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步
김선은 멍하니 앉아서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나는 죽었구나. 죽었다는 걸 알면서도 김선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의 오라버니는 저리도 외로이 있는데... 내가 무엇이라도 도움을 드려야 하는데... 게다가 자신들의 사람들 또한 피를 흘렸다. 무고한 사람들인데 어찌하여 피를 흘려야 했단 말인가. 내가 이 모두를 도와야하는데 어찌 나는 이렇게 죽어있단 말인가.
이 모든 것이 나의 탓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김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힘들단 건 알겠습니다만, 함께 가주셔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는 김선의 옆에 사내가 다가왔다. 김선은 서둘러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록 죽었다 해도, 처음 보는 낯선 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김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 또한 검은 의복의 사내들과 함께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저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자네는 누구인가?” 김선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망자를 이끄는 자들이지요.” 사내가 답했다.
망자를 이끄는 자들...허면 저승사자란 말인가? 저승사자라. 저승사자라면 무엇이든 알고 있을 것이다. 김선은 이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자네에게 물어볼 것이 있네. 나의 오라버니는, 어찌되는 것인가? 또 나의 사람들은 어찌되는 것인가?”
“저들 또한 죽은 자들이며, 당신의 오라버니 역시 죽은 자겠지요.”
사내는 당연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런 사내의 태도에 김선은 화가 치밀었다.
“저들은 무고한 자들일세. 나의 오라버니 역시 무고한 사람일세. 어찌하여 자네들은 진정 악한 자가 아닌, 무고한 자들을 거둬간단 말인가?”
“무고한 자, 악한 자. 모두 죽음 앞에서는 같습니다. 무고한 자라 한들 죽음은 그 사람을 데려가겠지요. 그것이 운명이니. 죽음은 선악을 따지지 않는 법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죽음을 탓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어찌 보면 이들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해도 자신의 탓으로 죽은 이들을 김선은 외면할 수 없었다. 김선은 저승사자를 지나쳐 자신의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저승사자는 순간 당황한 듯 보였으나, 김선이 사람들에게 향하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괜찮은가?”
김선은 이렇게 물었지만 왠지 자신이 바보 같다고 느꼈다. 죽음을 맞이하고도 괜찮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마마...!”
그들은 일제히 김선을 바라보았다. 분명 그들도 죽음 앞에 놀랐고, 슬플 텐데도 자신들의 눈 앞에 김선이 말을 걸고 있음에 더욱 슬퍼하는 듯 했다. 그 눈빛들이 김선을 더욱 아프게했다.
“미안하네, 이 모든 게 나의 잘못이야.”
“마마의 잘못이 아니옵니다. 부디....”
그들은 김선에게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 망자들의 주변에 서 있던 저승사자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을 깰 수도, 그렇다고 그대로 두기도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저승사자들의 표정을 읽은 저승사자가 김선의 곁으로 다가왔다.
“가시지요, 갈 곳이 있습니다.”
김선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망자가 향할 곳은 정해져 있으니, 내가 지금 따라나서지 않는다면 이들 또한 가지 않으려 할 테고, 그렇게 되면 이들은 죽어서까지도 나로 인해 해를 받는다. 가야만 한다. 김선은 천천히 자신의 옆의 저승사자를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안내해주게.”
다른 저승사자들도 자신이 맡은 사람들에게로 돌아섰다. 그제야 원래의 과정으로 돌아온 듯 했다. 김선은 자신의 옆에 있는 저승사자와 함께 걸어갔다.
*
“우리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김선이 물었다.
“망자들이 이승을 떠나기 전, 꼭 들러야 하는 곳입니다.”
“그곳이 어디에 있는가?”
“걷다보면 다다를 것입니다. 조금 저희와 함께 걸어주시지요.” 저승사자가 말했다.
김선과 저승사자 무리들은 궁을 걷기 시작했다. 늘 있던 궁 안이었지만, 김선의 기분은 묘하게 달랐다. 이것이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인지, 궁에 퍼져가는 피비린내 때문인지, 궁에 남겨진 자신의 미련 때문인지 김선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모두가 묘한 기분의 원인이리라. 그러니 굳이 이유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대신 정리하고 싶었다. 그녀의 마지막 길일 이 걸음걸음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 인연을 담아, 기억을 담아.
BGM - 돌이킬 수 없는 걸음-Reynah (https://youtu.be/PV_8ZESIqp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