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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윤슬] 우리의 노래를 들으면 그때로 돌아가는 - 카페베네 과일빙수 | 인스티즈


2007년 6월 어느 날.


우리가 만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어갔다. 나는 남자친구가 되어본 게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지만 그녀를 위해서는 작은 부탁도 모두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슬이에게 요즘 유행하는 영화가 보고플 땐 내게 이야기하라 했고, 아무런 약속도 없는 일요일 오후 심심할 때는 언제든지 나를 부르라는 말들을 늘어놓곤 했다. 슬이도 이런 나의 순수한 배려와 관심을 좋아했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슬이에게 껌딱지처럼 달라붙고 싶어 했고 언제나 그녀를 졸졸졸 쫓아다녔다. 옆에 붙어 있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았고 그녀도 썩 그걸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어쩌면 그때는 연인에게 처음 사랑을 받아보는 나였기에 언제나 슬이가 나를 쓰다듬어주었으면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연애를 할 때 상대방에게 강아지처럼 행동하는 댕댕이 스타일인걸 이때 알았다. 나는 덩치가 있으니 대형견이라고 해야 하나. 초여름이 지나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을 때는 이게 문제였다.


“슬아. 오늘 우리 집 가면서 떡볶이 먹고 갈까?”


“근데 오늘 밖에서 먹기에는 덥지 않아?”


“그럼 우리 학교 앞에 즉석 떡볶이 먹을까? 거기는 에어컨 틀어줘서 시원해.”


“그래도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떡볶이는 먹기 싫어. 그냥 집에 가자.”


“그럼 빙수는 어때? 엑스포 코아 쪽에 카페베네 새로 생겼는데 거기 빙수가 맛있다고 그러던데.”


“오늘은 팥이 안 땡기는데.”


“그럼 거기 과일 빙수도 있어! 그거 먹자!”


“……”


“우리 먹고 집에 들어가자.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서 그래.”


“… 그래.”


우리는 학교가 끝나고 같이 주택가를 걸었다. 날은 밝았지만 유독 구름이 하늘 전체에 퍼져있었다. 비가 오려는지 후텁지근했다. 


“오늘은 햇빛이 쨍하지는 않네. 다행이다.”


“그렇네.”


“그래도 많이 덥지? 내가 부채질해줄게.”


“어….”


“얼마 전부터 용준이 아침마다 왁스 바르고 오는 거 봤어?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하냐고 물어보니까 머리 세팅하는 건 미리미리 배워놓아야 한다고 하더라고. 나는 아침에 드라이기로 잘 말리고만 오는데. 나도 왁스 좀 바르고 다닐까?”


“그래도 좋겠네….”


“좋아! 한번 나도 왁스 바르고 다녀봐야지. 대신 동방신기처럼 샤기컷으로 하지는 않을게.”


“그래….”


그날따라 슬이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물론 나도 그걸 느끼고 있어서 더 이상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냥 옆에서 조용히 그녀와 함께 걸었다. 그녀가 화가 난 건지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 건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괜히 그녀의 심기만 건드릴 것 같아서 참았다. 그리고 우리는 엑스포 코아에 입점한 카페 베네에 들어갔다.


“과일 빙수로 시켰어. 무슨 빙수가 팔천 원씩 한담. 그래도 여기 빙수가 맛있데.”


“도윤아. 우리 빨리 먹고 집에 가자. 나 쉬고 싶어.”


“집에 가고 싶어 슬아?”


“좀 쉬고 싶어.”


“슬아. 오늘 나랑 있는 게 불편해?”


“아니 그게 아니라 쉬고 싶어.”


“나랑 있는 게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그런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그냥 오늘 피곤해서 쉬고 싶다고.”


슬이가 그때 처음으로 나에게 언성이 높아졌다. 나는 당황하기도 했지만 나에게 화를 내는 슬이를 받아줄 수가 없었다. 그때 카운터에 우리가 시킨 빙수가 나왔다.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빙수를 가지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빙수처럼 차갑게 슬이에게 말했다.


“그럼 집에 갈까? 우리 이거 그냥 빙수 시킨 거 먹지 말고 갈까? 그랬으면 좋겠어?”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뭐 하는 거긴. 네가 해달라는 데로 하냐고 묻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건데. 너 하고 싶은데로 하면 되잖아.”


“그러니까 집에 갈 거냐고.”


“……”


슬이는 나를 원망하듯 바라보았다. 나도 내 기분에 따라 그녀에게 화를 냈지만 하나도 시원하지 않았다. 괜히 밥을 빨리 먹다 얹힌 기분만 들었다. 그리고 슬이는 더 이상 대화가 안 된다고 판단되었는지 가방을 메고 카페 밖으로 나갔다. 나도 평소 같았으면 바로 따라나갔겠지만 오늘을 그럴 수가 없었다. 도저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항상 내가 져주고 맞춰주는데 슬이는 나를 왜 그렇게 귀찮아하지? 가슴에서 짜증이 올라왔다. 아무래도 서운함에 근거한 짜증이었다. 슬이는 오랫동안 밖에서 나를 쳐다보다 말없이 자신의 집으로 걸어갔다. 

그런 그녀를 나는 붙잡지 않았다.


바보 같은 자존심이었다.


자존심은 내게 밥을 먹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팔천 원이나 하는 비싸디 비싼) 카페베네 과일 빙수를 다시 카운터에 올려놓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슬이에게 섭섭한 했던 사건들이나 나의 심기를 건드리던 말투며 행동들. 오늘 그녀가 보여준 나에게 배려 없는 행동들 또한 떠올리니 화가 났다.


내가 슬이를 계속 만날 수 있을까? 


나에게 짜증을 내고 배려하지 않는 사람을 내가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이유도 없이 화내는 게 누구 잘 못인가?


내가 알던 슬이는 사실 이런 사람이었나?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헤어지는 게 맞는 걸까?



-



씩씩거리며 집에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선풍기를 켰다. 가방을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침대에 누웠다. 


“이렇게 싸우고 헤어지는 건가?”


혼잣말을 했다. 근데 막상 헤어진다는 말을 내뱉고 나니 심장이 울렁거렸다. 앞으로 슬이를 안 보고 살 수 있을까? 사실 이렇게 짧게 만났는데 불가능할까 싶었지만 내 마음에서 그녀를 도려낸다는 걸 상상하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곧장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았다. 절대로 나는 슬이와 헤어질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아서였을까. 분명 방금 전까지 자존심을 굳게 세우며 화해하기도 싫고 확 헤어져버릴까 했는데 빨리 그녀를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싸우고 난 뒤라 어떻게 화해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슬이의 화를 풀어주고 다시 웃으면서 볼 수 있을까? 내 자존심 따위는 뭉개져도 좋으니 그녀의 화만 풀렸으면 좋겠다. 그녀 입에서 나와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그녀에게 문자를 보낸다.


- 슬아. 미안해.


슬이가 화가 났어도 내 문자는 봐주기를 바랐다. 연이어 문자를 보내려고 타이핑을 하는데 전화가 왔다.

슬이다.


“슬아….”


“나 지금 집 앞 놀이터인데 여기로 와줄 수 있어?”


“미안해….”


“만나서 이야기하, 도윤아. 할 말도 있고.”


“바로 갈게. 조금만 기다려.”


슬이도 헤어지기 싫어서 나를 그녀 집 앞으로 불렀는지 아니면 정말 헤어지려고 나를 부른 건지 사실 알 수 없었다. 일단 그녀와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좋았지만 뛰어가는 내내 혹시 그녀가 나에게 이별을 고하는 것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컸다. 그녀는 그녀가 말한 데로 집 앞 놀이터 앞 그네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슬나. 나. 왔어.”


“왜 달려왔어. 천천히 와도 괜찮은데.”


“너 보고… 싶어서… 달려… 왔지.”


“도윤아 여기 앉아서 숨 좀 돌려.”


“근데 슬아…. 나랑 헤어지고 싶은 건 아니지?”


“사실 그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


“무슨 말인데?”


“사실 나…. 엄마가 돌아가셨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나에게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을 이어 나갔다.


“오늘이 엄마 기일이야. 엄마가 떠난 지 벌써 몇 해가 지났는데도 보고 싶다? 근데 또 웃긴 건 엄마가 없는데도 나는 웃으면서 아빠랑 잘 살고 있어. 요즘 너무 행복한 게 힘들기도 해. 돌아가신 엄마 없이도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죄책감도 들었어. 나 없이는 못 살 거라던 엄마가 없어졌는데 나는 엄마 없이 잘 살고 있는 게 이상하더라고. 그래서 오늘은 행복하면 안 되는 날이라고 생각했어. 적어도 오늘만은 엄마 생각을 하고 슬퍼해야 하는 날이라고 생각했어. 그런 거 있잖아. 태극기를 걸어 놓는 공휴일처럼 오늘은 내 마음에 슬픔을 걸어놓고 엄마생각만 하고 싶었나 봐. 근데 막상 학교에서 너를 보고 같이 있는데 행복한 거야…. 그런 내 모습이…. 그런 내 마음이… 싫었다? 이중인격자 같잖아. 하루종일 엄마 생각하면서 엄마를 그리워하기로 해놓고 너 본다고 좋아하고 웃고 설레는 게. 엄마는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마음에서 엄마가 떠나간 것 같아서 너무 싫었어. 엄마를 내가 놓아버린 것 같아서. 이런 내 모습이 싫어서 너에게 투정을 부렸나 봐. 도윤아. 미안해.”


여전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답해줘야 할지 몰랐다. 그저 그녀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우리 둘은 같이 그네를 탔다. 후텁지근한 날이었지만  그네를 타니 위로 올라갈 때마다 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슬아. 언제든지 네가 힘든 일이 있으면 나에게 말해도 돼. 나는 항상 네 편에서 네 옆에서 있을 거야. 오늘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다짐했거든. 내가 네 마음을 모두 알 수 없겠지만 옆에는 있어주겠다고 다짐했어. 나도 오늘 너 그렇게 보내서 미안해.”


나는 주머니에서 아이팟 나노를 꺼냈다. 줄로 이어진 이어폰을 한쪽시 나눠 끼었다. 그리고 내가 슬프거나 우울할 때 듣는 노래를 틀었다.




반복된 하루 사는 일에 지칠 때면 내게 말해요


항상 그대의 지쳐있는 마음에 조그만 위로 돼 줄게요




그녀는 노래를 듣고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냈다. 그때 알았다. 내가 그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겠지만 그녀 옆에는 있어야겠다고. 슬이 옆에서 항상 내가 위로가 돼 주고 싶다고.




요즘 유행하는 영화 보고플 땐 내게 말해요


내겐 그대의 작은 부탁조차도 조그만 행복이죠






2024년 여름. 


한쪽에만 낀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토이의 〈그럴때마다>를 들으니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올라왔다.


언제나언제까지나 그녀 옆에서 그녀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는 다짐이 다시  마음 위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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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윤
요즘은 카페베네 찾기가 힘드네요. 추억의 빙수의 맛. 그리고 그 아이.
1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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