가 경수를 덮쳐왔다.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누운 경수의 위로 올라탄 그것은 팔 사이에 경수를 가두고 새액새액 거친 숨을 내쉬었다. 달을 등지고 있어 얼굴에 진 그림자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경수는 어렴풋이 그것이 사람임을 깨달았다.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으며 경수는 애써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누, 누구세요."
입을 틀어막은 손을 살짝 끌어내린 경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없이 그것은 번뜩이는 눈으로 경수를 잡아먹기라도 할 듯 노려보고만 있었다.
"도련님, 거기 도련님이세요?!"
그때, 경수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별장지기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손전등이 경수가 있는 쪽을 비춰왔다. 갑자기 비춰진 빛에 눈을 찌푸린 경수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여기, 라고 말을 하려던 순간, 그것이 풀썩 경수 위로 쓰러져왔다. 귓가로 바로 들려오는 낯선이의 숨소리에 놀란 경수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마카입니다 :) 글잡에 단편글 한번 올리고 영영 장편 연재는 꿈도 못 꿀거라 생각했는데, 늑대소년 보고나서 이건 꼭 써보고 싶단 생각에 쓰게 되었네요..ㅎㅎ
늑대소년은 10~15편 정도에서 끝낼 예정입니다. 너무 길게 끌면 제 성격에 결말은 꿈도 꿀 수가 없ㅇ...
아, 여기서 종인이는 늑대인간은 아닙니다. 다만 사회성이 결여된 소년일 뿐입니다. 이에 대해선 나중에 밝혀질 예정입니다 ㅋㅋ 그때까지 읽어주시려..나ㅠㅠ
오늘은 1편부터 올리지만 사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다 짜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한 걸 이제 설정해야 되는데 성급한 마음에 1편부터 올리게 되었네요.
아마 2편은 다담주에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ㅜㅜ 그렇다고 절 이,잊지는 마,말아주세요.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ㅠㅠㅠ 인티회원분들도 비회원분들도 모두모두 감사해요 하트!!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