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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픈 왈츠 - 남혜승 및 박상희

본 글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조선을 배경으로 나아갑니다.




경성블루스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 담벼락에 붙어있는 등은 돌의 굴곡에 따라 따끔거렸고 치솟은 긴장과 흥분감에 숨은 고르질 못했다. 잠깐 움찔 할 때마다 배에 겨눠진 쇠 총구가 더 짓눌렸다. 생경한 감각이었다. 매서운 눈빛과는 다르게 남자는 수십 번 고개를 돌리며 불안해했다. 그가 피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대충 감으로도 알 만 했다.


“ 바보같은 놈들! 그걸 놓치다니! 샅샅이 뒤져라! 나머지는 종로 고가까지 들어간다! ”


저 멀리 말소리와 군화소리가 다급하게 흩어졌다.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만이 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게 되자 그는 마침내 다시 눈을 맞췄다.


“ 조선인? ”


고개를 끄덕였다. 매서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남자가 아주 천천히 자신의 손을 떼냈다. 침을 삼키며 떨리는 숨을 얕게 내쉬자, 남자는 낮게 잠긴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 이 일은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야. 내 총은 출신도, 신분도 가리지 않으니까. ”


그 말을 끝으로 총을 거둔 남자는 본인의 외투 안 주머니에 그것을 챙겨 넣었다. 자리를 뜨려는 듯 비에 쫄딱 젖은 머리칼을 넘기던 남자가 별안간 윽 소리를 내며 왼쪽 어깨를 쥐어잡고 휘청였다. 놀란 토끼눈을 한 채 반사적으로 몸은 그를 받아내었고, 방금 전까지 본인을 겁박하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밀어내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스스로도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태 같았다. 


“ 저기… 어디 안 좋아요? ”


그의 어깨를 붙잡자마자 느껴지는 축축한 느낌에 손을 확인하니 새빨간 피가 흥건했다. 골목으로 숨어든 총을 든 남자. 생각해 보면 퍽 이상한 상황도 아니었지만 피의 양이 너무 많았다. 작금의 조선에서 일본인들의 총칼을 통해 보는 피가 적지 않다 하더라도, 이 피의 양으로선 당장 의식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고통스러운 듯 숨소리가 간헐적인 그를 나무 아래 담벼락에 기대 앉혔다.


“ 정신차려봐요. 정신 잃으면 안 돼요. ”


살려야 할 것만 같았다. 아버지와 같은 뜻을 품은 사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출신도 신분도 가리지 않는 그 총은 아직 빛을 보지 못했을 터다. 고통에 빠져 찡그려지는 그의 눈이 후련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보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심스럽게 남자의 외투를 벗겨내자 피칠갑이 된 어깻죽지가 드러났다. 칼로 베인 듯 옷은 물론 어깨 깊숙히 패인 상처가 눈에 띄었다. 총상이 아닌 것이 불행 중 다행일까. 만약 총알이 깊이 박혀 당장 빼도 두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면 남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몰랐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의 남자가 내 손을 잡아챘다.


“ 만지지, 마. ”

“ 이대로 두면 출혈이 심해서 큰일날 거예요. 잠시만 기다려요. ”

“ 됐다고 하잖아. ”



윽. 어깨의 상처에서 피가 울컥 쏟아짐과 동시에 남자의 손이 덜덜 떨렸다. 


“ 당신이 그 총으로 없애고자 하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

“ … ”

“ 지금 이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앞으론 그 무엇도 들 수 없을 거예요. ”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는 말을 뱉은 뒤 집으로 뛰었다. 대문을 열고 마당을 지나쳐 방으로 들어가 급하게 두리번거렸다. 옷을 덧대 꿰맬 때 쓰이던 천들이 서랍장 위에 놓여져 있었다. 그것들을 집어 다시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순간, 스스로에게도 의문이 들었다. 총으로 협박을 하질 않나, 초면에 말을 낮추는 것까지 전부 비호감인 남자를 위해 왜 이렇게 마음 조급해하고 있는 건지. 그런 의문들을 곱씹는 와중에도 발은 멈추지 않았고, 남자는 아까 그 모습 그대로 담벼락에 기대 가까스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 잠시만 어깨 좀 볼게요. ”


그의 등 뒤로 천을 둘러 왼쪽 어깻죽지를 감싸게끔 손을 움직였다. 헐렁하면 안 돼. 내가 묶어주는 이 천쪼가리 하나가 이 남자를 살릴 수 있을까. 피가 넘치지 않도록 탄력감 있게 힘을 준다는 게, 힘을 줄 때마다 남자의 짧은 신음이 들려왔다. 천을 덧대어도 피가 금방 스며드는 바람에 몇 번이고 칭칭 감아야만 했고, 어느 정도 압박이 되었을 때 끈을 묶었다.



“ 치료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일단 과다출혈은 피해야 할 것 같아 천만 댄 거예요. 꼭… ”


병원에 가요, 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런 꼴로 이런 곳에 앉혀져 있는 당신이 일본이 점령한 조선 병원 어느 곳 하나라도 안심하고 갈 수 있을까, 싶어서. 천에 물들던 피가 어느덧 멈추자 그는 서서히 입을 뗐다.


“ 이름. ”

“ 네? ”

“ 이름이 뭐냐고. ”


말을 왜 이렇게 잘라 먹는 거야? 그의 짧은 말투에 잠깐 짜증이 났지만 더이상 말을 길게 하는 건 그에게 악효과만 될 것 같아 입술을 삐죽였다.


“ 연이요. ”

“ 연? 성은. ”

“ 없어요. ”

“ 희한한 이름이네. ”


비아냥거리며 고개를 돌리는 남자에 허, 하며 어이없는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생명의 은인한테… 뭐 이런 재수없는 남자가 다 있어. 


“ 그쪽 이름은요. ”

“ 못 알려 주는데. ”

“ 그런 게 어디있어요. 전 말했잖아요. ”


남자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닫혔다. 그리고는 한참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들었다.


“ 민윤기. ”


민윤기. 말해줄 줄 몰랐는데. 그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 아래에 있긴 하나 비는 멈출 생각이 없는 듯 세차게 내렸고,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는 알아서 혼자 몸을 일으켰다. 움직이기에 아직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을텐데도 어렵사리 외투를 챙겨 팔에 걸고 일어섰다.


“ 어디 가요? ”

“ 그럼 여기 계속 있을까? ”

“ 아니, 그건 아니지만… ”

“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가야 돼. ”


잘 가라는 인사를 할 법한 사이도, 상황도 아니었기에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아무 말 없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꺼진 한쪽 어깨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구석을 돌아 사라진 그의 모습을 뒤로 연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쫄딱 젖은 머리칼과 유혈이 낭자한 자리, 당연하게도 옷에 물든 핏물들이 착잡하게만 느껴졌다. 방금 막 있었던 일인데도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관자놀이를 짚으며 자리를 뜨려는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외줄로 된 회중시계. 남자의 것이 분명했으나 그가 떠난 길을 다시 되돌아갈 자신은 없었으므로 그저 손에 꼭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찾으러 올까, 그렇다면 언젠가는 돌려줄 날이 오는 걸까 하는 생각과 함께. 






“ 이 시간이면 돌아오고도 남았어야 하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요. ”

“ 그래도 믿어 봅세. 그는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


불안해하는 동포에게 석진은 굳건한 목소리로 답했다. 옆에 있던 호석이 석진의 말에 웃으며 동조했다.


“ 글지, 그 성님이 어디 그렇게 갈 사람 같소? ”

호석은 깍지를 끼고 머리 뒤에 받쳐 의자에 기댔다. 미소가 걸린 얼굴이 그 공간 안에서 유일했다. 거사를 나간 윤기가 돌아와야 할 시간이 한참이 지나니 동포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석진은 경성을 한 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펼쳐진 지도 앞에 흐트러짐 없이 앉아있었다. 적막이 일었다. 그때 다급한 발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문이 열렸다.


“ 도, 돌아오셨습니다! 그런데… ”


남자의 얼굴 뒤로 윤기가 모습을 비췄다. 얼굴이며 온 몸에 핏자국이 선명했고, 쫄딱 젖은 모습은 자리에 있던 의열단원들에게 충격을 심어주었다. 다쳐서 돌아오거나 죽어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는 허다했지만, 윤기는 이정도로 망가져 돌아온 적이 없었기때문에.


“ 거 보소. 저리 안 간다니께. 일왕이 뒷목 잡고 쓰러지는 걸 제 눈으로 봐야만 이승을 뜰 인간이여. ”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말하는 호석을 보고 윤기는 불편하다는 듯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테이블로 천천히 다가오는 윤기의 발자국마다 나무바닥에 물이 스며들었다. 석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상태가 안 좋군. 무슨 일이 있었나? ”

“ … 놈들의 경계가 더 강화된 듯합니다. 자택 침입 후 놈들의 대화를 엿듣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사살은 실패했습니다. ”

“ 민동무가 그리 다쳐서 올 정도라면 이 안에서 그 누구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걸세. 너무 마음 쓰지 말고. ”


석진이 윤기의 등을 토닥였다. 


“ … 엿새 뒤, 총독을 포함한 고위관료들의 조선 은행 창립 20주년 연회가 있다고 합니다. 혼마치 안에 있는 기념 회장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더군요.”


윤기의 말에 석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 역시 머릿수를 늘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군. 그렇담 우리도 기꺼이 참석해 주어야겠지. ”

“ 거 당연한 거 아니겄소, 대장. 고런 모임이라면 나 정호석이가 빠질 수야 없제. 그르치만은… 민동무는 가능하겄소? 어깨짝이 그래서야. ”



윤기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 근디 저 인간은 와 나만 보믄 호랭이맹키로 저러는 것이여. ”

“ 무조건 갑니다. 이런 거사를 정동무한테 어찌 안심하고 맡깁니까. ”

“  참말로다가 말을 섭섭하게 허질 않나. ”


호석의 말을 무시한 윤기는 고개를 돌렸고, 석진은 윤기에게 치료를 받고 안정을 취하라는 말과 함께 웃어 보였다. 다음 거사의 계획을 짜기 위해 다시 자리로 모이는 동포들을 뒤로 하고 윤기는 방을 나섰다. 치료를 받기 위해 자리를 옮기던 윤기는 문득 저릿한 어깨의 감각에 그녀가 생각났다.


‘ 당신이 그 총으로 없애고자 하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

’ … ‘

‘ 지금 이 상처 치료하지 않으면 앞으론 그 무엇도 들 수 없을 거예요. ’


헛웃음이 나왔다. 총을 들고 있지 않았더라도 말이지, 윤기의 얼굴은 영 살가운 인상은 아니라 다들 주춤하기 일쑤였다. 총 하나에 바들바들 떨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그런 굳건한 말투로 제게 일침을 놓고 있다니. 암만 생각해도 골때리는 여자였다.


“ 뭐야. ”


외투며 바지주머니며 뒤적거려도 있어야 할 물건이 있지 않았다. 윤기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그것. 어디서 흘렸지?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래도 그 나무 아래에 흘리고 온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 다시 만날 일 없길 바랐는데. "


내리는 비를 맞아가며 어깨에 천을 덧대던 그녀가 생각났다. 본인의 옷에도 피가 물들고 있건만 그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듯 심각해 보이던 그녀의 얼굴이. 연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윤기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서도 묘한 감정이 들게 했다. 그런 윤기의 뒷모습을 팔짱 낀 채 물끄러미 쳐다보던 호석. 뒷머리를 긁적이는 윤기를 보며 호석이 중얼거렸다.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三 | 인스티즈

" 고 헤진 천쪼가리는 누가 해 줬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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