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빛이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이불 밖으로 뻗어있는 남준이의 손에 조심히 닿았으면.
그리고 남준이가 몸을 돌려 베개에 얼굴을 부비다가 천천히 눈을 뜰 때 쯤이면, 한층 더 밝아진 방 안이 보였으면 좋겠다.
그 다음은 옆에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윤기가 보였으면.
느릿하게 눈을 부빈 남준이가 잠기운을 조금씩 덜어내면서 몸을 돌려 윤기를 꼭 끌어안고 얼굴을 부볐으면 좋겠다.
그리고 잔뜩 헝클어진 머리 아래로 보이는 새하얀 얼굴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언제나처럼 윤기를 깨웠으면.
뺨을 간질이는 머리카락, 목덜미을 간질이는 말랑한 뺨, 허리를 간질이는 단단한 팔.
윤기는 못 이기겠다는 듯 웃으면서도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손을 들어 남준이의 어깨를 더듬다가 이내 금방 원하던대로 남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으면.
주인아, 일어났어?
어. 깼다.
오늘도 남준이와 윤기의 하루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느지막한 오전과 오후의 경계에서, 그렇게 느릿하게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아점은 남준이가 잘 먹는 반찬 몇개와 윤기가 좋아하는 반찬 두어개.
식탐이 없는 윤기의 밥 위에는 아무 반찬이 없다 싶으면 남준이가 이제는 제법 모양새 잡힌, 윤기와 꼭 달은 젓가락질로 반찬을 올려주었으면.
윤기는 알아서 잘 먹고 있다고 답하면서도 남준이가 반찬을 올려주는 대로 밥을 먹었으면.
그러다가 남준이가 물컵을 팔꿈치로 건들여 엎지를 뻔한 걸 잡아내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다가 덩어리 째 굴러떨어지는 걸 보고 휴지를 묵묵히 건네기도 했으면.
조금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혼이 날까봐 슬쩍 두 손을 뒤로 숨기는 남준이를 애써 모른 척하면서 손, 이라는 말을 했다가
남준이가 얌전히 두 손을 올리면 결국 귀엽다는 듯 웃어버리는 윤기가 보고 싶다.
그 때면, 남준이의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렸으면 좋겠다.
아침 겸 점심을 모두 먹고 나서는 또 한가로운 오후가 시작되었으면.
추운 걸 질색하는 윤기인지라, 자신을 껴안고 있는 비교적 높은 체온의 남준이에게 한껏 기댄 채로 티비를 바라보고 있었으면.
남준이도 같이 티비를 바라보면서 윤기와 비슷한 시점에서 웃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 두개의 예능 프로그램을 모두 보고 나서는 윤기가 깜박했다는 듯 몸을 일으켰으면.
슬쩍 허리에 감싼 손에 힘을 주는 남준이를 달래면서 핸드폰을 가져와 무언가를 적어내려갔으면 좋겠다.
준아.
응, 주인아.
마트 가자.
마치 산책 가자, 라는 말과 똑같이 들리는 그 소리에 남준이의 귀가 쫑긋거렸으면 좋겠다.
바로 일어나 외투를 챙겨오고, 덧붙여서 윤기의 목도리까지 가져온 남준이에 윤기는 웃으며 칭찬이라며 남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으면.
아직도 겉옷만 가져오지만, 그건 그거대로 귀여워서 윤기는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가 남준이와 자신이 갈아입을 옷을 챙겨왔으면 좋겠다.
두툼하게 서로 옷을 챙겨입고 간 마트에서는 또 남준이와 윤기의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으면.
사고 싶은 걸 골라 가져오는 남준이, 시식코너에 잡혀서 먹었다가 맛있다며 눈을 반짝이는 남준이, 발 끝으로 진열대를 쿵 차버려서 윤기까지 놀라게 하는 남준이.
결국 마트 구석에서 예전의 어느 때 처럼 양 손이 꾹 잡힌 채로 혼이 나는 남준이였으면.
이상한 것만 골라오지 말라고 한 소리 하면서도 카트 안에 자신이 좋아하는 간식을 잔뜩 담는 윤기를 보며 남준이는 서운함도 잊고 윤기의 어깨를 끌어안았으면 좋겠다.
손 마디와 손가락 끝이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추운 날이었으면.
마트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생각보다 가벼운 짐에 단골 카페에도 들려서 따뜻한 커피와 음료를 한 잔씩 들고 집으로 걸어갔으면.
아까 봤던 예능 프로그램, 마트에서 봤던 것, 오늘 저녁은 뭐 해먹을까 같은, 사소하면서도 소소한 대화가 둘 사이에 흩어지는 입김마냥 서로에게 닿아 흩어졌으면.
남준이의 시선은 언제나처럼 윤기의 입술에,
윤기의 시선은 언제나처럼 남준이의 눈에.
그러다가 살짝 엇갈린 시선이 마주칠 때면, 남준이가 먼저 웃어보였으면 좋겠다.
윤기 너는 그 얼굴이 귀여워서 손을 들어 괜히 볼만 쓰다듬어 내렸다가 머리를 한 번 헝클이듯 쓰다듬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맞추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걸음으로 집에 도착한 윤기와 남준이가 사온 것들을 분주히 정리했으면.
저녁을 먹을 때까지 조금 시간이 남아 남준이는 그 사이 오랜만에 쌓인 사진들을 정리했으면 좋겠다.
주인아, 이 사진 잘 나왔다.
그러네. 이건 언제였지?
윤기가 자주 폴라로이드, 혹은 다른 사진기로 이것저것 찍어놓은 사진들을 예전의 어느 날 둘이 같이 사왔던 새 앨범에 또 차곡차곡 끼워 정리를 했으면 좋겠다.
예전보다는 한참 작은 볼륨의 노래가 잔잔하게 거실을 채웠으면 좋겠다.
사각거리는 소리나, 팔락이며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릴 정도의 노래가.
간간히 한 두마디 나누는 조용하면서 한없이 편한 틈새를 비집듯, 사진 정리가 끝나고 나자마자 먼저 고개를 든 건 남준이였으면.
윤기는 잠시 핸드폰에 온 연락을 확인하고 작업실에 들어간 사이에 부엌으로 향하고는,
냉장고 문을 열고, 뒤를 돌아 눈치를 한 번 보고, 다시 냉장고 안을 살폈다가 맨 아래 구석에 위치한 캔커피를 슬금슬금 꺼냈으면.
이거 소리 안 나게 어떻게 따야할까. 남준이의 꼬리가 좌우로 까닥이면서 남준이가 얼마나 깊은 고민에 빠졌는지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준아. 너 뭐해.
어, 어? 주인아. 언제 왔어?
너 그거 마시면 또 잠 못 자서 난리나려고.
윤기가 단호한 얼굴로 남준이의 손에서 캔커피를 받아 다시 냉장고 깊은 곳에 넣었으면 좋겠다.
남준이는 그 모습을 보며 축 귀를 늘어뜨린 채로 애처롭게 윤기를 바라봤으면.
윤기는 아무 말 없이 그 눈길을 애써 외면했다가 결국 짧게 한숨을 내쉬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몸을 돌려 남준이와 마주친 채로 두 손으로 남준이의 뺨을 감싸고 발꿈치를 살짝 들어 먼저 입을 맞추었으면.
아주 짧게, 간지럽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입술에 남준이가 또 한 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윤기의 허리를 끌어안았으면 좋겠다.
자, 대신 이거 해줬으니까 대신 캔커피는 참아.
주인아.
왜.
좀 더 진하게 해주면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상체를 조금 숙여 이마를 맞대고 건네는 간지러운 말에 윤기는 나직한 웃음소리와 함께 또 한 번 고개를 올려 입을 맞췄으면 좋겠다.
그래도 몰래 꺼내마시려고 한 건 혼내야 되겠다는 장난스러운 윤기의 말에
남준이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그저 주인아, 주인아. 윤기를 부르면서 윤기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부비적거렸으면.
그 애교에 윤기가 아침처럼 못 이기겠다는 듯 웃으며 남준이의 머리를 헝클이며 쓰다듬었으면 좋겠다.
자신에게 혼내지 말라는 듯 부쩍 애교를 부리는 것이 많아져서 귀엽긴 하지만, 그만큼 얄미움도 쌓여서 그 끝에는 남준이의 볼을 살짝 꼬집는 윤기가 보고 싶다.
저녁식사는 요즘에 남준이가 요리를 해보고 싶다고 말해서 나란히 서서 한참을 준비했으면.
칼을 쓰는 건 조금 익숙해져서 간단한 요리를 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저녁식탁이나 아침식탁에는 남준이가 만든 반찬이 하나씩은 자리했으면.
어느 날은 지나치게 짠 나물,
어느 날은 지나치게 단 멸치볶음,
또 어느 날은 아무 맛도 안 나는 김치볶음밥 등.
그래도 양 자체는 많지 않아서 금방 먹어치우긴 하지만 윤기는 때때로 자신의 입맛이 썩 예민하지 않은 것에 안도를 느꼈으면 좋겠다.
한 편으로는 스스로 만든 반찬이 성공했을 때와 실패했을 때 확연히 드러나는 생생한 남준이의 표정을 바라보는게 윤기 나름의 즐거움이었으면.
아점보다는 훨씬 걸렸던 저녁시간이 끝나면 또 한 번의 나른한 시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간혹 서로의 입술이나 체온을 집요하게 탐하기도 하고,
아무 일도 안 하고 기댄 채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기도 하기도 했으면.
저녁의 끝자락에서 밤의 첫자락으로 넘어갈 때, 남준이가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베란다 창에 비춰지는 풍경에 꼬리로 소파를 한 번 팡 내려친 뒤에 벌떡 일어나 베란다 창에 다가갔으면 좋겠다.
고개를 돌리고, 신난 얼굴로 윤기를 불렀으면 좋겠다.
주인아, 눈!
눈 와?
응. 눈 온다, 잔뜩.
첫 눈을 기대하던 남준이였지만 새벽 늦게 몰래 내려앉고 가버린터라 꽤나 크게 실망했었으면.
그런데 이번에 그런 실망감을 달래주듯 펑펑 내리는 함박눈에 남준이의 꼬리가 한없이 흔들렸으면 좋겠다.
신났네, 멍멍이.
짧게 웃은 윤기가 느릿하게 일어나 남준이 옆에 서서 베란다창을 통해 눈이 하늘하늘 흩어지는 바깥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어두운 하늘에서 내려와 가로등 빛에 반짝이는 눈송이를 바라보던 윤기가 자신의 어깨를 끌어안는 손에 얌전히 남준이의 품에 몸을 기댔으면.
주인아. 올해 첫눈 같이 못 봤는데, 어떡하지?
뭘 어떡해. 그냥 못 본거지.
그래도. 올해도 주인이랑 사랑을 이루어야 하는데, 못 봐서 어떡해.
너 그거 때문에 그렇게 실망했었어?
응….
진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윤기가 몸을 돌려 남준이와 마주봤으면 좋겠다.
손을 올려 남준이의 뺨을 감싸고 엄지로 조심히 문질러 쓰다듬어주었으면.
그리고 버릇마냥 머리부터 가지런한 눈썹, 미간, 뺨, 목덜미를 느릿하게 쓸어내렸으면.
안 봐도 이루어져, 그거.
진짜?
그래. 그리고 올해 못 봤으면 내년에 보면 돼. 그리고 내후년에도. 그렇게 계속, 같이 눈을 보며 있다보면 이루어지겠지. 사랑이라는 게.
조용히 울리는 윤기의 목소리에 남준이가 절로 입꼬리를 올려 환하게 웃었으면 좋겠다.
그럼 매년 이루어지겠다.
그렇겠지.
응. 사랑해, 주인아.
어. 그래.
주인은?
나도, 해. 그거. 사랑.
누구랑?
얄미운 강아지 하나랑.
윤기가 남준이의 양쪽 볼을 살짝 잡아늘리자 남준이가 아프다며 낑낑 울상을 지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허리를 감싸안은 손을 놓지 않는 남준이에 윤기가 금방 남준이의 허리를 감싸안았으면.
자연스럽게 남준이가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맞추었으면 좋겠다.
간지럽게만 닿았던 입술이 계속 아슬하게 스쳐지나가다가 조심히 맞물렸으면 좋겠다.
남준이가 천천히 눈을 감아내리면, 잠시 남준이를 바라보고 있던 윤기의 눈도 천천히 내려감아졌으면 좋겠다.
등에 닿은 유리창에서 스며오는 냉기도 모를만큼 따뜻한 입맞춤을 나누었으면.
그러면서도 살짝 입술이 떨어지는 틈으로는 조금 떨리는 숨결과 웃음이 흩어졌으면 좋겠다.
가장 추운 날의 한 가운데서 가장 따뜻한 사랑을 하는 남준이와 윤기가 보고 싶다.
그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어느 계절이던 아마도 가장 따뜻하고 간지러운 사랑을 나누는 남준이와 윤기였으면 좋겠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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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이어져온 남준이가 대형견인 썰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주신 선물 모두 감사드립니다. |
애정을 담아 제게 주신 그림과 귀여운 글씨들 계속 예쁘게 간직하고 있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
[암호닉] 곧 메일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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