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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변 - 김시은





본 글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조선을 배경으로 나아갑니다.




경성블루스 



“ 타카히로가 안 보이는군. “
” 아마 근처에 있을 겁니다. 잠깐 바람만 쐬고 오겠다고 했으니, 금방 올테지요. “

남준의 말에도 야마구치는 못마땅한 듯 콧바람을 내쉬었다. 아무리 내 아들이라지만 이리 감이 없어서야. 남준은 그런 야마구치의 앞에 놓인 잔을 쳐다봤다. 이미 채워져 있던 술잔은 바닥을 보인 상태였다. 금방 올 것처럼 하고 나가서는 왜 돌아오질 않는 건지,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챙겼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정국을 데려오겠다 말한 뒤 연회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중 저를 알아본 자들에게 악수를 건내며 지나쳐 오는데, 저멀리 정국이 보였다. 하지만 외려 발은 멈췄고 정국과 그의 앞에 서 있는 여인에게 시선이 향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 은혜… 정도의 일은 아닙니다. “
” 하지만 감사한 걸요. 따로 가배라도 한 잔 내어드릴 수 있게 해 주세요. ”

심장이 과하게 뛰다 못해 멎어버리는 건 아닐까, 라고 정국은 생각했다. 말 그대로였다. 쿵쾅거리는 심장이 고스란히 느껴져 입 밖으로 토해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형용하기 어려운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했는데, 그런 그녀가 자신의 앞에서 자신에게 하고 있는 말은 가히 어지러울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 아무리 조선인이라고 해도 그렇지. 나중에 팔아 넘긴 여인의 식솔들이 나타나거나 하면 어쩌려고. 아무래도 역시 골치 아파질 것 같아서 말이네. ”
” 본디 계집이란 것은 흔들리는 대로 흔들려지는 것입니다. 팔리면 팔리는 대로, 하라면 하라는 대로. 얼굴이 반반한 계집들은 값도 더 나갈 테고요. “

나의 아비는 파렴치한 사람이다. 정국은 아버지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번 장관을 마주친 날이 아니라, 그 전부터. 꽤나 오랜 시간 집에 머무는 정국에겐 아버지가 하는 은밀한 대화들을 어렵지 않게 엿들을 수 있었으니까. 그랬기때문에 본인의 아내도 죽인 그가 어쩌면 내 앞의 이 여인도 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접촉하는 것조차 위험할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정국은 아쉬운 감정이 들기도 전에 마음을 고쳐 잡았다.

“ 미안하지만… ”
“ 타카히로. “

낮은 음성에 연이 뒤를 돌아보자, 남준이 서 있었다. 큰 키를 가진 그가 앞에 서 있는 저를 내려다 보며 자신의 동생을 불렀다. 앞은 야마구치 타카히로, 뒤는 야마구치 나오키. 목표물의 아들들 사이에 끼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 뱀의 눈을 연상케 하는 그가 내게 꽂힌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마치 나의 속내를 다 읽어내려는 것만 같은 끈질긴 눈빛을. 

“ 돌아오지 않아 와 봤는데 대화 중이었군. 인연이 있는 분은… ”
“ … ”
“ 아닌 듯한데. ”

그의 눈이 나와 야마구치 타카히로를 번갈아 스캔했다. 의문이 가득해 보이는 남자의 눈을 피하기 위해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할까 싶던 그때, 앞에 서 있던 타카히로 군이 먼저 입을 열었다.

“ 그저 떨어진 손수건을 주워 드렸을 뿐이야. ”
“ 그런 것치고는… ”

멀리서 보았던 들뜸, 당황, 긴장의 기색이 역력했던 정국의 얼굴을 상기하던 남준이 시선을 옮겨 연을 쳐다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신구 하나, 의상의 옷감 하나 등 놓치지 않고 꿰뚫어 보듯. 이 여인의 무엇이 정국의 얼굴에 감정이 고스란히 나오게 했는가. 남준이 말을 잇지 않자 정국이 한 발자국 나아가 남준의 앞에 섰다.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九 | 인스티즈

“ 형이 상관할 일은 아닐 텐데. “


묘하게 날이 선 두 남자의 대화. 전해 들은 이야기로도 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들의 옆에 서서 상황을 판단하던 찰나, 첫째 아들인 나오키 군과 다시금 눈이 마주쳤다. 동지들에게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회를 노리고 있을 그들에게.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 타카히로 상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 맞습니다. 그리하여 은혜를 갚고 싶어 이를 어찌 할지 대화를 나누던 찰나였지요. “
“ 저, 되려 미안하지만 괜찮습니다. 기껏 해 봐야 손수건 한 장 돌려드린 것이니까요.“

정국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왜인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형의 눈빛이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정국이 자리로 돌아가자고 말하려던 그때, 남준이 먼저 선수를 쳤다.

“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
“ 소개가 늦었네요. 아마야 미사키입니다. “
“ 그렇다면 이리 된 것도 인연인데, 따로 갈 테이블이 있는 것이 아니시면 같이 가시겠습니까?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고요. “

남준이 웃자 그의 볼에 보조개가 패였다. 눈빛이나 행동가지를 보아서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닐 것인데, 생각보다 일이 너무 잘 풀리고 있었다. 그의 등장 한 번으로 순식간에 합석의 기회까지 다가온 것이다. 이 자는 무슨 생각인가. 서글서글한 미소에 분명 무언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여실했지만, 그런 걸 따질 시간이 없었다. 그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오히려 야마구치 타카히로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야마구치 나오키가 먼저 옆으로 비껴서며 앞으로 안내하듯 손을 뻗었다.




윤기가 창고 안의 물건들을 눈으로 훑었다. 창고는 먼지가 꽤 쌓여 있었지만, 두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 탓에 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창고 안은 연회를 준비하는 데 있어 필요한 갖가지 물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미 바깥에서는 준비가 막바지였기에 더이상 창고 안의 무언가를 찾으러 올 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혹시를 대비해 챙긴 단도가 손이 들려 있었다. 문 하나를 사이로 들려오는 클래식 재즈의 음악과 사람들의 말 소리가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일을 치룬다는 것은 늘 그랬다. 내 손에 들린 것이 폭탄이든, 총이든, 칼이든. 구름 위에 뜬 듯한 비현실적인 기분. 그런 기분을 누르고 현실임을 자각하면 손에는 땀이 나기 시작한다. 죽음을 각오한 거사는 예삿일이 아니건만 당연하게도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발소리가 들려온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에 윤기는 고개를 돌렸다. 이제 막 연회가 시작되었을 텐데, 테라스밖에 없는 2층에 굳이 오를 만한 일은 이유를 불문하고 거의 없을 테다. 곧바로 구석에 있는 철제 테이블에 큰 천을 올리고, 그 밑으로 가 몸을 숨겼다. 얼마 가지 않아 덜컥, 문이 열렸다. 손에 쥔 단도를 고쳐 쥐었다.

“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분명 내가 꺼내 두었던 것 같은데… ”

젊은 목소리의 남성이었다. 천 아래로 보이는 구둣발이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허나 발음을 보아하니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인 듯하고, 창고에서 무언가 찾는 걸 보니 직원에 가까울 테지. 창고의 모든 수납과 벽을 뒤져보는 듯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남자의 구둣발이 점점 가까워졌다. 하지만 여기서 남자의 하체를 바로 찔렀다가는 비명을 지를 것이고, 상을 뒤집고 입을 막아 처리하기엔 상이 엎어지는 소리가 크게 나겠지. 때가 아니다.

“ 누가 가져갔나? 하기야 비싼 술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

남자가 뒤를 돌았다. 그냥 보내 줄테니 가라, 제발. 천 안에 갇힌 윤기가 더운 열기로 인해 인상을 구겼다. 남자는 혼자 궁시렁대며 곤란한 듯 한자리에서 몸을 돌려댔고, 결국은 포기하려는 듯 문쪽으로 향했다. 한시름 놓았다. 근데 순간 문으로 향하던 발자국 소리가 멎었다.

“ 근데 저 천 버린다고 했던 것 같은데, 왜 저기 올려 놓은 거야? ”

그리고는 뒤돌아 망설임없이 탁상쪽으로 걸어온다. 젠장. 빠져있던 손에 힘을 주고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았다. 탁상 앞에 선 구둣발, 그리고 서서히 올려지는 천. 천이 거의 다 올려졌을 때, 바닥을 쓸 듯 튀어나와 남자의 목을 감싸고 칼을 눈 앞에 들이밀었다. 순식간이었다. 남자는 눈 깜빡할 새에 일어난 광경에 단말마의 헉 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자신의 동공 앞에 놓여진 뾰족하고 날카로운 칼이 믿기지 않을 뿐. 남자의 손에 들린 천이 다시 힘없이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 누, 누누누, 누구십니까? 왜, 왜 이러세요? ”
“ 그딴 건 알 필요없고 밖에 몇 명이야. ”

남자는 거의 우는 소리에 가까웠다. 이 사람이 밖에 누군가를 데려왔거나, 찾으러 올 법한 상황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결단을 내려야 했다.

“ 아, 아무도 없어요. 모, 못 본 척할게요. 진짜입니다. 제발, 제발 제발 살려만 주십쇼… ”
“ 미안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 ”
“ 예, 예? ”

남자를 감싸고 있던 손을 올려 그의 입을 막고, 칼로 목을 찔렀다. 읍,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발버둥을 쳤고, 그를 소리 없이 죽이는 데에 몸싸움이 벌어질 뻔했으나 정확히 울대를 찔러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았다. 세 번 정도 그의 목을 찔렀다 빼기를 반복, 남자의 몸은 힘이 빠졌고 먼지가 가득한 창고 안은 이젠 피가 흥건했다. 남자의 목과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고, 유혈이 낭자하게 된 창고는 퀘퀘한 냄새에 피 냄새까지 더해져 진한 냄새가 울렸다. 문제는 소리가 아니었다. 윤기는 이내 얼굴에 두른 두건을 내리고 머리를 쓸어 넘겼다. 머리며 옷, 얼굴까지 빼놓지 않고 피가 묻었다. 한숨을 내쉬고는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九 | 인스티즈

씨발.







” 참나, 이게 다 몇 명이여? “

호석은 테라스의 커튼 뒤에 숨은 채로 1층 홀을 내려다 보았다.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홀에 있는 사람만 해도 족히 육십은 넘어 보였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건너편 2층의 창고를 쳐다보았다. 그라도 저 답답시런 곳이 아닌 게 어디여. 얼굴에 두른 두건을 조금 더 위로 올렸다. 홀을 가만히 쳐다보니 돈 좀 있는 양반들이 수두룩이었다. 또한 죽어 마땅한 자들도. 호석의 눈길이 연회장 이곳저곳에 닿다가, 한 곳에 멈췄다. 야마구치와 그의 아들들인 나오키, 타카히로. 그리고 그들의 옆에 앉아 있는 연. 호석은 눈을 의심했다. 언제 저기까지 간 거여? 

호석이 윤기를 따라 나서 연을 처음 보았던 날, 호석은 그녀를 그저 허옇고 가느다란 토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툭 치면 부러지겄는디. 아지트를 따라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든 생각도 이뿐이었다. 물론 나라 구하는 일에 성별, 신분, 체력은 상관이 없다지만 이런 토끼를 써 먹을 데라고는 그것밖에 없을 텐데. 거사를 계획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걱정이 아른거리는 눈빛이 거슬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확신이 없어 보였어서. 치기 어린 애국심이라면 도움보단 폐가 될 확률이 높을 테지만, 그럼에도 대장이 굳건해서 믿었을 뿐이지.
하지만 그리 판단했던 자신을 깨부수는 듯한 광경이었다.



“ 그래서… 감사 표현을 하고 싶다 했다고? ”
“ 예. 마침 타카히로도 아마야 양을 그다지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고요. ”

정국이 남준을 쳐다보았다. 남준이 입꼬리를 올렸다.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九 | 인스티즈

“ 아, 물론 하고 싶으시다는 답례를 말입니다. ”

정국은 테이블 아래로 무릎 위에 올려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자신을 떠보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조차로도 속에서 열불이 났지만, 그보다도 아버지가 이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공포감이 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 아마야 미사키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너무나 영광입니다. 의원님. “
” 의원이라니, 관대한 호칭이지 않은가. “
” 하지만 곧 그리 되실텐데, 그것은 이미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으니요. 운이 좋게도 아드님께 도움을 받아 뵙게 되었습니다. “

떨릴 것 같은 입꼬리에 힘을 주고 웃어보였다. 셋의 눈이 한 곳에 모여 저를 주목시키고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가, 이중에 내가 마주쳐야 할 것은 누구인가.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야마구치의 눈이 나의 눈, 코, 입, 목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그의 눈이 가슴께정도에 멈춘 듯했다.

” 아마야 양은 미인이군. 몸매도 좋은 듯하고. “
” 과찬이십니다. 이정도 분칠은 여느 여인들도 다 하지 않겠습니까. “

입바른 말이 술술 튀어나왔다. 얼굴이든 몸이든 그의 이목을 끌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남준은 술을 한 모금 넘겼고, 정국은 아랫입술을 씹었다. 연회가 한창 진행 중이던 그때, 갑자기 장내의 불이 꺼지고는 무대의 불만 켜지고 장관 하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 존경하는 대일본제국의 여러분, 저희 일본이 조선과 함께 힘을 합쳐 이를 일구어 낸 지도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중 경제적으로 일어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인 조선 은행이, 오늘로써 20주년을 맞이했지요.
이 모든 것은 천황폐하의 뜻과 여러분의 노력이 있었기때문입니다. “

야마구치는 이어지는 연설에도 개의치 않고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게다가 특정 부위만은 뚫어져라 스캔하고 있는 모양새가 꽤나 작전이 그럴 듯하게 흘러가고 있는 듯했다. 눈을 돌려 2층 테라스의 커튼을 보니, 미세하게 움직이는 굴곡이 이제 멀지 않았음을 알렸다. 불이 꺼진 장내, 모두의 시선이 장관에게 몰려 있는 지금이었다. 테라스의 커튼이 미세하게 걷히고, 작은 총구 하나가 멀리서 반짝였다. 야마구치의 시선이 꽂혀 있어 함부로 몸을 돌릴 순 없으나, 지금이라면 민윤기 그 자도 준비를 하고 있겠지.

그때, 연회장의 입구쪽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뭔가 문제가 생긴 듯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장관에게 향해 있던 시선들이 하나 둘 다시 걷혔다. 야마구치와 그의 아들 둘 역시 입구를 쳐다보았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흔들리는 눈으로 테라스의 커튼을 응시했다.

탕!!!
총성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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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갈수록 더 재밌어요ㅠㅠ🥵🥵 작가님은 노래를 어떻게 찾으시나요?? 다음화도 기다릴게요!!!
5일 전
도비
안녕하세요! 재미있게 읽어 주시고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 BGM은 주로 제가 좋아하는 흐름의 구성인 곡을 열심히! 서치해서 찾거나, 비슷한 장르의 작품들에서 많이 가져오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D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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