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
망자들과 저승사자들의 무리가 그렇게 많이 움직이고 있건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들의 기척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아니 아예 모르는 듯 했다. 죽는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누구의 눈에도 띄이지 않고,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런 것. 그렇다면 다행이다. 내가 죽은 것이 보인다면 백성들은 뭐라고 할까. 보잘 것 없는 집안의 여식이 높은 자리에 가면 저리 된다, 전장의 신이라고 불린 장수도 별것 없다....... 이런 이야기를 듣느니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나으리라. 아니다. 궁 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알게 된다면 누구나 그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다만 내가 그런 말들을 듣지 못할 뿐.
바깥에 가까워지니 처음 궁에 오던 날 다시 돌아가면 어쩌나하고 고민하던 것이 떠올랐다.
"저 오늘 예쁩니까?"
"...못생겼다."
"그럼, 폐하께도 안 예쁘겠지요? 그 땐 집으로 돌아와야겠지요?"
"폐하께선 이미 너를 보셨다."
오라버니는 아닌 척, 무심하게 안심시켜 주었었다. 그 이야기를 하며 다시 돌아올 일은, 궁에서 나갈 일은 없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궁에 들어가 “그 분”을 처음 만나고서는 더욱. 그 후에 겪었던 일들에도 그녀는 이겨내 보이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돌아가고 있었다.
향하는 곳은 그녀의 그리운 집이 아니었지만, 분명 그녀는 돌아가고 있었다. 기왕 돌아갈 것이라면 지금 내 곁에 오라버니가 있다면 좋을 텐데. 지금 함께 있었다면 처음 궁에 오던 그 날처럼 무심히 달래주실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왠지 쓴 약을 마신 듯한 느낌이었다. 떠오른 기억 하나가 김선에게 복잡한 감정을 불어 넣었다. 그 때 김선 곁의 저승사자는 그녀에게 말을 붙였다.
“궁 밖으로 가는데, 가마가 없어서. 괜찮으십니까?” 저승사자가 물었다.
김선은 그의 말에 웃어야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나는 괜찮네.”
“사람이라... 참 재미있는 존재지요. 언뜻 보기에 완벽한 사람이라도,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니. 그렇지 않습니까? 누군가에겐 상처를 입혔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정말 둘도 없는 악인인데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든든한 기둥이 아닙니까. 어떻게 그런 존재가 되는지 몇 번을 봐도 모르겠습니다.”
김선은 잠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승사자가 자신의 곁에서 마음을 읽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를 잠시 바라보며 김선은 자신이 그에게 이름조차 묻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자네의 이름이 무엇인가? 내 자네의 이름을 묻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찌하여 저의 이름을 물으십니까?”
“자네가 내 마지막을 기억해줄 것이 아닌가.”
저승사자는 빙그레 웃었다. “...협(蛺)이라 합니다.”
골짜기라는 뜻인가(峽)? 어울리지 않게 대장부스러운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태도에는 왠지 가벼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은 궁궐의 문을 넘어 밖으로 나왔다. 협은 김선보다 조금 앞서 걷고 있었다.
“자네는 이 일을 많이 해보았는가?” 김선이 물었다.
“이번이 처음에 가깝습니다.”
“처음에 가깝다니?”
“이렇게 인도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인도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사람에 대해서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는 굉장히 즐거워보였다.
“사람에 대해 모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궁금한 것이 있네.”
김선은 협을 바라보았다. 김선은 늘 궁금했던 것을 묻기로 했다.
“옆에서 누군가가 잘못된 길로 이끄는데도, 어찌하여 사람은 그것을 따르는가?”
“잘못된 길로 이끌다니, 제가 말입니까?” 그가 놀라며 되물었다.
“...되었네. 답하지 말게.” 김선은 그를 믿어도 되는 것인지 조금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협과 조금 거리를 두고 걸으려했다.
“잘못된 길로 이끈다 해도, 그가 마음의 기둥이었다면 따르지 않겠습니까? 어릴 적부터 곁에 있어준 누군가라면 더욱 그러하겠지요.
아무도 자신의 곁에 있어주지 않던 어릴 적부터 기둥이 되어준 존재라면, 그 사람의 생각이 곧 나의 생각이 될 것이고, 그 사람의 색이 나의 색이 됩니다.
사람은 물들기 마련. 그럴수록 더더욱 떼어내기 힘들고, 지워내기 힘든 법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그를 다시 바른 말로, 바른 길로 이끌고 싶어도 힘들었겠지요. 그의 곁에 아무리 다가선다한들, 쌓아온 감정과 생각은 무시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마음 하나, 생각 하나가 사람을 지배하고 있을 터이니 말입니다. 결국 잘못된 길에서 빠져나오긴 힘들게 되겠지요.” 그가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김선은 우뚝 멈춰 섰다. 그럼에도 그는 말을 이어갔다.
“자신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될 때쯤이면, 너무 늦을 겁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며, 자신에게 바른 말을 해주었던 소중한 사람은―”
협은 뒤를 돌아 김선의 눈을 맞추며 말했다.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닐 테니. 그 쓰라림은 오롯이 자신이 감당해야할 것입니다.”
정말, 이 자는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것인가.
BGM 바람이 잠든 곳으로 - Reyn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