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증에 우울감까지 겹쳐 반 년 째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잘 깎이고 트여진 바다로 가는 강물길 같은 길만이
세상이 정한 나의 길이라면 결정을 해야할 순간이 온 것만 같았다.
재희는 부엌에서 가져온 가위를 손에 쥐고 있었다.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졌지만 맥박은 빨라져 가는 게 느껴졌다, 이윽고 손은 서서히 움직였다.
차가운 금속이 손목 위에 아찔하게 느껴졌다
하나..
둘..
셋!
"재희야!"
그는 벌떡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눈을 떠 보니 컴퓨터 모니터에는 숫자와 그래프가 빼곡했고, 책상 한쪽에는 메모지와 볼펜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무심코 손목을 확인했지만 어떤 흔적도 없었다.
"재희! 뭐 하고 있어?"
고개를 돌리니 과장님이 회의실에서 그를 부르고 있었다.
"네 지금 갑니다!"
자리에 놓여 있던 메모장과 펜을 급히 챙긴 그는 서둘러 회의실로 향했다. 발걸음이 바쁘게 움직였지만 머릿속에는 방금 전의 꿈이 너무 아찔하게 생생했다.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동료들이 다들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과장님의 말소리가 들려왔지만, 재희는 여전히 자신이 방금 전 경험한 꿈을 곱씹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고개를 들었다.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지 않았던 그동안의 모습이 떠올랐다.
꿈속에서 그는 퇴사를 결심한 자신의 선택과 현실 속 무기력을 교차해 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바꿀 힘은 결국 나에게 있는 거구나.'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며 그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모든 것이 달라지진 않더라도, 지금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작은 변화를 만들겠다고.
꿈에서만 그치지 않을 거라고, 나는 내가 바꿀 거라고.
그날 퇴근길, 재희는 오랜만에 길가에 핀 꽃을 의미있게 바라보았다.
꿈과 현실이 뒤섞인 하루는 그에게 새로운 시작이란 인생의 신호탄이 되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