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설마 ㅎㅎ.., 나도 내가 무섭지만 지민이 봐줄 사람이 나밖에 없는걸 어떡해.."
"너무 걱정하지말어, 그냥 감기니까 우리가 너한테 맡겨놓고 가지. 어디 감기 한번도 안 걸려본 애기들도 아니고~ 오호홍"
...저기 님, 방금은 또 걱정되신다면서요...;;
"어머, 얘. 나는 그것보다 탄소랑 지민이가 싸울까봐 걱정이야."
..설마요.. 아줌마...ㅎㅎ (feat.나도 날 잘 몰라- )
"지민이가 아프면 어린애가 돼서 여기저기 다 들러붙고 다니거든. 탄소가 오늘 좀 고생할거다, 호홍."
왜 저 두 사람은 항상 날 약올리는 거지, 망할.
근데 박지민이 아프면 막 치대고 다닌다고..?? 전혀 안 그랬던 거 같은데..
"탄소는 처음이지? 우리 지민이가 옛날부터 자기 아픈 건 너한테 절대 안 보여주겠다고, 얼마나 찡찡거렸는데~ 탄소 앞에선 애기 되기 싫다면서~ 오호홍, 그게 얼마나 웃겼는데. 오늘 강제 노출이네~ 호호호, 요 녀석."
..무서워, 웃으면서 아들을 수치사시키고 있어... 역시 비슷한 여인들이기 때문에 절친이 된 거였어...
"그럼, 우리 간다~ 지민이 잘 보구, 오호홍~"
**
오늘은 우리 집에 나말고 아무도 없다. 아, 한명 더 있다. 바로 아픈 망개다. 나머지는 다 제 할일 하러 갔다. 정국이네는 얼마 전 경품에 당첨된 제주도 가족 여행권을 쓰러 갔다. 우리 아줌마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자기네들은 내륙이라도 가야겠다면서 전주에 당일치기 여행을 하러 갔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밀린 덕질과 드라마를 해치우려 했다. 근데 망개가 아프다.
망(할) 개(자식)
뭐, 차라리 내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 아니면 누가 우리 아픈 망개 지극정성으로 간호 해주나? (뻔뻔)
그래서 오늘의 미션을 바꾼다.
이름하야 망개의 원기회복!
치대면 뭐 어때, 오히려 내가 더 챙겨줘야지! 내가 지민이 여자친군데! 여러분 저 지민이 여친이랍니다!!
여러분 여기 미친여자가 있어요.(속닥속닥)
쿠울-
어휴, 저거봐. 한겨울에도 반팔만 입고 다니니까 감기에 걸리지. 내가 널 어쩌면 좋니..
왜 아프고 그래, 속상하게..
이불이라도 덥고 자.. 왜 다 차고 자니...
침대 밑으로 떨어질 듯 말 듯 달랑거리는 이불을 제대로 고쳐잡고 얼굴 바로 밑까지 꼭 덮어주고 땀에 젖은 얼굴을 한번 쓸어주고, 아파서 부은 얼굴이 귀여워 내 두 손가락으로 가로, 세로 따지지 않고 볼을 이리저리 갖고 놀아본다.
..귀여워, 초 카와이야..
이건 찍어야 된다. 대박예감이야. 하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가져가려하니 무언가가 나의 손목을 잡고 일어나려는 나를 제지한다.
"..어디, 가려구..."
"잠시 폰만 가져올게, 괜찮지? 몸은 좀 어때?"
"..안 괜찮아, 가지마, 응? 가지마아.."
"..아니, 잠시 폰만,"
"갈 거야..?"
아니. 안 갈게.
박지민의 귀여운 붕어샷을 휴대폰에 남기는 걸 포기하고 공허한 마음에 침대에 털썩 앉으려 엉덩이를 내리다 침대에 몽롱하게 누워있는 박지민을 보곤 조심조심 궁뎅이를 안착시켰다. 손목을 붙잡고 있던 박지민이 손깍지를 껴오기 시작한다. 와, 뜨거워. 열과 땀이 뒤범벅 된 고사리같은 손꾸락으로 오물조물 내 손가락 사이에 끼우기 시작하는데, 또 그거만큼 미치게 귀여운 것도 없다. 좋아하는 선생님옆에서 안 떨어지려는 유치원생같애.
"어구, 우리 지민이, 선생님 안 갔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가지말까, 응?"
어이구, 귀여워라. 평소에도 이렇게 귀여우면 얼마나 좋아. 막 쓰담쓰담해주고싶어! 땀에 젖은 앞머리와 사투하고 있는 박지민의 얼굴을 막 쓸어재꼈다. 아, 깍지 낀 쪽말고, 반대손으로. 맨날 이마 쓸어재끼더니 이마가 훤칠해졌네? 이러다 탈ㅁ...
"니가 왜 선생님이야."
ㅇ..응. 미안. 안 할게. 까짓거 선생님 안 하면 돼지 뭐. 하하.
대머리가 되면 어쩌나 싶었는데 걱정해주기가 무섭게 제 얼굴을 쓰다듬던 내 손을 저의 여유로운 손으로 딱 잡아채더니 저, 저 무서운 얼굴로 저렇게 말한다.
젠장, 난 오늘도 디팬드를 안 찬 것을 후회한다.
양 두 손을 박지민한테 붙잡혔다. 한 쪽은 박지민 어린이의 귀여운 손깍지, 다른 한 쪽은 어른 박지민의 경고..?
하여튼, 저거 내가 애기 취급했다고 화난 거다. 쳇, 아프면 애기 된다면서.. 그것도 다 일회성이네.
"너 감기 옮아, 빨리 나가."
니가 손을 놔줘야 가든 말든 할거 아냐.
휴, 오늘도 아주 힘든 하루가 될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아까 침대 위에 있던 귀여운 어린이는 어디 갔을까. 보고싶다.
**
데우기만 하면 되는거지? 보자보자, 냉장고에 있다 했으니까안.. 아, 저기 있다. 와- 전복죽이네. 엄마는 딸내미 아플땐 야채죽만 끓여주더니. 참내, 누가 보면 박지민이 우리집 자식인줄 알겠다.
내 손에 꼬물꼬물 깍지 낀 애기 박지민과 힘으로 내 손을 붙잡고선 나를 주눅들게 하던 성인 박지민, 그 사이에서 몇번이나 더 이리저리 휘둘리다 겨우 잠든 박지민에게서 손을 해방시키고선 뭐라도 먹여야 하지 싶어 주방으로 왔다.
아.. 다중이 만난 기분이야
아, 물론 잊지않고 내 갤러리에 잠든 애기의 모습을 남겼다.
넌 내 배경화면으로 낙점이다.
또 깨서 다중이 되기 전에 얼른 죽 데워야지. 고소한 냄새 덕분에 정말 고소하고 싶을 정도의 남정네를 만난 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룰루랄라 죽을 데우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뜨뜻한 기운이 훅 끼친다. 놀래서 뒤를 돌아보니 박지민이 발간 얼굴로 내 어깨에 얼굴을 살포시 기대며 내 허리를 끌어안는다.
"뭐해.."
"너 먹일 죽 데우고 있어.왜 나왔어, 누워있지. 좀만 더 기다리면 되는데. 들어가있어."
으응... 나 심심해.. 하며 나를 더 파고든다. 니트를 입고 있던 나의 허릿춤에 손을 대고 한올한올 손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아, 씨 이거 산지 얼마안됐는데.. 갑자기 뻗치는 열에 얼른 뒤돌아 박지민에게 경고했다.
"야, 이거 산지 얼마안됐어. 올 나가면 죽는다. 빨리 손 떼."
"손 떼면?"
"..응?"
"손 떼며언- 지민이한테, 뭐 해줄거에요?"
..내가 내 돈 주고 산 니트라서 손떼라는데 내가 뭘 또 해줘야돼?
어이가 없지만 착한 김탄소는 아픈 사람한테 화내는 못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눈앞에 덩치만 큰 지민 어린이가 하는 말을 들어보기로 한다.
"음.. 지민이는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어?"
-쪽
"이거 해줘"
"...ㅁ,"
박지민이 내 옷에서 손을 뗀다.
"지민이 손 뗐으니까 한번 더"
-쪽
아무리 사귀는 사이라해도. 이렇게 갑자기 들어오면 부끄럽다. 게다가 입맞춤 직후 저렇게 날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뚫어져라 쳐다보면 더더욱.
큰일이다. 눈을 못 맞추겠다.
우리가 언제 이런 사이가 됐나하는 생각에 민망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박지민이 내 얼굴을 감싸며 다가온다.
"왜, 우리 탄소 부끄러워요?"
"..."
이걸 참.. 부끄럽다고 솔직히 얘기해야할지.. 아님 아니라고 잡아떼다 들키고 나서 더 쪽팔림을 당해야할지.. 참, 고민이다.
쪽팔림에 고개는 푹 숙이고 눈만 치켜뜬 채로 요녀석이 뭐하나- 하고 눈치를 보고 있으니 뭐가 그리 재밌는지 실실 눈을 맞추며 한발짝 한발짝 다가온다. 왠지 모르게 위험하다는 생각에 뒤로 서서히 걸음을 옮기던 나였지만 이제는 뒤에 있던 싱크대에 후퇴로가 막혀 가까이 오는 박지민을 피할 길이 없다. 내 볼과 목 사이 어디쯤 위치해있던 박지민의 손은 이제 싱크대를 짚고, 우리사이의 거리는 서로의 코가 맞닿을 정도로 좁혀졌다. 가까이 오는 박지민을 밀어내던 나의 손은 어느샌가 박지민의 가슴팍에 엉거주춤 위치해있었다. 박지민이 날 내려다 본다. 날 가둔 박지민의 손에는 울긋불긋하게 열이 오른 것을 말해주고 유난히 피부가 여린 박지민에다 감기의 작용으로 혈액순환까지 말썽인지 평소보다 도드라진 팔의 힘줄들이 나를 더 몰아세운다. 박지민을 본다. 용기내서 눈을 맞춘다. 박지민도 나를 바라본다. 박지민은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의 눈을 맞추니 기다렸다듯이 살풋 웃는다. 나는 또 민망해진다. 박지민의 가슴팍 위에 있던 손을 꼼지락댄다. 심장이 마구 뛰고 손가락은 떨린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아랫배가 미친듯이 간질거린다. 나는 이제 가스렌지에 막혀 더이상 갈 곳도 없다.
가스렌지..?
"헐..!!!"
아, 죽 끓이던 걸 깜빡했다. 헐, 젠장. 망했다. 어쩐지 아까부터 이상하게도 고소한 냄새가 올라온다 했다. 어쩌면 내 몸값보다 더 값질 수도 있는 전복이 들어간 냄비 밑바닥이 타고 있는 듯한 냄새가 섞여 올라온다.
내가 지금 아픈애를 두고 무슨 생각한거지하는 순간의 반성과 얼른 죽부터 꺼내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돌려 냄비로 손을 뻗으려 하니 박지민이 한팔로 나를 제 쪽으로 끌어안아버린다.
"..죽!"
"..."
"..타!"
급한 마음에 단어만 외치게 된다. 저거 저렇게 두면 집으로 돌아온 엄마가 저 냄비바닥과 눌러붙은 귀한 전복들을 보고나선 저 비싼 걸 저렇게 버렸냐는 1년치 잔소리와 더불어 나는 백퍼 내 등짝을 내어주고 빠알간 양념범벅이 된 등짝을 돌려받을 게 뻔하다. 이렇게 내 생사가 걸린 긴급한 시점에서도 박지민은 반항의 의미인건지 인상을 찌푸리고 여전히 떼를 쓰고 날 안은채로 놓아주지 않는다.
"지민아.. 응? 나 놔주면, 착한 지민인데.. 안 그러며언.. 집이 다 불 타고.. 내 등도 불 타고오.. 아주 불타오르네.."
그냥 망했다. 젠장. 난 애기 박지민은 못 달래겠다. 결국엔 요즘 대상가수라는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를 떠올리며 협상을 중단했다. 그래, 아주 훨훨 타올라라! 에헤라디야!
"..다칠 뻔 했잖아, 무턱대고 냄비부터 만지려고 하면 어떡해"
"..."
"너 몇살이야, 언제까지 애기할래."
날 안고 있느라 바쁜 손 말고 한가한 손으로 가스레인지와 밸브까지 돌린다. 전복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처 내가 화상을 입을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럼 나 안은 게 나 다칠까봐였어? 화난거처럼 인상 찌푸린 것도 그거때문이야? 도대체 이 다중이는 언제 왔다갔다하는거야. 지금 내가 킬미힐미 체험중인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나보고 애기라니. 지금까지 너가 애기였잖아, 이노무 시키야.
"그리고 내가 감기 옮는다고 했어, 안 했어?"
"..니가 내 손 잡고 안 놨잖아"
"그래도 뿌리치고 나갔어야지, 너 그러다 감기 걸리면 어쩔거야."
"..."
"일본에서도 감기 크게 걸려가지고 고생했으면서."
쳇, 거기에 대해서는 변명할 수가 없군.
"어차피 감기는 나 혼자 있으면 나아. 얼른 집에 들어가."
와, 너는 그게 간호 해준 사람 앞에서 할 말이냐. 진짜 사람 울컥하게 하는데 뭐 있다니까. 사람 섭섭하게.
"내가.. 뭐, 너 예뻐서 해준 줄 아냐?"
"뭐?"
"..내가, 아픈 사람을 보고도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니, 이 선량한 김탄소씨는 늘 베품을 삶의 모토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감기에 고통받는 한 청년을 도와준 것 뿐이야~"
"아, 그러세요? 그럼 어서 나가주실래요? 저는 그런 선량한 김탄소씨가 제 감기에 옮아서 골골거리는건 정말 질색이거든요."
이게 듣자듣자하니깐?
"..야! 씨, 너 그럼 나한테 왜 뽀뽀했어? 엉? 그렇게 나한테 감기 옮기기 싫은사람이 나한테 뽀뽀는 왜 해? 왜 했냐고!"
"예뻐서."
"..."
"니가 너무 예쁘니까."
"그러게 누가 그렇게 예쁘래."
"그러니까 또 내가 그러기 전에 얼른 집에 가라고."
"너 아픈 거 싫다고."
내가 예뻐서 가란다. 참내, 예쁜걸로 치면 사형감이긴 하지만 섭섭하고 서운하다. 내가 아니면 누가 자길 간호해주냐. 또 뭔지 모를 승부욕이 타오른다. 내가 갈 거 같냐?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두 눈 꼭 감고 입술을 내밀어 그대로 박지민의 입술로 돌진했다. 말캉하게 닿는 느낌에 온몸이 경직된다. 근데 앞에선 아무 반응이 없다. 살짝 눈을 뜨고 눈치를 살피면 언제부터 날 보고 있었는지 입을 맞춘 상태로 그대로 눈이 마주친다.
깜짝 놀란 나는 으억-하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급히 얼굴을 뗐다. 살짝 떨어진 서로의 입술에 1센치의 공간이 생기려고 할 쯤, 박지민이 다급하게 내 뒷머리를 감싸며 달려든다.
경직된 채 닿여있던 입술 대신, 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핥으며 내 안에 들어오길 원한다. 그에 화답하듯 나는 살짝 아랫입술에 힘을 뺀다. 뜨거운 살덩이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 열이 올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뜨겁다. 이리저리 물고 빠는 그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다. 벌써 숨이 차오른다. 어지럽기까지하다. 호흡이 힘들다는 의미로 박지민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숨이 차올라 미칠거 같아 겨우 입을 떼고 말했다.
잠ㅅ..
잠시만. 이 세글자를 다 내뱉지도 못한 채로 박지민은 내 입술을 다시 머금었다. 이제는 싱크대 쪽에 가둬져있던 내 어깨를 잡고 휙하고 돌려 싱크대 맞은편에 있던 식탁에 날 가둔다. 마구 파고드는 박지민에 힘겹게 겨우 속도를 맞추고 있으면 갑자기 날 식탁위에 앉히고선 뚫어져라 쳐다본다.
"나 너 아픈거 싫다고."
맨날 178이라 우기는 박지민의 키는 사실 173이지만 그래도 나랑은 적어도 5센치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항상 키스를 길게 이어갈 땐 어쨋든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춰야하는 내가 힘들기 때문에 내 목이 아플까봐 저러는거다. 근데 이러면 상대적으로 높아진 내 위치에 네가 더 불편해진다.
"근데 이러면 너가 아프잖아"
"그게 나아"
"내가 싫은데."
"그럼, 둘 다 안 아픈 침대로 갈까."
야, 미쳤어? 야! 다짜고짜 내 허리로 돌진하는 박지민의 상체에 금방이라도 나를 들쳐매고서 침대로 진격할 것 같아서 내 눈앞에 보이는 박지민의 등짝에 사정없이 찹을 날렸다.
".."
"...박지민?"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저돌적이던 박지민은 조용하기만 하다. 설마 내가..? 나 또 일 낸거니.. 놀란 마음에 내 허리에 상체를 박고 있던 박지민을 일으켜 얼굴을 확인하니 열에 취해 두 볼은 발갛게 홍조가 오르고, 시원하게 흐르지 못하고 몽글몽글 맺힌 땀들이 앞머리를 젖게 만드는 걸로도 모자라 그 귀엽던 통통한 눈까지 침범하여 괴롭히고 있었다. 방금까지 세상에서 가장 섹시했던 그 욕구 가득한 입술은 어느새 더운 숨을 색색 내뱉는 어린아이의 작은 입술이 되어버렸다.
젠장, 나 일 낸 거 같다.
**
"지민아, 우리 일어나서 죽 먹자"
식탁에서 그렇게 쓰러진-아니 쓰러진게 아니라 잠시 잠든 걸꺼야..- 박지민의 팔을 내 목에 끼우고 들쳐매서 조심조심 침대까지 데려가 눕힐 계획이었지만 너무 힘들어서 그게 잘 실행됐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시종일관 우당탕탕거리며 박지민을 혹사시킨거 같다. 그러길래 아픈 애가 왜 나와가지고 침대로 가네마네 하면서 에너지틱한 일을 자꾸 하니까 더 아픈거 아냐.. 겨우 눕히고 이불까지 목 바로 밑까지 꼼꼼하게 덮어주고 난 후 데워진 죽이라 해야할지 탄 죽이라 해야할지 애매한 죽을 어떻게든 정리하려 부엌으로 갔다. 다행히도 밑바닥만 살짝 탄 듯해서 멀쩡한 윗부분을 그릇에 담아 쟁반에 물과 종합감기약을 함께 담아 박지민의 방으로 갔다.
"지민아.. 일어나자.."
나 이거까지 너 안 먹이면 난 오늘 널 간호하러 온 게 아니라 괴롭히러 온 게 되버린다고..
어머니.. 어머니 말씀이 옳으셨습니다.. 전 박지민을 더 병나게 하나봐요..
붉다. 박지민이 붉다. 열이 올라서 붉다. 그가 내뱉는 숨마저도 붉다. 찡그린 미간 사이에서 나오는 기운도 붉다. 떡같이 말랑해서 늘 깨물어주고 싶던 두 볼도 붉다. 어떡해.. 우리 망개 많이 아픈가봐.. 갑자기 박지민이 눈을 뜬다.
"..아파"
"..아파? 어떡해.. (´;ㅿ;`).. 빨리 죽먹고 약 먹자.. 응?"
평소 잘 내색하지 않던 아이의 아프다는 말에 심장이 쿵 떨어지고 얼른 약을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들고있던 쟁반을 책상에 두고 박지민을 일으켜 침대헤드에 기대게 했다. 물 먼저 마시고.. 옳지, 자 이제 죽 먹자. 아- 해봐. 내가 해줄게.
..
...왜에.... 그냥 너가 떠 먹을래? ...난 그냥, 니가 힘들까봐..
그렇게 숟가락은 박지민에게로 남어갔다. 내가 영 못 미덥나보다.
"아- 해."
"..?"
"얼른, 나 팔 아파"
"..야, 그거 니 죽이야..."
"알아. 너랑 같이 먹을거야. 너 안 먹으면 나도 안 먹어. 빨리 입 벌려."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내가 그렇게 배고파 보였나? 아픈 애 죽까지 눈독 들일 정도로..? 찝찝한 마음으로 건네주는 죽을 한 입 받아먹으면 그제서야 웃으며 그 다음 숟가락을 자기 입으로 넣는다. 그렇게 나 한입, 너 한입 하다보니 죽그릇은 벌써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착하네 탄소, 죽도 깨끗이 다 먹고"
뭐, 그릇 비우는 건 일도 아니지. 후훗.
"이제 약 먹고 코~넨네 하자"
그래, 이제 약 먹고 자야지 우리 지민어린이. 근데 이 약은 왜 날 주냐? 내가 자기 주려고 가져온 종합감기약을 물컵과 함께 나한테 들이민다. 오늘 얘 왜 이러냐.
"..날 왜줘어... 감기 걸린 사람은 넌데"
"너 아픈거 싫다고 했잖아"
"지금 아픈 사람은 너잖아"
"너 나랑 뭐 했어, 오늘"
..ㄱ,간..호? 그, 막, 입 부비부비도 환자가 원하는 차원에사 이루어진 행위라는 면에서 치료라고 할 수 있다면..
식탁에서 약을 한 알 더 꺼내와 꿀떡 삼키고는 어서 나도 먹으라는 박지민이다. 아.. 약 먹기 싫은데.. 항상 알약을 삼킬때마다 시원하게 내려가지 않고 등언저리에 삼킨 알약이 걸려있는 듯한 느낌에 알약을 별로 선호하지 않은 편인데, 지금 눈 앞에는 엄청나게 단호란 사람이 버티고 있다. 에라이, 모르겠다. 그냥 오늘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지 뭐. 어쨋든 결론은 내가 아픈거 싫어서 그렇다니깐 뭐. 살짝 머뭇거리다 박지민의 열이 오른 손에서 습기를 머금은 알약을 집어들어 물과 함께 두 눈 감고 삼켰다. 으- 역시 느껴지는 체기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그냥 자야겠다.
"이제 나도 다 먹었으니까 잘까?"
"기다려, 너 아직 약 다 안내려갔잖아. 조금만 있다 눕자."
라는 말과 함께 안아주듯이 등 뒤로 손을 넣어 내 등언저리를 쓰다듬어준다.
약아, 빨리 내려가. 우리 탄소 괴롭히지 말고. 너 때문에 우리 탄소 아프면 내가 진짜 화낼거야. 나 탄소 아픈거 되게 싫어하거든? 그러니까 얼른 내려가라, 약아.
이제 우리 잘까요, 탄소 어린이?
**
"탄소야, 지민아~ 엄마 왔다! 얘들아, 어딨니?"
"얘! 쉿..! 일루와서 얘네 좀 봐바"
(옷입고 있는 지민이와 탄소입니다~)
"어머어머..! 얘! 빨리 찍어.. 얼른..!(소근소근)"
"사돈, 우리 날은 언제로 하는 것이 좋을까요"
"호홓, 사돈~ 전 언제든 좋아요"
그렇게 오늘도 지민과 탄소의 하루는 무사히(?) 지나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