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일곱 명의 무한지구대 이야기
<응답하라112>
- 미스터몽룡
201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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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써 사건이 발생한지 꼬박 사흘째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사건을 수사한 것도 사흘째, 백아혼이라는 소녀가 억울하게 눈을 감은 것 또한 어느덧 사흘째 되는 날이다.
*
어제 오후, 국과수의 공식적인 감식 결과가 나온 뒤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수사는 막힘없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마치 양쪽에 천군만마와 같은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타살의 방향을 가리키는 물질적 증거들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타살이라고 확실하게 못 박을 수 있는 부검 결과가 없어서 수사에 진전이 없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러닝머신 위를 걷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하지만 결과가 나온 후, 수사 상황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180도 달라졌다.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힘겹게 달리던 승용차가 직선으로 곧게 뻗은 고속도로에 진입한 것 마냥 수사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붙기 시작했는데, 구체적인 증거 확보를 위해 손만 댔다하면 마법이 걸린 것처럼 모든 게 딱, 딱, 딱,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 뒤에는 강력7팀 형사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무엇보다 일 하나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처리하는 구경위 덕분이었다.
그는 울림경찰서 강력계 제 7팀을 이끄는 형사반장으로써 팀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알았고 경찰대에서 4년간 다져진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건을 차분히 훑어나갔다. 괜히 경찰대 출신이 아니었다. 물론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무한지구대의 수장 노릇을 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사람과 통화를 할 때면 종종 다혈질적인 모습이 나타났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칙칙한 강력계 분위기와는 다르게 '형사반장'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익숙한 복장이 아닌, 가죽 재킷이나 조끼 야상을 입는 등 굉장히 세련되게 입고 다녔다. 최신형 태블릿 PC는 어딜 가나 항상 들고 다녔으며 시시각각 휴대폰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이번 사건을 맡은 여검사 혹은 일반 여자친구들이었다.
뭔가 알면 알수록 좀 많이 괴기한 사람임이 분명했지만 뛰어난 능력과 성품을 고루 갖춘 그였기에, 팀원들은 그의 명령이 떨어지면 군 말없이 묵묵히 잘 따라주었다. 그의 말대로 해서 수사에 차질이 생기거나 범인을 놓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바람이 불면 공중에 이리저리 뿔뿔이 흩어질 민들레씨 같은 무한지구대(사실 김경위가 취임한 뒤부터 서로 지지고 볶느라 정신이 없다.)와는 달리, 팀워크가 유독 남다른 강력7팀은 구경위를 주축으로 하여 수사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학생 신분이니까 배려하는 차원에서 정문이나 후문에 잠복하지 마세요.]
뭣이라? 전화 건너편에서 똑부러지게 들려오는 여검사의 말에 그만 발끈하여 책상을 주먹으로 '쿵' 내려치는 구경위였다. 덕분에 서류를 보며 분주히 돌아다니거나 자리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강력7팀 형사들의 모든 이목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분위기가 그러던지 말든지 신경 쓸 만한 기분이 아닌 구경위는 그저 씩씩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 노처녀 여검사가 미쳤나…. 범죄자가 피해자를 최대한 배려하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무슨 놈의 얼어 죽을 '배려'란 말인가. 정말 눈물겨워서 못 들어주겠네…. 어금니를 꾹 물며 속으로 삭혀보지만, 잔뜩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하얗게 변한 그의 주먹은 미세하게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특히 그의 손등과 손가락을 이어주는 관절이 유난히도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배려요? 제 눈에는 한낱 범죄자일 뿐인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합니까?"
최대한 참아보려고 노력했으나 가만히 생각할수록 꾸역꾸역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차마 억누르지 못하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따지듯이 말하자, 건너편에서 헛웃음을 치는 여검사의 소리가 들려왔다.
[예정일보다 일찍 앞당겨서 발부 받아줬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이건가요? 범인들은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되는데요.]
"당연히 도주의 우려가 없죠. 범인들에게 '오늘 체포할거니까 꼼짝 말고 기다려.'라고 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만약 알려줬다면 진작 도망쳤겠죠. 검사님은 범인 체포가 한낱 어린애들 장난으로 보이십니까? 예고제도 아니고?"
말을 마친 구경위는 여검사와 통화하던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맞은편 벽 한 켠에 걸려있는 시계를 내다보았다. 시계에는 '울림경찰서'라고 쓰여 있었고, 시간은 정확히 5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그는 초조한 듯 오른쪽 다리를 달달달 떨기 시작했다.
[…같나요? 그러니까 굳이 학교에 잠복하지 않아도 충분히 잡을 수 있는데, 만에 하나 부정적인 언론에 '인정사정없는 경찰'로 꼬투리 잡히고 싶-]
"아, 됐고! 조금 이따가 봅시다."
신경질적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여검사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엄지손으로 종료 버튼을 누르자, 지금까지 통화한 시간과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이름이 화면에 깜빡깜빡 거렸다.
「노처녀 여검, 00:09:51」
에라이, 성질 고약한 검사 같으니라고….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마음속으로 여검사에 대한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있는데, 때마침 구경위의 기분을 살피며 '검사님이 뭐라 하시던가요?'라고 조심스레 물어오는 동료였다. 그 말에 휴대폰을 황급히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구경위는 '검사님이 아~무 걱정하지 말고 지금 당장 출동하라네요.'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건과 관련된 형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하던 일을 중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며 구경위 또한 의자 등받이에 걸쳐놓은 갈색 재킷을 부랴부랴 챙겨 입으면서 형사들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그런 그의 손에는, 불과 몇 시간 전에 발부받은 체포영장이 쥐여있었다.
*
범인 체포를 위해 이제 막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 울림경찰서와는 달리,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만이 무한지구대를 휘감고 있었다. 민생 업무에 치중하는 지구대의 특성상,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런 사건은 모두들 처음 겪어보는지라 긴장으로 인해 잔뜩 경직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범인은 과연 무사히 잡힐까? 양심의 가책은 느끼고 있을까? 등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모습이 딱 봐도 한 눈에 보일 정도였다.
특히나 김경위는 고개를 숙인 채, 주먹 쥔 양손을 머리의 양 옆에다가 대고 쥐 죽은 듯이 있었다. 이호원 순경은 깍지 낀 양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엄지손 마디에 있는 수많은 주름들을 응시하며 가만히 있었다. 반면 이성열 순경은 의자 등받이에 편히 기대고는 팔짱을 낀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분위기를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눈치 보며 살피다가, 이래가지곤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팔짱을 풀고 박수를 세게 한 번 쳤다.
"자, 자~ 다들 왜 그래요? 어디 초상났어요?"
그러자 다들 마지막 문장에 반응하여 일제히 그를 째려보았다. 아이고야…! 자신이 경솔했음을 재빨리 느낀 성열은 스스로 자신의 입을 텁, 하고 막았다가 떼고는 한참동안 눈치를 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범인이 잡히면 좋은 거 아닌가요? 오늘 아혼이 삼일장하는 마지막 날인데, 떳떳하게 찾아갈 수 있잖아요…. 왜이리들 긴장하시고 그래요…."
분위기에 짓눌린 이순경이 의기소침하게 점점 말끝을 흐리자,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더니 동의를 해주는 김경위였다.
"듣고 보니 그러네…. 왜 잔뜩 긴장하면서 이러고 있어야 하죠? 위에서 잘 처리해주겠죠. 우리는 묵묵히 업무나 처리하면서 범인이 1분 1초라도 빨리 체포되길 바랍시다."
말을 끝마친 뒤 주변을 한 번 쓱 둘러보는데, 이크…! 우연히 이순경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같은 표정으로 애타게 손을 흔들며 하이파이브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뭐야, 저건….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랄 법한 심드렁한 표정으로 하이파이브 요청을 아주 가볍게 무시한 김경위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정수기 옆에 서서 경찰들과 함께 긴장을 하고 있던 김의경이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저건 또 뭐야….
"장경장님은 3일 째 결근이신데, 장례식장에는 오시나요?"
그 말에 잠시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던 김경위는 좌우로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
"우리가 너무 늦게 온 게 아닐까요?"
운전석에 앉아 한참동안 후문을 응시하고 있던 동료가 걱정이 서린 얼굴로 구경위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불안함을 느꼈는지, 시선을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구경위쪽에 있는 조수석 창문이나 사이드미러를 보는 등 눈동자를 바삐 움직였다.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동료와는 달리 그는 아무런 걱정도 들지 않는지, 출동하기 바로 직전에 편의점에서 사온 크림빵을 뜯기 위해 부스럭부스럭거리면서 온 집중을 쏟아 붓고 있었다. 남의 속이 타들어가던 말던 간에 혼자서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종례하고 청소하고 그러다보면 이 시간대쯤에 후문으로 기어 나올 겁니다."
마지막 어절이 끝나기가 무섭게 팍, 하고 빵봉지가 뜯어졌다. 거칠게 뜯어지는 소리와는 달리, 내용물은 바닥에 쏟아지지 않고 포장된 그대로 온전히 담겨있었다. 포장봉지에 손을 반쯤 집어넣어 빵을 꺼낸 그는 '그나저나 이거 한 입 드실래요?'라며 동료의 얼굴 가까이에 동그란 크림빵을 들이밀었다. 이에 동료는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뒤로 슬쩍 뺐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구형사님 많이 드십시오, 하하…."
정말이지 안줘도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생긴 건 좀 투박하긴 해도 맛은 기똥찬데 왜 거절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구경위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고는 크림빵을 크게 한 입 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았는지 먹이를 먹는 햄스터처럼 두 볼이 빵빵해지도록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그러다보니 빵은 눈 깜짝할 새에 절반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 이 정도면 그가 한 입에 털어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그냥 먹기에는 조금 목이 메일만한데도 불구하고, 그저 양볼에 가득히 찬 빵을 우유도 없이 우물우물 씹고 있는 그의 입가에는 새하얀 크림이 묻어있었다.
"저기, 구형사님. 입가에 크림…, 묻으셨는데요."
동료가 검지로 쿡쿡 가리키면서 크림이 묻은 위치를 알려주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입안에 있는 것을 꿀꺽, 꿀꺽, 꿀꺽, 세 입에 나눠 힘겹게 삼키고는 엄지손으로 입가를 훔쳐냈다.
"에이~ 아껴 먹으려고 하던건데…."
그러고는 낼름 핥아먹는다. 이를 지켜보던 동료의 눈이 가느다랗게 변했다. 아니, 이럴 거면 애초에 혀로 핥아먹을 것이지 뭣 하러 손으로 훔쳐내고 그걸 핥는담…! 속으로 한바탕 난리를 치고 있는 그 때, 잠시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구경위가 무엇을 발견한 것 마냥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어? 저거 범인인 것 같은데!!!!!!"
그 말에 즉각 반응한 동료는 고개를 돌려 자동차 전면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고작 9월 초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뭐가 그리 추운건지, 엘리베이터 폐쇄회로 TV에서 본 기억이 있는 익숙한 차림새(패딩과 후드집업이었다.)의 두 여학생이 후문으로 빠져나와 깔깔대면서 걷고 있었다.
잠시 잠깐 굳은 것처럼 앉아있던 두 형사는 정신을 가다듬고는 그들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하면서 자신들의 어깨를 가로지르고 있는 안전벨트를 다급하게 풀었다. 딱, 하고 안전벨트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자 부랴부랴 어깨에서 걷어내더니 문손잡이를 잡아당겨 차에서 내렸다.
쿠궁.
차문을 닫는 두 개의 둔탁한 소리가 엇박자로 연이어 들렸다. 차를 가운데에 두고 나란히 서있게 된 구경위와 그의 동료는 서로 마주보았고, 결의를 다지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면서 알 수 없는 신호를 주고받았다. 그러자 구경위가 먼저 서서히 발걸음을 내딛더니 범인에게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반쯤 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일정한 간격이 벌어지자 동료도 그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저기, 학생! 뭐 좀 물어볼 게 있는데요-"
앞으로 닥칠 일을 아무것도 모른 채 제일 신나게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특정인물의 뒤로 바짝 다가간 김경위는, 팔을 쭉 뻗어 범인의 손목을 붙잡아 휙 돌려세웠다. 그러자 그에 대한 반동으로 뒤를 돌아보는 범인의 얼굴에는 꽤나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순식간에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뀌더니 자신을 불러 세운 구경위를 아래서부터 위로 쭉 한 번 훑어본다.
검은 워커에 갈색 재킷, 그리고 말끔한 얼굴과 염색한 머리…. 그저 누가 봐도 영락없는 20대 남성일 뿐이었다. 겉모습으로 판단한 결과, 절대로 이상한 사람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시름 놓였는지 범인들은 서로 마주보면서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조무래기 같은 그런 모습을 내려다보며 알 게 모르게 가벼운 미소를 피식 흘리는 구경위였다.
그는 매번 이런 식으로 범인들을 잘도 낚았다. 전혀 눈꼽만큼도 형사스럽지 않은 이러한 차림새는 이럴 때마다 엄청난 진가를 발휘했다. 그 힘이 어느 정도냐면, 무한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대 동기는 가끔가다 우스갯소리로 '에라이, 범죄자들을 상대로 사기 치는 사기꾼아!'라고 말할 정도였다. 물론 일반 사람들의 고정관념 속 '형사'라는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게 비교적 어린 나이도 단단히 한 몫 했을 것이다. 마치 보란 듯이 범인들에게 가까이 접근을 해도 그들은 구경위의 겉모습만을 보고 경계를 쉽게 풀곤 했다. 간혹 가다 촉이 좋은 놈들은 곧바로 줄행랑을 치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백이면 백, 이미 같은 출발선에서 뛴 구경위에게 얼마 못가 허무하게 붙잡히고 마는 식이었다.
가만히 잘 생각해보면, 26세의 패셔너블한 형사반장이 존재하리라고 대체 어느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여기 이 학교가 무한고등학교 맞나요?"
범인들의 경계가 스르륵 풀어진 그 틈을 타, 재빨리 질문을 하나 던지고 난 구경위는 시선을 내리깔아 그들의 명찰을 힐끗 쳐다보았다. 자신이 붙들고 있는 사람의 이름은 이○○, 옆 사람의 이름은 박○○이었다. 이들은 분명 자신들이 잡아야할 범인들의 이름과 정확히 일치했다.
"네, 맞는데요."
"아, 그래요?"
말을 마친 구경위는 옆에 있는 동료에게 까딱, 고갯짓을 하여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동료는 발걸음을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더니 공범의 손목을 붙잡았다. 도대체 이건 무슨 상황인가 싶어 머리 위로 수많은 물음표를 그려내는 그들을 뒤로한 채 조용히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수갑을 꺼내는 구경위였다.
그러고는 자신이 잡고 있는 범인의 손목에 채우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당신을 백아혼양 살인사건 범인으로 체포합니다."
철컥.
수갑을 완전히 채우는 소리가 들리자, 일순간 범인의 눈이 엄청나게 커지더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며 거세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함께 저항하는 공범의 손목에도 어느 순간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그러자 혹시나 있을 도주의 우려 때문에 걱정이 되었는지 저 멀리 주차된 맞은편 차량에서 형사 네 명이 다급하게 내렸다. 하지만 기껏해야 열아홉 먹은 소녀가 아등바등 거리며 제 아무리 거칠게 저항해봤자 체력적으로 남다른 구경위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아귀에 지그시 힘을 주어, 손목이 뒤틀릴 것 같은 고통으로 범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게끔 하였다.
그러고 나서 범인의 남은 손목에다가 반대편 수갑을 유유히 채우며 말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조사에 진술하기를 거부할 수 있으며 당신의 진술이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으므로 마음껏 묵비권을 행사하셔도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차분하게 미란다 원칙을 읊는 그와 달리, 번쩍번쩍 광이 나는 수갑에는 분노로 인해 붉으락푸르락 거리는 범인들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
"이어서 다음 소식입니다. 10대라기엔 너무나도 대담했던 백모양 살인 사건의 범인들이 드디어 붙잡혔습니다. 손혜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오늘 오후 5시 20분 경, 백모양 살인 사건의 범인들이 근처에 잠복하고 있던 경찰들에 의해 붙잡혔습니다. 경찰은 백양이 숨지기 이틀 전, 뺑소니를 자수하기 위해 인근 지구대를 찾았다는 점에 주목하여 당시 함께 폭주를 했다던 이양과 박양을 수소문 했습니다. 그러다 수사 3일 째 되는 과정에서 경찰은, 두 소녀들이 주변 친구들에게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 배신자를 붙잡아서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팼대요…. 그런 다음에 옥상에서 밀어버렸다고 무척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는데, 사실 너무 무서웠어요….
- '그 X은 배신자라서 죽어도 마땅하다.'라고 친구들한테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어요.
- 신고요? 마음은 굴뚝 같았죠…. 근데 만약 신고했다가 걔네들한테 걸리면 죽은 XX이처럼 될까봐…….
[이번 사건의 범인인 이 양과 박 양은 특수절도죄로 몇 달 전 한 보호관찰소 위탁감호시설에 입교하여 알게 된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둘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남다른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피해자를 고층 아파트 아래로 밀어서 떨어뜨린 점을 순순히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살해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반면, 이들은 죽은 피해자가 자신들을 배신한 데 대해서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입니다. MBS 뉴스, 손혜영입니다.]
잠자코 뉴스를 시청하던 동우는 리모컨의 빨간 버튼을 꾹 눌러서 TV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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