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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다오. 

채색한 구름같이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서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 

 

 

- 서정주, 〈추천사> 


 


 


 


 


 


 

  

 

 

 

 

 

꽃 날 

 

作 머쉬 


 


 


 


 


 

 

 

 

1. 


 

 

  청(淸) 마을엔 '꽃날' 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말만 들으면 꽃이 만개한 봄날을 뜻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몹시도 달랐다. 천지를 창조한 신께 감사의 뜻을 기리며 축제를 여는 날이기도 했으나 꽃날은 그런 의미에서만의 꽃날은 아니었다. 영원을 기리기 위한 꽃의 날이라고 말해야 옳았다. 좋은 의미가 내포된 듯한 이 풍습은 해마다 젊은 처자를 영원의 제물로 바치기 위한 행사를 벌였다.  

 

   

  

      " 올해의 꽃은 누가 되리라 생각하오? " 

      " …혹여나 말하건대, 내 딸은 혼인을 앞두고 있으니 이번 해 꽃의 제물로썬 절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게요." 

      " 허어, 아쉽게 되었구만 그래. " 

      " ……. " 


 


 

 

 

꽃날의 제물로 선택된 이는 그 해 꽃날이 되기 전 장장 30일 동안을 집 밖을 떠나 영원의 꽃이 잠들어 있다는 폭포수 아래 바위에서 지내야 하는데, 꽃날의 희생양으로 이제껏 바쳐진 제물들은 하나같이 30일이 지난 후면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기묘한 일이었다.  


 


 


 

영원의 시간을 살아간다는 이유로 매해 바쳐지는 젊은 처자들은 더욱 살아가고 싶은 과욕들로 인해 매년 어디로 갔는지, 살아는 있는지에 대해 알 수도 없을 기묘한 이별을 고했다. 꽃날이 되기 전, 영원의 신에게 바쳐지는 꽃이 30일 동안 홀로 떨어져 지내는 그 시기를 청독靑獨기라 이르는데, 29일까지는 멀쩡하게 있던 꽃이 청독기의 마지막 날이 지나면 아예 흔적조차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이 매년 열리는 꽃날마다 일어나고 있었다. 

 바쳐지는 제물들 덕분일까, 마을 내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관 다른 곱절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실제로올해 삼백일흔이 된 강 노인은 꽃날의 제물에 대해 특히나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였다. 

 


 


 

 

 

    - 그래서 너는 나보고 지금 올해의 꽃이 되라는 말이냐? 

    - ……. 

    - 내가 미쳤다고, 그딴 행사의 제물로 바쳐지길 원한다고 생각해? 

    - 아씨. 지금 문밖에……. 

    - 기다려 돌아가시든 말든 알아서 하라 해, 나는 절대 안 한다고 전하고. 

    - 아씨……. 

    

  

 

빌어먹을 영감탱이들. 뭘 그렇게 살고 싶다고 영원의 제물을 매해 바친다고 꼴값들을 떠는지 모르겠네. 더 이상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혜연은 고개를 저었다. 이래 보아도 꽤 높은 집안의 여식인지라 그래도 저에게는 이런 청이 들어오진 않을 줄 알았건만, 그놈의 영원의 꽃으로 저들 목숨이 연장되니 강 노인을 비롯해 여럿이 좋은 집안의 여식을 해마다 바친다면 '영원의 시간'도 더 늘려줄 것 같아 이러는가 보았다. 

 

    

  

    " 너는 어떤 것 같으냐. " 

    " 예? " 

    " 내가 올해 꽃날의 제물이 되는 게 나을 성싶으냐. " 

    " 아… 아씨……. " 


 


 

 

 

아니면, 

 

     

  

     " 네가 나를 대신하여 제물이 될 충성을 가지고 있더냐? " 

     " ……. " 

     " 역시 다들 똑같군. " 

     " 됐으니 이제 나가보거라. " 

     " ……아씨, 송구, ㅎ……. " 

     

  

 

이제 청독기가 다가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다. 아씨는 제물로 바쳐져선 안 된다는 생각이 더 앞선 탓일까 한빈은 문득 생각했다, 만일 자신이 아씨 대신 제물로 간다면 일단 여인이 아니니 제물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꽃 날 

 

作 머쉬 


 


 

  


 

 


 


 


 

 

 

2. 


 

 

 어느덧 청독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을 내에서는 벌써 대감 댁 외동딸인 혜연이 이번 해의 꽃이 될 것이라는 말에 다들 앞에서는 쉬쉬하지만, 제물이 될 꽃에 대해 너도나도 조잘대고 있는 판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혜연이 있었으며, 암만 조용하게 하려 해도 공공연한 꽃으로 지목된 혜연이 과연 청독기 이전까지 마을 내에 붙어있을 수 있을까, 하는 게 청독기가 다가오는 요즘 아낙네들의 수다거리였다.  

  

 


 

    "그 규수는 참으로 안타깝지 않어? 집안도 좋다는데……" 

    "그러게 말이요. 말마따나 살아오면서 평생을 곱디 고운 옷에 기름진 것들을 먹고 살았을 것인데 이번 해 꽃으로 지목되서리……." 

    "아마 한번을 제 손으로 일해본 적이 없을 것인데, 제 집 하인도 아니고 받들어 모시는 저가 제물이 될 지는 알지도 못했겄지, 안그랴?"  

 

  


 

 

 우린 그래도 지금 처자가 아닌 아낙네라 다행이라고 생각하자구, 그래. 

냇가에서 빨래하며 한창 이야기를 꽃피우던 아낙네들은 애를 보는 게 더 징글징글한지, 꽃날의 제물인 꽃으로 바쳐지는 게 더 징글징글한지에 대해 비교하며 한바탕 웃어 재꼈다. 정작 그들은 당사자의 심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잠깐 동정하다가도 금세 그저 남의 일이라는 것처럼 말해버리는 아낙네들의 모습을 담벼락 사이로 가만히 지켜보던 한빈은 제가 모시는 주인인 혜연이 이렇게 공공연한 뒷말의 대상이 된다는 것에 분노했다. 애초에 이 '꽃날' 이라는 연례적인 관행부터가 문제였다. 아무리 영생을 살겠다고 해도 무엇하러 젊은 처자들을 하나둘씩 잃어야 한단 말인가.  

 

  


 

   "이번 해 꽃은 과연 꽃신을 신을 수나 있을런가 모르겄네." 

   "거야 당연히 안 되겄지. 뭐 신을 수나 있으면 그동안 바쳐졌던 꽃들은 그럼 어디로 다 사라졌겄어? 분명, 숲속에서 짐승들한티 물어뜯긴 거라니깐."   

    "그건 좀 이상하지 않어? 그렇다기엔 청독기 마지막 전날까정 있던 꽃들도 있었잖어. 그 후로 다 사라지게 된 거지. 오히려 짐승들한테 물어 뜯겨 죽은 것이라면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야 정상 아닌감?" 

  

  

내 생각은 이거네. 저 숲속에는 처자들을 해치우는 큰 짐승이 있다고 말이야. 아니, 그럼 대체 그 짐승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저 내 추측은 숲에는 아주 큰, 괴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 

  

    '신이 아니고?' 

 

  

 

이제까지 꽃날의 제물들이 바쳐지는 이유는 영원의 신에게 자신들의 영생을 기원하기 위해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만약에, 정말 신이 아니고 제물로 바쳐진 꽃들이 짐승에게 물어뜯기는 것이라면……. 

 한빈의 표정이 급격하게 내려앉았다.  

 

  

   '이젠 아씨를 볼 수 없게 되는 걸까'  


 

 


너도 다른 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혜연의 말을 떠올렸다. 슬프셨겠지. 한빈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해보려지만서도 아씨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쿵쿵대는 심정은 어쩔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모시던 아씨다. 그런 혜연을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생각과 연이어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찼다. 다가오는 청독기, 바쳐지는 건 제물인 꽃, 그리고 그 꽃으로 사실상 결정된 것은 혜연 아씨……. 

 

 

  

   '네가,' 

   '나를 대신하여 제물이 될 충성을 가지고 있더냐?' 

  

 

때마침 떠오른 것은 제 주인의 말이었다.  


 


 


 


 


 


 


 


 

 

 

 

3. 


 

​ 청독기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사실상 결정된 제물인 혜연 아씨를 대신해 자신이 그 제물이 되어 나가겠다는 생각은 머슴의 생각치고 꽤 호기로웠으나, 계집을 바쳐야만 제물이 바쳐지는 것이지 자신은 사내라는 점에서 한빈은 걱정이 되었다. 혹여나 그 꽃날의 제물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가 싶어서.  

 

 

   "아씨…… 저 한빈입니다." 

   "……가라고 했던 게 말 같지가 않나 보구나. 왜 찾아오고 그러느냐?" 

   "이제 곧 청독기가 다가올 것이니 괜히 불똥 튀기지 말고 잠자코 있거라." 

 

 

그러면서도 혜연은 부채 사이 한빈이 보이지 않는 틈으로 슬며시 웃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예상하였으리라. 제 머슴이 저를 대신해서 희생이라도 할 만큼의 충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펼쳐 든 부채 속에선 화려한 복식을 한 여인이 그네를 타고 있었다. 밀어주는 머슴의 그림마저도 꼭 둘의 모습 같아, 한빈은 묘한 느낌을 받으며 부채를 보다간 말을 꺼냈다.  

 

 

   "아씨, 아씨에게 지금 위험한 상황입니다." 

   "나도 안다. 이미 내가 공공연한 꽃날의 제물이라는 건 길 개도 아는 사실이 아니더냐?" 

   "​……."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라고?" 

 

 

한빈은 머뭇거렸다. 어서 말해. 내가 대신해서 꽃으로 바쳐지겠다고, 기꺼이 희생하겠다고 말해. 말하지 않느냐고. 나는 꽃이 되고 싶지 않아. 물론 하진 않을 거지만,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서, 네가 가. 가주렴. 많은 이들이 나를 찾기 시작할 거야. 아마, 나는 곧 죽고 말겠지? 한빈이 네가, 네가 나를 구할 수 있어. 네가. 네가 나를 이 지독한 곳에서 끌어낼 수 있다, 너만이. 한빈아, 한빈아. ​많은 이들이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기 시작할 거야. 그러기 시작하면 나는 이제 더는 손을 뗄 수 없을 만큼, 그들에게, 파묻히고야 말 것이야. 네가 나를 대신해 줄 순 없겠니.  

 

 

  그래 네가,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 

   "제가, 아씨를 대신해서" 

   "꽃날의 제물이 되겠습니다." 

 

 

 

그 말을 한 뒤로 머지않아서 총성이 울렸다. 누구네 댁이 제물로 바쳐진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싶은 모양이렷다. 혜연은 쓴 웃음을 삼켰다. 제 충실한 몸종 덕에 제물이 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대로 도주하라는 한빈의 말에 잠시 그를 걱정하는 듯하던 혜연은 이내 남은 짐을 쌌다. 이미 어느 정도 도주할 준비가 되어있던 그녀였다. 아직은, 새벽이다. 총성은 멀리서 울려오고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쳐들어올 것이고, 한빈은 장옷을 걸친 채로 그들에게 갈 것이다. 아마도.  

 

 

  "잘 지내거라." 

  "예, 아씨. 잘 피하십시오."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자신이 아님을 알 것인데도, 한빈은 오직 제 주인의 걱정만 하기 바빴다. 참으로 어리석은 아이구나, 너는. 끝까지 한빈은 쓸데없이 착해빠진 구석이 있었다. 이걸로 갈아입으시고 얼른 도망치십시오, 아씨. 곧이어 한빈은 장옷을 썼다. 다행히도 그리 다부진 체격이 아니었던지라, 새벽 길가에서 눈대중으로 그를 볼 때는 못 알아차릴 성싶었다. 살짝 흐트러진 부분을 매만지는 그를 보며, 그녀는 부채를 내밀었다.  


 


 

  "꼭 도망치셔야 합니다." 

  "……그래." 


 


 

​그렇게 뒷문으로 떠나는 그녀를 본 것이, 마지막으로 한빈이 본 아씨의 모습이었다.  

 

 

​- 

 

[ 단어 설명 ] 

* 꽃신을 신다 : 매년 열리는 꽃날이라는 관례에서 제물로 죽지 않고(= 30일간의 청독기에서 살아남고) 영생의 신으로부터 축복받는 것. 마을 대대로 내려져 오고 있는 말이지만, 아직까지 꽃신을 신은 제물(꽃)은 없었다고 한다. 


 


 


 

- 

 

+ 너무 드러날까봐 제목에 안썼는데, 이성 아니예요...:) 

아이콘 픽 처음 써보는데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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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와 이런분위기정말정말좋아합니다ㅠㅠㅠ신알신하고가요ㅠㅜㅠㅠㅠ❤❤❤
7년 전
독자5
헤에.. 작가님 필력 완전 느셨네요 예전에는 좀 꾸밈이 많았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보니까 그런 것도 없어지고.. 이런 분위기 한빈이랑 넘 잘어울려요..!
7년 전
독자6
헐 이거뭐야ㅠㅠ 대박인데..? 신알신하고 가요~~~
7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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