忘
김선과 다른 이들이 모두 마당으로 들어오자, 협은 뒤를 돌아 다른 저승사자들에게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하지.”
다른 사자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다들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는 눈빛이었다.
그는 이런 일을 처음 해봤다고 했으니, 혼자 하겠다는 그를 두고 갈 것인지, 고민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걱정하지 말게. 내 알아서 할 테니.”
저승사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천천히 협에게 인사를 하고 유유히 빠져나갔다. 저승사자들이 빠져나간 후 협은 신을 벗고, 문을 열고 들어가 망자들을 안내했다.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바깥에서 보였던 것보다 훨씬 넓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방의 한 가운데에는 상이 놓여져 있었고, 한 쪽에는 차를 끓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방의 바깥쪽에는 신을 신고 나갈 수 있는 더 넓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 공간이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들 편한 대로 앉아주십시오.” 협이 말했다.
모두 앉길 망설였다. 그러자 김선이 말했다.
“다들 앉게. 괜찮을 것이야.”
그 말을 듣고서야 하나 둘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다들 끝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덜컥 겁이 난 것 같았다. 어느 한사람도 말하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몇몇은 눈을감고 기도를 드렸고, 다른 몇몇은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 웃을 듯, 곧 눈물을 흘릴 듯 묘한 표정을 했고, 또 다른 몇몇은 김선을 살폈다. 김선은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을 안심시켜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기 자신도 어찌될지 몰라 두려운 상황에 다른 이들에게 그 이상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도 확실하지 않았고, 그들에게섣섣불리 말이나 행동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김선은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진정한 삶의 끝이란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은 그 방 안에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아니,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아닌, 어떠한 다른 존재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망자를 이끄는 자는 절대 평범하지 않으니까. 그 유일한 존재는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며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방 안은 들어올 때부터 어쩐지 차 향기가 났던 듯 했다. 무(無)로 돌아가기 전, 차 한 잔으로 위로라도 하는 것일까? 혹 환생이라도 할까? 어째서 저 자는 차를 끓이고 있을까. 하지만 무(無)로 돌아가기 전에, 다음 생을 이어가기 전의 차 한 잔은 너무나 작아 보였다. 차라리 애틋하게 생각하는 사람, 나의 든든한 가족, 혹은 그 누군가라도 보게 해준다면 좋겠는데…….
이제 협은 찻잔을 준비하고, 차를 따르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하나가 부족했다. 찻잔의 수와 사람의 수가 맞지 않았다. 김선은 입술을 깨물었다. 불안함이 그녀를 덮쳐왔다.
협은 쟁반을 들고 한명 한명에게 직접 차를 건네 주었다. 협이 들고 다닌 쟁반이 비었지만, 김선은 찻잔을 받지 못했다. 김선은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두 손을 꽉 움켜잡았다. 다른이들과 다르게 취급받는 것이 전혀 좋을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드십시오. 마시면 이승에서의 기억을 잊게 됩니다.”
협이 찻잔을 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모두 술렁였다.
“저는 기억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살면서 소중한 것들을 얻었는데!”
“그럼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된단 말씀이십니까...?"
"저, 저는 무섭습니다!”
“꼭 기억을 잃어야 하는 것입니까? 이 차를 마시지 않는다면 어찌 되는 것입니까?"
방 안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너도 나도 한마디씩 하는 통에, 누가 뭐라고 말하는 것인지 알기 힘들었다.
“마시지 않는다면 괴로울 뿐입니다. 차를 마시지 않은 것을 후회하겠지요.”
협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태도에 사람들은 더욱 혼란스러운 듯 했다.
“....허나, 마마께서는 차를 받지 못하셨습니다. 마마께도 차를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한 나인이 말했다. 평소 김선을 성심껏 모시던 나인이었다.
“마마가 보통 분이라면 그렇게 했겠으나, 보통 분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먼저 차를 마셔야 합니다.”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 둘, 김선을 바라보았다.
“나는 괜찮으니, 어서들 마시게.” 김선이 말했다.
대답을 듣자, 그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김선을 향해 예의를 갖추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 그들은 김선에게 절을 올렸다. 김선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김선은 애써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이것이 그들과의 마지막이라면, 강인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마마.”
인사를 마지막으로, 그들은 차를 마셨다. 그들의 눈에, 슬픔이 사라졌다.
BGM 보이지 않는 슬픔 - Reyn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