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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탱 전체글ll조회 1623l 2






태니




젤리탱. 









01. 




누군가가 따라오는 느낌이 들어서 여자는 가방을 품 속에 품고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에 여자는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달은 그믐달이어서 밝게 거리를 비춰주지 못했고 가로등 빛은 꺼져 있는 것과 켜져 있는 것이 질서 없이 늘어져 있었다. 





[태니] 변화 01 | 인스티즈



숨을 멈춘 채로 걸음을 멈췄다. 따라오던 발걸음 도 멈췄다. 뒤를 홱 돌아봤다. 거짓말 같게도 아 무도 없었다. 어디로 도망치고 싶은데 시간이 시 간인 지라 마땅치가 않다. 


아까 저녁에 왕창 들이부었던 술이 다 깨는 느낌 이 들었다. 엄마가 일찍 들어오라 할 때 엄마 말 들을 걸 왜 말을 안 들어서 이러고 있어야 하나.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며 떼어지지도 않는 걸음을 놀리는데 누군가 어깨를 톡톡 쳤다. 


놀라서 여자의 몸이 움찍 굳었다. 여기서 도망치 면 큰 일은 일어날 것 같진 않은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왜 이러지?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이성이 무너지고 판단이 마비되었다. 이렇게 죽 는 건가 봐. 죽고 싶지 않은데, 하늘도 무심하셔라 . 




"저기요." 




여자를 두드린 사람의 목소리는 의외였다. 목소 리가 높지 않지만 남자의 것은 아니었다. 여자는 안심이 됐다. 괜히 쫄았다고 생각했다. 속에서 욕 이 절로 튀어 나왔다. 여자가 뒤를 돌아봤다. 


태연이 생글 웃고 있었다. 이 야심한 시각에 웬 미친 사람이 나타난 줄 알았다. 




"무슨 일이세요?" 




태연은 웃기만 할 뿐 답이 없었다. 여자가 언성을 높였다. 




"무슨 일이시냐구요!??" 

"그냥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예고 해주 는 거예요." 




뭔 미친 소리람. 여자는 태연을 무시하고 가던 길 을 걸어갔다. 태연이의 얼굴이 구겨졌다. 짙게 그 늘이 깔려져 있는 것도 같았다. 여자는 그것도 모 른 채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자신이 방금 전까지 무슨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몰랐던 것처럼 굴고 있었다. 난데없이 새벽거리 에 개가 컹컹 짖는 소리가 들렸다. 




"경고 한 건데, 무시하면 쓰나..." 

"......" 




여자는 태연의 말을 듣지 못했다. 콧노래 소리는 더 커져서 여자는 사람의 존재 유무도 못 알았다. 태연이 씩 웃었다. 




"그럼 바로 재밌게 해주면 되지." 




태연이 다시 한 번 더 여자를 불렀다. 여자는 짜 증난다는 표정을 지었고 아, 왜요! 라고 답하기도 전에 태연은 빠르게 성큼성큼 여자에게로 걸어갔 다. 여자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태연의 손에 반짝이는 게 들려 있었고 그것은 날 카롭게 여자의 배를 꿰뚫었다. 




"아으..." 




여자의 귓가에 고스란히 들린 음성은 지나치게 차가웠고 이상했다. 사람을 찔러서 당황한 소리 가 아니라는 걸 여자는 흐릿해져 가는 정신 속에 서도 알 수 있었다. 태연은 뿌듯한 뭔가를 성취한 듯 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동시에 짜릿함도. 


피에 축축히 절어있는 손으로 여자의 얼굴을 어 루 만졌다. 난 이런 공허한 눈이 좋더라. 죽어가 는데도 어떻게든 살고 싶어서, 그런데 그러지 못 해서 내는 눈빛. 태연이 작게 중얼거렸다. 


끈적한 피에서 피냄새가 풍겨왔다. 태연은 여자 의 몸에서 나는 피로 여자의 코에 잔뜩 묻혀주었 다. 




"어때? 이게 네 피냄새야. 좋지?" 

"......"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해. 입만 다물고 있지 말고." 




여자는 감기는 눈을 참지 못하고 감아 내렸다. 방 금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숨을 쉬고 있던 여자는 무너져 내리듯이 쓰려졌다. 땅 위로 방치된 여자 의 몸에서 박힌 칼을 빼냈다. 




"끈적거려." 




태연은 그대로 주저앉아서 손에 묻은 피의 냄새 를 맡았다. 코에 특유의 피 비린내가 끼쳐 들어왔 다. 묻은 피가 시간이 지나서 말라 굳을 때까지 태연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태연은 죽은 여자의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콧대 위에서도 손가락이 놀고 입술에도 손가락이 놀았다. 감겨있는 눈을 억지로 뜨도록 잡아 벌렸 다. 




"예쁘게 생겼네. 아깝다." 




피로 얼룩진 손목시계를 쳐다보니 새벽 2시 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태연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더 재밌게 놀 수 있었는데. 욱해가지고 재미없게 죽였네." 









* 









요즘 뉴스에선 을씨년스럽게 하루도 빠짐없이 살 인 사건을 다뤘다. 혼자 사는 여자에게 있어서 결 코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되도 록 큰 대로 쪽으로 걸으려 노력하고 호신용 물품 들도 구매했다. 


날이 추워지고 눈이 심심찮케 내리는 연말이 다 가오자 여기저기서 술 한 번 먹자고 연락이 날아 왔다. 메시지함에 불이 날 것 같다. 달력 속 일정 도 약속들로 빡빡했다. 


잊고 지냈던 사람들에게도 연락이 와서 피곤했다 . 오늘은 고등학교 동문회 술자리였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 얼굴에 반가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 고 수다를 떨었다. 


내일 또 모임이 있어서 미영은 권하는 술에도 잘 받지 않았다. 저녁에 시작한 동문회는 밤이 다 늦 어서야 파했다. 차를 가져온 진기가 미영을 불렀 다. 




"미영아 혼자 가냐? 내가 태워줄게!" 

"응? 괜찮아." 

"이렇게 늦은 시각에 너 혼자 간다고? 그냥 내 차 타, 태워줄게." 




차 문까지 열어준 진기는 타라고 소리를 고래고 래 지르며 재촉했다. 결국 미영은 사양하지 못하 고 받아들였다. 


진기는 고 2때 만나서 성인이 된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만나고 연락하는 남사친이었다. 


미영의 집 방향으로 향하는 차 안은 유쾌했다. 서로 바빠서 여름에 한 번 만나고 이번이 두 번째 였다. 




"정신과 의사는 안 힘드냐? 감정노동 장난 아닐 거 같아." 

"생각보다 안 힘듦, 넌 나 만날 때마다 그 소리야." 

"걱정돼서 그러지. 안 그래도 세상 흉흉한데." 




흉흉한 세상이랑은 뭔 상관이야? , 몰라. 
차는 코너를 돌았다. 미영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 인 골목길이 보였다. 골목길이 좁아 차가 들어갈 수 없었다. 




"바래다 줄까?" 




진기는 안전벨트를 풀며 말했다. 




"됐어, 바로 앞인데. 바래다줘서 고마워." 




진기는 도로 안전벨트를 맸다. 미영은 안전벨트 를 풀어 차에서 나왔다. 진기에서 손인사를 하고 차가 동네를 빠져나가는 것까지 확인했다. 


어깨에 매여진 가방을 고쳐매고 골목길을 걸었다 . 하늘을 보자 달이 밝게 떠 있었다. 밤하늘이 맑 은 것과는 반비례 되게 밤바람은 추웠다. 옷을 여 미고 집 가는 길을 재촉했다. 


좋아하는 밤 바람 겨울 냄새만 나다가 비린내가 섞여 들었다. 미영은 후각을 곤두세우고 무슨 냄 새인지 알아내려했다. 익숙한데 많이 맡을 일이 없어야 하는 냄새였다. 


구둣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게 했다. 말로 설명하 기 힘든 소리도 반복해서 들려왔다. 미영은 흐릿 한 형체가 뚜렷해지자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 했다. 가로등 빛을 받으며 있는 사람의 행위는 끔 찍했다. 




"...뭐하시는 거예요?" 

"......" 

"지금..." 




미영의 질문에 사람은 반복하던 행위를 멈췄다. 




"봤네요?" 

"네?" 

"봤잖아요. 내가 하는 거." 




미영은 침을 삼켰다. 저 사람이 말하고 있는 내가 본 거라면 벽에 기대 쓰러진 어떤 여자 위에 앉아 배에 칼을 계속해서 찔렀다 뺀 걸 말하고 있는 거 다. 


하얀 얼굴에 빨간 피가 튀었는데 두 색은 굉장히 대조적이었다. 칼이 내동댕이쳐지고 그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터진 배에서 나오는 피 에 그 사람은 손을 담가 손씻기 하듯이 손에 빨간 피를 묻혔다. 


추운 날씨에 따뜻한 피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그 사람은 칼을 주워들고 미영에게 다가갔다. 미 영이 잠깐 사이에 그 사람을 훑어봤는데 뭐 하나 귀티 나지 않는 게 없었다. 하물며 쓰는 칼 까지 도. 


유심히 들여다 본 칼은 군용칼이었다. 홈이 패여 져 있는 흔히들 보위 나이프라고도 불리는 군용 칼. 진기랑 서든어택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아 이템들이 이런 순간에 빛을 발했다. 


가까이서 본 그 사람은 앳되어 보였다. 웃고 있었 고 피철갑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목에 드는 한 기에 놀라 내려다보니 목에 칼이 들어와 있었다. 




"목 찌르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뭐, 오늘은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칼은 목에서 뒹구르르 돌다가 점점 아래로 내려 왔다. 온 신경이 칼끝에 집중했다. 배에서 놀고 있는 칼에 저 쓰러져 있는 여자 꼴이 날 것 같아 무서워졌다. 칼은 목으로 올라왔다. 







[태니] 변화 01 | 인스티즈


"울어요?" 






"......" 

"흐응, 우는 거 많이 봐서 그냥 그런데." 




미영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울음이 나오 면 안되는데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손으로 눈물 을 닦았다. 그 사람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칼을 잡은 손에 힘이 빠졌다. 그 사람은 고개를 뒤로 돌려 차갑게 죽어간 여자를 쳐다봤다. 그러 더니 덜컥 미영의 볼을 손으로 만졌다. 역겨운 피 비린내가 올라왔다. 피가 굳어 생긴 까슬한 느낌 도 든다. 




"무서워서 덜덜 떠는데도 살려달란 말은 안 하네 요?" 

"......" 




살려달라는 말을 해봤자 그 사람이 무얼 참고 하 겠는가. 말해도 죽는 거고 말 안해도 죽는 거다. 어차피 결과는 똑같은 상황이 일어날 것이 뻔한 데 자극 시키고 싶지 않았다. 




"말 좀 해봐요. 혹시 저 여자 때문에 무서워서 그 래요?" 




퍽이나 말투가 다정스럽다. 미영이 고개를 끄덕 였다. 칼이 무자비하게 파고 들었던 배는 헤집어 져 있었다. 눈이 펑펑 온 게 어젯밤이여서 바닥엔 온통 눈밭이었다. 눈밭에 피가 흩뿌려져 있는 건 눈 뜨고 못 볼 광경이었다. 




"내가 당신 죽일지도 모르는데 난 안 무서워요?" 




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 온 건진 미영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그러자 그 사람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내려왔다. 


미영이 칼을 잡은 사람의 손을 제 목에서 멀리 밀 어냈다. 의외로 쉽게 멀어졌다. 그 사람은 어이가 없는지 허- 하고 웃었다. 자기도 왜 그렇게 허무 하게 밀쳐졌는지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다. 


입장은 주객전도 되어서 여유롭던 그 사람은 반 대로 미영의 입장이 되었고 미영은 여유로워졌다 . 




"왜 칼이 쉽게 떼어졌는지 알고 싶으면 내일 여기 에 쓰여져 있는 곳으로 와요." 

"......" 

"그럼 찬찬히 알려줄게요." 




미영이 건넨 건 명함이었다. 미영은 인사하고 집 으로 들어갔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들키지 않으 려고 빳빳이 걸어갔다. 집으로 들어가서 나 혼자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앉 아버렸다. 













무료한 날이었다. 진료도 안 들어오고 환자들과 의 상담도 많이 없는 날. 이런 날이 많지 않아서 의자에 몸을 푹 기대어 쉬고 있었다. 못 읽었던 책이나 읽을까 해서 책을 집어 들자마자 노크소 리가 났다. 




"진료 들어왔어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끝나자 진료실 문이 열렸다. 나는 자세를 잡고 가운을 정리했다. 진료실로 들 어오는 환자의 얼굴을 보고 '무슨 일로 오셨어요.' 라는 말이 튀어 나가지 못했다. 


내 벙찐 모습에 간호사는 놀랐는지 내게 눈치를 줬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컴퓨터 속 차트를 봤다 . 간호사가 있는 마당에 의례적으로라도 말을 해 야할 것 같아서 말을 꺼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내 진료실 곳곳을 둘러보던 사람이 내 눈을 딱 보 고 품에서 명함을 꺼내 보였다. 




"그쪽이 오라 해서요."




나는 눈짓으로 간호사에게 나가달라고 부탁했다. 간호사가 나가는 문 소리가 나고 진료실은 조용 해졌다. 




"정신과네요? 그쪽이 보기엔 내가 이상한가?" 

"김태연 씨, 일단 이것부터 해주세요." 



난 종이를 들이밀었다. 펜도 건넸다. 김태연의 얼 굴이 차가워져 있었다. 그렇게 사람 됨이 나쁘진 않다고 여겼는데 더럽다. 어떻게해야 깨끗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오늘 새벽 일 때문에 나 부른 거잖아요. 그게 지 금 나 정신병자 취급하는 것 같아서 매우 불쾌해 요." 




입이 험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나긋나긋하고 차 분했다. 생각으로 바쁘던 나는 김태연의 낮은 경 고를 그냥 넘겨버렸다. 




"정신병자 취급 안 해요. 정신과에는 꼭 정신이상 자만 온다는 고정관념이 있으신가 본데, 아니거 든요." 

"......" 

"당신 같이 상처 입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에요. 말 함부로 하지 말아요." 




태연이 새벽에 냈던 것처럼 헛웃음을 냈다. 태연 은 펜을 들고 종이에 써진 설문에 성실히 응했다. 다 했다는 싸인에 나는 설문지를 살폈다. 


이 설문으론 단정 짓긴 이르지만 싸이코 기질이 있어 보이는데 생긴 건 또 멀쩡히 생겨서 아이러 니하다. 


대부분의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들은 생긴 게 험악해보인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대체적으로 다 호감형이고 일반인처럼 보인다. 김태연도 그런 케이스 중 한 명이었다. 




"오늘 상담할래요?" 

"......" 

"나 시간 널널한데, 보아하니 일하다 온 것 같아 요." 

"......" 

"왜 답이 없어요?" 

"...아니에요. 지금 해요. 난 상관없어요." 











 
독자1
태연이가 미영이한테 휘둘리는 모습이 재밌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7년 전
독자2
와.... 진짜 너무 잘 쓰셔요 자까님ㅠㅠㅠ
7년 전
독자3
작가님ㅠㅠㅠ정말 항상 잘 보고있습다
너무 잘 쓰세요 진짜진짜ㅠㅠㅠ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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