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하고 봉곳한 이마를 보고싶어 살포시 덥혀져 있는 머리카락을 옆으로 조심히 넘겼다. 그러자 진하고 곧은 눈썹과, 환하고 매끈한 이마가 보였다. 반짝반짝 빛나는게 하얀 달덩이 같아 눈이 부시다. 조용히 감겨져 있는 눈과, 눈아래로 그늘이 질 정도로 길다란 속눈썹까지. 밑으로 시선을 내리면 오똑한 콧대와 부드러운 콧망울까지. 또 우아하게 올라간 입꼬리 까지. 얜 왜 이리 고상하게 생겼대? 전혀 이쪽으로 종사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은데. 부잣집 도련님처럼 생겨가지고 말이야. 어제는 팀장한테 욕이나 들어먹고.
준영은 소리없이 입꼬리를 올려서 미소를 지으며 로이를 바라보았다. 곤히 잠자는 로이의 이마를 쓰다듬던 준영의 손가락이 콧등을 타고 콧망울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로이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 졌다가 다시 반듯하게 펴졌다. 그런 로이의 얼굴을 바라보던 준영은 고개를 숙이고 소리없이 쿡쿡 웃었다. 재미가 들린 준영은 대담하게 로이의 고상한 입술을 엄지와 검지로 쥐었다. 입술이 오리 주둥이처럼 툭 튀어나와 있다. 또 준영은 고개를 숙이고 푸흐흐 웃어댔다. 준영에게, 반듯한 로이의 망가진 얼굴을 보는것은 긴장 가득한 하루에서 꽤나 웃음을 줄 수 있는 부분이였다. 웃음이 멈추지 않아 끅끅대던 준영은 호흡을 정리하고 고개를 들었다.
"므하시는검미까"
"아..깼어?"
"나즈세여"
고개를 들니, 자신을 째려보는 동그란 눈이 있었다. 잠을 깨 버렸네. 그래도 우물거리는 얼굴이 계속 생각나 준영은 웃음을 꾹꾹 참았다. 입술에서 손을 떼자 자신을 한참동안 째려보던 로이는 대충 굴러다니던 물병을 들고 물을 삼켜댔다.
벌써 삼일째다. 안씻은지도 삼일째이다. 삼일동안 먹은 것은 편의점 김밥. 빵. 컵라면. 제발 뜨뜻한 흰 밥과 고추넣고 얼큰하게 끓인 김치찌개 먹고싶다. 반찬도 필요 없어. 삼일동안 이 좁은 차 안에서 눈이 시뻘건 채로 노려보고 있었다. 진짜 형사란게 할 만한 직업이 아니다. 로이는 몇년전 학생일때, 형사를 꿈꾸고 동경해 오던 자신을 기억 해 냈다. 반짝반짝하고 이쪽을 바래오고 원하던 그때. 하지만 지금은 미쳤나 싶다. 로이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힘들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얼굴에 다 적혀 있구만."
준영이 반달로 곱게 휘어진 눈으로 로이를 바라보았다. 힘들지? 힘든거 다알아~ 나한텐 솔직히 말해두 되. 응? 힘들다고 말해봐봐 준영은 싱글싱글 웃으며 로이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로이는 그런 준영을 힐끗 보고는 계속 유리창 밖을 쳐다보았다. 어두운 골목길에 가로등만이 희미하게 켜져 있어 그나마 골목길의 형태는 보이는 듯 했다. 저 가로등 앞의 낡고 허름한 모텔이 준영과 로이가 잡으려 하는 녀석들의 아지트라고 들었다. 녀석들은 주로 한국으로 넘어오는 조선족이나 불법 체류자들,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아서 성매매를 주선한다고 들었다. 질이 나쁜 녀석들이다.
"뭐야 삐진거야? 응? 로이야?"
"아닙니다. 그만하시죠"
"로이야~응? 삐진거야? 흐흐"
준영은 베실베실 웃으며 로이의 코끝을 손가락으로 통통 건드렸다. 로이는 귀찮은 듯이 얼굴을 돌려서 창밖을 주시했다. 그순간. 가로등의 희미한 빛으로 빌딩의 가장 어두운 부분이 흐릿하게 비추어 보였다. 무언가 성인 남자의 크기마한 실루엣이 비추어 졌으며, 그 그림자는 모텔 옆 회색 콘크리트 담을 넘으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갑자기 눈이 커진 상태로 한곳을 주시하는 로이를 따라 준영도 그곳을 보았다.
"놈들입니다!"
"쉿! 지금부터 말은 최소한으로 하고. 놈들의 뒤를 조용히 밟아"
"하지만.. 저렇게 이동하는걸 보아, 녀석들은 우리들의 존재를 눈치 챈 것 같은데.."
"그러니 더욱더 조심하는거지. 자, 나가자"
덥지 않고 서늘한 가을 밤바람이 옷 소매 안으로 새어 들어왔다. 벌써 저 먼저 앞서고 있는 준영의 뒷통수가 보였다. 로이는 발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준영의 뒤를 따랐다. 준영과 로이는 조용히 빌딩 옆 커다란 기둥 옆에 기대어, 녀석들을 지켜 보았다. 170cm 정도의 빼빼마른 남자와, 180cm대의 건장한 체격의 성인남자. 키가 작은 남자는 키큰 남자의 도움을 받아 담을 넘고 있었고, 키큰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살피고 있었다. 로이는 그 가로등의 불빛에 희미하게 비춰지는 키큰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 얼굴은 사진으로 넘겨받은 5명중 한명이였다. 로이는 작게 준영에게 말했다.
"저 키큰 남자. 용의자 방재국이 맞는것 같습니다. 나이는 29살이고, 전과가 많은 녀석입니다. 저번에는 마약 혐의로 경찰에 자주 왔다갔다 하던 녀석입니다."
"지금이 확실히 붙잡을 수 있는 기회야. 내가 주의를 끌테니, 너는 그동안 가까이 다가가서 붙잡아. 저 키큰 녀석을 잡아야 해."
로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커다란 기둥에서 모텔의 지하 주차장 모퉁이로 조용히 이동했다. 됬다는 사인을 받은 준영은 한손에 수갑을 들고 기둥에서 나와 둘을 향해 소리쳤다.
"야이 새끼들아!! 조용히 말할 때 하던 짓 그만하고 일루와라!!"
"아시발"
두 남자의 시선이 준영에게로 몰렸다. 키작은 남자는 이제 막 담 위에 올라서 내릴 시도를 하고 있었고 키큰 남자도 따라서 넘으려고 다리를 걸쳐 둔 상태였다. 준영이 그들에게로 뛰어가자, 키큰 남자는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걸쳐 둔 다리를 내리고 로이가 있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점점 자신에게로 뛰어오는 로이는 심호흡을 하였다. 빠르게 뛰어오는 남자 뒤에는 준영이 전력으로 뛰어 오고 있었다. 엄청난 긴장감에 손발이 조금씩 떨려왔다. 주차장인 이곳으로 뛰어 오는 곳을 보아, 저 키큰 남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 같았다.(주차장에는 오토바이 뿐이였다.) 원래는 두명이서 오토바이를 타고 떠날려고 했지만 우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빠져나가려고 했던것 같다. 점점 가까워져 1m도 남지 않았을때. 로이는 모퉁이 밖으로 자신의 발을 슬쩍 뻗었다. 그리고 딱 알맞은 타이밍에 남자는 로이의 다리에 걸려 큰 소리를 내며 굴러 넘어졌다.
"펄펙트!!잘했다 로이야! 빨리 잡아!"
"선배!!!! 수갑은 선배가 가지고 있잖아요!!!"
자신에 주머니에 있어야 할 수갑이 없다는걸 깨달은 로이는 당황했다. 넘어진 남자는 벽에 부딪혀 정신을 못차리고 있지만 곧 도망칠것만 같았다. 급한 로이는 남자의 두 팔을 잡아서 못가게 할려고 손을 뻗은 순간, 무식하게 휘저은 남자의 주먹에 왼쪽 뺨을 강타 당했다. 빡! 하는 소리에 놀란 준영은 그대로 뛰어와, 남자의 팔을 붙잡고 꺾어서, 못움직이게 만들었다. 업치락 뒤치락 거리는 둘을, 정신을 챙긴 로이가 붙어 겨우겨우 팔에 수갑을 채웠다.
"괜찮아??"
"괘..괜찮습니다."
"보자. 입에서 피나잖아??"
"이정도는 별거 아닙니다. 그것보다 나머지는요?"
"뭐?"
"키작은 남자가 한면 더 있었잖습니까"
"아 또 욕먹게 생겼네"
준영은 다시 담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담 위로 올라가서 담 뒤로 허름하게 빼곡히 세워진 건물들 사이사이를 바라 보았다. 아무런 사람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준영은 절절한 한숨을 쉬고 로이에게로 돌아왔다.
"이미 도망쳐 버렸어. 일단 얘만 데려가 보자."
"또 혼날겁니다.."
"까짓꺼 그냥 욕 듣고 말지.. 차 안으로 들어가자. 내가 밴드 붙여 줄게"
뒷자석에 남자를 앉혀 놓고 준영과 로이는 앞자석에 앉았다. 그래도 드디어 씻고 밥먹을 수 있겠네. 준영은 씁쓸히 웃음을 지으며 로이의 입술에 연고를 발랐다. 약간 쓰라린지 로이가 인상을 찌푸리자, 준영은 욕을 해 댔다.
"저 개자식이.. 때려도 얼굴에 때리냐. 하여튼 무식한 것.. 괜찮아 로이? 더 아픈 덴 없어?"
"뭘 이거갖고 그러십니까.. 전 괜찮습니다."
"말했잖아. 너 다치는거 보기 싫다고.."
"...조금 오글거립니다."
그지? 준영은 히히 웃으며 로이의 입가에 밴드를 붙였다. 로이도 숙쓰러운 듯이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선배는 다친 곳 없습니까? 나 여기 아퍼어. 어디 봅시다. 여기 관절이 욱씬하다 야. 어디.. 이렇게 누르면요? 아아아아아 아퍼아퍼. 흠.. 부서진것 같진 않고.. 조금 근육이 긴장한것 같습니다. 로이가 주물러 줘. 하여튼.. 이리 대 봐요. 아아아 시원하다 거기거기.. 이렇게 말입니까? 아아 시원해~
"지랄하네. 둘이 연애하냐?"
뒷자석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로이는 아차 싶었다. 뒤에 사람이 있었구나. 방금 붙잡힌 남자는 앞좌석에서 서로 알콩달콩 어깨를 주물러 주는 둘을 맨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콧방귀를 뀌었다.
"다..닥쳐 이자식아..!"
"선배. 출발하겠습니다"
당황해서 빨갛게 얼굴이 익은 준영과, 얼굴은 평소같지만 귀끝이 시뻘건 로이는 기침을 하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자알 하는 짓이다 그래. 내가 둘다 데려오라고 했지 한명만 데려오라고 했냐"
"최선을 다했거등요..?"
"시끄러 인마. 야 로이. 너는 애가 빠삭하게 할 줄 알아야지. 신입이라고 좀 봐줬더니만 이러면 안되지. 어?"
"죄송합니다"
"아 로이한테 왜그래요~ 제가 잘못 한거에요. 제가 주도했어요 로이한테 뭐라 하지 말아요"
"둘이 아주 그냥 사귀냐? 넌 뭘 잘했다고 감싸줘 이자식아"
그 마지막 말에 준영과 로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땅만 쳐다 보았다. 그 이상애매한 반응에 놀란 반장은 '아니 이새끼들 뭐야 뻘쭘하게' 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이상미묘해진 분위기에 반장은 헛기침을 했다.
"흐..흠! 어쨌든 이쯤하고. 잡아온 녀석 심문하고. 들어가 봐"
"감사합니다"
"기죽을 필요 없어. 우리 김치찌개나 먹으러 갈까?"
"...괜찮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얼굴이 영 아니네"
"아닙니다..."
"웃어봐 로이. 응?"
준영은 얼굴에 주름 가득 웃으며 로이의 얼굴에 들이댔다. 로이의 입꼬리와 눈꼬리가 축 내려가 누가봐도 이건 기죽은거나 다름없는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준영은 로이가 귀여워서 실실 웃으며 손가락으로 로이의 볼을 쿡. 찍었다. 말랑말랑하고 보드랗다. 이거 정말 형사 맞아? 이렇게 곱상하고 귀엽고 부드러운게.. 어느새 멍하니 로이를 바라보고 있던 준영은 자신을 내려다 보는 로이와 눈이 마주쳤다. 로이의 크고 축 처진 강아지 같은 눈망울에 준영은 가슴 언저리가 간질간질거렸다. 저 선명한 눈자위에 크고 빛나는 보름달처럼 자리잡은 눈동자. 둘은 마주 본 채로 아무 말이 없었다. 거칠고 건조한 나의 인생에 꿀을 가득 머금은 물이 흘러 내리는 것만 같다.
로이의 얼굴은 아주 잘 자리잡은 꽃처럼 어느하나 어색한 곳이 없다. 로이의 뒤에 비쳐오는 햇살은 따뜻하게 갈색 머리를 비추었다. 눈썹에서 콧대를 타고 이어지는 입술의 끝까지. 순진하지만 자존심 있는 짙은 눈썹. 단정하고 하나의 선으로 그어진 눈꺼풀. 고상하고 새침하게 올라간 입꼬리까지. 심지어 가까이 있어 느껴지는 로이의 숨결까지 모든게 달콤하고 따스하고 어울린다.
준영은 한껏 취한 눈으로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이 없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던 로이는 헛기침을 하며 멋쩍은 듯이 고개를 돌려 볼을 긁었다. 저사람의 시선이 얼굴을 간지럽히는것 같단 말이야. 그리고 빨개진 로이의 귀끝을 본 준영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빨리 밥이나 먹어요.."
"그래."
"그러니까 그게 조직과 연관 되있다 이거지?"
"네. 그 다섯명이 사람들을 구해오면 조직에서 운영하는 유흥업소에서 성매매가 이루어진다. 라는 것입니다."
"그럼 그 유흥업소라는건 뭔데? 구체적으로"
"주로 나이트 클럽안의 룸에서 이루어 집니다."
"누구랑 하는건데 도데체? 누가 찾아와?"
"...확실한건 아니지만, 음.. 윗쪽에서 일하시는 분들. 이라고 하는 목격자가 많습니다."
"위쪽?.. 그럴줄 알았어. 미친 새끼들. 지들 챙길껀 챙기고 즐길껀 즐긴다 이거지."
"조금 일이 어렵게 돌아갈것 같은데요...?"
"검사 측에선?"
"이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진행하려는 자세가 보이지 않아요.. 추측이지만.. 아마도.. 이미 깊이 알고 있어서. 발을 담그려고 하지 않은것 같아요."
"...이미 알고 손 뗏다 이거지? 보아하니 뭐라도 받았나 보지? 에라이 썩을."
대한민국이란게 여전 할 수 밖에 없어. 이렇게 윗대가리들이 썩는데 밑에놈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 준영은 욕짓거리를 하면서 흰 쌀밥에 숟가락을 박았다. 로이는 탐탁한 표정으로 흰 쌀밥을 입안에 넣었다. 그래도 몇일만에 먹는 밥은 맛이 제맛이다. 그리고 지금 집안에서 혼자 있을 강아지 산쵸가 생각났다. 늙어서 밥 챙겨줘야 하는데 누나가 잘 챙겨줫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밥먹고 힘을 내야지 일을 하든 말든. 이라는 생각이 들어 로이는 밥을 입안에 퍽퍽 쑤셔 넣었다.
"아 이집 김치찌개가 제일이지...풋"
"...왜그러십니까?"
"진짜 이럴때가 가장 좋다니깐"
준영은 웃으면서 숟가락을 쥔 손을 놓고 로이의 얼굴에 가져가, 턱에 있는 쌀 한톨을 떼어냈다. 칠칠맞게 먹고 있어. 그리고 그 하얀 쌀 할톨을 로이의 입술 안에 넣어 주었다. 말랑하고 뜨뜻하게 느껴졌다. 이정도는 혼자 할 수 있는데. 로이는 부끄러워져 고개를 숙였다.
"말해주시면 저혼자 할 수 있었는데.."
"밥 많이 먹어~ 우리 열심히 해보자"
"...네"
로이는 숟가락에 국을 가득 떠서 호호 불어 삼키는 준영을 힐끔 쳐다보았다. 지금은.. 전혀 알 수 없다. 그냥 이상 미묘한 관계인건가 아니면 그저 선후배 관계인건가. 약간은 꼼지락 거리는 가슴을 느끼며 로이는 국물을 삼켰다.
-
연재 아니에용.. 그냥 올려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