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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왈츠 - 남혜승 및 박상희 

  

낭만의 시대 - 남혜승 및 박상희

( 정국이 연회장을 나설 때 틀면 몰입감이 좋습니다. )




본 글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조선을 배경으로 나아갑니다.




경성블루스 



“ 요새 자꾸 어딜 가는데? ”

헤진 신발에 발을 넣고 있는 나를 보며 태형이 물었다. 삐딱하게 선 채로 내려다 보는 시선이 등 뒤로 따갑게 느껴졌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뒤를 돌았다.

“ 그러는 넌? 너도 요새 학교 끝나자마자 몇 번씩 혼자 어디 갔잖아. “
” 아니, 그건…. “

태형이 말을 얼버무리자 이때다 싶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나 오늘 늦어. 어머니한테는 대신 말 좀 전해 주라. “
” 야, 어디 가는지 말은 하고…! “

어이없음이 잔뜩 묻어난 말투에도 아랑곳 않고 집을 뛰쳐나왔다. 혹시라도 태형이 쫓아 나올까 발을 빠르게 움직였다.
이른 아침, 거의 새벽이나 가까운 시간의 종로 거리는 매우 조용했다. 청년들이 학교를 가는 날도 아니었고, 장이 열리기에는 한참이나 이른 시간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아침, 매일같이 마주하던 평범한 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한 몇 명은 오늘이 손꼽아 기다렸던 날일 테다. 평소와는 다를 오늘을.

아지트에 도착하자, 조용한 다방 분위기의 1층과는 다르게 2층에서는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예상과 같이 호석과 윤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김 동지와 손 동지 역시 보이지 않았다. 복도의 문을 열고 나온 문 동지와 눈이 마주쳤다.

“ 일찍 도착했구만. 이쪽으로 와요. ”

그가 안내한 방에는 내가 갈아입을 원피스가 예쁘게 다려져 걸려 있었다. 하얀 실크 소재의 상의가 목 주변으로 레이스와 단추가 달려 고와 보였고, 길게 뻗은 붉은색 치맛단이 고혹적이었다. 옆에 걸린 필박스 햇까지 누가 봐도 귀티가 나는 착장이었다. 평생을 입어 보지 못했던 종류의 옷인데, 저런 옷을 입고 처음 한다는 것이 독립운동이라니. 묘한 기분이었다.

“ 간밤에 잠은 좀 주무셨는가? ”
“ 아… 아니요. 잠이 오질 않아서 거의 뜬 눈으로 지샜습니다. ”
“ 그랬을 것 같아서 물어본 거요. ”

살짝은 장난스러운 어투로 답한 그가 걸어와서 무언가를 건냈다. 무엇인가 하고 손에 들린 것을 보아하니, 위조된 초대장이었다. 정치인들을 제외한 일반 귀족들은 이 초대장이 있어야만 출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봉투를 열어서 확인해 보니 생전 처음 보는 일본어 이름과 함께 고급스러운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승인, 아마야 미사키.

” 오늘은 아마야 미사키라는 여인이 되는 겁니다. 이 이름으로 조선을 구하게 될 거요. ”

초대장을 받아 들고 일어로 써진 그 이름을 쳐다보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누군가 들어왔다. 어제, 자리에 있었던 하나뿐인 여자 동지였다. 그녀를 향해 고개를 까딱 숙인 문 동지가 다시금 눈을 맞췄다.

“ 시간에 맞춰 출발하시오. ”

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 손에 들린 상자를 품에 끌어 안고 가까이 다가온 여자가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머쓱하게 그녀의 앞에 놓인 의자로 다가가 앉자, 갑자기 그녀는 손을 공중에 휘젓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무엇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으로.

” 혹시… 말을 못하십니까? “

따뜻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톡톡톡 치는 행동, 두 손으로 머리를 빗듯이 쓰다듬는 행동. 그리고서는 자신의 가슴께에 오른손을 조심히 얹었다가, 다짐하는 느낌으로 주먹을 꾹 쥐었다. 말이 들리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녀가 이 안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건지, 내게 지금 어떤 도움을 주려고 하는지. 입 모양을 또렷히, 그녀가 읽을 수 있도록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 감사합니다. ”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클래식과 재즈 그 사이 어딘가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연회장. 시작까지는 꽤 시간이 남았으나 생각보다 많은 수의 인원이 일찍 도착을 한 편이었다. 직원들은 내부를 정리하고 준비하는 데에 있어 정신이 없었고, 야마구치는 그 사이에서 의원들의 급을 매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가 누구랑 대화를 하고 있는지,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지. 남준은 그런 야마구치의 옆에 꽤나 반듯한 자세로 서 있었다. 검정색 정장이 남준의 성숙한 분위기에 무게감을 더해주는 듯했다. 깔끔하게 넘긴 포마드 식 머리가 그 누구라도 쉽게 그를 대할 순 없을 아우라를 풍겼고.
어디선가 야마구치를 알아보고 다가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넉살 좋게 악수를 건낼 줄도 알았다. 상대방의 기분이 좋아질 법한 쿠션 용어까지 써 가며. 정국은 그런 남준에게 거리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박탈감을 느꼈다. 제가 아무리 남준과 비슷한 처세술을 사용한대도 그것은 그저 형의 그림자를 따라가기 위함이지, 정국 그 자체의 능력이 될 수 없었으니까.

” 전정국, 어디 가. “

정국이 어딘가로 향하려 하자, 정국의 어깨를 붙잡은 남준이 물었다. 원래 같아선 알아서 무엇하냐고 따지거나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이곳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정국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 바람 좀 쐬게. ”
“ 너무 멀리 가지 마. ”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남준과 달리 남색 양장을 갖춰 입은 정국이 입구로 향하는 구둣발 소리는 꽤 속도감이 있었다. 밖에 나올 일이 많지 않아 양장을 입을 기회가 잘 없던 정국이지만, 당연하게도 옷이 잘 받았다. 길게 뻗은 다리며 단정하게 둘린 넥타이가 지나가는 여성들의 시선을 단숨에 앗을 정도였다.
정국이 연회장의 입구로 나오자 검문을 하던 일본 군사들과 순경이 고개를 숙였다. 정국은 그들을 살짝 쳐다본 뒤, 짧은 계단을 내려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북적임으로 시끄러운 거리와 차가운 듯 시원한 바람이 동시에 정국의 귀와 살결을 스쳤다.

“ 지나갑니다. 지나가요. ”

정국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뒤를 돌아보던 그때, 인력거꾼 하나가 정국의 앞을 스쳤다. 순간 너무 가까운 거리에 놀란 정국이 주춤거리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인력거꾼이 차례로 셋 정도 연이어 지나가고, 정국은 지나간 인력거들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앞을 쳐다보았다. 그때였다.
저 멀리 사람들 사이에 있는 한 여성이 정국의 눈에 들어왔다. 정국의 눈썹이 꿈틀, 숨은 멎은 듯이 시선 고정되었다. 흰색 레이스가 포인트인 상의는 나비 같고, 바람과 다리의 움직임에 팔락이는 붉은 치맛단은 우아했다. 작은 필박스 햇에 달린 베일이 얼굴을 가렸지만, 멀리서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가 틀림없다.
좀 전까지 시끄럽던 주변은 순식간에 소리가 꺼진 듯 들리지 않았고, 그녀를 둘러싼 모든 풍경과 사람은 흐릿하게 비춰졌다. 멀리 있기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땅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고개를 드는 등 그녀의 고갯짓 손짓 한 번에 흐르는 시간을 체감치도 못하고 정국은 얼어버렸다. 점점 자신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그녀를 향해 먼저 다가갈 수도, 기다리기도 선뜻 정하기 어려운 마음으로.


생각보다 옷의 치수가 딱 맞았다. 입어 보기 전에는 좀 작지 않을까 했건만, 어떻게 준비된 의복인지 몰라도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구두였다. 새 구두라 그런지 딱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아지트에서부터 연회장으로 나오는 길에 쓸리던 뒷꿈치가 아니나 다를까 까지기 직전이었다. 아지트를 나서면서는 천을 덧대 놓을까 생각도 했지만, 연회장에 가까워지면서는 상처가 악화되는 지경에 이르러도 긴장감에 고통 자체를 잊어버렸다. 
슬슬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하는 종로거리를 지나고, 연회장 근처에서 일본 순사들과 양장을 입은 일본인을 지나칠 때마다 떨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느라 애썼다. 이런 식으로는 도움이 될 수 없다. 분명 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겠다 약속했기에, 이리 무른 마음으로 거사에 임할 수 없다. 땅을 향하던 고개를 들고 연회장의 건물을 똑바로 응시했다.
큰 건물, 화려한 슬로건과 대일본제국의 국기. 베일의 사이로 그것들을 쳐다보다가, 시선을 내려 입구를 확인했다. 그리고,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서 있는 남성과 눈이 정통으로 마주쳤다.

예상치 못한 일이다. 당연히 있을 것은 알고 왔으나 이리 밖에서 먼저 마주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야마구치가 아닌 그의 아들과 먼저 마주친다면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도 곤란했다. 그때 강에서의 만남을 모른 척해야 할지, 아니면 그것을 이용해야 할지. 나의 당황스러운 마음이 부디 표정으로는 드러나지 않았길. 걷던 속도는 그대로, 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나의 선택은 차분하게 나아가 그의 앞에 똑바로 섰다. 그가 미세하게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 안녕하세요. ”
“ … ”

나는 그를,

“ 야마구치 가문의… 자제분 아니십니까? 신문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

모른 척하기로 했다. 그때의 내 차림을 생각해서도 모르쇠하는 것이 맞았고, 내가 먼저 나서서 일전의 만남은 없었던 일로 치부하는 것이 빨랐다. 그의 얼굴은 당황이라는 감정에 가까운 표정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 표정이 어떤 이유와 생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몰라 그의 대답이 나오기까지 마음이 졸여졌다.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 … 저희 어디서 본 적 없나요? ”
“ 글쎄요. 제가 흔히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만…. ”

빙긋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고, 정국은 그런 나를 이목구비 하나하나 눈에 담듯이 쳐다보았다. 부담스러운 눈빛이면서도, 조심스럽고 다정한 느낌이 담겨 있어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연은 오늘 아침, 동지가 꽤 오랜 시간을 공 들여 해 준 화장이 빛을 발할 것이라 믿었다. 자신이라도 자신을 못 알아볼 정도였으니까. 붉어진 입술과 뺨, 없던 점도 고의로 찍었다. 하지만 정국은 아니었다.

“ 절대… 흔히 생기시진 않으셨습니다. ”

그의 말에 눈을 한 번 깜빡, 그리고 그의 눈을 바라보고는 당황스러움에 침을 한 번 삼켰다. 저게 무슨 눈빛이야. 귀 뒤가 화끈거리는 기분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의 눈빛이 묘했다. 생각해 보면 처음 보았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그는 수려한 외모임이 확실했다. 그런 외모를 가진 자가 저리 의중을 알 수 없는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니, 당황스러움에 그런 것일 테다. 장갑을 낀 손에 땀이 나는 듯했다.

“ 아무래도 분을 칠했으니요. 여인들에게 치장이란 것은 자기관리 중 하나이지 않겠습니까. ”

조금은 능청스러운 말투로 화답했고, 그는 또 아무런 말 없이 내려다 볼 뿐이었다. 정국은 하천에서 보았던 연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이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꼈다. 그저 하얗기만 하던 얼굴이 조금 색이 올랐나, 가지런하지 않던 눈썹이 조금 정리가 되었나. 그런 정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말투며 옷, 행동 그 모든 것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그런 그녀가 낯설었다. 짧은 시간 자신이 떠올리던 그녀의 모습과 지금의 그녀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라서. 연은 잠깐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정국의 등 뒤로 입구를 살짝 쳐다보고 말했다.

“ 이만 가 봐야겠네요. 뵙게 돼서 영광이었습니다. ”

그리고는 정국을 스쳤다. 정국은 고개를 내리고 연이 떠난 자리를 잠깐 쳐다보다, 이내 뒤로 돌아 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럴 것을 연 또한 알고 있었다.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겠거니, 걸음걸이조차 신경쓰며 입구를 향해 걸었다. 이제 그가 보고 있기때문에 더 이상 입구로 걷는 걸음에 망설임조차 버려야 했다. 일본군이 자신을 쳐다볼 때, 겁나던 마음을 삼키고 스스로 최면을 걸듯 생각했다. 
나는 아마야 미사키다. 나는 아마야 미사키다.

중절모를 쓴 남성이 입구에서 신분을 확인 받고 안으로 들어가자, 연의 차례가 다가왔다. 팔에 건 가방에서 초대장을 꺼내 건내자, 순경이 연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며 초대장을 확인했다. 눈을 깜빡 감았다 뜨는 정도의 짧은 시간이 억겹의 시간으로만 느껴졌다. 순경이 초대장을 다시 건냈다.

“들어가십시오. ”



연회장의 내부는 생각보다도 더 컸고, 화려했다. 미츠코시 백화점 마저도 한 번을 못 들어가 본 사람으로써, 이런 서양 문물들의 배경은 충분히 낯설게 느껴졌다. 천장에 걸린 조선 은행의 창립 주년 슬로건은 일본어와 조선어가 섞여져 쓰여 있었다. 엘레베이터, 계단, 테라스. 이 세 군데에 먼저 시선이 갔다. 지금 여기 어딘가, 동지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고개를 돌려 각 테이블을 살피자 벽 근처에 놓인 테이블 하나에 야마구치와 그의 첫째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신문에서만 보았던 그 야마구치란 존재가 눈 앞에 실존했다. 턱에 난 거뭇한 수염과 희끗희끗하게 자라난 새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풍기는 사람. 얼굴의 근육이든 입술의 휘어짐이든 그 무엇 하나도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 절대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거기에 더해 그 옆에 있는 첫째 아들, 나오키라는 사람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아 보였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 몸을 뒤로 틀며 고개를 돌리자 바로 코 앞에 남성이 서 있었다.

“ 아, 죄송합니다…. ”

사과를 하며 고개를 드는데 밖에서 마주쳤던 야마구치 타카히로, 그 남성이었다. 추운 날씨때문인 건지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인 건지, 코와 광대께가 붉으스름한 그가 헛기침을 내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건냈다. 손수건이었다.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八 | 인스티즈

“ 아까, 떨어트리셨습니다. ”

그가 건내는 것은 내 가방에 있던 손수건이 맞았다. 딱히 넣을 것이 없어 챙겨 넣었던 연분홍빛깔의 천이었다. 헌데 이 손수건 하나 전해 주는 것에 이 남자는 왜 이렇게 민망해하는 것인가. 그가 건내는 손수건을 받아냈다. 머릿속에 무엇인가 스쳐지나갔다.

“ 정신이 없어서 흘린 줄도 몰랐네요.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타카히로 상. ”
“ … ”
“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

눈이 마주친 그에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방법은 하나뿐. 
이 남자에게 내 패를 걸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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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너무 재밌어요..🥹🥹 다음화가 올 때 까지 기다리겠습니다..
19일 전
도비
🫧🫧🖤🤍
18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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