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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패러디

최승철 ver.



내가 아직 어리고, 남의 말에 쉽게 화를 내던 시절,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 마디 해 주셨다.

나는 지금껏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칠봉아, 누군가에게 화가 날 땐,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다 너처럼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렴."



우리는 말수가 적었지만 서로를 잘 이해했으므로 아버지의 충고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잘 알아차렸다.

나는 판단을 유보했고, 별난 사람과 어울렸으며, 괴상한 사람들에게 따돌림도 당했다.

그 대가로 나는 종종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비밀을 들어줘야 했다.

그들이 비밀을 털어놓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피하는 쪽이었다.

자는 척 하거나, 다른 일에 몰두하는 척 하고, 때로는 가볍게 받아 넘기기도 했다.


대체로 젊은이의 은밀한 고백은,

적어도 그것을 표현하는 말은 다른 사람의 말을 표절하는 느낌이 들고,

고백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에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 판단을 유보하는 것은 상대에게 막연한 희망을 주기도 한다.

지금까지 나의 너그러움을 자랑했지만, 이것은 한계가 있다.

뭐든 그런 법이다.


작년 가을 내가 카탈루냐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영원히 일종의 도덕적인 차렷 자세로 있기를 바랐다.

나는 더 이상 유리한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흘끗거리면서 즐기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최승철은,

내가 이런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모든 것을 대표했다.

만일 개성이라는 것이 일련의 성공적인 행동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에게서는 무언가 굉장한 것,

즉, 삶의 가능성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만 킬로미터 밖에서 일어나는 지진을 감지하는 정교한 기계처럼.

이러한 그의 민감함은 '창조적 기질'이라고 불리는 그럴듯한 허약한 감상과는 전혀 달랐다.

그것은 내가 이제껏 어떤 사람에게서도 보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보지 못할 속성으로서,

희망에 대한 놀랄만한 믿음과 낭만적인 감수성이었다.



그는 결국 옳았다.

내가 인간의 덧없는 슬픔과 짧은 환희에 대해 잠시 관심을 잃었던 것은

최승철을 괴롭혔던 것과 그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는 더러운 먼지 때문이었다.






내가 그의 옆집에 살게 되면서부터 그는 나에게 관심을 가졌다.

서울의 비슷비슷한 거리, 비슷비슷한 집과는 다르게, 내가 사는 동네는 내로라 하는 부자 동네였다.

내가 사는 집은 부자 동네와의 경계에 맞닿아 내 집 근처에는 일 년 집세가 오천 만원은 거뜬히 넘는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마치 일일연속극 드라마 속의 재벌 기업 총수들의 집 같이 생긴 곳들을 지나다니며, 나는 감탄하곤 했다.



내 왼편의 집도 호화로웠지만,

오른편의 집은 누가 보든지 대단한 집이었다.

한쪽에는 담쟁이가 발밑치부터 덮인 조각상과 분수가 위치해 있었고,

다른 쪽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수영장과 엄청나게 넓은 정원과 잔디밭이 딸려 있었다.


그것은 최승철의 저택이었다.

이름을 몰랐을 때였으니 어느 젊은 청년의 집이라고 하는 게 옳겠다.

내가 세든 집은 작고 심심한 디자인이라서 별로 눈에 띄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는 옆집의 잔디밭과 한강을 내다보며 억만장자들과 가까이 살고 있다는 위안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웃집의 성수 부부와 저녁을 먹으려고 그곳으로 차를 몰고 간 날 저녁부터

그해 여름의 역사는 진정으로 시작되었다.



성수는 먼 친척이었고, 그의 부인과도 대학 때 잘 아는 사이였다.

오랜만에 만난 성수는 이제 마흔의 건장한 남자가 되었고, 그는 호쾌하게 웃으며 현관문을 열어 주었고,

그의 부인은 가녀린 미소를 지으며 들어와요, 라고 하고는 나를 이끌었다.

우리는 햇빛이 잘 드는 현관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칠봉이에게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어."



"누군데요?"



"보면 조금 놀랄걸."



우리는 천장이 높은 복도를 지나 밝은 장밋빛으로 꾸며진 곳으로 갔다.

양쪽에 있는 전통식 창문은 조금 열린 채로 빛나고 있었고 바깥에는 잔디가 보였다.

방 안으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들어와 커튼이 날리면서 양탄자 위에 그림자를 던졌다.

방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곤 큰 소파 뿐이었다.



소파 위의 남자는 풍선을 탄 듯 둥실,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흰 드레스 셔츠에 같은 색의 슬랙스를 입고 있었는데,

마치 집 주위를 잠깐 날다 온 것처럼 소매가 펄럭였다.


나는 커튼이 휘날리는 소리와 벽에 글린 그림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얼마간 서 있었다.

성수가 창문을 닫자 방 안에 갇힌 바람이 잠잠해지고 풍선이 떨어지듯

커튼과 그 남자가 천천히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는 왠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나를 본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메두사의 머리를 보고 굳어버린 석상처럼 입술을 살짝 벌린 채,

그의 시선은 온통 나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나머지 방에 들어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뻔 했다.



"칠봉아, 여긴 최승철 군. 승철 군, 여긴 김칠봉."



그는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진지한 표정으로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고는 미소짓기만 했다.

멍청해 보이면서도 매력적인 미소였다.

나도 함께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얼떨결에 손을 얹었다.

악수라기보다는 춤추기 전의 손이 얹힌 것 같았다.



"너무 행복해서 몸이 마…마비될 지경이에요."



그는 조금 모자란 사람처럼 말해놓고선 다시 웃었다.

나는 그것이 희미한 떨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잠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마치 이 세상에서 나만큼 보고 싶었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게 최승철의 방식이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자신이 나의 옆집에 산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내가 놀란 눈을 하자 그는 내가 작은 집에 살아서 그렇다고 했다.

아마 당신 주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당신의 존재를 알 걸요, 하고 예의 멍청한 웃음을 지었다.

다시 한 번 미안하다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다.

나는 완벽하게 고급스러운 사람을 보면 대체로 감탄하고 찬사를 보내는 경향이 있다.

그가 특유의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나는 어떠한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당신이 사는 집을 본 적이 있으며 그런 집에 사는 당신을 한 번쯤은 보고 싶었노라고 얘기했다.



"칠봉 씨, 날 보고 싶었어요?"'



내가 말을 머뭇거리자 그는 쥐고 있던 내 손을 조금 끌어당겼다.



"칠봉 씨가 나를 보고 싶어 했다니, 멋지다. 내 집에 올 생각은 없어요?"



즉흥적으로 약속을 잡아버리는 것이 억만장자들의 특성인지 아니면 그의 특성인지는 모르겠다.



아, 맞다. 승철 씨네 집 정말 좋던데.

눈치없는 성수가 끼어들었다.

부인 역시도 맞장구를 쳤다. 그림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집을 산 지 삼 년 됐어요. 오실 거죠."



그는 아이처럼 웃었다.

장난감 자동차를 자랑하는 소년처럼 미소가 해맑았다.

나는 왠지 그의 집에 가고 싶었다.



"갈게요. 언제 갈까요?"



베란다는 어느새 장밋빛으로 물들어 방과의 경계가 모호했다.

노을이 방 안으로 비쳐들었고 잠잠해진 바람에 식탁 위에 놓인 촛불 세 개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가 손가락으로 촛불을 꺼 버리고 일렁이는 연기를 바라보았다.



"…2주 후면 낮이 일년 중 가장 긴 날이에요.
항상 일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을 기다리다가 그 날이 되면 잊어버리고 지나쳐 버리지 않아요?
전 그렇거든요."



그는 고개를 들어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거부하기 힘든 햇살이 깃들어 있어 나는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그 날 만약 칠봉 씨가 괜찮다면요. 놀러 오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하지 않았다.

원래 사람 일이라는 게 꼭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지는 않으니까,

괜히 대답했다가 혹시 못 가게 되는 일이 생긴다면 곤란해질 터였다.

이제껏 약속이 깨져서 우는 남자는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울지 않을 것 같은 눈을 한 그는 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대화 이후 가끔 사람들은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대화는 색깔도 없고 맛도 없는 농담조로 잡담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그것은 승철이 입고 있는 하얀 옷처럼, 그리고 아무런 욕망이 없는 눈처럼 열의가 없었다.

그들은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즐겁게 대접하고 대접 받으려고 애쓸 뿐이었다.

그들은 곧 저녁 식사가 끝나고 그날 저녁 역시 아무런 일 없이 끝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증권, 주식, 예술품과 스포츠 이야기로 공기가 얼룩졌다.

승철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인 것 같아 나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자고로 저녁이란 끝없이 실망스러운 일에 대한 예감에 시달리거나 아니면

현대에 대한 긴장감과 두려움에 쫓기듯이 시간이 흘러가야 하는데.

와인을 두 잔째 마시며 나는 고백했다.



"내가 야만인처럼 느껴져요, 승철 씨. 우리 나혼자산다 같은 걸 얘기할 수는 없나요?"



별 뜻 없이 한 말이었지만 내 말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받아들여졌다.

성수가 격렬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삶이 산산조각 나고 있어.
나는 지독한 비관론자가 되기 일보 직전이지.
우치다 타츠루의 〈혼자 사는 즐거움> 읽어 봤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성수가 열띤 말로 우치다 타츠루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 사이,

승철은 내게 작은 쪽지를 건넸다.

그를 쳐다봤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성수의 말에 동의하며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을 뿐이었다.

전화벨이 울리고, 성수의 부인이 전화를 받으러 갔다.

성수의 전화인 듯, 성수의 부인이 성수에게 손짓했다.

성수는 아쉽다는 듯 대화를 끊고 일어나 협탁 쪽으로 향했다.

성수가 일어나기 무섭게, 승철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가 흥분된 얼굴로 속삭였다.



"성수 씨 바지에 대한 비밀 알려줄까요?"



"뭔데요?"



"사실 뒷쪽이 찢어졌어요. 봐요."



정말이었다.

검은 정장바지의 엉덩이 부근에 핫핑크 색의 팬티가 슬쩍 보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깔깔댔다.

의아한 성수의 부인이 먼저 자리에 앉았고 성수도 돌아오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둘만 웃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맞아요.“



우리의 시선이 맞닿았고, 나는 웃음을 꽤나 오래 참아야 했다.

저무는 햇살이 비치자 잠시 승철의 얼굴에 낭만적인 표정이 드러났다.

나는 그의 목소리에 숨 가쁘게 빨려 들어갔다.

해가 지면서 햇빛이 그의 얼굴에서 사라지자,

아이들이 해질 무렵에 즐거운 거리를 떠나야 할 때 느끼는 아쉬움 같은 것이 남았다.



얘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먼저 일어서겠다고 했다.

그의 눈은 빨리 자리를 뜨는 나에게 원망 비슷한 것을 담고 있었다.

문간에서 배웅을 받고, 얼마간 운전하다 빨간 불이 걸렸다.

문득 그가 준 쪽지가 기억나 펴 봤다.



'0808'



쪽지가 주는 명백한 의미에 웃음이 터졌다.

그는 자기 집으로 나를 초대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해가 가장 긴 날에 그에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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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이런 부내나는 글 좋아해요!!
7년 전
독자2
자까님,,,,치여써여,,,이론거 처음이야,,
7년 전
독자3
이런 문체 최고된다 작가님 잘 보고 있어요! 담편도 잘 볼게요ㅜ Λㅜ
7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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