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양반, 내가 마법소녀라니 무슨 말이오...
*
초빵이는 아침부터 애를 쓰고 있네요. 정국이는 어른스럽다가도 아침만 되면 아가같은 모습이랍니다. 아주 일어나기 싫어서 발광을 하네요!
" 정꾸야!!!"
" 고막 찢어질 것 같으니까 닥쳐..."
" 정꾸야! 7시야!!!"
" 5분만 더..."
덩치가 제 오십배 쯤 되는 정국이 위로 올라고 폴짝폴짝 뛰어도 보고 초빵이의 애용템 깔대기도 써보았지만 정국이는 일어날 생각을 안해요. 하긴 그도 그럴 게 정국이는 어제 수행평가를 하느라 열두시까지 보고서를 쓰고 메일로 보내고, 계획을 못 마친 공부를 하느라 새벽 4시에 잤거든요. 좇같은 수행평가! 아.. 아니 제가 방금 무슨 말을...
결국 초빵이의 소음에 못 이겨 화장실로 들어가는 정국이에요. 부모님은 맞벌이라 벌써 출근하셨구요. 아침 잠에 취약한 정국이지만 초빵이가 생긴 후로 늦게 일어나는 일은 많이 줄었어요. 그래두 지각은 여전히 하지만요.
헉. 방금 보셨어요? 뭐긴요, 샤워하려고 옷 벗는 정국이죠! 참... 역시 몸이 좋은 친구네요. 별명이 근육돼지일만 해요... 초빵이는 신이 났네요. 팔랑팔랑 정국이 주위를 날아다니다가, 헉! 잡혔어요.
" 꿱!"
" ......"
정국이가 초빵이를 한 손에 움켜쥐고 귓속말을 하네요. 너무 작아서 들리지가 않아요. 뭐라고 말하는 걸까요? 그 말을 듣는 초빵이의 안색이 눈에 띄게 나빠졌어요. 약간 눈물이 고인 것 같기도 해요. 정국이는 화장실로 들어가 버리고 초빵이만 화장실 앞에 덩그러니 남았어요. 초빵이 곁으로 더 다가가 볼까요?
" 한번만 더 조까치 깨우면 초코찐빵 터쳐버린다구..."
" 힝... 나는 정국이의 또다른 모습인데에..."
모두 보셨죠, 여러분...? 이게 계약직의 설움이랍니다... 초빵이는 잠시 기죽어 있겠지만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사실 이 협박은 2년 전부터 계속 되어 왔거든요! 말하자면 정국이의 아침인사 정도랄까요? 2년 내내 살벌한 저주의 말을 퍼붓는 정국이와, 2년 내내 풀 죽는 초빵이... 둘 다 참 한결같네요.
녜? 초빵이가 뭐냐구요? 아니, 여러분! 지금 그것도 모르고 이 글을 보고 계셨던 거예요? 초빵이는 2년 전에 알에서 부화한 정국이의 또다른 모습이랍니다! 물론 지금은 정국이가 고삼의 벽에 부딪혀 저렇게 살벌하고... 거지같고... 괴팍한 성격이 됐지만... 정국이에게도 초빵이 같은 귀여운 면이 있었어요. 아, 잠시 손수건 좀 주시겠어요? 생각하니 눈물이... 초빵이의 원래 이름은 ☆뷔☆ 였지만 조빱이, 벌레새끼, 존마니 같은 살벌한 별명을 지나 지금에 안착하게 된 거랍니다. 아까 말했듯 초빵이는 초코찐빵의 준말이에요. 초빵이의 저 포동포동한 볼따구 보이시죠? 세상에 너무 귀엽네요... 저는 이만 관 짜러...
*
" pass away, 죽다, kill, 죽이다 … "
정국이는 걸어서 등교하는 편이에요. 정국이는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항상 체력이 뒷받침 된답니다. 20분 정도 되는 거리를 걸으며 매일 단어를 외우죠. 아 근데 단어가 왜 저러냐구요...? 저건 정국이의 속마음이랄까요? 정국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breathe one's last breath 랍니다. 뭐냐면 '죽다'의 고급스러운 표현 쯤 될까요? 정국이 단어장에서 저 단어는 형광펜으로 여섯번, 빨간펜으로 아홉번 줄이 쳐져 있어요. ... 왜 그런 시선으로 보시는 거죠? 정국이는 순수하게 단어를 외우는 것 뿐이라구욧!
" ... 헉 졍꾸야."
" perish 비명횡사하다"
" 졍꾸야, 어둠의 기운이야..."
정국이는 정의로운 캐릭체인저지만 학교 가는 길은 좀 아니라구 생각해요... 물론 일과중에도 아니고, 하교길도 아니고, 방과후도 여전히 적절한 때는 아니죠. 수면시간을 뺏길 수는 더더욱 없었구요. 일하기 싫어한다구요? 아, 아니... 그런건 아닌데... 그냥 적절치 못한 시간이란 거죠... 어쨌든 정국이의 어깨에 타고 있던 초빵이가 발을 동동 굴러도 정국이는 들은 척도 안해요... 그게... 이어폰을 끼고 있거든요!
" 동작 그만. 전졍꾸 너 노래 안 나오는 거 알고 있다."
" 씨발 뭐. 뭔데."
" 두 블럭 더 가서 좌회전."
... ㅋ 아니네요.
노래를 듣지 않는단 게 뽀록난 정국이는 약간 빡친 상태지만 어쩔 수 없죠. 가던 길을 우회해서 가기로 해요. 걸음이 빨라지네요. 이런 일에 휘말려 지각을 한게 한 두번이 아니거든요. 곧 있으면 3월 모평인데 진짜 이 초빵이를 어디 갖다 버리든지 해야지...
좌회전을 하자 초등학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네요. ... 아무 것도 없는데? 초빵이를 째려보자 초빵이는 민망하게 웃어요. 일딴! 무슨 일인지 물어보자, 정꾸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수습하는 초빵이에요.
" 뭔 일 인데 길을 막고 지랄이야."
헉.. 놀라서 눈 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초빵이가 어깨를 퍽퍽 쳐요. 졍꾸야... 제발.... 나 징계 먹어....
" ... 무슨 일 있니, 아이들아?"
순화된 대사를 다시 쳤어요. 다행이네요. 사실 저도 식겁했거든요. 아이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길을 터줘요. 어젯밤에 왔던 비때문에 물 웅덩이가 생겨버렸네요. 아이들에겐 확실히 너무 넓직한 물웅덩이에요. 이것때문에 등교를 못 하고 있었구나! 초빵이의 눈에 열기가 활활 솟아올라요.
" 졍꾸야, 역시 변신?!"
는 개뿔, 날파리를 잡듯 초빵이를 한 손에 움켜쥐듯 잡아챈 정국이가 주머니에 쑤셔넣어요. 죷내 쪽팔리게 초딩들 앞에서 어떻게 변신을 하란거야, 이 미친 새끼가. 욕을 가까스로 속으로 삼켜낸 정국이가 아이들을 하나씩 목마태워요. 여덟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차례차례 건너니 어느새 목 뒤에 땀이 주룩주룩 흐를 정도네요. 요새 초등학생들은 뭘 쳐먹길래 이렇게 무거워... 라고 잠시 생각한 정국이지만 묵묵히 마지막 아이까지 내려줬어요.
" 형! 고맙씁니다!"
" ... 이제부터 차타고 다녀라."
이 악물고 말하는 정국이에요. 이 짓을 하는동안 벌써 15분이나 지나서 지금부터 엄청 뛰어서 가도 간당간당 했거든요. 초빵이는 언제 올라왔는지 의기양양하게 정국이의 어깨위에 앉아있어요.
" 우리 졍구기 쨩!"
" 거기 꽉 잡아라."
" 악!!"
정국이의 교복 카라를 잡고 거의 대롱대롱 매달린 초빵이에요. 정국이는 중학교 때는 전국체전에 나가고, 지금도 줄곧 계주 마지막 주자거든요. 정국이가 거의 육상선수 급으로 뛰어서 교문에 도착했지만, 아뿔싸! 종이 한 발 일찍 쳐버렸네요. 꼼짝없이 선도에 걸려버리고 만 정국이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에요. 진짜 이 새끼를 어떻게 처치할까... 쉿, 정국이는 일생일대의 고민 중이에요...
*
" 3326 전정국이요."
결국 오늘도 중앙 현관에서 엎드려뻗쳐를 하게 된 정국이에요. 꼼수부리는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정직한 자세로 흔들림도 없었어요. 지나가는 여학생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요. 일부러 아침조회시간인데 정국이를 보러 내려오는 여학생도 수두룩 했으니까요.
솔직히 정국이는 여자애들이 뿅 갈만한 캐릭터긴 하죠. 일단 얼굴도 잘 생겼고 키도 크고 몸도 좋고요, 아까 말했듯이 운동도 잘 하고, 지금까지 전교 1등을 놓쳐본 적 없을 정도로 공부도 잘 했거든요. 게다가 약간 무뚝뚝해서 그렇지 무심하게 챙겨주는 것도 잘했고, 등굣길에서 그랬듯 남 모르는 곳에서 선행도 많이 했거든요. 종종 얼굴책에도 떠요. 방탄고 대신 전해드립니다 계정엔 정국이 이야기가 대부분이에요. 도랑에 뒷바퀴가 빠져버린 유치원차를 빼주기도 하고, 소매치기를 잡기도 하고, 아, 최근에는 성폭행범도 잡았다니까요. 그 과정에서 몸싸움이 있었던 바람에 정국이의 팔에는 상처가 나 버렸지만 경찰 표창장까지 받았어요. 남들한테 자랑하듯 무용담을 늘어놓지도 않고 정작 본인은 묵묵한게 킬링 파트죠... 게다가 변신도 안 한채로 이렇게 선행을 하다니, 글을 읽는 여러분도 반해버릴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같은 학교 여학생들이라고 어떻게 안 반하고 배기겠냐구요.
초빵이는 정국이의 어깨위에 올라가서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대놓고 관찰 중이에요. 정국이의 행복은 곧 나의 행복! 정국이의 인기는 곧 나의 인기! 라는 신조로 살고 있는 초빵이거든요. 초빵이는 종종 이렇게 무시무시한 주인이란 걸 원망하지만 그래두 그만큼 멋있어서 항상 뿌듯해한답니다.
" 졍꾸야! 쟤가 너 쳐다본다. 저거 초콜릿 너 주려나봐."
" ... 죽여버리고 싶다..."
" 뭐? 전정국, 너 지금 벌 받고 있는데 혼자 뭐라고 떠들어대는거야!"
" ... 아님다!"
" 정국이만 10분 추가. 나머지는 어서들 올라가서 수업 준비해!"
씨발... 정국이는 얄짤없는 학주가 약간 빡쳤어요.
*
점심시간은 정국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에요. 정국이는 축구하는 걸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정국이는 구기종목에 있어서라면 천재적인 실력을 발휘해요. 사실 예체능으로 갈까 고민했던 것도 수십번이랍니다. 공부 해놓은 게 아까워서 결국 포기했지만 그래도 운동하는 건 여전히 좋아해요.
" 저기.. 정국아! 이거 마실래?"
" 어. 고마워."
정국이는 신발끈을 묶느라 정신이 없는데 얼굴도 모르는 여학생이 와서 포카리를 주고 가네요. 이런 일은 거의 일상이라서 정국이는 신경도 안 쓰고 받아요. 운동장으로 나가는 2~3분간의 시간동안 받아챙긴 선물이 한 가득이에요. 이온음료부터 시작해서 에너지바니, 손편지니... 사실 정국이는 딱히 이런 애정공세에 관심은 없지만 주는 사람 성의가 있으니 소중하게 받아챙겨요. 나중에 이런 걸 쓰레기통에서 발견한다면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뜯지도 않은 편지도 속상할테니 감흥없어도 집에서 한번쯤은 꼭 읽어보고 커다란 박스에 넣어둔답니다. 중학교때부터 그렇게 받은 편지가 커다란 박스 두 박스는 돼요. 수집욕이라든지, 자랑이 아니라 정말 성의를 생각해서 하는 일이에요. 여러분이 보기에도 정국이가 참 속이 깊지 않나요? 우리 정국이 참 잘 자랐죠? 크흡...
" 꺅!!!!"
정국이의 다섯번째 골이에요. 팬서비스 차원으로 손을 흔들어주자 아주 여자애들이 난리가 났네요. 20분만에 다섯 골이라니... 상대팀은 전의를 상실한지 오래고 게임은 파장이에요. 정국이가 근처 수돗가에서 얼굴을 닦자 누군가가 또 코튼향기가 나는 수건을 건네줘요.
" 고마워.."
크... 저 맛에 아이들이 선물 주는 거겠죠? 여자애는 얼굴이 금세 빨개져서 도망가고 덩그러니 수건만 남았어요. 정국이는 어쩌나 싶어 일단 수건과 나머지 선물들을 고이 챙겨 교실로 컴백해요.
" 하..."
오늘도 정국이 책상에는 위태롭게 탑이 쌓여 있어요. 게토레이, 포카리, 이프로, 파워에이드... 형형색색의 이온 음료들이 포스트잇과 함께 붙어있네요. 이제 이런 것도 익숙해요. 정국이는 미리 챙겨온 커다란 쇼핑백에 음료수를 차곡차곡 넣고, 포스트잇은 따로 챙겨서 보관해둬요. 대체로 [오늘 경기도 잘 봤어], [오후 수업도 잘해!] 이런 내용이네요. 정국이는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다음 수업을 준비해요.
다음 수업은 생물 발표 수업이에요. 일주일 전부터 준비를 꼼꼼히 해둬서 오늘은 거의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 이렇게 해서 천연두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완벽하게 발표를 끝낸 정국이의 모습에 대신 의자에 앉아있던 초빵이가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여요.
" 흐흫.. 역시 우리 졍꾸.."
" 완벽하네. 역시 정국이."
" 감사합니다."
민망한 듯 슬쩍 웃다가 제자리로 컴백하는 정국이에요. 먼지 털듯 초빵이를 털어내고 자리에 앉았어요.
... 힝. 나 또 왜... 원망스럽게 쳐다보지만 이미 정국이는 생물의 세계로 빠져들었네요. 어쩔 수 없죠. 초빵이는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바닥에 그대로 앉았어요. 지금은 저렇게 정 없게 굴어도 어렸을 때 정국이는 정말 정말 귀여웠거든요. 그 때 초빵이는 물론 없었지만, 알은 항상 아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초빵이는 알의 모습으로 정국이의 마음속에서 살고 있었어요. 초빵이는 헤- 벌린 얼굴로 미취학 아동 정국이를 상상해요. 여러분도 궁금하시다구요? 그럼 빨리 초빵이의 상상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
정국이 어머니께서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길 간절히 원하셨어요. 목욕탕가서 등 때밀어 줄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 한 명만 더 낳게 해달라구, 정국이의 형을 낳은 후로 매일같이 삼신할매한테 빌었죠. 마침내 정국이를 임신하고! 그러나 막상 낳고 보니 정국이는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남자아이였답니다.
갓 낳았는데도 볼따구는 발갛고 예쁘게 방긋방긋 웃는 정국이를 보며 정국이 어머님은 딸 욕심을 싹 버렸다구 해요. 대신 딸을 낳으면 입히려고 샀던 옷을 차례로 정국이에게 입혀보기로 하죠. 예를 들면,
이렇게 예쁘게 자라온 정국이는 동네 누나들과 함께 자라며 자신의 만화 취향을 확립해요. 물론 그 배후에는 어머니의 입김이 컸어요. 어머님께서는 대기업 이사자리에 계셨거든요. 능력도 좋으니 백화점 하나를 통째로 사줄 기세로 정국이가 원하는 장난감이면 뭐든지 사주셨죠. 예를 들면 체리의 카드 세트라든가, 달빛 천사 인형, 피치피치핏치 마이크, 슈가슈가룬 펜던트 같은 걸 말예요. 아직 2차성징이 도드라지지 않은 초등학교 저학년때는 다른 사람들이 곧잘 오해를 하기도 했답니다. 호칭 정립이 제대로 되지 않아 형아를 오빠로 부르던 정국이의 말버릇도 한 몫했죠.
이 얼굴로,
" 오빠!"
하면 그 날로 동네 공동 장례식이었어요. 청담동에는 정국이가 첫사랑이었던 형아들도 숱했다니까요.
초등학교때는 이 하트 한방이면 모든 게 프리패스였어요. 덕분에 정국이는 학교를 9시까지 가고, 집에 가고 싶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정국이를 도왔답니다. 그런 정국이의 취미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상대방의 하트를 보는거였어요. 당연히 안 보였죠. 나는 왜 마계사람이 아닐까... 한창 슈가슈가룬에 빠져 있던 정국이의 가장 큰 고민은 그런 류였어요. 나도 종이 찢어서 날리면 택배 왔으면 좋겠다.... 하트 모으는 건 자신 있는데... 나뚜... 내가 바닐라따위는 엄지손가락만으로도 이겨버릴텐데...
그러던 정국이에게 새로 시작한 [캐릭캐릭 체인지]는 혁명이었죠. 게다가 주인공은 알이 세개나 있었어요. 정국이는 일본에서 직수입한 알 피규어를 매일 정성스럽게 닦고 코스튬을 모았어요. 그 착샷이 우연히 SNS를 통해 퍼지고 방송사들도 찾아와서 영상을 찍어가려고 컨택도 들어왔어요. 어린 정국이는 낯을 많이 가리는 데다 흑역사를 만들긴 싫다는 어머님의 확고한 신념에 따라 무르긴 했지만 말예요. 지금 되돌이켜보면 정국이는 그게 일생일대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으... 그게 방송으로 나갔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니까요.
하지만 그런 유년시절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정국이는 어엿한 근육돼지로 자라게 되었어요. 물론 다른 친구들처럼 게임도 하고, 오락실도 가고, 운동도 하면서요.
다소 특이했던 과거는 그냥 과거로 남게 되는 줄만 알았어요. 정국이는 그걸 아주 간절히 바랐답니다. 그건 아주 무참히 산. 산. 조. 각. 난 허황된 꿈이었지만요.
*
그건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던 고 1 초였어요. 정국이는 원체 머리가 좋았기 때문에 선행이야 껌이었죠. 제도샤프로 기벡 정석을 쓱쓱 풀어나가는 모습은 거침이 없었어요.
그런데.
" 호오..."
웬... 벌레가.... 아니....... 이상한 사람... 아니 요정?
어쨌든 괴생물체가 저와 같이 정석을 보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정국이는 식겁해서 물었어요. 너 넌너 너너,, 뭐야?!
" 히- 안녕! 나는 졍꾸의 또 다른 모습, 쀠! 라구 해! 잘 부탁해!"
...ㅅㅂ? 왜 나오랄때 안 나오고 지금 나오고 지랄이지?
그게 둘의 첫 만남이었답니다.
정국이는 처음 만난 날부터 초빵이를 쥐잡듯이 갈궜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어요. 마계에서도 성평등 사상이 대두되면서 남자 캐릭체인저를 급속으로 선정하기 시작했구, 청담동 일대를 정국이가 맡아버린 거거든요. 왜 하필 난데! 짜증스레 물었더니 대답은 너무나도 당당했어요. 예쁘잖아! 여자보다 더 예쁘면서 마법소녀로 간택 안 되는 걸 바라는게 무엄하도다! 빽빽 거리는 초빵이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어요. 그럼 너 막 나 결혼할 때까지 같이 있고 그래?
" 아니... 뷔는 비정규직이다... 졍꾸가 꿈과 희망과 동심을 잊는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거야."
... 정국이는 의아했어요. 현 열일곱 중에 자기가 가장 인생에 회의감을 많이 품고 사는 것 같았거든요. 이 마계새끼들은 대체 무슨 기준으로 이런 걸 정하는거야. 물론 코스튬을 보고 한번 더 기겁한 정국이였어요.
*
" ... 졍꾸야..."
" ...?"
야자시간이었어요. 정국이는 집중해서 영어 독해를 풀고 있는데 우리 초빵이가 오돌오돌 떨고 있네요.
" 이거 진짜야... 이거 진짜 어마어마한 어둠의 기운이야..."
웬만하면 귀마개를 꼈단 핑계로 무시했을 정국이지만 초빵이가 무서워하는 걸 보니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았어요. 야자 감독 선생님의 눈치를 슬쩍 보다가 화장실로 쏙 들어갔어요.
" 어딘데."
" 학교 뒷뜰..."
가엾은 초빵이는 거의 울 지경이 다 되었네요.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무서워하는걸까요? 정국이는 일단 초빵이를 주머니에 넣은채 쓰다듬으며 안심을 시키고 학교 뒷뜰로 걸어갔어요. 선생님의 눈을 피하느라 좀 힘들긴 했지만 교실이 2층이라 쉽게 도착할 수 있었어요. 뒷뜰로 통하는 문을 열자 과연 어둠의 기운을 내뿜는 남자애가 있네요. 헉. 거기다 어떤 여자애도 함께예요.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 정국이는 몸을 숨겨요. 초빵이도 포로로 날아서 정국이 어깨에 안착했어요.
" 쟤... 인수 아닌가?"
정국이와 곧잘 축구를 하는 인수였어요. 같이 있는 여자애는 누구더라. 원체 여자사람에 관심이 없는 정국이라 한참을 뒤적거려야했어요. 아, 아마 인수랑 가장 친한 여자애던가. 등하교를 같이 하는 걸 봤었거든요. 정국이는 숨소리도 죽이고 둘의 대화를 엿들었어요.
" 그 새끼는 너한테 관심도 없어..."
" ... 니가 무슨 상관인데."
" ... 니가 혼자 너무 힘들잖아..."
" 내가 정국이 좋아해서 혼자 힘들든 말든 니가 무슨 상관이냐구! 이거 안 놔?"
여자애가 있는 힘껏 인수를 뿌리치자 어둠의 기운이 더 강해졌네요. 이건... 물리적인 힘으로 어쩔수가 없는 일이었어요. 시벌... 좇같지만 변신을 해야하나. 정국이가 고민을 하는 틈에 인수가 검은 알에 삼켜져버렸어요. 초빵이는 다급해졌어요. 지금이 변신 타이밍..!! 아, 존나 학교에서만은 이 짓 하기 싫었는데.......... 씨..........발..................
나 의 마 음 을 언 루 크 - ☆
♥스 위 티 쿠 키 ♥
... ㅋ 숨지고 싶다. 내일 아침에 학교에서 변사체로 발견되고 싶다.
... 네? 아니 이건 정국이의 생각... 인수와 여자애는 잠시 얼이 빠졌어요. 저게 뭐야...? 정국이는 마법소녀치고 좀 띠껍게 둘을 내려다봤어요.
" 뭐 왜 시발 뭐. 캐릭터 변신 처음 보냐, 씨발? 뭔데 고민이 뭔데 빨리 말해. 나 야자해야 돼."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여자애를 뒤로 하고 인수가 먼저 말을 꺼냈어요.
" 야 이 개새꺄!"
선빵을 날렸지만 정국이는 가볍게 주먹을 받아냈어요. 앗. 이건 마력이 아니라 그냥 본체의 힘이랍니다!
" 왜 이러실까. 말로 해."
" ... 이 새끼..."
인수는 가오가 죽어서 약간 민망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 너, 너는... 전정국 임마 너는 진짜 나쁜 새끼야..."
" 그러니까 뭐가."
" 너는...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착한 일도 많이 하고..."
뭐지. 이거 고백인가... 이어지는 칭찬 퍼레이드에 정국이는 약간 당황했어요. 이런 건 러브레터에서나 보던 멘트라구요... 설마 인수가 나를 좋아하는 것 때문에 어둠의 알을...
" 너 나 좋아해?"
" ... 허 참... 너 소문 못 들었냐? 방탄고 양식장."
" 우리 부모님 회사 다니는데."
" 아니. 니가 양식장이라고 이 미친 새끼야!"
내가 왜. 나 고등어빼고 못 먹는데. 정국이는 상황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오히려 답답해진 인수가 분에 차서 말해버렸죠.
" 니가 어장치기로 유명하잖아. 심지어 쟤도 너를 좋아한다고! 근데 넌 신경도 하나도 안 쓰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잖아."
" 버릴 순 없잖아..."
인수는 기가 찼어요.
" 그게 얼마나 사람 우습게 하는 건지 모르냐? 아예 마음이 없으면 선물도 받질 말고 웃어주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란 말이야. 괜히 사람 우습게 만들지 말고!"
아... 정국이는 그제야 생각이 났어요. 오늘 수건 주고 갔던 애가 쟤였구나. 인수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동안 옳다 생각했던 모든 일들이 다시 보였어요. 예의상, 성의를 봐서, 했던 모든 일들이 다른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마음이 없는 다정함은 오히려 독이 됐어요. 아... 미안. 졍꾸! 지금이야! ...ㅅㅂ 초빵이의 목소리에 정국이는 앞머리를 한번 쓸어올리고 인수의 머리에 새겨진 엑스자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피슈수ㅠ슈슈ㅠ슈.. 만화 효과음 같은 소리를 내면서 알이 말랑해지자 곧장 다음 주문을 외쳤어요.
정국이의 하트모양 손 사이로 파동치듯 하트가 번져나갔어요. 팍- 하며 인수의 검은 알이 깨져버리고 인수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어요. 덩달아서 변신을 해제한 정국이도 교복차림으로 돌아왔죠. 심드렁하게 떠나려다가 인수를 힐끔 보고 정국이가 말했어요.
" 근데... 고백은 언제 하려고? 지금 해."
" ㅇ, 어?"
" 인수 너 쟤 좋아하는 거 아니야? 사내 자식이 뜸들이지 말고 빨리 가서 말해. 너 그래서 지금 나한테 화난거잖아."
" 근데 쟤는 너를 좋아하,"
긴 무슨. 여자애는 메이드복을 입은 정국이를 보고 정이 뚝 떨어진 표정이었어요. ㅋ... 이래서 학교에선 변신하기 싫었는데. 고딩이 별 수 있나. 하루종일 학교에 있는걸. 정국이는 담 뒤로 숨고 인수가 고백하는 장면을 지켜봤어요. 저게 뭐라고 정국이까지 잔뜩 긴장했네요.
" ... 오랫동안 좋아했었어. 니가 고등학교 와서 전정국 좋아하기 훨씬 전부터. 니가 좋다니까 그동안은 나도 지켜만 봤는데 그 새끼 좋아하는 거 너만 힘들잖아. 혹시 마음 정리 되면... 아니다. 그냥 내 마음만 알아 줘."
" ... 응. 지금 좀 혼란스러워서... 일단 생각 정리 좀 해볼게. 인수야."
변신이 풀리고 초빵이는 안심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어요. 진짜 다행이다. 졍꾸야.
" 너희 지금 야자시간에 뭐하는 거야!"
웁스. 또 학주가 야단이네요. 하긴 그렇게 쩌렁쩌렁 소리를 지르면서 싸웠는데 모르는 게 이상하죠.
" 사건! 해결!"
" 너때문에 나 학원숙제 다 못 하면 너 내 방 청소 당첨이다."
" 힝... 너무해..."
역시 오늘도 평화로운 방탄고네요.
그럼 지금까지 즐거운 방탄고 변신소녀 스위티쿠키의 하루 잘 보셨죠? 여러분의 알은 잘 간직하고 계신가요? 초빵이 같은 사랑스러운 또다른 나를 만나기 위해! 우리도 동심을 간직하면서 살아보자구요. 그럼 진짜 안녀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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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갭신갭왕 스카트입니다. 불한당 보고 신알신 하신 분들... 괜찮아요...? 많이 놀래쬬...?
이건.... 이런 뵹신같은 맛이 나는 글이 나온 건! 제 잘못이 아니라! 캐캐체를 언급해주신 졍국이 때문이라 하겠씁ㄴ디ㅏ... ㅋ....
졍국아 난 널 사랑해... Q. 이거 쓰려고 초딩때도 안 보던 캐캐체를 봤단게 사실인가? A.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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